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8년 9월 오다 노부나가는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와 함께 상경했다. 그리고 10월 요시아키는 정이대장군에 임명되어 무로마치 바쿠후 15대 쇼군이 되었다. 요시아키는 쇼군이 되자 실권은 없었지만 야마토의 호류사나 야마시로의 다이토쿠사 등 경기 지역에 있는 사원에 대해 사원 영지를 보증하는 문서나 폭동을 금지하는 법령을 자주 내렸다. 또 각지에서 일어나는 다이묘간의 분쟁도 조정하려 했다. 사원이나 다이묘들을 자기편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요시아키의 행동이 노부나가와 충돌하면서 노부나가는 1570년 자신과 상담하지 않고 마음대로 바쿠후의 명령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의견서를 제출해서 요시아키의 행동을 제한했다.
쇼군 요시아키는 1573년 2월 다케다 신겐, 혼간지 겐뇨, 아사쿠라 요시카게, 아사이 나가마사와 밀약하여 노부나가를 토벌하려 했다. 또 3월에는 미요시 요시쓰구, 마쓰나가 히사히데와도 결탁했다. 요시쓰구와 히사히데는 자신의 형을 죽인 원수였지만 이들과 협력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노부나가는 쇼군 요시아키의 전의를 알아채고 화해를 구했으나 요시아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쇼군 요시아키는 아키의 모리 데루모토에게 군량미를 요구하고 7월에는 니죠성과 마키시마성에서 농성하며 오다 노부나가를 토벌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노부나가는 곧 니죠성과 마키시마성을 점령해서 요시아키를 가와치로 추방했다. 이로써 240년 동안 계속된 무로마치 바쿠후는 15대로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