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메세지
Sadonic(sadonic_00@hanmail.net) - <2002.4.8>
그녀는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다.
회식자리까지 끼어서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오늘따라 그녀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다, 그녀의 핸드폰에 전화를 건다.
뚜르르뚜르르뚜르르뚜르..
신호음만 간다, 두 번, 세 번 다시 걸다 속이 상한다.
결국 다섯 번 째 음성안내가 나올 때까지 듣는다.
툭, 연결 음과 약간의 공백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중입니다,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가됩니다.
음성녹음은 일번, 이동호출은 이번, 메세지 전송확인은 삼번...
그녀는 전화기의 일번을 망설임 없이 누른다.
그리고는 침대로 전화기를 옮겨 그녀의 곁에 둔다.
그녀는 아직 약간 덜 마른 머리를 베게 위에 올려놓고 안내내용을 마저 듣는다.
-삐- 소리가나면 녹음하시고 녹음하신 후에는 별표나 우물정자를 눌러주십시요.
삐-
;언니, 뭐하고 있어, 지금 어디 있어, 밥은 먹었어? 라면 같은 거 먹고 다니지 말고 꼭 집에서 밥 먹어야 돼, 근데 언제 들어 올 거야, 음성 언제 들을지 모르겠는데, 오늘 담배는 하나 이상 피우지 말라고 했지, 말 잘 들은 거야? 술도 한 병 이상은 안돼는 거 알지? 지금 뭐하고 있어, 나 심심한데, 맨날 자기 친구들하고만 있고, 근데 누구 만나고 있는 거야, 말도 안 해주고, 아! 오늘 아침마당에서 봤는데- 술 마실 때는 안주도 많이 먹고, 술마시기 전에 우유 먹어두면 속이 덜 상한데, 피이, 언제 들어 올 거야아, 언니 뭐해, 지금 뭐하고 있을까?.........뭐해뭐해뭐해,뭐하냐구!!
휴우, 그녀의 한숨소리. 고개를 들어올리니 젖은 머리에 베개가 축축하다,
더욱이 비릿한 냄새에 기분이 좋지 않다.
;나 이러는 거 이젠 귀찮지? 그럴거야, 나 같은 거.. 근데 왜 항상 나만 이런 소리를 해야 하는 거야, 언니도 한번쯤 물어봐 줄 수 있잖아, 나 뭐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늘 내가 먼저 연락하고 문자 보내야하잖아! 그리고 전화도 안받고
그녀는 전화를 들고 침대에 앉는다.
내가 왜 이러지, 예민해 진 건가,
문득 오늘 아침 버스에 튄 흙탕물부터 저녁시간까지 상사에게 잔소리들은 일까지 생각난다.
기분이 엉망이다, 나 왜 언니한테 화풀이하고 있는 거지..
그녀가 들으면 화내겠지, 많이 화 낼 거야..그녀는 걱정이 된다.
;....화..난 거야? 미안해, 응? 화났어? 화 많이 난 거야? 미안하다니까..하지만, 하지만 솔직히 언니도 나한테 신경 쓰는 거 같지 않잖아, 맨날 나만 그러고, 나도 언니한테 이런 질문 듣고 대답해 주고 싶은데, 그런 건 관심 없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 얘기만 하고, 그래서..그래서 그런 건데, 언니 화났어? 화 내지마아..응?
그녀는 눈물이 흐른다, 오늘은 하루종일 일이 안 좋았다,
그런데 언니에게 화를 내고 있다니, 바보 같아, 한심하다, 화내려고 한 게 아닌데,
그냥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훌쩍이던 울음이 이내 끅끅대기 시작한다.
언니한테 내가 이러면 안 돼는데, 언니는 더 피곤 할 텐데. 나 때문에 괜히..
;미안해, 오늘 나 일이 안 좋았어, 신경이 예민해 졌나봐, 앞으로 안 그럴..
-음성녹음시간을 초과하셨습니다, 다시 녹음해주십시요.
<음성메세지..........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