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자전거

[달덩이(김삼동)]

생활동화 마음의 자전거

김삼동

“은호야!”

밖에서 아이들이 은호를 불렀어요.

“알았어!”

은호는 보던 TV를 재빨리 끄고 밖으로 나갔어요.

“빨리 와. 자전거 타게.”

초록이와 은석이 그리고 경민이가 자전거를 가지고 왔어요. 이들은 누가 자전거를 잘 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은호가 필요하였어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은호는 아직 자전거가 없어요.

할머니께서는 시장 입구 길가에서 파나 무 시금치 따위를 팔아요.

은호는 작년 가을에 할머니와 어떤 아줌마가 거스름돈을 가지고 싸우는 걸 보았어요.

할머니께서 분명히 거슬러주었다고 하였고 아줌마는 받지 않았다고 우겼어요. 그 일로 할머니께서 며칠 동안 아프셨어요. 은호는 할머니를 누구보다 잘 알아요.

“내 지금까지 가난하게 살았지만, 남한테 십 원 한 장 꾸어본 적 없고 훔친 적도 없고 그리고 떼어먹은 적도 없다!”

“집에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편해야 행복한 거야!”

할머니께서 이 말씀들을 아주 자랑스럽게 하셨어요. 은호에게도 늘 거짓말하거나 싸우거나 훔치지 말라고 가르치셨어요.

은호는 할머니께서 아프신 일로 자전거를 사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자신이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서 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걸 후회하였어요.

지금은 자전거가 없지만 매일 자전거를 탔어요. 누구보다 잘 탔어요. 그래서 행복하였어요.

아이들은 은호의 집 옆 조금 야틈한 길에 자전거를 나란히 세우고 출발준비를 기다렸어요. 그러면 은호가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가 내리면서 “출바알!” 하고 외치면 아이들은 일제히 페달을 힘껏 밟을 거예요.

“오늘은 심판 볼 때 너는 뛰지 마?”

며칠 전에 빨강색이 예쁘게 칠해진 자전거를 샀다고 자랑한 경민이가 소리쳤어요.

은호는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렸어요. 할머니께서 싫은 말을 들을 때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주셨어요.

“야! 빨리 해!”

은석이가 발을 쿵쿵 굴렀어요.

“알았어!”

아이들이 모두 은호를 바라보았어요. 은호는 오른손을 높이 들었어요.

“출바알!”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세 대의 자전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야틈한 언덕을 거침없이 내려갔어요.

은호의 두 손도 마음의 자전거핸들을 잡듯이 벌리고 힘껏 달렸어요.

“위위윙!”

은호가 탄 마음의 자전거는 바람을 시원하게 갈랐어요. 그리고 빨랐어요. 30여 미터의 야틈한 언덕이 끝나면 아이들은 멈추지만 은호의 자전거는 더 멀리 갔어요.

“위위잉!”

아이들보다 서너 걸음은 멀리 갔어요.

‘야호! 일 등이다!’

은호는 마음속으로 외쳤어요. 그리고 마음의 자전거에게 잘 했다고 칭찬을 하였어요. 아이들은 몰랐어요. 왜 은호가 즐거워하는 지를,

“야! 내가 말했잖아! 심판은 움직이면 안 된다고!”

경민이가 볼멘소리로 외쳤어요. 은호는 씩 웃었어요. 이것도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어요. 상대가 화를 내도 웃으면 된다고,

“맞아! 맞아!”

은석이가 맞장구를 쳤어요.

하지만 은호는 달리고 싶었어요. 마음의 자전거가 달리자고 부추겼어요.

“내버려 뒤. 자전거도 없는데…….”

초록이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며 말했어요.

“야! 다시 해!”

제일 늦은 초록이가 입이 한 자나 나왔어요. 초록이의 낡은 자전거는 초록이의 이름처럼 초록색이에요. 초록이가 지는 날이면 자전거가 낡아서 졌다고 불평하였어요. 은호는 초록이의 낡은 자전거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어요. 하지만 마음의 자전거를 얻은 날부터 자전거가 부럽지 않았어요. 이 생각도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어요.

아이들이 조금 전 출발했던 자리로 다시 왔어요.

“출바알!”

은호가 오른손을 재빨리 내리자 아이들은 힘껏 페달을 밟았어요.

은호의 마음속의 자전거도 지지 않으려고 힘껏 달렸어요.

“이번에도 내가 일 등!”

경민이의 뻐기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은호는 다 알아요. 은석이도 초록이도 경민이에게 져 주는 것을.

경민이가 지면 화를 내며 이길 때까지 해야 돼요. 코끼리처럼 힘이 세다고 푸푸거리기도 하고요.

오늘도 경민이가 일곱 번 모두 일 등을 하였어요.

은호는 그렇게 해서 일 등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어요.

“경민아! 밥 먹어!”

경민이 엄마가 경민이를 불렀어요.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각자 집에 갔어요.

은호는 이마에 난 땀을 손등으로 쓰윽 훔치며 집에 들어섰어요. 좁은 방안이 어두워요.

은호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요. 아빠는 돈 벌러 간다며 돌아오지 않고 엄마는 몰라요.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은호 엄마가 도망갔다고 놀렸어요. 하지만 은호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불을 켰어요.

은호가 제일 좋아하는 게 눈이 띄었어요.

크레파스로 그린 예쁜 자전거는 경민이의 새 자전거보다 좋았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초록빛으로 바퀴를, 손잡이는 빨간색을, 엉덩이에 깔고 앉을 안장은 푸른색을 칠해서 어느 것보다 훌륭하였어요. 조금 전에 탔던 자전거이기도 하였어요.

“위위잉!”

은호는 가위로 오려낸 자전거의 손잡이를 잡고 방 안을 한 바퀴 돌았어요.

발이 책가방에 부딪혔어요.

양말이 발에 밟혀 넘어질 뻔했어요.

할머니께서 어둑어둑하면 오시니까 아직 두어 시간이 남았어요.

은호는 다시 텅 빈 길에 나왔어요. 은호네 집은 산 아래에요.

아이들이 출발했던 자리에 섰어요. 경민이가 빨리 출발하라고 외치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출바알!”

은호는 소리치고 달렸어요.

“위위잉!”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자전거는 날개가 달린 듯이 잘 달려요. 조금만 더 내려가면 초록이네 집이 나오고 오른쪽 골목으로 돌면 경민이네 집이고 조금 더 가면 은석이네 집이에요.

내친 김에 초록이네 집을 지나쳤어요. 초록이네 집은 이층 빌라예요. 초록이는 이층 복도에 자전거를 놓고 들어갔어요.

이번에는 골목을 돌아 경민이네 집으로 향하였어요.

경민이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적이 있어서 현관 안에 들여놓고 문을 잠갔어요.

은석이네 집은 지하에 살아요. 자전거는 지하 입구에 아무렇게나 두고 들어갔어요. 경민이가 자전거를 사지 않았을 때는 경민이의 자전거가 제일 낡았는데 이제는 초록이의 자전거가 제일 낡고 그리고 은석이의 자전거가 두 번째로 낡았어요. 하지만 아직 쌩쌩 잘 달려요. 시합에서 몇 번 일 등한 적이 있어요.

은호는 은석이의 자전거가 잘 있나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어요.

할머니께서 오랫동안 집을 비워두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초록이의 자전거도 잘 있어요.

은호는 뛰었어요.

다시 마음의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

“출바알!”

양 옆으로 집들이 휙휙 지나쳤어요. 자동차보다 기차보다 비행기보다 빠르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날도 아이들이 불렀어요.

은호는 여느 날처럼 오른손을 들고 “출바알!” 하고 외쳤어요.

아이들은 힘껏 페달을 밟았어요.

“위위잉!”

이번에는 아이들보다 빨랐어요. 은호가 일 등을 하였어요.

“야! 너는 자전거도 안타는 데 왜 ‘위위잉!’ 하고 달려?”

경민이가 트집을 잡았어요.

은호는 할머니 말씀을 떠올리고 웃기만 하였어요. 상대가 아무리 싸움을 걸거나 트집을 잡아도 어허! 하고 웃어버리라는 말씀.

“쟤는 입으로만 ‘위위윙!’ 거리지 자전거도 없어.”

은석이가 자전거를 끌고 출발선으로 가면서 말했어요.

“쟤네 엄마, 도망갔다!”

경민이가 초록이와 은석이에게 소리쳤어요.

“아빠도 없어. 할머니하고 살아.”

은석이도 한 마디 거들었어요.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경민이가 소리치자 아이들이 웃었어요. 은호는 마음의 귀를 막았어요. 할머니께서 가르쳐준 방법인데 듣기 싫은 말은 화를 내지 말고 못 들은 척하라는 말이였어요.

“야! 빨리 해!”

경민이의 말에 은호는 오른손을 높이 들었어요. 그리고 하늘을 보았어요. 하늘은 여느 때보다 파랗게 보였어요. 주먹을 쥔 손이 푸른 하늘에 닿을 것만 같았어요.

“출바알!”

은호의 마음의 자전거는 행복을 싣고 힘껏 달렸어요.

그 날 저녁이었어요.

“은호야!”

숙제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초록이의 목소리가 귓속말처럼 속삭였어요.

은호는 방문을 와락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초록이가 자전거 옆에 서서 씩 웃었어요.

“야! 자전거 타자!”

초록이의 표정은 조금 전에 쌀쌀맞았는데 지금은 밝았어요. 은호는 반가웠어요.

“내가 자전거 빌려줄 게!”

자전거 손잡이를 은호에게 내미는 초록이의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어요. 은호는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힘들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경민이 걔가 너한테 자전거 빌려주지 말라고 했어. 그래서…….”

“알아!”

“내가 ‘출바알’ 하고 소리칠 테니까 넌 타!”

초록이가 손을 들며 말했어요.

은호는 초록이를 향해 “고마워!” 라고 소리치며 웃었어요. 초록이도 따라 웃었어요.

“출바알!”

“와아! 너도 자전거 잘 탄다!”

초록이가 뒤따라 달려와 기뻐하였어요.

“아냐! 너보단,”

“아냐! 네가 경민이보다 더 잘 타!”

초록이가 말했어요. 은호는 기분이 무척 좋아서 새처럼 날아갈 것 같았어요.

“아냐! 네가 자전거 타고 내려올 때 경민이만 페달을 밟아서 그래. 만약 너하고 은석이가 페달을 세게 밟으면 일 등하고도 남아!”

은호의 말에 초록이의 얼굴이 붉어졌어요.

“걘 내가 일 등하면 화를 낸다!”

초록이가 화난 것처럼 말하였어요.

은호는 경민이를 잘 알아요. 달리기도 은호가 빨리 달리면 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이 여러 번 있었어요.

“난 네가 경민이보다 더 잘 타는지 알아.”

은호는 초록이의 손을 잡고 칭찬을 하였어요. 초록이가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었어요.

은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자전거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비밀이거든요.

[조 창덕]

어린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우던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땐 자전거 하나 만으로도 세상을 다가진 것처럼 행복했는데 =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은로]

우리 어렸을적에는 마을에 자전거가 몇대 없었지요. 그래서 아니들은 탈 생각도 못하고 어른들만 가끔 타곤 하였습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좋은글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幸村]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참 어제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즐거운 시간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휴일 밤 보내시길.

[임채곤]

누구나 마음속의 그 무언가를 가지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하지요 . 감동입니다요 ....

[서향]

마음의 자전거!!~~마음이 짠하네요.
우리집엔 5자매중에 저만 자전거를 못타요 ㅋ
자전거를 잘 타는 동생과 언니들을 보면 부러웠어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달덩이(김삼동)]

신통치 않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득 어릴 때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을 보고 썼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창덕 선생님 은로 시인 행촌 시인 임채곤 사진작가 서향님 모두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