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식 / 한국동화선집 『도심속의 매미소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1998.5월 발행
■ 안재식 『 한국동화선집 』
- 도심속의 매미소리
。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김신철 외 동화작가 26인
。 1998년 5월 발행
。 정가 10.00 위안
[한국동화선집] 도심속의 매미소리 / 안재식
<창쇠야, 창쇠야!>
창수 할머니는 창수를 창쇠라고 불렀다.
(예?)
<이것도 좀 신거라.>
<아빠가 그런거 필요없다고 하셨어요.>
<아니다. 필요한기다.>
<필요없어요. 서울에 무슨 잠자리가 있다고.>
창수가 투덜거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극구 잠자리채를 싣고 가자고 우기셨다.
오늘은 창수네가 서울로 이사를 가는 날이었다. 노오란 달맞이꽃이 시든 새벽부터 온집안 식구들이 법석을 떤 끝에 해가 어른키 두배나 떴을 때쯤에야 이사짐 트럭은 출발했다.
(매앰매앰 맴맴.)
리별을 슬퍼하듯 매미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매미들은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제꼈다.
할머니는 못내 아쉬운듯 이곳저곳 둘러보시다가 눈물을 글썽이셨다.
(내 생전 이곳에 다시 올수 있을는지? 죽어서나 묻히러 올 게지 뭐.)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창수네 식구들은 알리가 없었다. 도회 지로 이사 가서 산다는 설레임속에 모두의 마음은 하늘로 날아가는 풍선처럼 마냥 들떠있기만 하였다.
트럭은 천천히 뒤틀거리며 앞마당을 지나 논두렁길옆 언덕을 돌아갔다. 엔징소리에 먹이 찾아 물풀을 따라 날던 고추잠자리가 깜짝 놀라 곡예부리는 제트기처럼 휙 날아올랐다. 송사리떼도 순식간에 확 흩어졌다. 창수가 가재잡고 놀던 계곡도 지나갔고 친구들과 술래잡기하던 꽃터널도 지나갔다. 여름이면 멱감던 저수지도 멀어지고, 포장이 안된 도로를 먼지 풀썩이며 달리던 자동차가 이윽고 아스팔트길로 들어섰다.
그리고도 몇시간을 더 달려 지금 이 집으로 이사를 온것이다.
할머니는 오시자마자 콩크리트 마당을 깨고 화단을 만드셨다. 그곳에 목련나무도 심고 앵두나무도 심으셨다. 대추나무, 감나무도... 그리고 화단가에는 고추씨를 뿌리셨다.
창수는 하루하루가 마냥 즐거웠다. 새 친구도 생기고 모든게 새로운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러나 밤이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처음엔 새로운 환경탓이려니 하고 마음을 돌렸으나 그게 아니였다.
밤마다 매미떼가 맴맴거리며 창수에게 덤벼들어 물어뜯었고 냇가에서 반두를 쳐서 잡았던 물고기들이 두눈을 부릅뜨고 덤벼 들었다. 지어는 잠자리까지도 무리를 지어 온몸에 달라붙는 것이였다.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그리워지는게 이상했다.
《거 봐라. 도시 생활은 아무나 하는게 아녀.》
아침상을 받으시며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할머니한테도 매미가 대들어?》
(그럼, 할머니도 매일 고향꿈을 꾼단다.》
할머니는 먹다남은 차잎찌꺼기를 모아 말려 비료 대신 화단에 뿌리셨다. 물을 뿌리고 흙을 돋우셨다. 이상할 정도로 화단은 푸르러졌다.
화단가에 심은 고추가 잎이 솟아나고 흰 꽃이 피더니 얼마 안있어 파란 열매가 열렸다. 그걸 몇개 따다가 식구들이 맛을 보았다.
《이게 순 무공해 고추란다.》
《무공해가 뭐예요?》
《오염 안된 싱싱한 고추라는거야.>
창수가 제일 작은 고추를 하나 들고 덥석 깨물었다. 매섭게 매웠다.
《아이! 매워.》
《녀석두, 작다고 얕잡아본게로구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창수를 보고 아빠가 놀리셨다.
《이 고추는 왜 이렇게 매워요?》
《매우니까 고추지, 호호호.》
엄마도 기분좋게 웃으셨다.
《원래 임진왜란때 우리 한국인들을 독살시키려고 왜군들이 독한 고추를 들여왔지. 그러나 오히려 우리들 입맛에 맞아.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식료품이 되었어. 고추란 매울수록 뒤맛이 개운하고 좋은거야.》
창수 아빠가 고추의 래력을 이야기해주셨다.
이듬해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한송이, 앵두나무에는 앵두가 두알 앙징맞게 열렸다.
감나무도 푸르러갔다. 이윽고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감을 따는데는 잠자리채가 안성맞춤이였다.
창수는 할머니의 꾀에 혀를 내둘렀다.
할머니는 의례 감 서너개는 꼭 남기고 땄다.
《까치밥이란다.)
창수는 없는 까치 밥상까지 차려주는 할머니의 넉넉한 마음씨가 너무 좋았다.
해가 바뀐 어느날, 여름방학이 되여 창수는 마루에 벌렁 누워 낮잠을 자고있었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매미소리, 매미소리가 틀림없었다.
《엇! 매미소리다!》
창수는 벌떡 일어났다. 그바람에 할머니도 깜짝 놀라 일어나셨다.
《맴맴, 매애앰…》
정말 감나무에서는 매미가 울고있었다.
기뻤다. 체념하고 있었던 매미소리를 들으니 꼭 고향에 온것만 같았다.
창수가 망원경을 갖고 달려나갔다.
감나무 잎새사이로 줄기에 딱 달라붙어있는 매미 두마리가 괴물처럼 크게 확대되여 보였다. 날개는 투명했고 이마우의 두개 의 세로줄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맴맴 매앰…>
매미 하나가 반기듯 울었다.
《할머니! 요 매미는 우는데 저기 있는 매미는 안우네요. 왜 그래요?》
(응, 그건 암매미인가보구나.》
《암매미는 안울어요?》
《그렇단다.)
《에이, 울지 않는 매미는 소용없다!》
창수는 집안으로 뛰여들어가 잠자리채를 갖고나와 울지 않은 매미를 잡아채였다. 날개를 푸드덕거리다가는 이내 잠잠해졌다.
《이녀석! 그러면 못써! 빨리 놔줘!》
할머니가 창수를 보고 나무랐다. 할수없이 창수는 매미를 날려보냈다.
그후로는 신기하게도 할머니와 창수만 정원가로 나가면 여지없이 매미는 목청껏 울어제꼈다. 하루는 할머니가
《짝짓기를 하려나보다.>
하고 말씀하셨다.
《짝짓기가 뭐예요?》
창수가 궁금한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쭈었다.
《시집 장가 가는거야.》
《에이, 할머니도! 매미가 무슨...》
《매미는 뭐 장가 안가는줄 아니? 저 우는 소리로 보아 틀림없이 암매미가 돌아온거야.》
정말로 어디서 몰려오는지 매미떼들이 창수네 감나무로 달라붙었다.
창수가 시골집을 떠나올 때처럼 매미들은 왁자지껄하게 울었다.
창수도 밤잠을 잘 잤고 할머니도 그러했다.
그런 어느날, 창수 아빠가 감나무를 고개젖혀 바라보시더니
《아무래도 안되겠어. 소독을 해야겠는걸. 잎사귀가 모두 병들었어. 웬 벌레가 이렇게 먹었담?》
하며 소독 기구를 갖고 나와 감나무에다 대고 냅다 약물을 뿜어대셨다.
그날 이후, 매미는 울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할머니와 창수는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는 리유를 몰라 안절부절하였다.
《이상하다! 갑자기 매미가 울지 않다니.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창수는 또 열이 나고 잠이 오지 않았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창수 아빠가 궁금해하였다. 보다 못해 창수 엄마가 사연을 이야기하셨다. 매미소리를 듣지 못하면 저렇게들 앓는다고.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매미는 생각않고 하도 감나무잎새가 벌레먹기에... 소독을 했는데... 약이 독했는가봐요.》
밤이 되여 비가 내렸다. 흑칠판같은 구름이 몰려들어 밤새도록 쫘악쫘악 비를 뿌렸다.
비가 개고 해볕이 비칠 때였다.
《맴맴, 매앰…》
매미소리가 났다. 식구들 모두가 뛰쳐나가 감나무를 바라보 며 박수를 쳤다.
《그래, 비물에 소독약이 씻겨 내려가 매미가 다시 힘을 찾았는가보다.)
창수 아빠가 죄지은 사람처럼 자신없이 말씀하셨다. 지나가던 동네사람들이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맴맴, 매앰…》
할머니가 귀를 쫑긋거리며 매미소리를 귀담으셨다.
《쯧쯔, 매미가 아픈가보다. 앓는 소릴 내네.》
《피이, 할머니는 거짓말도 잘하셔.>
《에끼, 할미가 거짓말하는거 봤니?》
그때였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무리 창수네 집으로 몰려왔다.
《매미를 잡아야 돼요! 매미를 잡아야 돼!》
한 아주머니가 따지듯이 말했다.
《왜 매미를 잡아야 돼요? 매미가 뭐 달라고 했어요? 무슨 해를 줬다고!》
창수가 투덜거렸다.
《래일이 대학시험 보는 날인줄은 아시죠? 우리 애가 매미소리때문에 시험 망치면 뭘로 보상해줄거예요?》
《맞아요. 래일 시험칠 시간에는 비행기도 뜨지 못하게 막는다던데... 그까짓 매미가 뭐 그리 대수롭노!》
아주머니들은 입을 모아 대들듯이 말했다.
《안되요, 절대 안되요.》
할머니는 결사코 반대했다.
《이건 우리 매미예요. 우리 매미!》
창수도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쬐꼬만게 목청은 왜 그리 크노!》
아주머니들이 창수를 나무랐다.
《얘들아, 래일은 꼭 입다물고 울지 말아야 해. 너네들 울면 이 할미 욕먹히고 창수 혼나는거야. 알았지?》
사람들에게 하는것처럼 할머니는 매미를 바라보며 소리치셨다.
《별일이야, 별일...>
아주머니들은 입을 삐죽거렸다.
《안되겠어요. 신사적으로 하면...》
《맞아요. 매미를 잡읍시다!》
모두들 감나무를 에워쌌다.
그후부터 창수네 감나무에서는 매미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지 며칠 안되여 창수 할머니는 다시 못을 곳으로 돌아가셨다.
(내 생전 이곳을 다시 올수 있을는지... 죽어서나 묻히러 올지 몰라.)
고향 떠나시며 한탄하시던 할머니의 말씀대로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양지바른 고향땅 언덕에 할머니는 묻히셨다. 무덤가 전나무, 오동나무에서 매미가 때맞춰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 매미가 울어요. 매미가!》
창수가 불끈 쥔 두주먹으로 하늘을 찌르며 소리쳤다.
매미들도 화답하듯 합창을 했다. 그 합창소리는 산을 움직일 정도로 크게 울려퍼졌다.
안재식 락력
서울 출생. 《아동문학》에 동화가 당선되여 문단에 데뷔. 한국 아동문화대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원, 한국아동문학회원, 우리문화연구회장, 록색문학회장, 한국재활교육협회 추진위원장, 사회단체 한국록색교육협회 리사장, 록색지구과학진흥회장, 한국서적공사 사장. 저서로 《조개터에서 생긴 일》,《공룡을 닮아가는 지구 사람들》.
| ▶안재식(安在植) 약력 1942년 서울 신설동 출생.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회 지도위원, 「소정문학」 동인, 중랑문학대학 출강. 수상 : 환경부장관 표창(1997. 문학부문), 한국아동문학작가상 외 시가곡 : 「그리운 사람에게」 등 20여곡 저서 : 『야누스의 두 얼굴』 등 20여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