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재기의 안부
김금자
세상 사람들은 흔히 인품을 두고 “그릇의 크기”를 논하고는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깊이와 너비를 손에 잡히는 사발이나 옹기에 빗대어 가늠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이란 무언가를 끊임없이 담고 비워내는 일의 반복이다. 욕심을 담았다가 후회로 비워내고, 슬픔을 담았다가 시간으로 덜어내며, 끝내는 사람을 담고 사람으로 비워내는 일이다. 이러함에 사람의 크기를 그릇에 비유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정확한 은유일 것이다.
내 기억 창고에는 오래된 그릇 하나가 놓여 있다. 아주 작고 오목하여 앙증맞기까지 한 “종재기”라는 이름의 그릇이다. 그 이름을 처음 만난 것은 빛바랜 유년의 어느 갈맷빛 오후이다. 외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모인 친척들 웅성거림의 속에서이다. 나는 할머니의 마른 무릎을 베개 삼아 어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감은 눈꺼풀 너머로 세상의 소리 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파고들던 그때이다. 낯선 단어 하나가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아이구, 그 당산 양반은 속이 종재기라 우짜지 못해여.” 나는 벌떡 일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할머니, 종재기? 내가 꿀 찍어 먹는 그 작은 종재기가 할배로 변했다는 거라고?” 방안은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른들은 박장대소하면서도 끝내 그 속뜻을 일러주지 않았다. 그저 “어른들 일에 끼어드는 것 아니다.”라는 어머니의 핀잔만 돌아왔을 뿐이다. 그날 이후 “종재기”는 나의 마음속에 숨은 하나의 화두가 되어 문득문득 내 삶의 가운데서 크기를 묻게 되는 질문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머리에 서리가 앉아서야 알았다. 종재기는 간장이나 꿀을 담는 작고 얕아서 더는 채울 것이 없는 완고한 그릇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타인을 품지 못하는 좁은 소견을 향한 서글픈 비유이다.
마음의 그릇이 깊어지는 법을 온몸으로 배운 것은 사십여 년 전, 이맘때쯤 기차 안에서이다. 큰아버지가 서울 원자력병원 암센터에 입원하여 위독하다는 비보를 듣고 큰어머니와 함께 상행선 새마을호 열차에 올랐다. 1984년 그때 호텔처럼 붉은 카펫이 깔린 새마을호는 빠르고 고급스러워 선망의 대상이다. 포근한 붉은 와인 색 시트에 몸을 묻었으나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평소 큰아버지는 나를 참 귀여워 해 주어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끼니때가 되자 차내에 도시락 향기가 번졌다. 정갈한 불고기 도시락의 가격은 삼천 원, 짜장면 한 그릇이 오백 원이던 시절이니 내게는 한 끼 식사 이상의 무게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내가 마땅히 대접해야 하였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며 속으로 삶은 달걀과 음료로 때울까 고민하던 찰나이다. 내 속내를 꿰뚫어 보신 듯 큰어머니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애야, 우리 맛있는 도시락 먹자. 내가 사 주마.” 사경을 헤매는 남편을 향해 가는 극심한 슬픔 속에서도 질녀의 첫 기차 여행이 배고픈 기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랐던 어른의 마음이다. 큰어머니의 도시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타인의 허기를 먼저 살피는 “어른다움의 큰 그릇”이다. 큰어머니는 밥을 한술도 못 드시고 남긴 상황이다. “밥이 안 넘어간다.” 하였다. 그 바다 같은 마음 앞에서 작은 이득에 흔들리었던 나의 종재기 같은 마음은 한없이 부끄러웠다.
중년의 삶으로 접어들며 나는 잠시 길을 잃기도 하였다. 차(茶)를 사랑하여 전국을 다니며 다완(茶碗)을 수집하던 때이다. 어느 사찰에서 본 풍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유명작가의 다완 들이 방 가득 쌓여 있었으나 정작 그 방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도둑맞을까 두려워 빗장을 지른 그릇들은 더이상 차를 나누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쓰임새보다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던 나의 욕망도 보았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명품 그릇을 모셔 오는 것이 필수 품목이었다. 이십오 년 전 영국 가족여행에서 값비싼 찻잔이라 이동에 더 꼼꼼한 포장으로 인하여 집합장소에 늦게 도착하였다. 함께 간 일행들에게 피해를 주어 아들 얼굴에 민망함을 얹었다. “벌칙으로 아들의 마술 깜짝 공연이 있겠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아들 내세워 마술 덕분에 박수로 무마한 때도 있었다. 집안의 찬장에 화려한 그릇들이 쌓이어갈수록 역설적으로 내 마음의 공간은 비좁아져 갔다.
정신이 번쩍 든 것은 대구박물관 도서실에서 만난 다산 정약용의 글귀 덕분이다. 목민심서를 읽으며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서로를 배려하고 베푸는 너그러운 마음이야말로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알게 된다. “나는 지금 이익을 좇는가? 아니면 사람을 살피는가?” 유배지의 척박한 땅에서도 자기를 비워 백성을 향한 거대한 서사를 써 내려간 그를 보며 진정한 큰 그릇은 가진 것을 비워 낼 때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날 이후 나는 찬장을 비우기 시작하였다. 이전에는 지인들과 예쁜 그릇에 취해 음식이 더 맛있다고 인사 듣는 기분을 즐기었다. 지인들에게 필요한 그릇을 나눠주며 비로소 내 마음의 배려와 여유라는 작은 틈이 생겨났다. 물론 비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며칠 전 아끼던 찻잔 하나를 깨뜨리고는 “아이고 아까워라.”하며 반나절을 끙끙 앓아대었다. 비움의 미학을 설파하던 기세는 어디 가고 깨진 조각 붙잡고 속상해하는 모습이었다. 남들에겐 “사발” 같은 넉넉한 인심을 베풀겠노라 호언장담해놓고 정작 내 찻잔 하나에는 여전히 “종재기”만한 집착을 부리고 있다. 이 종재기 근성은 비워도, 비워도 바닥에 끈질기게 달라붙은 꿀단지 같아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무엇을 담느냐보다 얼마나 비워낼 줄 아느냐로 그 깊이가 결정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다. 가끔 사소한 욕심에 마음이 옹졸해지기도 하고 다시 종재기처럼 얕아지려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십 년 전 큰어머니의 큰 사랑을 잊지 않으려고 마음에 늘 새긴다.
“간장 종재기가 열두 번 깨져도 간장 맛은 변하지 않는다.” 라듯이 내 마음의 그릇이 때로는 깨지고 금이 가더라도 그 안에 담긴 타인을 향한 진심만큼은 변하지 않기 바라본다. 오늘도 나는 마음의 종재기를 닦으며 누군가의 고단한 안부를 넉넉히 받아낼 마음 사발 하나를 정성껏 빚어 본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