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무더위가 오지는 않았지만,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우리는 졸업 사진 촬영 소식을 들었다. 초등학교 때도 졸업 사진을 찍었지만, 그 시절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저 정해진 형식에 맞춰서 찍을 뿐. 그렇기에 이번 졸업 사진 촬영이 더욱 기대되었다.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첫 사진이라는 생각에 들뜬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떤 컨셉으로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평소 유튜브에서 즐겨보던 채널인 ‘피식 대학’의 인기 콘텐츠인 ‘한사랑 산악회’를 따라 하기로 했다. 한사랑 산악회는 중년 남성들의 산행을 주제로 한 코미디이다. 이들을 따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각자 의상을 구입했다. 정말 재미있고 독창적인 의상을 선택해 친구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싶었다. 영상과 최대한 비슷한 의상을 찾아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없었다. 온라인 구매에선 답이 없다고 느낀 나는 직접 등산복 매장을 찾아갔다. 두세 개의 매장을 다니다 보니 깨달은 건 옷들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나름 괜찮은 옷을 골랐다.
옷이 다소 아쉬웠기에 우리는 화룡점정을 찍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고당봉 정상에서 볼 수 있는 표지석이다. 졸업사진을 금정산에서 찍으면 좋겠지만 학교에서 찍어야 하기에 등산한다는 느낌을 내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소품이었다. 실제와 최대한 유사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 몸보다 큰 우드록을 사고, 돌멩이와 최대한 비슷한 색깔의 도화지를 샀다. 글씨를 반대로 쓰고, 크기를 잘못하고, 종이가 찢어지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마침내 완성해 냈다. 완성작을 집으로 가져가는데 거센 바람이 불더니 우드록이 휘청거리며 조금의 충격에도 부러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몇 시간의 노력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보며 깔깔 웃어대곤 했다.
기다리던 졸업 사진 촬영 당일 날, 우리가 의상을 입자마자 교실은 떠들썩해졌다. 형형색색의 옷과 등산화, 등산 가방, 등산지팡이까지 부족한 거 하나 없었다. 다른 친구들의 칭찬과 사진 세례에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욕심이 멈출 줄 몰랐던 우리는 선생님께 가 밀짚모자를 빌렸다. 밀짚모자를 빌리러 교무실에 가자마자 선생님들이 웃으시면서 장난을 치셨다.
“아줌마, 안 사요~” 와 같이 상황극을 해주시는 분도 계셨고 우리의 의상이 충격이었는지 한참을 감탄하시는 분도 계셨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본인의 립스틱을 빌려주셨다.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우리는 정말 등산하는 5~60대 아주머니들 같았다.
6반이었기에 우리는 하루 종일 기다렸고 대기시간이 무척이나 길었다. 하지만 그 시간마저 친구들과 장난치고 수다를 떨었기에 재밌었다. 다행히도 촬영 장소가 자연이어서 우리의 의상과 소품이 조화롭게 어울렸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더운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꽃단장했다. 사실 촬영 시간은 10초도 안 되었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졸업 사진 촬영에서 더 중요한 건 졸업 사진보다 폰으로 찍는 사진이다. 우리는 여러 장소에서 여러 포즈로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고 챌린지도 찍어보았다. 몸에 걸쳐진 게 많아 덥고 지칠 법도 했지만 우리는 처지는 기색 없이 밝고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졸업 사진 촬영은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인상 깊고 값진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그 속에는 우리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