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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선 과장이 아이들에게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군요..^^
본편이 이어지기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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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가슴이 저려"
신희의 말에 영주는 그애의, 똑바르고, 조용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이 애 만큼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지만.
그게 사실은 당연한 것이다. 다른 이의 마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눈빛과, 말투와, 대화를 통해서 알아가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영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몸이 안좋은거 같아?"
"아니"
신희는 고개를 저었다. 몸이 아픈 것이라면, 굳이 남에게 의존하거나, 증상을
상의할 필요가 없다. 영주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질문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럼 왜?"
가슴을 빤히 내려다보다, 한쪽 손으로 왼쪽 가슴 위를 지그시 누르며,
신희가 말을 이었다.
"....그냥, 저릿저릿한 거 같아. 좀..슬픈 것 같기도 하고, 옛날에 전기실험하다가
실수했을 때처럼, 따끔하기도 해."
"계속?"
"아니."
신희는 망설이다, 하얀 이마위로 흘러내린 갈색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그냥. 어떤 일을..떠올릴 때면, 그런 느낌이 들어."
가슴이 저리는 일.
....영주는 다소 놀란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신희. 순수하고도 올곧은 그녀의
영혼이, 어디에 저렇게 흔들린 걸까. 이성적인 것 같지만 사실 순수하고, 온화하고,
밝아서 우리 여섯 명의 축이 되어준 신희.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겨질 때도,
자신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겨질 때도-
이 아이가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특별하고, 아마도 그 누구보다 외로웠을
신희를 생각하면 함부로 불평을 할 수 없었다.
가장 어린 나이에, '그들' 가운데 합류한 이래로, 신희는 주욱- 그런 위치에 있었다.
태현과 주열 팀장이 신희를 좋아하면서도 함부로 손을 내밀지 못했던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
다 각각인 것 같지만, 결코 떨어져서는 생활할 수 없는 여섯명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그녀의 존재였기에.
"어떤 일인지..물어봐도 돼?"
신희는 한동안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 듯,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가
영주의 질문에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든다.
얼굴이 다소 붉어져 있다.
"아직은..미안."
예상했던 대답에 영주는 살짝 웃었다. 영주의 웃음은, 자신이 만든 어떤 약보다
효과가 좋은 치료제,라고 한희가 말한 적이 있다.
농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웃음이, 지금 '마음이 저려오는' 알 수 없는 종류의 고통을 겪는
신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아니..얘기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영주는 아주 잠깐 망설인 뒤, 신희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한다.
"나도, 이따금. 아니 내내 가슴이 저려. 너처럼. 심장보다 깊은- 더욱 깊은 안쪽이. ”
* * * *
이선은 침대에 누워, 가만히 조금 떨어진 책상 위, 작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듣고 있었다.
약간 멀었지만, 당시는 깨닫지 못했던 주변의 사소한 기척까지 모두 들어가 있는
‘당시의 소리’들은- 마치 남의 사연을 듣는 것 같이 멀고, 망연한 느낌을 주었다.
녹음기 속의 자신은 화를 내고, 당황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소녀라 말할 수 있는 여자아이에게.
왜 그랬을까.
왜 나는 굳이 그애에게 변명을 해야한다고-하고 싶다고 느꼈을까.
자신의 흥분된 음성과,
신희의 차분한 음성이 교차되는 순간, 이선은 침대에서 베개로 가만히 얼굴을
가렸다. 각오했지만, 역시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막을 수 없다.
‘나는 몇관왕이죠?’
당돌하게까지 느껴지는 신희의 음성.
그리고, 정말 예정에도 없이, 갑작스레 튀어나온 고백 아닌 고백.
'그리고..
처음으로..좋아하게 될 것 ..같은 여자애 1위.'
그래.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어도,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은, 언제나 이성보다 감정을 먼저 따르는 편이었다.
나이가 먹어도-변하지 않는구나. 바보 같은 이선이.
'...7관왕이네요.'
무척이나 담담하지만, 그 속에 섞인, 미세한 떨림을, 소리를 죽인 채 다시 들으며-
이선은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긍정도 부정도. 놀람도 멸시도. 수긍도 조롱도 아닌, 애매한 대답.
마치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하늘색 녹음기처럼, 심플하고, 간결한 대답이었다.
조교로부터 받은 하늘색 기계에는, 재생 버튼 위에는, 그 어떤 것도 달려있지 않았다.
되감기 기능도, 빨리감기 기능도. 심지어 소리조절 장치마저 없었다.
한번 틀면, 그저 끝까지 듣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굳이 듣기 싫다면, 다락에서 야구방망이라도 꺼내와서 부수면 그만이겠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왜 당신이어야 했는지.’
자신은 조교에게 소리쳤다. ‘왜 나여야만 했냐고. 본사의 수많은 직원가운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관련 회사의 직원들 가운데 하필이면, 단순하고, 다혈질이고,
재능조차 없고, 애들도 좋아하지 않는 나여야만 했냐고-.
그리고 조교는 예상이라도 한 듯, 그 대답이 들어있는 녹음기를 자신 앞에 내민 것이다.
<선택은 자유>라고 말하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면서도.
그리고 마침내 신희의 ‘7관왕이네요’라는 목소리가 지나가고, 뭔가 소음 같은 것이 1분쯤
지나간 뒤, 어딘지 낯익은 소리들과, 목소리들이 기계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녹음기는 고백한다.
지금까지, 이선이 몰랐던 이야기들을.
왜, 하필이면 자신이 그 공학관에 가게 되었는지.
왜, 자신이 그만 두어서는 안되는지..
맨 마지막에, 새로 바뀐 이선의 패스워드가 흘러나올 때까지(영어 알파벳이 두개 더 늘었다)
기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갔다.
그리고, 하늘색 기계는 다시 재생되지 않은 채- 재생과 동시에 삭제되도록 되어있었는지-
멈추어져, 마치 그저 열쇠고리나 목걸이었던 것처럼, 조용히 죽어버렸다.
이선은 한동안 가만히 침대에 앉아있다가, 서서히 몸을 뒤로 넘겨, 벽에 기댄다.
문을 열든지, 아니면 –닫든지.
하나 확실한 것은, 이번에 닫으면 그 문은 영원히 다시 열리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간다.
손 안에 들어가는 작은 녹음기(재생기라고 해야할까.)는 마치 차갑게 식은 금붕어의 시신이라도
되는 양, 꼼짝하지 않고, 꼬리조차 파닥이지 않는다.
'…패스워드가 복잡하게 바뀌었다면 다시 못 돌아갈 뻔 했군..'
이선은 머리 속에 외워뒀던, 열 네자리의 원래 패스워드에 두개의 알파벳을 더한다.
바뀐 패스워드는 1차 출입문에서 ID카드에 새로 입력시키면 될 것이다.
하늘색 기계를 가방 안쪽에 넣고, 그녀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대학 시절처럼, 하얀 박스티를 입고, 청 반바지를 걸치고, 머리를 흐트린 채
아무려면 어때,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을.
* * * *
<어이, 이선씨, 이거 하나만 해봐. 요즘 유행하는 거라구->
지사의 부장은, 이선을 포함한 동료들에게 심리테스트 시키는 걸 무척 재미있어했다.
이상한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것을 적게 하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보기들을 놓고
하나를 선택하게 하거나..
일이 없을 땐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 식으로 응해줬지만,
월말이나 결산 때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순간에 조차 심리 검사 운운하면 그 때마다 이선은
자판을 부서져라 두들기며 '제발 그렇게 한가하면 이 장부 좀 다시 깨끗이 써주세요'라고
외치곤 했었다.
'어이, 이 결과에 따르면 이선씨는 그야말로 정열의 화신이래. 어울리지 않나?'
'와우-멋진데요.'
성희롱으로 고소할까 몇번 생각하기도 했었고,
'당신의 마음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의 기억이 있습니다'
결과를 읽어주는 여직원의 말에 마음이 뜨금하기도 했었다.
그건, 정말 지극히 사소한 심리 테스트였고, 인터넷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었다.
가끔 색다른 것도 있었지만, 워낙이 마니아(?)인 부장이니 어디선가 새로운 걸 구했겠거니, 싶었다.
왜, 그걸 잊고 있었던 걸까.
"...간단한 원리죠. 중요한 편지는 평범한 편지 속에 숨기는 거."
조교는 예의 그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이선이 돌려준 하늘색 기계를 만지작 거렸다.
그랬다. 너무나 일상적이었기에,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선별법'이었기에,
그녀는 그 부장이 단지 심리테스트에 특별한 집착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가볍게 지나갔다.
그녀 뿐 아니라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이, 부장의 그 괴벽에 질려있었으니-
거기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다고 여길 수는 없었다.
자신만 특별하다 여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은 너무나 중요한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조교의 말처럼, 자신에겐 이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감수해야만 할
<특별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유는, 애초에 자신이 공학관으로 보내진 이유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할 이유도 되었다.
“당신은 아이들의 능력을 듣고도, 크게 놀라거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어요. 특히
영주의 능력, 쪽에 대해서.”
이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녹음기의 내용을 듣고, 비로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공학관으로 와야할 대상은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의 동생, 김유선 이었던 것이다.
시력을 잃기 전에도, 유선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이해도 잘 했다.
눈을 심하게 다친 뒤에 생긴-특이한 일들. ‘사람에게 나오는-혹은 느껴지는 희미한
색깔로, 사람들의 기분이나 상태를 판별하는 것.
이선과 그의 가족은, 유선의 그런 능력을 단지 남들이 말하는 육감이 좀 발달한
정도로만 여겼을 뿐, 특이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애는, 여기 '아이들'처럼 특별한 천재가 아니예요. 성적은 좋지만,
그나마도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찾는 것은 더이상의 천재가 아니었어요. 당신이 애초에 알고있듯,
그 아이들을 잘 통제해주고, 서로간의 감정이 폭발하거나...엇나가지 않도록,
돌봐줄- 우리 표현으로 말하자면 감시해줄.. 사람이 필요했죠.
그리고 당신은 거기에 상당히 걸맞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이선의 표정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여동생, 김유선은.. 당신의 입장에서 보면 불행이겠지만,
지금 현재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들의 '또다른 능력'과 굉장히
유사한 재능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평범한 아이에게 나타났다는 면에서,
일단 당신을 배제한 채 유선이만을 이 곳에 합류시킬 계획이었죠.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어요. 영재교육이라고 해도 좋고, 시력치료를 위한 것이라고해도,
당신과 가족들은 얼마든지 환영하지 않았겠나요?"
....반박할 수 없는 말들. 이 사람은, 과학도가 아니라 차라리 정치쪽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약간 계획이 변경되었죠."
"어떻게?"
"제가 반대했어요. 다른 방법쪽이, 훨씬 효율적일 거라는 의견을 내어서-.”
담백한, 그의 대답에 이선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이미 재생기에서 들으셨겠지만, 당신은 무의식중에 참여한 심리검사에서 여섯명 아이들과
어떻게든-물론 얼마간의 트러블까지 계산해서-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으로 판단되었고,
당신이 이곳에서 일을 한다면...
굳이- 아직 어린 유선양을 공학관에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거든요.”
“….요는, 제가 여기 있으면 유선이는 저절로 딸려오는 셈이란 말씀인가요?”
이선의 말에 조교가 웃었다. 그의 웃음을, 최근에는 비교적 자주 보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친절한 사람이긴 했지만, 진심으로 보이는 얼굴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뭐, 그렇게 이해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유선양은.”
그가 습관적으로 안경테를 슬쩍 만졌다. 평범한 얼굴이지만, 눈빛만큼은,
때로 아이들 못지 않게 깊이, 빛날 때가 있다.
분명, 이 사람도 이곳에서 여러가지 일을 겪었겠지..
“....별로,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요.”
* * * *
고맙다,는 말보다, 기묘한 위화감이 먼저 밀려왔다. 분명, 유선이를 이곳에 데려다놓느니,
설령 지금보다 백배의 어이없는 일에 휘말리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쪽이 이곳에 머무는 것이 훨씬 낫지만,
어째서 이 남자가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여동생을 걱정하는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뭐든지. 물어볼 권리는 당신에게 있고, 대답할 권리는 제게 있으니까요.”
“-대체, 여기서 조교라는 건 어떤 직책이죠? 부장, 과장, 계장, 그런 건 잘 알겠는데-
솔직히 이 공학관의 계급구조는 잘 모르겠어서요.”
이선의 말에 그가, 안경을 벗고, 가운 윗주머니에 끼웠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안경을 벗은
눈 주변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더니- 대답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태도로 보였지만-
가볍게 미소지었다.
“이선씨. 제 이름을 혹시 아세요?”
“….?”
이름.
조교…(설마 김조교,가 이름은 아니겠지.)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계속 그를 ‘조교’라는 호칭으로 불러왔으며, 그렇게 하는데
조금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별로 관심이 없었고..그리고..
분명 처음에 잠시 이름을 소개받은 것 같은데, 역시 평범한 이름이라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다.
“내 이름은..?”
다시 한번 조교가 짖궂게 묻는다. 그리고 이선은 그제서야, 그가 명찰이나 이름표를 패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학관의 그 누구라도, 교수든 박사든, 그리고 아이들조차도
패스워드가 담긴 카드를 목에 걸거나, 가운의 주머니에 명찰을 달거나, 아니면 새기거나 하는데-
방금 그가 안경을 걸었던 가운의 주머니에는 바느질 흔적 외에 어떤 흔적도 없었고,
그의 방에 들어갈 때 쓰던 카드는 남들처럼 끈을 달지 않고 언제나 그의 지갑이나
주머니 속에 있었다.
단 한번, 그의 카드를 빌린 기억을 되짚어, 이선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쓴다.
“….김…훈..?”
그가 싱긋, 웃는다.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인상, 평범한 이름-
"그래도 기억력이 나쁘지는 않은 편이군요. 아니, 감이 빠르달까."
"...."
"내 이름은 김지훈,이예요. 평범한 이름이죠."
"김지훈.."
그제서야, 나는 그 남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안경을 벗은 맨 얼굴에, 익숙한
윤곽이 누군가와 겹친다. 그의 이름처럼.
-설마.
"김성훈..회장님의- ?"
"빙고."
그의 목소리의 유쾌한 울림과 달리, 그의 얼굴에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로
솔직하고, 그리고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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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