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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수필100년
사파이어문고20 (엄영희 수필집)
『민들레 씨 날리다』
979-11-7155-062-3 / 147*210 / 319쪽 / 2024-05-20 / 15,000원
■ 책 소개 (유튜브 영상 바로보기)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있다. 머잖아 씨를 맺고 홀씨를 날려댈 것이다. … 홀씨를 날린다. 어디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지 알 수 없을 뿐.”(「민들레 씨 날리다」 중에서)
여기, 꽃피는 봄날의 설렘을 품고 민들레 홀씨 날린다. 한국현대수필100년 〈사파이어문고〉 스무 번째 책인 엄영희 작가의 마음 따뜻해지는 수필집, 『민들레 씨 날리다』.
잃어가는 추억, 사소한 것들과 이 순간, 스쳐 가는 아름다운 것들과 느낌…. “대놓고 말하지 못한 것, 혼자 뱉어버린 허튼소리, 허공 중에 소리치고 싶은 말들을 곰삭은 장맛처럼 맛깔 나는 글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작은 희망이 꽃피운 60편의 수필 작품이 실렸다.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내가 주인」, 「엄마의 단풍놀이」, 「청춘 리셋」, 「언제나 길 위에」 등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 따스함이란 조그만 좌표를 찍는,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그래서 우리의 삶이 오래도록 선명해지는 작품들이 소담스러운 이 한 권의 수필집에 담겼다.
■ 저자 소개
엄영희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경북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쳤다.
30여 년 보건진료소 근무 후 퇴직했다.
2020년 계간 《문장》 54회 겨울호
신인상(수필)으로 등단하였고,
대구문인협회, 문장작가회, 문장인문학회,
화요수필문학회, 수성에세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목차
책을 내면서
1부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헛발질 /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무명지 예찬 / 포틀럭 파티 /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민들레 씨 날리다 / 사라진 것에 대하여 / 사람이 명품이다 / 안단테 칸타빌레 / 일몰 증후군 /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 잊지 못할 밥 한 그릇
2부 내가 주인
내가 주인 / 생갈치 까짓것 / 사과 씨 한 알 / 그 어머니에 그 아들 / 아아나 따아가 아닌 / 첼로와 댄스 / 배 씨 & 베 씨 / 척하며 살기 / 클리셰를 틀에 가두다 / 방문객 / 낯선 문 앞에서
3부 엄마의 단풍놀이
들국화 국을 먹다 / 불침번 / 구름은행 / 봄밤에 생긴 일 / 어른이 / 자리를 옮기다 / 밥은 관심이고, 사랑이다 / 스무 살 엄마 / 엄마의 단풍놀이 / 보물찾기 / 갈무리 / 헛공부
4부 청춘 리셋
김장 날 소묘 / 청춘 리셋 / 하늘 가는 길 / 어른 되는 법 / 남아수독오거서 / 똥손 아저씨가 사는 법 / 멋진 호캉스 / 매미가 울던 날 / 고르디우스의 매듭 / 게르바 주사법 / 예행연습 / 여행과 코로나
5부 언제나 길 위에
개성 관광 / 깃대봉의 추억 / 벨루가의 노래 / 요강단지를 들고 다니다 / 신神을 먹은 후 / 시기리야 요새 / 바세코의 아이들 / 민다나오의 아이들 / 11월의 행복 찾기 / 블라인드 여행 / 아름다운 낭비 / 언제나 길 위에
발문|부재를 통한 존재 인식 - 장호병
■ 출판사 서평
봄날, “창틈으로 스며드는 꽃향기처럼 그윽하고 은은”한 작가의 작품은 우리를 진심으로 위로한다. “나를 위로하는 이 몸짓이 또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되고, 내가 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선의가 편 편마다 참 포근하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없는 … 이름을 얻지 못한 손가락, 약을 저어 먹을 때에야 쓰는 …, 사랑을 맹세하고 결혼반지를 끼웠던, 소꿉놀이하던 친구들과 토끼풀 꽃반지를 나눠 끼던 손가락… 그런가 하면 혈서를 쓸 때 단지(斷指)하고, 피 흘려 생명을 살려내던 손가락”(「무명지 예찬」)이나, “오랜 시간 시어머니의 손때가 묻어있고, 삶의 애환과 그것을 장만하고 뿌듯해했을 시어머니의 삶이 녹아 있”는 놋국자(「사라진 것에 대하여」) 같은, 소외된 것들을 돌아보는 작가의 마음은 “인간으로 빚어진 자체가 귀한 것이다. … 생명의 시원(始原)을 열고 오늘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 지난(至難)한 삶이었든, 고귀한 삶이었든, 자기 몫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우리가 모두 명품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우주 간에 나보다 더 높은 존재는 없다.”(「사람이 명품이다」)라는 확신을 작품 속에 담아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이토록 귀한 생, 새로운 삶의 기대로 훨훨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처럼 용기와 자유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자는 의미의 구절들이 마음에 단단히 뿌리 내리는 것 같다.
“삶의 주인은 나”라는 이러한 작가의 신념(「내가 주인」)은, 우리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일상을 창조하는 삶이 진정 위대한 삶이 된다는 작은 진리를 설파한다.
아침 커피 한잔의 소박한 운치(「아아나 따아가 아닌」), 작은 열정(「호작질 미련」), 취향 공감(「배 씨 & 베 씨」) 등 자신의 작은 일상을 그린 작품부터 “장애인과 고아들의 가슴에 그녀가 뿌린 사과 씨 한 알”, 선교사 아리안느의 헌신의 삶(「사과 씨 한 알」), 영화 〈영웅〉에서 확인한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인생, 안중근 의사와 어머니 조마리아의 생애(「그 어머니에 그 아들」) 등 위대한 인물의 큰 삶을 다룬 작품에 이르기까지, 충만한 삶의 주인의식으로 꼿꼿하다.
때로 지치기 마련인 삶에 대처하는 작가의 방식은 위트와 여유이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고 따라가게 되는 재치 있는 삶의 방편을 담은 재미난 글이 참 맛있기도 하다.
“불쌍한 척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죽은 척해서 목숨을 건졌다. 삶이란 척하기의 연속이 아닐까. 척하기는 가면을 쓰는 일이다. … 한 편의 연극 무대에서 연기 경쟁하듯 척하면서 매일을 산다. … 그 무대에서 나 또한 명배우의 한 사람이다. 바쁜 일 없었으면서도 바쁜 척하며 이 시간까지 글을 붙들고 있으니….”(「척하며 살기」), “생각보다 우리 뇌는 어리숙하다. 이야기나 황당한 소리를 논리적인 생각보다 더 쉽게 기억한단다. 별로 말이 되지 않는 단어들로 만든 이야기 말이다.”(「클리셰를 틀에 가두다」), 나이 듦과 불면에 관한 비틀기, “…그가 온다는 것이 실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마음이 먼저 터를 잡아야 한다. 성경 ‘시편’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다. 잠은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보약이다. 하품이 난다. 그 어마어마한 것이 오시려나 보다. 마음 깊이 반기는 그가.”(「방문객」) 등 왠지 기분 좋아지는 작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필 읽는 즐거움을 한껏 안겨주는 작가의 글솜씨는, 세월, 늙음과 죽음, 부모님의 인생을 다룬 작품에서 애틋한 사랑의 감정으로 우리를 울게 만든다.
“현실로 다가온 생로병사의 벽 앞에서 서툴기만 자신”(「헛공부」), “아픈데 행복할 리는 없습니다. 초고령에 접어든 엄마의 남은 삶이 건강하면 좋겠습니다.”(「청춘 리셋」), “그리움의 깊은 상처를 안고 계신 엄마를 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 적어도 엄마보다는 오래 살아야 한다. 헤집어놓은 가슴의 생채기가 완전히 아물 수는 없겠지만, 그 아픔을 가라앉히는 순한 연고가 되고 싶다. … 입안에 번지던 싸한 국화 향처럼 엄마의 사랑을 먹는데 쑥국이면 어떻고, 들국화 국이면 어떠리!”(「들국화 국을 먹다」), 구순 아버지의 용돈-“황금빛 신사임당이 아버지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면 좋겠다. 당신만의 비밀은행에 넣어두고, 손자들과 엄마에게 낚싯줄 끝의 미끼가 된다면, 그 끈을 놓지 않으시면 좋겠다. 오늘은 정신이 맑으셨지만, 휠체어 위에서도 간간이 스르르 감기는 눈을 어쩌지 못하시던 아버지. 구름 위에 은행을 차리셔도 좋아요.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 주세요.”(「구름은행」), 아버지의 흐트러진 젊은 날의 기억은 그의 소망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봄밤에 생긴 일」), 어린아이가 된 아버지를 간병하며 생각하는 인간의 생로병사(「어른이」), “무대가 닫혔다고, 막이 내렸다고 연극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보이는 실체는 없어졌지만, 눈을 감으면 더 또렷하게 보이는 분. 아버지, 무성한 한 그루 나무였던 당신을 마음속 안뜰에 옮겨 심는다.”(「자리를 옮기다」), 「밥은 관심이고, 사랑이다」, “스무 살 엄마가 고난을 이겨낸 세월은 시리고 아팠다. … 닫힌 성처럼 늙어가는 고향 그곳에 구십 노인 엄마가 홀로 있다.”(「스무 살 엄마」), 엄마와의 여행(「엄마의 단풍놀이」), 「김장 날 소묘」, “…바랭이가 파 뿌리를 옭아매듯 구십 평생 엄마의 삶을 옥죄던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였을까.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꾹 감정을 누른 일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상처는 덮어둔다고 치료되지 않는다. 드러내고, 소독하고, 드레싱 해 주어야 온전하다. 간신히 정신 줄을 잡고 계신 당신이다. 엄마의 원망과 억울함을 귀담아들어 주는 것은 잡초 무성한 묵정밭에서 더 많은 보물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보물찾기」), “인생의 겨울을 맞은 엄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앞에 무슨 말이 위로되겠는가. 엄마의 부탁대로 장독대 갈무리를 잘할 수 있을까. 그날이 천천히 아주 느리게 오면 좋겠다. 힘센 죽음을 이길 순 없지만, 눈물 없이 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날이 오려나.”(「갈무리」), “…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의 가장 처량한 나이다.’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내 정수리를 지그시 눌러줄 웃어른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이제 우리 순서가 되어가나 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철들고 어른 되게 했다.”(「어른 되는 법」), “네가 갔고, 또한 내가 뒤따라갈 그 길도 이 같은 꽃길이기를, 바람 타고, 구름 타고 가는 신나는 소풍 길이기를. 언젠가 그 길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한 기원을 담아 미처 하지 못한 마지막 한마디를 가만히 전한다. “정말 사랑해!”(「하늘 가는 길」) 등, 제행무상의 우리 삶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감동적인 작품들이다.
그렇다. “…흔들리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민다나오의 아이들」),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바다 건너 세상 모든 곳이다. 불합리와 불평등을 이겨내고 모두가 함께 사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작품마다 사랑의 온기 가득하다. 일하는 엄마들이 겪는 양육의 어려움과 저출산 문제를 다룬 「남아수독오거서」, 저출산의 난제에 부닥친 우리나라의 현실(「고르디우스의 매듭」), 코로나 팬데믹의 그늘(「멋진 호캉스」), 보건진료소를 찾아온 외로운 노인의 망상(「매미가 울던 날」), 개성관광의 속절없는 정경-“북한도 사람이 사는 땅이었다.”(「개성 관광」), “수족관에 감금당하고 있는 돌고래 벨루가의 삶”(「벨루가의 노래)까지. 또, “시기리야 요새 같은 피난처는 권력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민초들 마음에 지어야 할 것 같다. 선글라스를 끼고 멋진 포즈로 프로필을 장식하고 있는 산다루완이 그와 그의 가족을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사자 발처럼 튼실한 버팀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기를.”(「시기리야 요새」), “습기 머금은 바세코의 더럽고 지저분한 길거리와 집에서 지옥을 보았다면 아이들의 얼굴과 눈빛에서 천국을 보았다.”(「바세코의 아이들」), “아무리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지더라도 혼자서는 재미가 덜하다. 블라인드 여행을 통해서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이다. 감추고 싶어 하지만 드러내고 싶은 모순, 그 안에 그들과 비슷한 일상과 고민을 가진 내가 있다.”(「블라인드 여행」) 등. “너와 내가 같이 행복해야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다.”라며 세상의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글이 따뜻하게 그지없다.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글쓰기, 너무 잘 쓰려고 용쓰지 않기.” 이러한 작가의 글쓰기 방식처럼 “주삿바늘 앞에 초연한 엉덩이처럼 힘을 빼면 삶은 더 경쾌하고 유연.”(「게르바 주사법」)해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여행을 통해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욕망과 애착을 놓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삶을 한 번씩 점검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예행연습」)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우리 삶이 얼마나 가볍고 자유로운 여행이 될 수 있는지 깨달음을 주는 작품들이다.
『민들레 씨 날리다』, 마음 설레는 민들레 홀씨의 여행길에 함께해 보자.
■ 책 속으로
“다시 낯선 문 앞에 설 시점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그 문 앞에 서리라.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므로.”(「낯선 문 앞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을 자주 반추해 본다는 것은 자유를 찾는 길이고, 삶이 가벼워지는 길이다.”(「안단테 칸타빌레」)
“해넘이는 새로운 시작이다. 밝음과 어두움, 존재와 사라짐의 경계에 서 있는 출발점이다. 기름 먹인 재봉틀처럼 잘 돌아가는 낮을 지나 몸과 마음에 밀물이 밀려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 밤은 또한, 거울을 마주하듯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시간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며 나를 정화하는, 흙탕물이 되어있는 내 안을 가라앉히고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침잠의 시간이다. …… 창문 덜컹거리는 소리, 아련한 고양이들의 으르렁거림과 둔탁한 쓰레기차의 울림에 흔들리는 새벽이 있다. 잠에 빠져든 사람과 동물들, 수런거리는 꽃들 속에서 이 시간 깨어있다는 것이 내 실존이다. 소멸할지언정 소멸하지 않는 생명의 시작점이 해넘이다.”(「일몰 증후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짓밟히더라도 뿌리 내리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우리 들풀이다. 길섶이나 밭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이지만 누구보다 먼저 봄 마중하러 와 준 봄까치꽃이 애틋하다. … 겨우내 애써 피워 올린 보랏빛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봄까치꽃, 그 여리고 작은 것이 나직하게 속삭인다. 봄이야, 나처럼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중에서)
“…언제까지나 길을 떠날 수는 없는 법,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내 안에 새로운 눈과 마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새로운 눈으로 보는 세상의 또 다른 길도 나를 흔들면 좋겠다. 여행길에서 만났던 풍경들처럼.”(「언제나 길 위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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