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법의 큰 별, 류진선 교장 신부님
최근에 본 ‘솔개의 선택’이라는 3분짜리 영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낡은 제도나 관습 따위를 고쳐 모습이나 상태가 새롭게 바뀐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라는 주제로, 새로운 생을 준비하기 위한 솔개의 고난의 여정을 담은 짧은 영상입니다. 영상 속의 솔개에 관한 자막 글을 소개합니다.
“솔개는 새 중에서 수명이 매우 길어 약 70~80년을 산다고 합니다. 하지만 솔개가 그렇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힘겨운 과정이 있습니다. 솔개는 40년 정도 살게 되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닳아서 무뎌지고, 날개는 무거워져 날기도 힘든 볼품없는 모습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솔개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서서히 죽느냐 아니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것이냐? 변화와 도전을 선택한 솔개는 바위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틉니다. 솔개는 먼저 자신의 부리로 바위를 마구 쪼기 시작합니다. 쪼고 쪼아서 낡고 구부러진 부리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쪼아버립니다. 그렇게 닳아진 부리 자리에서 매끈하고 튼튼한 새 부리가 자랍니다. 그리고 새로 나온 부리로 자신의 발톱을 하나씩 뽑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낡은 발톱을 뽑아 버려야 새로운 발톱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새 깃털이 나도록 무거워진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 버립니다. 그렇게 생사(生死)를 건 130여 일이 지나면, 솔개는 새로운 40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Choice 선택이 아니라 Decision 결정입니다. 중요한 변화를 위한 선택의 기회가 찾아와도 용기 있는 결정을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기회인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는 당신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으로 얻게 된 변화는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결정은 당신의 미래입니다.”
길지 않은 영상과 자막이었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제일 먼저 기억났던 분이 바로 ‘류진선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은 평범한 사제로 나름 존경받고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 분이셨는데, 그 삶을 내려놓고, 새로운 부르심인 ‘사제이며 교장’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십니다. 그러기 위해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직을 이수하시며 석사학위를 받으시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학교를 경영•운영하는 교장으로서, 파견된 사제로서 그 삶에 매진하십니다. 효명고등학교에서 교사의 삶을 시작하시고, 안법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하시며, 그동안의 가톨릭 학교의 전통을 존중하며 엘리트 학교, 공부하는 학교, 진로와 진학에서 최고의 명문 학교를 지향하며 혁신(革新)에 혁신을 추구하셨습니다. 당신이 쓰시던 사제관을 줄이고 수녀원을 옮겨 학생들의 기숙사로 전환하셨습니다. 1984년에 학교 대강당을 장학관으로 바꿔 공부하는 웅지관으로, 그리고 곧바로 학교 뒤편에 구입한 땅과 테니스장 자리에 5층의 ‘웅지 장학관’을 우뚝 세우십니다. 웅지 장학관은 당시엔 어느 학교도 갖추지 못한 최고의 시설로,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좌석(850석)과 냉난방기 구축, 조명시설 완비, 도서관을 새롭게 마련하여 자기 주도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창출하셨습니다(“안법고는 저녁마다 불아성을 이루는 독서실의 불빛이 증명하듯 교육의 도시 안성을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지역민의 보배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신문, 95년 11월 5일). 더욱 효율적인 공부와 배움과 가르침을 위하여 안법 교육방송국도 개설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학생들에게 최고 수준의 교육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노력하셨는데,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안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선생님들과 함께 수준 높은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때 교목 신부님이셨던 최충열 신부님께서 “나는 그때 죽는 줄 알았다. 학생 모집을 위하여 밤낮으로 중학교 교장과 교감 선생님 만나러 다녔다. 정말 열심히 모집했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일반 학생만 모집한 것이 아니라, 사제 지망생들도 모집하셨습니다. 그리하여 45명의 사제가 배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셨으며, 이렇게 우수한 학생 모집, 예비신학생 모집 및 예비 소신학교 운영,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장한 친구들을 위한 장학금도 참 많이 마련하셨습니다. 교직원 장학금, 육성회와 육영회 장학금 마련, 광암장학회 운영, 기타 외부 장학금이 모이고 쓰이도록 그 기반을 마련하셔서, 그동안 매년 1억 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그 결과 당시 학력고사 경기도 수석, 300점(340점 만점) 이상 학생이 130명, 4년제 대학 진학률 전국 최고(95.7%) 등 진로와 진학의 명문으로 등극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웅지 장학관을 짓기 위해 학교 앞, 700년 된 느티나무 옆, 현재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는 자리를 팔았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아니 학교법인에서 땅을 팔아 장학관을 지었다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시 주교님과 신부님들도 이해하기 힘드셨으리라 여겨집니다. 거기에다가, 미래 학교를 위해 학교 부지 2만 평을 구입했었다고 하니(현재 안성 공설운동장 옆 홍익 아파트 자리), 얼마나 대단한 용기였는지, 현 교장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렇게 학교를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리와 발톱, 날개를 다 뽑아가며 온전히 살라 바치신 류진선 신부님! 그런 여정 속에서도 학문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었습니다. 더욱이 사제직의 거룩한 삶, 예언자적인 삶은 하늘까지 올랐습니다. 여러 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틈틈이 글을 쓰셨습니다. 그리하여 논문, 수필과 강론 등을 모아 책으로 발간했습니다. 특별히 『진리를 찾아서』라는 강론집 시리즈 6권, 그리고 이번에 발간되는 강론집은 당신께서 얼마나 사제직에 충실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학교에서 20년 정도를 불사르다가, 은퇴하실 때에도 당신의 노후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학교 발전을 위하여 3억 5천만 원의 발전기금을 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은퇴하셔서 좀 쉬실 만하실 때, 미국 방문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10년을 병마와 싸우셔야만 하셨습니다. 류진선 신부님께서 쓰러지시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시기까지의 여정을 주교님께 자세히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때는 신부님과 안면이 별로 없었기에, 단지 어른 신부님께서 애 많이 쓰셨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주교님의 여러 이야기와 설명에 감동을 받던 저였기에, 부제님들을 데리고 신부님의 병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부제들에게 사제의 노후 생활, 특별히 임종 전에 대한 준비 차원에서, 멋진 사제직을 준비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 이후로 몇 번을 개인적으로 병실을 찾아, 눈을 못 뜨시는 신부님을 불러가며 기도도 드리고, 병간호하시는 동생과도 대화도 나누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계동 본당 신부였을 때, 루카 요양원 어르신들을 위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미사를 드렸는데, 그때 눈을 뜨지 못하시는 상황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신 신부님과 함께 미사도 드렸습니다.
그렇게 신부님과 함께하면서도 제가 안법학교 교장으로 갈지 몰랐습니다. 이후 제가 안법학교에 부임하기 전에 신부님을 찾아가, “제가 이번에 안법학교 교장으로 가게 된 최인각 신부입니다. 인사드립니다.”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신부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격한 기침을 하셨습니다. 미사 전에 시작된 기침과 눈물은 미사 내내 계속되어, 신부님은 결국 영성체도 못 하시고 휠체어에 의지하여 당신 방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얼마 안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안법’이라는 한 마디. 제가 안법 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당신은 너무나 감격하셨나 봅니다. 얼마나 안법에 대한 애정이 크셨으면…. 꿈에도 그리던 안법, 온몸 바쳐 사랑했던 안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안법을 위해 당신은 솔개와 같은 엄중한 선택과 결정과 실행의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류진선 신부님께서 명문 안법의 영업 비밀 1호였던 웅지 장학관을 지으신지 어느덧 35년이 되어 가고, 많은 교육과정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혁신학교로서 고교학점제와 그린 스마트 학교로 미래를 준비하는 안법학교는 제2의 제3의 부흥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류진선 신부님이 지니셨던 지혜가 지금을 사는 우리 안법인에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천상에 계신 신부님의 도와 주실 것을 믿으며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렵니다.
이번에 출간되는 강론집은, 신부님께서 준비하시다가 미뤄져 거의 20년 만에 출간되는 강론집입니다. 제가 하상 출판사에 들렀을 때, 부장님께 신부님의 미출간된 원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흥분되었던지, 저의 이러한 모습에 하상 출판사 관계자들도 기뻐하며 그 원고를 보여주시고, 학교로 보내 주셨습니다. 원고를 검토해보니, 출판 직전 단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법 출신 신부님들에게 이야기했고, 류진선 신부님에게 성소 지도와 장학금을 받았던 신부님들이 나서서 출판해야 한다고 마음을 모아, 신부님의 축일에 맞춰 또 다른 강론집이 탄생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류진선 신부님도 많이 기뻐하시리라 여겨집니다.
학창 시절에 신부님과 함께했던 졸업생과 은퇴하신 선생님들은 설립자이신 공베르 신부님 이후, 안법의 최고의 교장 신부님이셨다고 한결같이 자랑해주셨습니다. 지난 안법 역사를 들춰 보니, 과연 그랬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베르 신부님과 류진선 신부님의 삶, 학교 사랑, 영성, 사목에 관한 심포지엄을 통해 두 분의 삶을 재조명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조만간에 안법 출신 신부님과 안법 동문과 더불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신부님의 안법학교에 대한 사랑, 사제직에 대한 충실함이 주변에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이번 강론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함께 하신 모든 분에게 학교장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류진선신부님을 모르지만 이 글을 읽어보니 어떤 성품이셨는지 짐작이 갑니다.안법고는 정말 은인들의 기도로 유지되고 열매맺는 곳이군요.교장신부님이 학교위해 기도부탁하셨다는 분을 여럿 뵜습니다^^저희도 이미 합세했습니다ㅎㅎ
안법고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처절하리만큼 녹아든 류진선 신부님 강론집을 하루빨리 접하고 싶습니다.
안법의 큰 별, 류 진선 신부님,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
주님안에 평안을 누리소서!
류진선 신부님께 고마움을 나누기 위해 마련 된 류진선관(역사전시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