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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부터 시작하자
누가복음 18:9-14
1.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당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시절에는 보통 바리새인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요 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지고 세리는 죄인이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누구의 기도가 더 능력 있는 기도가 되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되겠는가? 우리가 하도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정적이요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라는 의식 때문에 ‘나쁜 놈’이라고 지금은 생각되지만, 당시는 바리새인들은 세상적으로 구별된 의로운 사람들로 여겨졌다. 그 두 사람이 기도하니 누구의 기도가 하늘을 움직이겠는가?
대부분 목사님은 세게 기도하면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한다. 또는 1950-1970대에는 기도할 때에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 두 손을 들고 또는 손을 가슴에 대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줄 알고 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스토리를 다 읽고 나면 누가 더 의롭게 되었는지, 누구의 기도가 하늘의 보좌를 움직였는지를 예수님이 판단해 주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니요 세리에게 손을 들어주셨다.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뜻밖의 판단에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가 흐려질 뿐 아니라 거의 사색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작정까지 하였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판단이 틀렸다고 감히 말할 사람도 없었다. 사실 자기네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지적하셨기 때문이다. 자기네들도 예수님의 판단이 맞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래의 성경을 보면서 여러분 나름대로 판단하시기 바란다.
눅 6:6-11 /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회당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그 자리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 하나가 있었다. 7)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가까이 앉아서 예수께서 그 사람을 고쳐 주는가를 지켜 보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고소할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이미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와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 서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일어서 나오자 9)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생명을 파멸케 하는 것이 옳으냐?' 10)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일일이 둘러본 뒤에 그 사람에게 `네 손을 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손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11) 예수를 미워하는 자들은 화가 치밀어 올라 예수 죽일 모의를 시작하였다.
2. 바리새인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이다. 자기 잘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이 비유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주는 이야기다. 그 사람이 바로 바리새인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은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의롭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착각의 자유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문제는 정말 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의의 기준을 보라. 그는 의롭게 되는 것이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하다’라고 말하며,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하였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눈(견해)으로 자신을 볼 때 의로울 뿐이지 하나님이 보실 때(진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기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을 비롯하여 이웃을 평가하고 그 평가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죄인이냐 아니냐를 말할 때 어떻게 결정하고 있는가? 세상에서 말하는 죄의 기준을 가지고 죄인이냐 아니냐를 판단한다. 그래서 이 정도면 제법 잘 살았다고 생각해서 죄인의 의식을 갖지 않는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는 어떠한 죄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가? 그 잣대로 정의하여 내가 그 선 안에 들어오면 거룩하고 문제없는 사람으로 판단하지 않는가!
만일 하나님이 오셔서 ‘자! 너의 의를 시험에 보자.’라고 할 때 자신 있게 하나님께 나의 삶을 용감하게 보여드릴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때 갑자기 주 녹이 들리며 지은 죄들이 생각나게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죄를 결정짓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내가 아니기에 우리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지만 사실은 현미경보다 더 날카로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세히 보면 얼마나 추한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이너스 시력으로는 우리의 죄를 바로 직시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형편없이 추잡하고 더러운 자신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이 살펴보면 깊은 곳에 숨어있는 죄라는 암 덩어리가 보일 것이다.
참고로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이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나쁜 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죄성이 있어서 죄를 지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로마서 말씀을 인용하여 보자.
롬 3:9-18 / [모두가 죄인이다] 그러면 우리 유대인들만이 훌륭한 사람들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죄인입니다. 10)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뻔뻔스럽게도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잘도 말하는구나. 하나같이 썩어 빠져 흉칙한 짓만 저지르고 11) 혹시나 깨달음 있는 이 있을까 하나님을 찾는 이 있을까 하여 찾아보시나 12) 모두 다 딴 길로만 걸어가 하나같이 썩어 버렸구나. 착한 일 하는 이 찾을 수 없구나. 도무지 없구나. 13) `저것들이 뇌까리는 말 한마디인들 어찌 믿을 수 있나요. 생각하는 것마다 못된 것뿐이고 목구멍은 열려 있는 무덤이라. 14) 혀에 발린 말밖에 할 줄 모릅니다. 15) 하는 말마다 저주요 거짓이요 으름장입니다. 16) 남 욕이나 하고 꼴 보기 싫다는 말이 아예 입에 발렸습니다. 17) 모두 다 딴 길로만 걸어가 하나같이 썩어 버렸구나. 18) 착한 일 하는 이 찾을 수 없구나. 도무지 없구나.'
롬 7:15-25 / 나는 나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속으로는 올바른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원하지 않는 짓, 내가 미워하는 짓만 저지르고 있습니다. 16) 나는 내 행실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내가 어기고 있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17) 그러면서도 이러는 나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나를 이미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게 이런 악한 일을 시키는 것은 내 속에 들어 있는 나보다 더 힘이 센 죄입니다. 18) 나는 내 육신 안에 올바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나는 나에게 올바른 일을 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되지가 않습니다. 19) 선한 일을 하고 싶어도 되지 않고 악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않습니다. 20) 이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문제는 분명해집니다. 죄가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1) 나 스스로는 늘 올바른 일을 원하나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해버리는 이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22)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 싶어하면서도 23-25) 내 속 깊은 곳에 어떤 다른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내 마음에 분란을 일으켜 나를 누르고 아직도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마음으로는 늘 기쁨으로 하나님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봅니다. 이제 여러분은 내 형편이 어떻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간입니까! 누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 상태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죄인지 아닌지는 양심(良心)이 있어 나름대로 알고 있다. 타락한 인간이기에 더럽고 추한 것을 좋아하며, 호기심이 있어서 보지 말라는 것을 보고, 하라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싶어 한다.
■ 1960년 이스라엘의 비밀첩보원이 집요하게 추적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잔인하게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했다. 비밀첩보원들은 남아메리카의 은둔지에서 이스라엘로 압송하여 재판하였다. 그를 심문하기 위해 검사들은 집단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 명의 유대인들을 증인으로 세웠다. 체구가 작고 바싹 마른 예힐 디누어도 증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었다. 증언하는 날 디누어는 재판정에 들어왔다. 그리고 방탄유리가 설치된 작은 방 안에 앉아있는 그 남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자신들의 친구들을 살해하고 수많은 유대인을 죽였으며, 학살을 지휘했던 바로 그 장본인이 그 앞에 있었다. 희생자와 살인마의 눈이 마주치자 법정에 일순 침묵이 흐르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예힐 디누어가 비명을 지르며 마루에 쓰러졌다. 그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가? 그가 미국 CBS 방송에 출연하여 그 이유를 묻는 쇼 진행자에게 말한 것은 그가 증오를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요, 소름 끼치는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운 것도 아니다. 아이히만의 얼굴에 악마의 모습이 드러나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그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져 울게 된 이유는 아이히만은 보통 사람, 다른 사람과 하나도 다른 점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예힐 디누어가 아이히만을 보고 죄와 악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서글픈 사실을 깨닫고 울었던 것이다. 예힐 디누어는 말했다. “그를 본 순간 저는 저 자신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그와 똑같이 그런 잔인한 짓을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힐 디누어는 “아이히만은 우리 모든 인간들 속에 있습니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예수님의 지적은 참으로 날카로웠다. 마태복음 23장을 다 볼 수는 없지만 1-4절 말씀을 본다.
마 23:1-4 /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뿐이고 실행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4) 그들은 자기들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요구를 너희에게 강요하지만 자기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 외치셨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을 나 자신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자. 그리하면 ‘그분(말씀)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라고 하셨고(요 1:12), ‘너희가 내 안에 살며 내 말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거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 15:7)라고 하셨다. 기도라는 것은 내 마음에 있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호소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평생토록 해야 할 기도임을 재삼 강조하고 싶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그들은 자꾸 되풀이해야만 기도의 응답을 받을 줄로 생각한다. 너희는 그들을 본받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이미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신다.’(마 6:7-8)라고 하시면서 직접 기도해야 할 내용까지 가르쳐주셨다.
마 6:9-13 /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높임을 받으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13)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과 바리새인이 기도한 것을 비교해 보라.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눅 18:11-12 /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인이 아닙니다. 더욱이 저기 있는 세관원과 같은 죄인이 아닌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는 절대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도 없고 간음한 일도 없습니다. 12) 나는 한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님을 포장하려는 것보다 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라. 물론 바리새인이 하는 그 모든 것을 잘못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기 처먹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장려를 넘어서 꼭 지켜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잘한 것이 혹 생각이 나면 그것을 앞세우지 말라. 옆에 있는 아무개보다 더 신앙이 좋아 보이고, 더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여도 비교하지 말라. 착각이 아닐지라도 남을 업신여기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이다.
우리가 행한 계명들을 앞세우다보면 오히려 그것이 나의 의가 되어 내 마음을 마비시켜서 죄의 센서, 회개의 센서를 망가뜨리는 마약과 같아진다. 지금도 우리 자신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증상이 병이 되어 곪아터지는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발전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증상이 없다고 건강한가? 표현되지 않는 암세포는 얼마나 우리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가! 마르틴 루터는 ‘죄인의 궁극적인 증거는 그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죄인은 자기의 의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죄인임을 모른다. 비참한 것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비웃는다.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회개의 센서를 가지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세리는 몹쓸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의 기도가 열납되고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
14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은 세리였다. 어떻게 해서 그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세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긍휼히 여겨달라고 호소했다.
눅 18:13 / 세관원은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세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내가 나를 죄인으로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실 것이다. 회개에서부터 죄의 문제는 해결된다. 저 세리를 보라. 그의 기도는 간단하였다. 아니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짧은 호소만 했을 뿐이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문제의 해결은 잘못했다는 고백에서부터 시작된다. 회개는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잘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사 1:18-19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우리가 이 문제를 상의해 보자! 너희가 아무리 죄악에 찌들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너희의 죄악을 씻어 주리라. 금방 떨어진 눈송이보다도 더 희게 하리라. 너희가 진홍같이 붉게 물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너희를 양털처럼 희게 씻어 주리라. 19) 너희가 내 도움을 받으려고만 하면, 너희가 내 말을 듣기만 하면, 너희는 땅이 내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으리라.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핑계를 대지 않았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했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회피하지 않았다. 메시야를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버리는가? 핑계를 통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죄를 지은 책임을 내게로 돌리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리려한다.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는 육의 사람처럼 위기만 모면하려고 한다. 아담은 자신이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아내 탓을 한다.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 탓도 곁들여서 하였다.
창 3:12 / ‘하나님께서 내 곁에 늘 있도록 허락하신 이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따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 열매를 먹었을 뿐입니다.’ 하고 남자가 변명하였다.
아담의 갈빗뼈로 만든 하와는 어떻게 했나?
창 3:13 /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다. `그래, 네가 어쩌자고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뱀이 그 나무 열매를 한번 따먹어 보라고 자꾸 꾀었어요.' 하고 여자가 대답하였다.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댄다. 그 핑계는 오늘날 모든 인류에게 유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흉악한 살인범도 ‘사회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한다. 학교에 찾아가면 아이 엄마는 ‘얘가 요즈음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는 선생님을 감히 탓하지는 못하고 나쁜 친구를 사귀어서 그렇다’라고 말한다. 또 선생님은 ‘학생이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라고 핑계를 댄다. 건강을 해치고는 ‘그놈의 술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한다. 폐암에 걸려서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거액의 위자료를 청구한다. 그들이 만든 담배 때문에 건강을 해쳤으니까 책임지라는 것이다.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신병 환자들은 하나같이 자기는 병자가 아니라고 우긴다고 한다. 자기 병을 시인하는 사람은 고칠 가능성이 높다. '나는 똑똑하다, 온전하다, 그런데 왜 저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는가' 바로 이러한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신병 환자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교만하다고 한다. 하나같이 안하무인이다. 자기만 옳고 자기만 똑똑한다.
의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사흘 동안 시간 맞추어 드세요.’하고 약을 주면 고작 하루 이틀 먹어보고 치워버리고는 약이 잘 안 듣는다는 것이다. 어느 병원에 갔더니 환자가 하루에 250명이나 온다고 하자 ‘환자 많습니다’라고 했더니 담당 의사 하는 말이 ‘한번 진찰을 하고 나서 사흘치 약을 지어주면 환자들은 의사 말대로 꼬박꼬박 약을 먹어 주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매일 오라고 해서 매일 약을 지어주기 때문에 환자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했다. 환자가 오죽이나 의사를 믿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하겠는가. 누구를 막론하고 다들 잘 났다고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은 씁쓸한 생각이 앞선다.
그나마 세리는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세리는 핑계를 대지 않았다. 핑계를 통해 죄의 그물을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리는 머리를 하늘로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였다.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가슴을 치면서 애통하였다.
그렇다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이 우리에게 불리한 일인가? 아니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주 유익한 일이다. 죄인에게 평안을 주시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마 9:12-13 /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대답하셨다. `의사는 건강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병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배우라. ㄱ) `내가 바라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나는 스스로 의인이라 칭하는 사람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다.‘
마 11: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 다윗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에 복종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에 부끄럽지 않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였다.
사무엘하 24:1-9에서 인구조사를 한 후를 한 후에 양심에 가책을 받고 하나님께 회개하였다. 그에 합당한 징계가 내렸을 때 ‘이 백성들이야말로 정말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형벌과 재앙은 저와 제 집안에만 내려 주십시오.’라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다. 다윗이 온 나라에 전염병을 퍼뜨리고 다니던 멸망의 천사가 온 나라에 전염병을 퍼뜨리고 다니던 멸망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는 것을 알고 그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바치며 그 나라와 그 백성을 위하여 기도드리자 여호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 땅에 퍼지던 재앙을 거두어 주셨다. 그 후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은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는 곳이 되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가를 보지 않으신다.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우리의 죄 용서를 구할 때이다. 세리가 의롭게 된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다. 의로워서가 아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똑같은 죄를 반복하여 짓는 연약함에서 벗어나자.
성 프란시스는 자기는 작은 벌레와 같은 가치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한평생을 울면서 살았기 때문에 나환자들에게로 가까이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고, 포악한 죄인들에게로 가까이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고, 포악한 동물들에게까지 가까이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고, 나중에는 모슬렘과 이단들에게까지 가까이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다.
맺는 말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2022년 8월 27일 토요일 15시~21시 LET'S GO KOREA가 있는데 YWAM과 열방대학 설립자이신 로렌 커닝햄 목사님의 간증을 공유하며 결론을 맺고자 한다.
로렌 커닝햄 목사님은 아내 달린과 세계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강의를 하고, 수많은 저술로 감동과 도전을 주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다. 어느 날 그는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예수전도단과 열방대학을 설립하려는 중요한 문제를 앞에 두고 아내 달린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중 아내 달린의 졸음으로 인해 목사님 부부가 타고 있던 차는 순식간에 고속도로 옆 낭떠러지로 나뒹굴었고, 목사님과 사모님은 차 밖으로 튕겨 나갔다.
한참 지난 후 목사님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고, 정신을 차리고서야 아내 달린을 찾기 시작했다. 아내는 조금 떨어진 땅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미동도 없었다. 커닝햄 목사님은 간신히 아내 곁으로 가 아내를 살펴보았다. 머리 뒷부분은 움푹 팼고 호흡은 이미 멎어 있었다. 이미 아내가 숨을 거둠을 깨닫고, 아내의 머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한참, 그렇게 울고 있을 때였다.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로렌~” 목사님은 직감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 수 있었다. “네! 주님..” “로렌.. 이래도, 여전히 나를 섬기겠느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목사님은 대답했다. “예.. 주님,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겠습니다.” 잠시 후 주님은 다시 물으셨다. “달린을 위해 기도하라.” 이미 아내가 숨을 거둔 줄 알았으므로, 목사님은 아내를 위해 기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목사님은 간절히 아내를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아내는 큰 숨을 내쉬더니 스스로 호흡하려 애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구급차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또 다시 들렸다. “달린은 괜찮아질 것이다.” 그 후 그의 아내는 기적같이 회복되고 소생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커닝햄 목사님 부부가 교통사고를 당하던 그 시간에, 목사님 내외를 잘 알고 있는 중보기도 팀에서 목사님 부부를 위해 간절히 기도회를 가지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네 신을 벗으라’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당신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내 삶에서 내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항상 내 차, 내 아내, 내 자식, 내 사역.. 이라며 내 것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그 사고 이후, 이와 같은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순식간에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인지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1960년 커닝햄 목사님은 청년들로 상징되는, 파도가 점점 커져서 온 땅을 뒤덮는 환상을 보고 나서, 수많은 젊은이가 일어나 전 세계의 각 나라로 복음을 들고 들어가게 될 초교파 선교단체 와이웸 (YWAM, Youth With A Mission)을 창립하였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대 위임령을 수행하기 위해 YWAM은 세계 각처의 서로 다른 문화와 교파에서 모인 초교파적이고 국제적인 단체가 되었다. YWAM에는 현재 전 세계 150개 나라에서 온 2만 명의 사역자들이 173개 나라, 1,200개 장소에서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고,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생이나 자원봉사자, 혹은 간사로 훈련받거나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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