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5년경 정진사와 함께 직지사를 유람하다 정지집(鄭之鏶,1693~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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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집(鄭之鏶,1693~1754) : 字성중(成仲), 號병촉재(炳燭齋). 동래인(東萊人). 예천거주
용포(龍浦) 이유(李濰)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강학과 실천을 항상 염두하면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썼다. 호를 ‘병촉재’라 지은 이유는 늦도록 촛불을 밝혀 놓고 학문하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與鄭上舍同遊直指寺
정진사와 함께 직지사를 유람하다
*정진사 정준(鄭儁,1675~1752) [생1714] 字백영(伯英) 號봉사(鳳沙). 만회당(晩晦堂). ‘직지사중창상량문’이 전한다
1745년경 정지집(鄭之鏶,1693~1754)
탈초 및 번역 : 카페지기
金陵風景好(금릉풍경호) 금릉의 경치가 좋아
形勝擅江右(형승천강우) 형승이 강우에 떨쳤네.
我欲一生遊(아욕일생유) 나는 평생 유람하고 싶었지만
俗務多掣肘(속무다철주) 세상 일에 간섭이 많았다.
*철주(掣肘) : 공연히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여 뜻한 바를 이룰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로, 노(魯)나라 복자천(宓子賤)의 고사이다. 복자천이 단보(亶父)의 수령으로 임명되어 떠나갈 적에 글씨를 잘 쓰는 임금의 근리(近吏) 두 사람을 청하여 함께 데리고 갔다. 고을의 아전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 근리들에게 글씨를 쓰게 하였는데, 글씨를 쓰려고 하면 옆에서 팔꿈치를 잡아당기고, 그 때문에 글씨를 잘못 쓰면 또 화를 내었다. 근리들이 두려워 사직하고 돌아가 임금에게 자초지종을 고하니, 임금이 자신을 경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呂氏春秋 具備》
靑牛季夏月(청우계하월) 청우해(을축년) 6월에
无妄眚灾遘(무망생재구) 예기치 않은 생재(眚灾)를 만나
兩朔滯此地(양삭체차지) 2달간 이 고을에 머물렀는데
寥落誰舆友(요락수여우) 쓸쓸히 누구와 벗이 되겠는가
*생재(眚災) : 천재 지변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지은 죄.
沙翁幸不棄(사옹행불기) 사옹(沙翁)께서는 다행히 버리지 않고
待余頗欵厚(대여파관후) 매우 관대하게 나를 기다렸다.
翁指黃嶽問(옹지황악문) 어른께서 황악을 가리키며
子嘗逰此否(자상유차부) 자네는 유람을 해보지 않겠는가 물었다.
我乃謝未能(아내사미능) 나는 할 수 없다고 사양하자
翁曰盍觀諸(옹왈합관제) 어른께서는 어찌 둘러보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며
呼童促理裝(호동촉리장) 동자를 불러 행장을 재촉하여
携我共策驢(휴아공책려) 나를 데리고 함께 나귀를 채찍질하였다.
維時屬清和(유시속충화) 때가 청화(清和, 음 4월) 였는데
微雨初霽餘(미우초제여) 가랑비가 개인 뒤에
芳菲何曽歇(방비하증헐) 풀내음도 어찌 그 친적이 있었던가
紅紫雜山岨(홍자잡산저) 산기슭이 울긋불긋 하였다.
青郊馬蹄輕(청교마제경) 푸르른 교외에 이르니 말발굽 경쾌하고
時物侈行車(시물치행거) 행차에 제철 경물이 성대하였다.
路傍清溪上(노방청계상) 길 옆 맑은 개울 옆에
有村名泉浦(유촌명천포) 천포(泉浦)라 이름 지은 마을이 있었다.
泉浦間湖嶺(천포간호령) 천포는 호서와 영남사이에 있어
疆界分玆土(강계분자토) 지역 경계가 이 땅에서 나뉘었다.
亭驂爲蹰踟(정참위주지) 말을 멈추고 머뭇거리다
欲訪宗伯甫(욕방종백보) 종백보를 방문하고자 했어나
門閉鶴不報(문폐학불보) 문이 닫혀있어 알리지 못했다.
悵然回首屢(창연회수루) 창연히 자주 뒤돌아보며
行行至山門(행행지산문) 산문을 향해 가고 또 갔다.
山門日正午(산문일정오) 산문에 도착하니 날이 정오가 되어
住杖洞口橋(주장동구교) 지팡이 짚고 동구의 다리에 이르러
縶馬巖頭樹(집마암두수) 말을 바위 머리 나무에 묶고
聯鞭步而入(연편보이입) 나란히 채찍질하며 걸어서 들어갔다.
數僧來先路(수승래선로) 승려 몇 명이 와서 길을 안내하여
仍上萬歲榭(잉상만세사) 마침내 만세의 정자에 올랐다.
軒敞無舆比(헌창무여비) 처마가 높아 비할데가 없었고
佛宇曁僧舍(불우기승사) 대웅전이 승사에 이르렀는데
舉皆極宏侈(거개극굉치) 대개가 넓고 화려하였다.
點飯向雲庵(점반향운암) 점심 식사후 운암으로 향했는데
菴僅四五里(암근사오리) 암자까지는 거의 4~5리 였다.
樹陰益茂密(수음익무밀) 나무 그늘 더욱 무성해지고
洞壑益深邃(동학익심수) 골짜기는 더욱 깊어졌다
飜思所從來(번사소종내) 돌이켜 지나온 내력을 생각하니
杳若前生事(묘약전생사)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였다.
菴僧出門拜(암승출문배) 암자에서 스님이 나와 절하며
引座肆筵席(인좌사연석) 자리로 인도하여 와림되이 연석에 앉았다.
盤饌羅床案(반찬라상안)
山肴兼野蓛(산효겸야책)
商嶺採芝翁(상령채지옹)
又自山外八(우자산외팔)
虎眉共對床(호미공대상)
瑞彩照南極(서채조남극)
坐有彈琴子(좌유탄금자)
古調學叔夜(고조학숙야)
夜來奏峨洋(야래주아양)
音律淸而雅(음률청이아)
滿座擊節歎(만좌격절탄)
孰云知者寡(숙운지자과)
勝地成佳會(승지성가회) 승지에서 좋은 모임 이루고
羈愁蹔浣瀉(기수잠완사) 나그네 시름을 잠시 솓아내었네.
朝來出別語(조래출별어) 아침이 되어 이별하고 나오니
山逕分右左(산경분우좌) 산길이 좌우로 나뉘었다.
我隨沙老後(아수사노후) 나는 사노를 뒤에서 따르며
遍訪諸蘭若(편방제란약)
雲菴一老釋(운암일노석)
聰明識道理(총명식도리)
與語未半餉(여어미반향)
复投能如寺(복투능여사)
峰密菀嵂崒(봉밀울률줄)
逶迤互伏起(위이호복기)
龍湫噴玉聲(룡추분옥성)
喧虢亂人耳(훤괵란인이)
溪山美如許(계산미여허)
端合藏修地(단합장수지)
胡然此勝狀(호연차승상)
空付彼釋界(공부피석계)
相與歎咄久(상여탄돌구)
坐石伋小語(좌석급소어)
臨風詠一律(림풍영일률)
谷鳥來相和(곡조래상화)
流人澹忘歸(유인담망귀)
不覺山日下(불각산일하)
拚袂出洞門(변몌출동문)
煩襟宛洗滌(번금완세척)
上馬又聯句(상마우련구)
拙語懺蹇澁(졸어참건삽)
平生所願賞(평생소원상)
今日幸快覿(금일행쾌적)
此行誰困阨(차행수곤액)
亦云有所得(역운유소득)
但恨上內院(단한상내원)
未能躬搜剔(미능궁수척)
杜陵扶桑句(두릉부상구)
今古恨一轍(금고한일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