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차례 봄비가 기지개 한창이던 남녘의 대지를 적시고 지나갔다. 한창 움을 틔우던 새싹들을 살며시 도닥이고 쓰다듬어준 고운 비였다. 빗방울을 몰고 온 바람에도 까칠한 기운은 없었다. 훅! 따스한 훈기. 봄은 어렵사리 왔다. 이 계절에는 낮은 산이 좋다. 여유를 한껏 부리며 쉬엄쉬엄 걷는 길목마다 고개를 빼꼼이 내미는 야생화와 연초록 잎사귀들을 만나 마음의 인사를 나누는 산행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독 산꾼들은 이 계절이면 바다에 면한 남녘의 산을 많이 찾는다.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찾아간 전남 고흥의 마복산(馬伏山·539m)도 이런 산들 가운데 하나다. 청마(靑馬)의 해에 말이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마복산을 찾는 것도 또 다른 감흥을 준다.
■기암괴석 깨알 같이 흩뿌린 듯, 낮지만 예뻐
| |
|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고흥 마복산 정상 인근 469봉에서 해창만과 해창들, 그리고 다도해의 섬들을 바라보고 있다. 해창만 건너편의 높은 산은 전남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팔영산(八影山)이다. |
고흥반도 동남쪽 끝에 솟은 마복산은 먼 발치에서 보면 평범한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실제 속살을 접하면 수천 개의 기암괴석에 뒤덮인 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개바위, 거북바위, 돛대바위, 집석바위, 장군바위, 학바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암들이 흩뿌려져 있기에 흔히 금강산에 빗대어 '소개골산(小皆骨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 정상에는 조선시대 당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설치한 봉수대가 있다. 정상부 주변에서 바라보는 남녘의 바다와 수많은 섬들, 그리고 해창들이 어우러진 풍광은 산꾼의 숨을 멎게 할 만큼 환상적이다. 한 마디로 남녘 해안에 활짝 핀 거대한 '바위꽃'이라 할 수 있다. 팔영산, 천등산, 거금도의 작대봉 등 많은 명산을 품은 고흥 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산임은 분명하다.
이번 답사는 마복사 아래 고흥군 포두면 차동리 내산마을을 기점으로 하는 원점회귀 코스로 진행했다. 전체 거리는 9.8㎞, 산행 시간은 휴식 시간을 포함해 4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흥양농협남부주유소 맞은편 마복사 표지석~내산마을~산행로 입구~향로봉(암봉 전망대)~189봉~마복사 입구 임도사거리~마복사~석문~469봉~528봉~마복산 정상(봉수대·539m)~헬기장~중간 등산로~마복송~집석바위~해재~갈림길(외산마을-마복사)~편백나무숲~갈림길~내산마을 순.
■엎드린 말 형상의 산… 9.8㎞ 원점회귀 코스
| |
| 천혜의 전망대인 향로봉에서 만난 작은 석문. |
15번 국도 변 마복사 표지석에서 내산마을 쪽으로 올라선다. 50m쯤 가면 민가가 있는 마을. 왼쪽 마복사 방향 시멘트길로 20m만 가면 낡은 산행로표지판 오른쪽 옆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미련 없이 산행로로 접어든다. 아무래도 임도 보다는 산행로가 더 자연친화적이다. 사뿐사뿐 걸음을 디딜 때마다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고 있는 진달래가 반겨준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20분 쯤 올라 삼거리에서 왼쪽 암봉을 살짝 친다. 향로봉이다. 해발 150m 안팎이지만 주변 풍광이 기막히다. 눈 앞에 버틴 마복산은 물론이고 그 왼쪽으로 간척사업에 의해 곡창으로 변모한 해창들과 그 너머 팔영산 자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 끝에 서 보면 발 아래로 작은 석문이 있어 신묘함을 더한다.
■다도해 팔영산 해창들 일망무제 풍광 장관
| |
| 마복사에서 469봉으로 오르다 발견한 대형 석문(왼쪽),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 주변에는 진달래가 지천이다.. |
다시 직전 삼거리로 돌아가 왼쪽으로 내려서면 김녕 김씨 묘 사거리. 이곳에서 오른쪽 2시 방향으로 오르면 또 한 번의 바위 전망대를 지나고 189봉을 넘어선다. 살짝 내리막을 타면 임도가 연결된 민가(개조심)를 지나고 마복사 입구 임도 사거리다. 이정표를 보면서 마복사 쪽으로 직진. 굵지 않고 구불구불한 기둥을 쓴 대웅전은 마치 고향집을 보는 것 처럼 소탈하다. 대웅전 앞 오른쪽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50m가량 가면 산길이 Y자 모양으로 갈라지는데, 왼쪽은 지능선을 타고 469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은 계곡을 거쳐 능선 안부로 통하는 길이다. 조망과 산 타는 재미가 더 좋은 왼쪽 지능선 길을 택해 오른다. 5분여 오르면 산길 왼쪽에 거대한 바위가 쓰러지며 형성된 석문이 있다. 지붕바위 밑 공간은 족히 10평 안팎은 될 만큼 널따랗다. 소나기 피하기에 재격인 곳이다. 다시 길을 이어가면 산행로 전체가 온통 수석밭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수많은 기암괴석과 전망대를 만난다. 40분 정도 오르면 469봉 삼거리. 남동쪽으로 해창들과 해창만, 그 너머의 팔영산, 그리고 바다와 하늘이 조화를 이룬 그림 같은 풍경이 짜릿함을 더한다.
■하산로 임도 변 울창한 편백나무숲 고즈넉
| |
| 해재에서 하산하는 임도 위에서 수백개의 크고 작은 암석으로 이뤄진 집석바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하다. |
우측으로 길을 잡아 능선을 탄다. 안부와 528봉을 거쳐 봉수대 우뚝한 정상까지는 20분쯤 걸린다. 나로호 발사대가 있는 외나로도와 내나로도를 포함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올망졸망한 섬들과 해안선이 일망무재로 펼쳐진다. 남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포근하다. 해재 방향으로 하산로를 잡고 능선길을 좀 더 탄다. 헬기장을 지나고 7분쯤 가면 중간등산로 갈림길. 마복산 지능선의 기암괴석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일찍 하산하려면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된다. 취재팀은 능선길로 직진, 해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10분 후 주위에 보호 로프까지 둘러친 채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멋들어진 반송을 만난다. 일명 마복송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마복산을 대표하는 나무다.
| |
| 마복산을 대표하는 나무이자 반송인 마복송. |
이어지는 능선길 중간 중간 거대한 바위들을 거치면서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20여분 달리면 크고 작은 바위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집석바위. 조심스럽게 바위 틈새로 내려서면 임도가 사거리를 이루는 해재다. 이곳 부터 내산마을까지는 줄곧 임도를 타는 편안한 길이다. 오른쪽 내산마을 방향으로 5분쯤 내려서면 마복사(직진), 외산마을(좌측) 갈림길.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20분쯤 가면 울창한 편백나무 숲을 통과한다. 곧바로 임도 삼거리. 오른쪽 내산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아 30분가량 미끄러지면 출발지에 닿는다.
◆떠나기 전에
- 인근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관람할 만
| |
| 해재 도착 직전에 만난 계란형 가짜 흔들바위. |
고흥 마복산 산행을 마쳤다면 조금 서둘러서 산 동남쪽에 있는 외나로도에 들러봐도 좋겠다. 한국의 우주과학 기술의 자부심으로까지 불리는 나로호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발사에 성공한 바로 나로우주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나로우주센터의 우주과학관은 일반인의 관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왕 내친 걸음이라면 충분히 둘러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매년 1월1일을 제외한 연중 무휴로 운영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30분(입장은 오후 5시까지 가능)까지 관람 가능하다. 관람료는 어른(20~64세) 3000원(30인 이상 단체 1500원), 청소년 어린이(8~19세) 1500원(단체 800원)이다.
4D 돔영상관에서 우주의 신비를 담은 다양한 입체 영상을 볼 수 있고 나로호 발사 장면 영상도 관람할 수도 있다. (061)830-8700
◆교통편
- 남해고속道 지선 고흥IC서 15번 국도 타야
부산에서 3시간쯤 걸리는 전남 고흥반도 동남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가용을 이용하는 편이 수월하다.
남해고속도로 광양IC에서 내려 톨게이트 지나 인동사거리에서 직진한다. 2.5㎞쯤 진행후 세풍교차로에서 순천 방면 우측도로를 탄다. 순천 보성 방면으로 진행하다가 해룡IC에서 남해고속도로 지선 영암-순천 간 고속도로를 탄다. 남순천TG를 통과, 13㎞쯤 가다가 고흥IC에서 내린다. 고흥, 외나로도 방향으로 15번 국도를 탄다. 고흥읍 호형교차로에서 왼쪽 외나로도 마복산 방향으로 꺾어 15번 국도를 계속 타고 10분쯤 가면 내산마을 앞에 닿는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