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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위대한 개츠비" - 뜨거운 여름밤 그 광란의 파티
오늘은 영미문학의 필독서로서 일반 대중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에 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F.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가 192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원산지인 미국에서 매년 30만부 이상이 판매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 그 첫 번역이 이루어진 이래로 오늘날까지 꾸준히 독자의 관심을 끌어오고 있다. 더욱이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출연하고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Baz Luhrmann)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오는 5월 16일에 국내에서 개봉된다고 하니 올 초여름은 한동안 이 고전작품에 대한 회자로 문화계가 들썩일 듯 하다.
일반적으로 이 작품은 작가인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는 개츠비(Gatsby)와 데이지(Daisy) 간의 스토리라인이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Zelda)와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러나 작품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비극적인 결말이 피츠제럴드의 인생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실제로 작가가 자전적인 작품으로 의도를 갖고 집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개츠비와 데이지의 사랑은 실패하지만 피츠제럴드는 결국 젤다와 결혼했으므로 작가의 경험은 모티브 정도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사회 내에서 팽배해있던 아메리칸 드림의 허망함을 실감나게 묘사한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1920년대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는데, 당시의 미국은 전시 호황으로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뉴욕의 증권가는 최대의 호황기를 맞았다. 매일매일 갑자기 돈벼락을 맞은 졸부들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소위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자동차가 1920년대 말에 가서는 1,200만대를 넘어섰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중문화도 융성기를 맞는다. 20세기의 새로운 예술로서 영화가 등장하고,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음악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프로스포츠에 열광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물질적 풍요가 사람들로 하여금 술, 재즈, 춤과 향락에 빠져들게 하였고 이와 함께 도덕적인 파탄을 불러오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개츠비>가 1920년대의 미국 사회를 탁월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작품에서 묘사된 등장인물들이 그 시대의 부도덕하고 저속한 삶의 유형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본 글은 이 작품의 스토리에 대한 단순한 축약이나 소개보다는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하도록 하겠으며, 곧 개봉될 영화의 스틸컷과 주연배우들의 이미지들을 삽입하여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닉 캐러웨어(Nick Carraway)
닉은 이 작품의 1인칭 서술자로서 영화로 치면 나레이터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들은 닉이 바라본 인식의 기록들이다. 닉은 서부 출신으로서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증권계 일을 하기 위해 동부지역인 뉴욕 근교로 이주하게 되는데, 우연히 개츠비의 옆집에 살게된다.
영화에서는 토비 맥콰이어가 닉의 역을 맡았다.
닉은 이 작품 속에서 우유부단하여 남의 일에 잘 휘말리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한 그의 성격은 이 책의 첫 페이지에 서술되어 있는, 닉의 아버지가 그에게 강조했다는 가장 중요한 충고로부터 설명되고 예견되기 시작한다.
"누구든 흠잡고 싶은 맘이 생기거든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누리고 산 건 아니란 걸 잊지 말아라"
아버지의 충고를 가슴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닉은 누구에게나 관대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는데, 그 버릇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러가지 성가신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성가신 일들이란, 주변 사람들의 속내나 여러가지 사정을 들어주는 것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닉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 개츠비와 데이지, 톰, 조던 등 주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더욱이 개츠비와는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관계가 되면서 그의 신상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정확한 정보를 알게되며 개츠비가 옛 애인 데이지와 재회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이 작품이 전개되는 데에 있어서 단순히 작가의 대변자나 나레이터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닉은 데이지에게는 먼 친척오빠이고, 데이지의 남편인 톰 뷰캐넌과는 대학친구 사이이며, 데이지의 친구인 조던 베이커와는 연인사이이다. 이러한 관계로 인해 이 작품에서 닉은 주요인물들의 관계도에서 그 중심에 있다.)
** 닉이 작품 속에서 멋지게 남긴 문장 한마디 : "판단의 유보란 한없는 희망을 품어본다는 것을 뜻한다."
개츠비(Jay Gatsby)
개츠비는, 닉의 표현에 의하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가장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개츠비에 대해서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이 떠돌 뿐 그의 실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밤마다 개최되는 파티에 참석한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개츠비의 얼굴을 실제로 본 사람도 몇 안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닉은 개츠비로부터 정중히 파티초대를 받게 된다. 파티에서 개츠비를 대면하게 되고 닉은 그의 예의바른 태도에 깊은 호감을 갖게된다. 알고보니 개츠비는 자신의 가난과 군인이었던 신분 때문에 5년 전에 헤어진 애인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닉이 사는 동네에 이사왔던 것이고, 혹시나 데이지가 참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밤마다 자신의 집에서 성대한 파티를 개최했던 것이다. 마침내 개츠비는 닉에게 데이지와 자신과의 관계를 털어놓고 데이지와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닉은 개츠비의 부탁을 들어준다.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와 데이지(캐리 멀리건 역) 닉을 통해 재회한 이들은 과거 둘 사이의 아픈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며 위험한 결말을 향해 치닺는다.
개츠비는 5년 전 데이지와의 사랑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결국은 자신의 가난 때문이라고 판단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데이지 앞에서 대부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과거의 아팠던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게 되고, 개츠비는 데이지가 남편인 톰과의 삶을 불행해하고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마침내 개츠비는 어느 더운 여름날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 톰과 함께 배석한 자리에서 데이지로 하여금 그녀가 남편인 톰을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고백하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지난 5년간 자신이 키워왔던 초록빛 꿈이 종말로 치닺는 지름길이 되고만다.
데이지(Daisy Buchanon)
데이지는 가난한 군인인 개츠비를 사랑하였지만 신분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호 톰과 결혼한다. 톰과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가 결혼생활로부터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단적으로 그녀가 첫 딸을 낳았을 때 했던 독백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좋아, 딸이라서 잘됐다. 커서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여자로선 그게 최고니까. 이쁘고 귀여운 바보가 되는 게."
그러한 그녀에게 어느날 옛 연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친척오빠 닉의 집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말이다. 데이지와 개츠비 두 사람은 그 후로 만남을 가지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특히 데이지는 개츠비가 과거의 가난한 군장교가 아니라 대저택을 소유하고 밤마다 유명한 연예인들과 사람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개최하는 대부호가 되어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한편 톰과의 그동안의 소원했던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처한 현재의 운명에 괴로워한다. 그녀는 자신이 현재 개츠비를 사랑하고 있고, 어떠한 결단만 내린다면 이제 진정한 사랑을 되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마음이 개츠비에게 표현되고 전달될 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비극적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다.
마침내 개츠비와 그녀, 그리고 그녀의 남편 톰, 닉, 닉의 여자친구 조던 베이커 이렇게 다섯 사람이 소풍을 갔다가, 데이지는 그녀의 마음이 개츠비에게 가있다는 것을 톰에게 고백하여야 하는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순간에 자신이 진정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톰과 개츠비가 차례로 데이지에게 그녀의 진심을 고백하라고 강요하고, 그녀는 정확한 의사표시를 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 개츠비와 함께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개츠비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틀 윌슨(데이지의 남편 톰의 정부이다.)이 그들이 탄 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운전한 그 차를 멈추지 못하게 하고 그대로 달려 도주함으로써 후에 자신이 모든 누명을 쓰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톰 뷰캐넌(Tom Buchanon)
닉의 대학시절 친구이자 데이지의 남편인 톰은 타고난 집안의 재력을 바탕으로 데이지와 결혼을 하고, 두 사람은 물질적인 풍요를 즐기는 결혼생활을 보낸다. 톰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에 남성우월주의자이다. 그은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담고있는 책에 심취해서 유색인종들에 의해서 백인들이 이루어놓은 과학이며 예술 등등 모든 문명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사람들 앞에서 서슴없이 해댄다. 또한 닉을 데리고 자신의 정부인 머틀 윌슨의 아파트로 데려가는 등 자신이 바람피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 죄의식은 커녕 그것을 남성다움인냥 우쭐대는 인물이다. 단정한 데이지에게 없는 요염함을 머틀로부터 갈망함으로 인해 바람을 피우고 있지만 그것이 사랑의 감정은 아니라는 것을 톰은 데이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머틀을 가차없이 폭행함으로써 보여준다. 결국 톰은 그것이 여성에 대한 정복욕이었든 어쨋든 간에 데이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톰(조엘 에저튼 역)은 아내 데이지와 개츠비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개츠비와 아내인 데이지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채고 개츠비에 대해 뒷조사를 한다. 마침내 아내인 데이지를 가운데 놓고 개츠비와 격돌했을 때, 개츠비가 뉴욕과 동부지역에 있는 수십여개의 드럭스토어를 경영하면서 판매가 금지되어있는 에틸알코올을 판매하여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부 머틀이 개츠비의 차에 치어 사망한 뒤, 그 차를 운전한 사람이 아내인 데이지가 아니라 개츠비라고 거짓말을 하여 머틀의 남편인 윌슨이 개츠비를 총으로 쏴죽이도록 만든다.
조던 베이커(Jordan Baker)
조던 베이커는 이름이 나있는 골프선수로서 데이지의 상류사회 친구인 젊은 아가씨이다. 데이지의 집에서 닉을 알게 되어 그와 교제를 하게 된다. 닉은 조던과 교제하면서 그녀가 지닌 정직하지 못하고 경솔한 가치관에 대해서 실망하게 된다. 그녀는 어느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서 볼이 놓여진 자리를 유리한 장소로 옮겨서 경기를 치르는 등 목적을 위해서 부정한 일도 서슴치않는다.
조던 베이커(엘리자베스 데비키 역)는 그 당시 출현한 새로운 부류의 여성상을 대변한다.
사실 조던은 이 작품에서는 큰 역할이 주어진 인물이 아니다. 그저 닉과 개츠비, 데지이, 그리고 톰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에 있어서 양념처럼 존재한다고 할까 ? 예를 들어 조던의 입을 통해 닉의 동네에 개츠비가 살고있다는 얘기가 언급되면서 데이지가 옛 연인 개츠비를 회상하게 된다든가, 또는 톰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닉에게 알리게 된다든가..... 사실 조던이 톰의 외도에 대해서 닉에게 얘기하던 그 자리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자리였다. 이러한 장면 설정을 통해서 작가는 조던이 초면인 사람에게도 심각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신중하지 못한 인물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녀가 데이지와 어릴적부터 절친이었다는 배경을 나열함으로써 데이지가 남편의 외도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스토리 전개에서의 소소한 역할 외에도, 조던은 1920년대에 나타난 미국의 새로운 부류의 여성들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다. 매력적이고 남성스럽기도 하며 자기 위주의 인생을 살고 때에 따라 거짓말도 불사하는 거침없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닉과 함께 차를 운전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닉으로부터 주의깊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데, 정작 그녀는 '자신이 주의깊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처럼 부주의한 사람이 싫다'라고 얘기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삶에 대해 진지하지 않고 매사에 심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피해보지 않기 위해서 자신같은 사람을 부정하는 자기기만이나 위선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사람들과 뒤틀린 욕망
이 작품의 결말은 이렇다. 데이지를 놓고 벌어진 개츠비와 톰의 격론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데이지는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다가 톰의 정부인 머틀을 치어 사망케한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이 교통사고의 주범임을 감추기 위해 차를 정지시키지 않고 그대로 도주하게 한다. 그러나 머틀을 치고 도망간 차의 생김새와 색깔을 머틀의 남편인 윌슨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그날 낮에 톰과 개츠비는 서로의 차를 바꿔 운전하고 갔다가 윌슨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에 들렸었던 것이다. 결국 윌슨인 톰이 자신의 아내를 치어 사망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톰은 그 차가 원래는 개츠비의 차였고, 머틀이 차에 치었을 때 개츠비가 그 차를 운전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윌슨은 심각한 정신적 혼란 끝에 개츠비를 총으로 쏴죽인다.
개츠비가 사망한 직후, 톰과 데이지는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사라지고, 조던 또한 닉의 곁을 떠난다. 닉은 홀로 남아 개츠비의 장례를 치른다.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향락을 향한 욕망과 신분 상승의 욕구, 우월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그 힘을 행사하고 싶은 욕망이 이루는 역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이 저속한 욕망들이 널리 보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상적인 사랑이 제대로 성취되기는 힘들다는 것에 관한 담론일 수도 있다.
톰은 아름다운 부인을 두고도, 또한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관능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유부녀인 머틀과 외도를 한다. 이러한 톰과 정을 통함으로써 신분상승을 꿈꾸는 머틀의 욕망. 상류계급의 안락과 풍요에 안주할 뿐 진정한 사랑을 외면하고 목적없이 부유한 삶을 사는 데이지, 승리하기 위하여 부정한 경기를 마다하지 않는 조던, 그리고 파티와 향락을 불나방처럼 쫓아다니는 상류계급의 사람들, 이러항 상류계급의 쾌락을 부러운 시선을 쳐다보며 그들의 삶을 모방하여 더 저속하게 쾌락을 추구하는 하류계급의 사람들.....
개츠비는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가졌지만, 결국 그가 추구한 사랑은 두가지 이유에 의해서 실패하고 만다. 그가 사랑했던 대상이 그의 이상과는 달랐던 것이다. 현실 속의 데이지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류계급의 안락한 생활을 극복할 수 없었던 존재인 것이다. 결국 그녀는 결단의 순간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만다. 그리고 개츠비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조리한 수단을 사용한다. 즉, 폭력조직과 연계하여 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개츠비도 다른 캐릭터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뒤틀린 욕망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작가는 왜 이 작품의 제목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
아마도 그건, 개츠비가 비록 현실과 이상이 불일치한 대상을 사랑했고, 정당화할 수 없는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여 사랑을 얻으려 했으나, 오직 얻고자 했던 것은 물질이 아니고 순수한 사랑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는 다른 욕망을 갖고있었다고 본 것 같다. 물질 자체를 자신의 욕망으로 삼지않고 순수하고 고결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꿈에 대한 그의 집념이 그를 이 작품 속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그려지게 만든 것이다.
작가의 그러한 의도는 이 작품의 말미에 닉의 차분하고 담담한 나레이션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나는 그곳에 앉아 오래 전의 그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데이지 집 쪽 선창 끄트머리에서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개츠비는 그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한 해 한 해 우리 앞에서 뒤로 물러나는 황홀한 축제 같은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때 우리로부터 달아났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팔을 좀 더 멀리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맑게 갠 날 아침엔..... 그 처럼 우리는 헤쳐 나아간다. 물살에 맞선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되밀려가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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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오늘은 영미문학의 고전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소개드렸습니다. 곧 영화로 개봉되니 영화를 통해서도 이 걸작을 감상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반드시 텍스트로 이 작품을 음미해보시길 권합니다. 번역작가들이 사용한 어휘와 문체에 따라서 번역본마다 뉘앙스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피츠제럴드의 유려한 문장은 읽는 순간순간마다 전율을 느낄 것입니다.(참고로 저는 송무 작가께서 번역하신 문예출판사 출간본으로 읽었습니다. 송무작가는 이 작품 외에도 "달과 6펜스"(민음사), "80일간의 세계일주"(푸른숲) 등 다수의 세계문학서적들을 번역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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