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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림~<3-9>구조목~우천선생초막터~음양수샘~미산대~도솔샘~가섭굴(점심)~창불대조망터~협곡~석가섭제3봉 조망터~영신사~창불대~미산대~거림
참석자: 산영,동부능선,유목민,쉬블링,오르고,꺼비,인디안,날개,배완식,소요유,옥산,순짱,캔디(광주)
▼ <토산전람회길> 탐사 흔적
<개요>
이 길은 영신사가 소실되면서 잊어졌고 현재는 가끔 곰만 이용하는 길이다. 이곳은 지리산에서 가장 큰 암능 지역이며, 음양수 샘과 영신대를 잇는 최단거리 길이고, 미산대,도솔샘,창불굴을 지나 다섯 개의 작은 지계곡을 횡단하고 암능 사이로 끊어질 듯 이어지며 한모랭이를 돌때마다 비경이 펼쳐져 전람회 길로 부르게 되었다. 음양수 윗쪽 미산대에 올라보면 창불대 암능 사이로 <토산 전람회>길이 한눈에 볼 수 있다
직벽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웅장한 창불대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금새<석가섭 제3봉 전망대>에 올라선다.
이 짧은 능선은 천국의 계단이 있는 계곡과 나바론 좌골을 가르고 있는 능선으로 3개의 전망대가 있으며 모두 석가섭의 얼굴 모양과 목에 칼자국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후로 등고선을 따라 영신대 숨은 기도터 윗쪽으로 길이 이어져 있고 끝나는 지점에는 잡인의 출입을 막기 위한 석축이 보인다.
영신사지 주변으로 많은 명소들이 있고 이곳에서 곧은재(현 바른재)능선 초입까지 이어진 길이 전람회 길의 연장선으로 본다.
영신사지를 정점으로 하산 길에 접어 든다. 우선 비로봉 쪽으로 오르다가 우측으로 완만한 경사를 따라 능선으로 향한다.
그 길은 김종직 선생이 창불대에서 영신사로 내려올 때 사용했던 곳으로 골짜기를 올라서면 명품 소나무가 있는 <석가섭 제1전망대>가 보인다. 4~5명 정도가 올라보기에 적당하고 가운데 잘생긴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좌우 조망이 빼어나고 출발한 미산대까지 한눈에 보인다. 이곳은 대성폭포 부근 능선에서 보면 거대한 침봉으로 보인다.
소나무를 조망하고 독립봉을 보는 각각의 전망대를 지나 남부능선 안부에 올라서서 조금 내려오면 전람회 길의 마지막 코스인 창불대에 도착한다.
낭떠러지 위에 3곳의 조망이 모두 좋고 그중 최고봉인 창불대에 오르면 밑을 내려다 볼수 없을 만큼 아찔한 푸른 절벽이고 주변으론 털진달래가 많이 있고 날씨가 맑다면 하동방향의 여러 동천들을 볼 수 있다.
8:15분에 거림주차장에서 모여서 간단하게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식순은 아래 참조
1. 산영님
인사말 & 토산전람회길 소개
2. 동부능선 대장님
인사말 & 일행분들 소개
3. 유목민 대장님
인사말 & 일행분들 소개
4. 산행진행 설명(칠성)
거림출발~<3-9구조목>~음양수샘~
미산대~나바론우골(점심)~영신대~
창불대~거림
5. 기념촬영
6. 10명으로 두팀 출발
7. 하산 후 거림주차장에서 다과와 주연
끝~
▼ 산영형님이 안사말과 전람회길 개요를 설명중이다(08:15)
▼ 동부능선 대장님
▼ 왼쪽부터 완보님짝지,오르고님,완보님,쉬블링 대장님 그리고 유목민 대장님
▼ 날개님,인디안님, 지리산의 미래를 책임질 길사향님,캔디님,소요유님
▼ 순짱님,옥산님
▼ 30분간의 행사를 마치고 출발(08:45)
<오두인_두류산기(頭流山記)_1651년>에서
아침에 은정을 떠나 또 동쪽으로 올라가 수국현(水國峴)*[현 수곡재]을 넘어가려고 하였다. 돌 길이 험준하고, 냇물 가득히 얼음이 겹겹이 쌓였다. 열 걸음에 아홉은 쉬고 가시나무를 헤치면서 기슭을 따라 갔다. 가다가 보니 폐허가 된 암자 세 곳이 길가에 있었다. 스님에게 물으니 상수국사(上水國寺), 중수국사(中水國寺), 하수국사(下水國寺)라고 하였다.여기서부터 곧장 동쪽 고개로 올라갔는데, 여기가 소위 수국현이다. 수국현을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눈 덮인 산이 하나 있다. 하늘 한 가운데를 찌를 듯이 높고, 기상이 엄숙하며, 모든 계곡을 아래로 굽어보았는데 천왕봉이다. 즉 지리산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송병선_두류산기 1879년>에서
신흥사 길 옆 바위에는 ‘삼신동(三神洞)’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또 동쪽으로 수백 보쯤에는 ‘세이암(洗耳巖)’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고운 최치원이 이곳을 유람할 적에 손수 써서 새긴 것이라고 하였다.시내를 따라 30리를 가서 단천령(檀川嶺)에 도착하였는데,단천령은 산세가 매우 험준하고 급하여 거꾸로 매달리듯 곧바로 올라간 것이 거의 10여 리 남짓 되었다.뒷사람이 앞사람의 발뒤꿈치를 보고 앞사람은 뒷사람의 정수리를 보며10보쯤 가다가 한 번 쉬면서 산꼭대기에 이르니 진주(晉州) 땅이었다.일행은 거림동(巨林洞)으로 향했고, 나는 세석평(細石坪)이 보고 싶어서 도행 윤시묵, 경장 안시화 및 한생, 김생과 함께 산등성이를 따라 북쪽으로 갔다.
남부능선을 넘나들던 재가 여러곳있는데
단천과 거림을 잇는 단천령(수곡현),
현청학동과 거림을 잇는 갓거리재,
거림 내대리(남대사의 안쪽에있다하여 내대리라 부른다고함)에서 악양을 갈려면 꼭 넘어야하는 묵계재가있다
그이외에도 상불재,내원재,회남재,원강치등이 있다.
▼ 자빠진골로 단천령(수국현)을 넘어가는 갈림길인데 이곳에 넓은터로 보아 주막이 있었던걸로 추정된다(09:10)
▼ 완도에서 공수해온 군소와 뻘낙지로 발동을 건다
▼ 북해도교에서 옛길을 설명하고 있다. 거림옛길은 우천선생이 사용했던길로 보인다. 옛사람들은 계곡과 너덜을 되도록이면 적게 건너는걸 선호했다고 한다(09:55)
▼ <3-9>구조목에서 두분 대장님 나란히 한컷~
▼ 지리산 국립공원을 최초로 추진한 연하반산악회에 우종수씨가 종주를 하면서 연하천,연하굴,연하선경, 이 세곳에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첨언은 아침안개로 부터 저녁노을까지를 좋아하는 버릇을 뜻하는 연하지벽(煙霞之癖)으로 마무리했다(10:35)
▼ 왼쪽 바위에 올라 조망을 보고 협곡으로 내려선다
▼ 우천선생 첫번째 기도터에서 순짱님과 캔디님(10:45)
▼ 우천선생 초막터 구들 흔적
▼ 우천선생 두번째 기도터(11:02)
▼ 우천선생 돌재단이라고 표시된곳에 돌담장이 크게 둘러처져있다. 동물의 범접을 막기 위해 설치했고 이곳도 집터가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유대장님은 우비 하나에도 패션감각이 뛰어나다~^^
▼ 음양수샘(11:13)
▼ 미산대에서 비는 그치고 하늘이 열린다(11:23)
▼ 미산대에서 바라본 촛대봉
▼ 이곳에선 <토산전럼회>길이 한눈에 보인다. 길사향님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11:29)
▼ 대성계곡 사면으로 내려서면 전람회길이 시작된다
▼ 도솔샘에 먼저 도착한 선두조는 <버들피리>님이 어제 가져다놓은 막걸리로 정을 나눈다(11:35)
▼ 물맛이 기가 막힌 도솔샘을 지나
▼ 가섭굴에서 점심을 먹고가기로 했다(11:45)
▼ 날개님과 인디안님이 준비해온 병어~ 산에서 이런걸 먹을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 <순짱>님표 묵밥, 냄비며 육수까지 지고 오신다고 엄청 고생하셨겠네~ㅠㅠ.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후루룩 짭짭~
▼ 유대장님표 복분자주와 끝없이 나오는 안주들, 그렇게 뷔페에 온듯한 점심은 완보님표 강황식혜로 마무리했다(12:37)
靈神菴(영신암)
箭筈車箱散策回 : 전괄(창불대)와 거상(대성폭)을 산책하고 돌아오니,
老禪方丈石門開 : 방장(주지승)의 노선사가 석문을 열어주네.
明朝更踏紅塵路 : 내일 아침이면 속세의 길 다시 밟으리니,
須喚山都沽酒來 : 모름지기 촌장(은둔선비)을 불러 술이나 받아오게.
전괄은 화살 끝처럼 좁은 산마루를
말하고, 거상은 마치 수레의 짐칸처럼 우묵한 골짜기를
말하는데, 또는 전괄령(箭筈嶺)과 거상곡(車箱谷)의 명
칭으로도 쓰는바,
영신암 주변을 산책하며 '창불대는 하늘로 통하는 석문으로 올라가고, 대성폭포는 험해서 한번 내려가면 올라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두보의 '望嶽詩망악시' [車箱入谷無歸路 箭筈通天有一門]“거상의 골짝에 들어서니 돌아갈 길이 없고 전괄로 하늘을 통하는 문 하나가 있구려"의 전괄과 거상 시어를 인용함.
<출처:도솔산인>
▼ 조망터 바라본 전괄(箭筈)_창불대(12:57)
▼ 창불굴과 협곡 갈림길에서(13:04)
▼ 우린 협곡으로
▼ 올려다본 독립봉
▼ 나바론좌골은 계곡 우측으로 약간 올라가야한다. 저 윗쪽에서 계곡을 횡단해서 영신사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13:31)
▼ 케른이 있는 곳으로 살짝 내려서서 마지막 건 계곡을 올라가면
▼ 석가섭 제3봉 전망대가 나온다. 조금 아래 3-1봉 조망터도 있다(13:47)
유람록에 대부분 영신사를 경유해가거나 숙박을 하고간다.
김종직 선생과 유몽인 선생은 이곳을 경유해가면서 주변을 상세하게 묘사해놓았다
○ 김종직_유두류록 1472년 8월 17일, 신사일(양력 9월29일)
(전략)
영신사(靈神寺)에서 머물렀는데 여기는 승려가 한 사람뿐이었고, 절 북쪽 비탈에는 석가섭(石迦葉) 한 구(軀)가 있었다. 세조 대왕(世祖大王) 때에 매양 중사(中使)를 보내서 향(香)을 내렸는데, 그 석가섭의 목에도 갈라진 곳이 있는데, 이 또한 왜구(倭寇)가 찍은 자국이라고 했다. 아! 왜구는 참으로 도적이로다. 산 사람들을 남김없이 도륙했는데, 성모와 가섭의 머리까지 또 칼로 베는 화를 입혔으니, 어찌 비록 아무런 감각이 없는 돌일지라도 사람의 형상을 닮은 까닭에 환난을 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오른쪽 팔뚝에는 마치 불에 탄 듯한 흉터가 있는데, 이 또한 “겁화(劫火)에 불탄 것인데 조금만 더 타면 미륵(彌勒)의 세대가 된다.”고 한다. 대체로 돌의 흔적이 본디 이렇게 생긴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황당하고 괴이한 말로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서, 내세(來世)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서로 다투어 돈과 베를 보시(布施)하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다.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뾰족한 데다 꼭대기에 네모난 돌이 얹혀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 자 정도였는데, 승려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禮佛)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證果)를 얻는다고 한다. 이 때 종자인 옥곤(玉崑)과 염정(廉丁)은 능란히 올라가 예배를 하므로, 내가 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는 급히 사람을 보내서 꾸짖어 중지하게 하였다. 이 무리들은 매우 어리석어 거의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는데, 능히 스스로 이와 같이 목숨을 내거니, 부도(浮屠)가 백성을 잘 속일 수 있음을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겠다.
법당(法堂)에는 몽산 화상(蒙山和尙)의 그림 족자가 있는데, 그 위에 쓴 찬(贊)에,
頭陀第一(두타제일) 두타 제일이
是爲抖擻(시위두수) 이것이 두수인데
外已遠塵(외이원진) 밖으로는 속세를 멀리하였고
內已離垢(내이리구) 안으로는 마음의 때를 벗었구나.
得道居先(득도거선) 앞서 도를 깨치고
入滅於後(입멸어후) 뒤로 적멸에 들었으니
雪衣鷄山(설의계산) 설의와 계산이
千秋不朽(천추불후) 천추에 썩지 않으리라.
하였고, 그 곁의 인장(印章)은 청지(淸之)라는 소전(小篆)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비해당(匪懈堂)의 삼절(三絶)이었다.
그 동쪽 섬돌 아래에는 영계(靈溪)가 있고, 서쪽 섬돌 아래에는 옥천(玉泉)이 있는데, 물맛이 매우 좋아서 이것으로 차를 달인다면 중령(中泠), 혜산(惠山)도 아마 이보다 낫지는 못할 듯하였다. 샘의 서쪽에는 무너진 절이 우뚝하게 서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옛 영신사이다. 그 서북쪽으로 높은 봉우리에는 조그마한 탑(塔)이 있었는데, 그 돌의 결이 아주 곱고 매끄러웠다. 이 또한 왜구에 의해 넘어졌던 것을 뒤에 다시 쌓고 그 중심에 철(鐵)을 꿰어놓았는데, 두어 개의 층은 유실되었다.
○유몽인_유두류산록 1611년 4월 5일 갑술일(양력 5월16일)
(전략)
이어 만 길이나 되는 푸른 절벽을 내려가 영신암(靈神菴)에 이르렀는데, 여러 봉우리가 안쪽을 향해 빙 둘러서 있는 것이 마치 서로 마주보고 읍을 하는 형상이었다. 비로봉은 동쪽에 있고, 좌고대는 북쪽에 우뚝솟아 있고, 아리왕탑(阿里王塔)은 서쪽에 서 있고, 가섭대(迦葉臺)는 뒤에 있었다. 지팡이를 내려놓고 기다시피 비로봉 위로 올라갔지만 추워서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암자에는 차솥, 향로 등이 있었지만 살고 있는 승려는 보이지 않았다. 흰 구름 속으로 나무를 하러 가서인가? 아니면 속세 사람을 싫어하여 수많은 봉우리 속에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인가? 청명하고 온화한 계절이어서 두견화가 반쯤 핀 것을 비로소 보았고 산 속의 기후도 천왕봉보다는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 숲이 우거졌지만 영신사터 우측으로 석가섭이 눈에 들어온다
▼ 동쪽 섬돌을 내려오는 일행들
▼ 영계윗쪽 케른에서 바라 보면 숫사자 얼굴이 보인다
▼ 숨은 기도터에 매끄러운 돌이 나란히 세워져있다
▼ 영계를 내려오는 <동부능선>님
▼ 영신사에서 바라본 석가섭(14:16)
영신사는 영험한 곳이다. 마하가섭존자가 깃든 꾸꾸따빠따산(계족산)이고, 세조와 안평대군이 권력을 잡기 위해 찾았던 비로봉이 있는 곳이다.
▼ 옥천(玉川)
▼ 내려다본 거상(車箱)_대성계곡1
▼ 내려다본 거상(車箱)_대성계곡2
○ 이륙_유지리산록 1463년
영신사(靈神寺) 동쪽 제단에는 가섭(迦葉) 의 석상이 있는데 어깨와 팔에 불에 탄 듯한 자국이 있다. 세속에서 전하기를,
“이 석상이 다 타면 인간 세상이 변해서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올 것이니 매우 영험함이 있다.”
라고 한다. 뒤쪽의 봉우리에는 기이한 바위가 돛대처럼 솟아 있는데 북쪽으로 만 길이나 되는 벼랑에 맞닿아 있고 상처럼 생긴 돌을 그 위에 또 이고서 반야봉을 향해 조금 기울어져 있다. 부여잡고 올라 사방을 향해 절하는 자는 근기가 잘 잡혀 있다고 여겨지는데 해낼 수 있는 자는 천 명 중에 한 두 명이 있을까 말까할 정도이다.
뜰아래 작은 샘이 있는데 물이 세고 매우 맛있어서 신천(神泉)이라고 불리는데 흘러 내려가 화개천이 된다. 동쪽에 바위 봉우리가 있는데 부도(浮屠) 모양처럼 생겼다. 여기 사는 승려들은 귀사(龜社)의 주인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이 죽지 않고 여기에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명산에 있는 비로봉의 명칭은 불교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에서 유래됐다. 비로자나불은 큰 광명을 내비치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를 말한다.
김종직 선생의 유람록에서도 보듯이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라 매양 중사를 보내 향을 내렸다고, 안평대군은 그곳에 있는 마하가섭존자의 족자에 찬의 글을 쓴것으로 보아 당시에 영신사의 위상을 가늠할수있다.
금강산 유점사, 오대산 월정사, 소백산 희방사, 한자는 다르지만 치악산 상원사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큰 절위에는 최고봉의 또 다른 이름인 비로봉이 있었던 것이다.
▼ 부도탑 모양의 비로봉이 여기서 보면 최고봉으로 보인다
▼ 옥천 위에 케른
▼ 옥천에서 바라본 석가섭 전망대가 있는 능선(14:33)
▼ 김종직 선생이 창불대에서 영신사로 내려갔던 길을 거슬러 올라 석가섭 제1봉 전망대에 올랐다.
여기서 보면 비로봉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14:48)
▼ 이곳에선 좌고대와 추강암도 잘보이지만 영신사터 끝쪽 절벽도 볼수있다
▼ 전망대를 지나 트레버스 산행을 하면 남부능선 합류지점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자살바위가 나온다.
창불대와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라 산영형님의 제안으로 새롭게 태어난 "극락바위"(15:05)
▼ 극락바위에 올라 인증샷을 남기고
▼ 어느새 좌선대에 올라선 산영형님
▼ 극락바위 올라보면 천왕봉,제석봉,삼신봉,촛대봉...그리고 세석대피소가 보인다
▼ 에너지 넘치는 순짱님
▼ 사람이 그림이 될수도 있다는 사실~
▼ 길사향님, 동부능선 대장님, 쉬블링 대장님
▼ 유목민 대장님은 후미조를 리딩하시고
▼ 창불대에 알록달록 꽃이 피었다
▼ 병풍바위(15:24)
▼ 너럭바위(15:31)
▼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남부능선, 오른쪽 불룩한곳이 미산대다
▼ 미산대에서 후미를 기다리며(15:41)
▼ 첫번째 우천선생 기도터옆 계곡에서(16:29)
▼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 유대장님의 복분자주로 마무리
▼ 다시 <3-9>로 오른다(16:52)
▼ 솔바구식당이 있는 거림탐방로 입구(17:44)
▼ 기념촬영
왼쪽부터
유목민대장님,동부능선대장님,오르고님,옥산님,순짱님,꺼비님,캔디(광주),소요유님,날개님,배완식(길사향)님,인디안님,쉬블링님,산영님,칠성
▼ 마지막으로 현수막에 참여하신분들이 사인을 하는 행사를 가졌다
연하산방 유목민 대장님의 요청으로 <토산전람회길>을 추진하게 되었고, 동부능선님이 함께 해주셔서 합동산행이 되었다.
기라성같은 대선배님들과 함께하는 것 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되었던 산행이었다.
근대 인문산행과 고전 인문산행이 어우러지며 오가는 잔 속에선 산정이 피어났다.
행사를 모두 마치니 19:00가 다 되었다.
아쉬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다음을 기약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토산 전람회길
#지리산 전람회길
#전람회길
#창불대
#미산대
#도솔샘
첫댓글 조만간 단독으로라도 다녀와야 겠네요
수고많았고 그동안의 노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
혼자가면 곰이 같이 놀자 할지도 몰라요~^^
트랙따라가면 쉽게 찾을수 있을겁니다
도솔샘 꼭 드셔보세요
홀리거님 혼자 가지 마시고 같이 가요
@soonhee 동행하여 주신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ㅎㅎ
@홀리거 ㅋㅋ
날 잡아서 가봅시다요
@soonhee 누군가 동행이 있다는건 아주 바람직한일입니다
홀리거님표 드립 커피는 덤으로 맛볼수 있겠네요~^^
누락된곳도 천천히 살펴보시길바랍니다
@홀리거 바로 이번주에 가시죠
저는 설악산으로 방구타러 가야되니~^^
보는 즐거움과 함께 지리산과의 인연을 느끼게 세세한 기록을 한다고 고생이 많습니다.
한순간도 놓치기 싫었지만 긴 행열로 전체 분위길 다 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만
중간 중간 설명을 곁들여서 진행하였기에 동참한 분들의 가슴속에 잘 전달되었으리라 봅니다
오랜만에 대군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었습니다
리딩하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일주일이 지났네요
다시 보니 새롭습니다
새로운 분들과의 만남도 좋았고
앞으로 지리공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꼭 참석하고 싶습니당~~
그날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가는길 맛난거 주시고
점심때 묵밥도 잘먹었어예
지리산 골골이 얽힌 역사와 이야기들을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다음에도 젤 먼저 신청해주세요~^^
자세한 현장설명, 짧지 않은 동영상과 더불어
선인들의 유람록까지 곁들여 생생하네요.
수고하셨고 감사드립니다.
복원은 함께한 것이니 더 좋습니다~^^
여러모로!
크고도 깊은 감사함을
짧은 글로나마
여기에다 남길 수밖에~~
길고도 짧은 인생사에서
그 와중에
山과 智異
그리고 파고드는 人文기행!
그 모든 걸 압축파일로
달달하게 꾸려가는
당당함에 감동받고 있으며,
어느 면에서는
유 대장이 先踏의 길을 걸었지만서도~
이 경지에선
그 날의 일갈에서 비췄듯이
[師] 칭호를 다시금 적나이다!
수고 많았나이다~^^
넓디 넓은 지리산 골골이 누비며
달아놓은 시그널이 후답자들의 등대가 되어 주듯
저 또한 유대장님가신 그길을 따라 가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려해주시고
이번 산행과 주연을 위해 힘쓰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지역의 지리 메니아 님들과 함께한 전람회길 아니면 소중한 여인과 함께 걷고 싶은길로 추천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