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역사의 선
윤동주는 ‘최후의 나’를 향해 갔다 (발제문)
김선희
“조금 아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깊이 마시지 않을 거라면 피에리아의 샘물을 맛보지 말라.” 알렉산더 포프의 장시「비평론」의 215~216팽이다. 조금 아는 사람이 위험한 것은 그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안다.<중략> 이제 좀 알겠다 싶으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이고, 어쩐지 점점 더 모르겠다 싶으면 당신은 좀 알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윤동주의 시를 배웠다. 그와 동시에 거기에 깔려 있는 기독교적 윤리 감각과 자기 성찰적 태도와 부끄러움의 정서와 저항시적 성격을 외워야 했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 스스로 윤동주를 발견하고 대화하고 감동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기회를 박탈당했다. 조금 알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1942년 5월 13일 친구 강처중에게 띄운 편지에 적어 보낸 다섯 편 시 중에「사랑스런 추억」과 「쉽게 씨어진 시」가 들어 있다.
「사랑스런 추억」이 아름답기는 해도 중요한 작품은 아닌 것일까.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와는 동떨어진 작품일까. 흔히들 그렇게 말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화자는 봄이 다 간 도쿄에서 봄이 오던 무렵의 서울을 생각한다. 서울에서의 어느 날 나는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희망도 사랑도 없었다는 뜻이다. 무슨 "새로운 소식"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덧 지금은 도쿄에 와 있다. 6~7연에서 도쿄의 나는 서울의 나를 눈앞에서 보듯 떠올리고 있다. ‘오늘도 기차는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겠지.’ 이제 돌아보니 그곳의 내가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진다.
윤동주의 '최후의 나'는 등불을 들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1945년 2월 16일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그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적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라는 어정쩡한 표현에는 아직 인생을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다는 겸손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는 시를 쉽게 쓴 것이 아니라 인생을 어렵게 살았다. 자신을 넘어서려는 노력, 결국 '최후의 나'에 도달하려는 노력, 그것이 그를 죽게 했고 영원히 살게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시인 윤동주를 알고 그의 시를 외우기도 하였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 국어 시간에 「서시」,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 등을 배웠고, 일제강점기 저항 시인에 초점을 맞춰 시를 분석했고 시험도 그렇게 보았다.
몇 년 전에 영화 <동주>를 보고 감동적이어서 몇 번을 보았다. 그에게도 어린 시절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소년의 순수함, 풋풋한 첫사랑, 인간적인 고뇌도 깊었으리라. 여리고 섬세한 시인의 감성을 지닌 그가 고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외로움, 부끄러움과 자책을 이겨내고 또 하나의 역사의 선에 한 획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