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자연의 순리와 인위의 그물
1장. 침묵의 대지와 인간의 헛된 수식
자연은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변명하거나 치장하지 않는다. 대지는 말없이 비를 품고, 산허리에 구름을 두른 채 영겁의 시간을 묵묵히 버텨낼 뿐이다. 반면 사람은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말을 지어내고, 진실을 가리기 위해 화려한 수식(修飾)의 그물을 끝없이 엮어낸다.
그러나 이 세상의 진리는 언제나 간결한 법이다. 화려한 수식으로 포장된 말은 찰나의 폭죽처럼 반짝이다. 이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지만, 꾸밈없는 진심과 자연의 섭리를 닮은 말은 수천 년의 세월을 관통하여 사람의 가슴 깊은 곳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는다. 사물과 존재의 이치 역시 이와 같아서, 세상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은 오래도록 살아남고, 인간의 오만한 욕심으로 부자연스럽게 뒤틀어 놓은 것은 머지않아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법이다.
2장. 사상의 미로와 자연의 거울
공자가 외치던 인(仁)의 가르침과 맹자가 품었던 의(義)의 찬란한 뜻도, 묵자가 온 세상을 향해 부르짖던 무차별적인 사랑의 겸애설(兼愛說)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지키고자 한 양주의 위아설(爲我說)도 결국은 인간의 뜨거운 머리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사상의 성채였다. 말 한마디로 사물의 본질을 뒤흔들려던 공손룡의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과 칼날 같은 냉혹함으로 천하를 쥐려 한 상앙의 부국 강변론(富國強兵論)까지 이 모든 현기증 나는 이론들은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명목 아래 인간이 쌓아 올린 인위적인 미로에 불과했다.
노자의 손때 묻은 《도덕경》의 고요한 눈으로 이 모든 역사적 소란을 바라보면, 그것은 태고의 숲이 품은 자연스러운 숨결에서 벗어나 저마다 잘났다고 외쳐대는 헛된 수식의 울림일지도 모른다. 성인들의 혜안과 사상가들의 절규는 비록 인류를 일깨우려 했으나, 자연이라는 거대한 어머니의 품 앞에서 인간이 세운 철학은 때로는 부서지기 쉬운 모래성과도 같았다.
3장. 핏빛 변혁의 시대, 상앙과 진나라의 그늘
기원전 338년 무렵, 춘추전국시대의 거친 바람 속에서 진나라의 정치가 상앙은 피를 말리는 결단을 내렸다. 백성들의 사소한 일상까지 엄격한 법의 테두리로 묶고, 공정한 상벌의 칼날을 휘두르고 피비린내 나는 개혁을 단행했다. 그의 가혹할 정도로 철저한 법가 사상은 당대의 혼란을 잠재우고 진나라가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는 철옹성 같은 기반을 다져주었으며, 기나긴 전쟁의 역사를 끝맺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그 시절, 백성들은 아침에 내린 가혹한 법령이 저녁에 목을 겨눌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를 버텨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감시하고, 오직 국가의 팽창과 전쟁의 승리만을 위해 소모품처럼 갈려 나갔다. 역사는 그 시대를 강력한 통일의 영광이라 기록하지만, 그 철저한 인위적 통제와 메마른 가혹함은 생명이 가진 부드러운 온기와 자연스러운 흐름과는 영원히 결을 달리하는, 피로 물든 차가운 그물이었다.
4장. 기다림을 잃어버린 시대와 정치의 무게
인간의 삶과 정치가 굴러가는 모양새 또한 이 가혹한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농부는 이른 새벽부터 논밭에 나가 구슬땀을 흘리며 대지를 보살피지만, 제멋대로 마음이 앞선다고 해서 다 익지도 않은 곡식을 붙잡고 수확 철을 미리 앞당길 수는 없는 법이다. 계절이 돌고 돌아 때가 무르익어야 비로소 곡식은 스스로 힘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것이며, 그때가 비로소 가장 자연스럽고 완벽한 수확의 시기인 것이다.
오늘날의 똑똑하고 잘났다는 정치가들도 이 소박한 농부의 지혜를 깊이 새겨야 한다. 비바람을 맞고 긴 세월을 견디며 스스로 단단한 재목으로 크는 나무처럼, 사회의 변화와 인재의 성장을 기다려주는 인내와 미덕이 정가(政街)에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가벼운 발언으로 자신의 말에 책임을 내던지는 무책임한 언행은, 마치 한 해 농사를 망치는 불순물처럼 양호한 정치판과 건강한 사회를 가로막는 주범이다. 자연의 순리가 어긋나면 대지가 병들듯, 말의 무게를 잃어버린 정치가 근절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인위의 그물을 벗어나 본래의 따스한 온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5장. 길 위에서 비로소 마주하는 진리의 발걸음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사상의 미로와 헛된 수식의 그물이 이처럼 세상을 가두려 할 때, 우리는 왜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길을 나서야만 하는가. 그 명확한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 속에서 인류의 정신을 밝히고 세상을 구원하려 했던 위대한 성인들과 철학자들조차 단자에 앉아 머리로만 세상을 재단하지 않았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왕위의 모든 영화를 버리고 길 위로 걸어 나와 보리수 아래에 홀로 앉았고, 공자는 자신의 사상을 가슴에 품은 채 수많은 제자와 함께 열국을 떠돌며 찬바람과 흙먼지를 맞이하는 유랑의 길을 걸었다. 소크라테스 역시 아테네의 광장을 걸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예수 또한 고요한 방안에 머물기보다 들판과 산을 걸며 대중과 호흡했다.
세상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성인들과 사상가들이 마침내 도달한 지혜의 정점은, 언제나 안락한 사색의 공간이 아니라 발로 딛고 걸어가는 '여행'이라는 거대한 순례의 길 위에 있었다. 인간의 인위적인 가르침이 진리를 가두려 할 때, 길 위로 떠나는 여행은 그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고 대지의 날것 그대로의 숨결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이 떠나야만 한다. 헛된 수식으로 채워진 일상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길 위에 서서 자연의 순리와 생명의 온도를 맨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비로소 떠난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인간이 만든 인위의 그물을 걷고 온 우주와 가장 순수하게 연결되는 기적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