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5회 십대제자 이야기 ( 제6 아나율존자 ~ 제10 아난존자 )
* 본 회에서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이야기』는 분량이 많은 관계로 2회차에 나누어 게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6 ~ 10( 아나율존자 ~ 아난존자)까지 올립니다.
6. 마음의 눈으로 본 세상, 아나율존자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석가족의 여러 친족을 위해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설법을 마치자 많은 석가족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십대 제자 중에서도 아난, 라훌라, 아나율 등이 석가족 출신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는데 아나율이 졸고 있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나율을 호되게 꾸짖는 것입니다.
"너는 수행하는 사문으로 그렇게 잠이 많느냐. 아까도 설법을 들으면서 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나쁜 버릇을 당장 고쳐야한다. 마치 한 번 잠이 들면 천 년을 깨지 않는 조개와 같구나. 어찌 수행하는 사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대중들 앞에서 부처님께 야단을 맞으니,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나율은 즉시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맹세했습니다.
"지금부터 몸이 문드러지더라도 결코 여래 앞에서 졸지 않겠나이다."
사실 부처님은 잠이 많고, 졸음이 많은 아나율의 나쁜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방편으로 심한 말씀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날 이후 아나율은 부처님께 약속한 것처럼 아예 잠을 자지 않은 채, 뜬 눈으로 정진을 했습니다. 그렇게 석 달을 피눈물 나도록 수행하다가 결국 아나율은 앞이 안 보일 지경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나율을 불러 수행이란 지나치게 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타이르셨지만, 아나율은 여래 앞에서 한 맹세를 결코 어길 수 없다며 계속 잠을 자지 않고 정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나율은 눈앞이 밝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더니, 이제껏 눈으로 볼 수 없던 세상 곳곳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하늘과 땅, 지옥계에서 천상계에 이르는 온 우주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천안天眼이 열린 것입니다.
한 번은 시력을 잃게 된 아나율을 위해 부처님께서 바느질을 해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비록 아나율이 천안을 얻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일생생활에서 여러 가지로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헤진 옷을 깁고자 바느질을 하려 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다보니 도저히 바늘에 실을 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아나율은 혼잣말처럼 소리쳤습니다.
"누구든 이 세상에 복을 지으려는 자가 있다면, 나를 위해 이 실을 꿰어주어 공덕을 지으시오."
바로 그 순간 대답이 들려 왔습니다.
"그 실과 바늘을 내게 다오. 나에게 공덕을 짓게 해다오."
바로 부처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너무 놀라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는데, 부처님은 아나율의 손에 쥔 바늘과 실을 받아 손수 옷을 기우며 아나율과 대중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괜찮다. 이 세상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나보다도 더 열심히 공덕을 지으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미 세상의 모든 깨달음을 얻어 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부처님께서 또 무슨 공덕을 지어 복을 구하신다는 것인지, 부처님 말씀에 아나율과 다른 제자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누구라도 꾸준히 공덕을 지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저절로 환희심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나율에게 지은 공덕은 한 순간 모든 대중들의 마음에 감격어린 행복으로 다가 왔습니다.
7. 말이 아닌 지혜로 논의, 가전연존자
스스로 알고 깨닫는 일과 자기가 알고 깨달은 바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더라도,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에는 논리정연한 말주변이 요구됩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토론에 있어서는 가전연이 으뜸이었습니다.
가전연은 명망 높고 부유한 바라문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학자로 국왕의 스승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집안은 대단한 권세가였습니다. 어릴 때 부터 총명했던 그는 자신이 배운 학문을 사람들 앞에서 곧잘 강연하였고, 모두 그의 언변에 탄복할 지경이었습니다.
가전연의 부모는 뛰어난 그의 자질을 연마하여 더 많은 학문을 연구할 수 있도록 외삼촌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의 외삼촌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장래를 예언했던 아시따 선인이었습니다. 뛰어난 스승 아래에서 그의 학문은 더욱 높아졌고, 논사論師로서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고 논쟁하기를 즐겼습니다.
아시따 선인의 제자라는 사실과 국사國師였던 아버지, 그리고 대부호라는 그의 배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전연 또한 자신을 추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뛰어나다고 믿게 되었고, 서서히 그의 자만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과거 아시따 선인은 마야왕비 품에 안긴 싯다르타의 관상을 보았을 때 장차 자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전연에게 자기가 죽으면 자기 대신 부처님에게서 배우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던 가전연이었기에, 그의 교만함은 스승의 유언도 잊어버린 채 현실의 만족에 빠져 하루 하루 지내고 있었습니다.
가전연의 명성이 더욱 높아질 때였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바라나시에 오래된 비석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비석에 적혀있는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라나시의 왕은 아시따 선인의 제자인 가전연을 불러오라 명하여, 비석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왕 가운데 왕은 누구며, 성인 가운데 성인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어리석고,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가? 어떻게 해야 더러운 때를 벗고 열반에 이르는가? 누가 생사의 바다를 헤매며, 누가 해탈의 바다에서 노니는가?"
고대의 문자에도 능통했던 가전연이었기에 비문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왕은 가전연의 능력에 감탄하며, 그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가전연은 문자를 읽기는 하였으나,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자존심이 구긴 그는 비문의 내용을 유명하다는 학자와 선인들을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스승이 남긴 유언이 떠오는 가전연은 곧장 부처님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부처님은 가전연이 갖고 온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왕 가운데 왕은 하늘의 왕이며, 성인 가운데 성인은 부처라네. 무명에 물든 사람은 어리석고, 번뇌를 벗어나야 지혜롭다네. 탐진치貪瞋癡:탐욕(욕심), 진에(성냄),우치(어리석음)가 더러운 때이니, 계정혜戒定慧를 이루면 열반에 이른다네. 내 것이란 생각에 집착하면 생사의 바다에서 헤매게 되며, 연기의 진리를 깨달으면 해탈의 바다에서 노닐게 되네."
부처님의 대답을 들은 가전연은 자신의 자만심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스승에게서 배운 적 없던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가전연이 마음을 고쳐먹은 것을 아시고 더 많은 가르침을 전해주었고, 가전연은 부처님께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출가한 가전연은 비석의 내용을 국왕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최상의 진리를 만나 이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도 전해주면서, 국왕에게 여러 가지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 가전연의 설법을 들은 바라나시의 국왕도 그의 법문에 감화되어 불교에 귀의하였고, 이로써 불교가 더욱 널리 퍼지는 계기가 만들어 졌습니다.
대한불교 천태종 백양산 삼광사 三光寺 (좌)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 소재 / 삼광사내 지관전 止觀殿 (우)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는 가전연의 논리 정연한 언변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양시간에 나이 많은 장로 한 사람이 찾아와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부처님의 인정을 받는 젊은 가전연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는, 논리로는 안 되기에 나이로 윽박지를 작정이었습니다. 이를 눈치 챈 가전연이 일부러 모른 척하며 공양 준비에만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장로가 와서 서 있으면, 냉큼 자리를 양보할 것이지 어찌 모른 척 하고 있단 말인가?"
당황한 스님들은 그 나이 많은 비구에게 자리를 권하는데, 그때 가전연이 이들을 막고 나섰습니다.
"누구시기에 이곳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호통을 치십니까? 더구나 우리는 이미 공양하기 위해 준비 중인데 다짜고짜 자리를 비우라고 화를 내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나이 많은 스님은 가전연을 향해 더욱 큰 소리로 쏘아 붙였습니다.
"나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니 장로이며, 젊은 그대들이 공경하고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째서 나를 안중에 두지 않는가?"
그러자 가전연이 말했습니다.
"스님의 거친 행동과 말투를 보니 결코 대접받을 만한 장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칭 장로라고 하지만, 너무도 부끄러운 행동을 일삼고 있군요. 아무리 나이가 들고 백발에 이가 다 빠진 노인이 되더라도, 참다운 수행자라면 못된 성미를 부리거나 남을 괴롭히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아무리 젊고 새파란 청년이어도 애욕과 탐욕을 여의고,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면 그를 장로라 부르며 존경합니다. 당신처럼 스스로 장로라 우기며 거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가전연이 말을 마치자 주변의 젊은 비구들은 가전연을 향해 '하하하. 가전연 장로님 ~'이라며 자기들끼리 부르더니, 웃음을 띤 얼굴로 공양 준비를 계속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늙은 비구는 상기된 얼굴로 조용히 뒤돌아 가버렸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학문과 덕이 높고 사려가 깊은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어 행동합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아도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진정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전연이 논의제일論議第一이었던 것은 한 때의 자만심을 깊이 뉘우쳐 부처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늘 겸손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했었기에 누구와의 논쟁에서도 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8. 내 마음 속이지 않는 것이 계율정신, 우바리존자
출가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습니다. 누구나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우바리는 이발사 출신의 천민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이야 미용에 종사하는 일은 오히려 전문기술직으로 유망한 직업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남의 머리를 자르고 손질해 주는 일은 낮은 신분에 속했고,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대대로 물려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출가한 이후에는 출가하기 전의 신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수행해서 도를 얻었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고향에 돌아와 설법을 마치자 많은 석가족의 친족들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우바리는 이들이 출가했을 때 그들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내심 마음으로 '나도 출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우바리의 마음을 읽고는 다른 친족들보다 오히려 우바리의 출가를 먼저 허락하셨습니다. 출가에는 세속에 있을 때의 신분에 차별이 없이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배려로 다른 석가족 보다도 먼저 출가할 수 있었던 우바리는 엄격한 수행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그는 계율을 잘 지켰습니다. 다만 스스로에게도 너무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바람에, 오히려 다른 수행자들 사이에서 불평이 많았다는 하소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계율을 엄격히 지키던 우바리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찬탄하셨습니다.
"나의 비구제자 중에서 율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우바리다."
한 번은 어떤 스님이 병에 걸렸는데 6년이 지나도록 병이 낫지 않아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바리존자가 병문안을 갔습니다.
"얼마나 아프십니까? 혹시 뭐 필요한 거라도 있습니까?"
늘 아픔 속에서 시름하며 지내던 스님은 우바리존자의 병문안이 반가웠습니다. 또 이처럼 필요한 것이 없느냐는 말을 꺼내자 내심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입을 열려다 멈칫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는데 망설이는 눈치였습니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라 자마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말씀해 보세요."
우바리존자가 다시 한 번 말을 꺼내자, 스님은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한 술을 한 다섯 병을 마시면, 고통도 잊고 금방 병이 나을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부처님 제자들에게 엄격한 규율로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을 낫고자 술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계율에 엄격하셨고, 부처님의 계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계제일持戒第一우바리로서는 당연히 한마디로 거절할 것 같았지만, 우바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부처님께 가서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부처님에게 달려갔습니다.
"부처님. 저 스님이 병이 낫는데 술이 약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 술을 먹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법을 제정한 것은 병으로 고생하는 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우바리존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시고자 함은 중생의 마음에서 번뇌라는 병을 고치기 위함이고, 그 번뇌를 막기 위해 법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또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드는 법이므로, 몸에 생긴 병은 우선적으로 치료함이 마땅합니다.
우바리는 술을 구해서 그 스님에게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그 스님은 오랜 병고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바리존자는 스님이 병에서 쾌유하자, 이내 마음의 병고를 고쳐주기 위해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우바리존자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대가 찾아와 계율에 관해 묻더니 그 비구의 병을 낫게 하였고, 또한 깨달음도 얻게 했구나. 그대가 아니었다면 그 비구는 병으로 목숨을 마치고, 삼악도육도세계 중에서도 살아서 악행을 지은 죄과로 인하여 죽은 뒤에 간다는 지옥도(地獄道)와 축생도(畜生道)와 아귀도(餓鬼道)의 세계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대는 게율을 참으로 잘 지켰다. 그러므로 계율을 그대에게 부탁하니 실수가 없도록 하라."
부처님께서 계율을 정하신 것은 모두 그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에 모든 계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용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즉, 계율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계율은 무엇보다 엄격했지만, 부처님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도 하셨습니다. 다만 계율 본래의 정신이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구든 스스로 이미 마음속으로는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다면 어떠한 계율이라도 정해진 바를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보물) (좌) 부산시 금정구 소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에 이어 영남 3대 사찰이다 / 해동 용궁사 (우) 부산시 기장군 소재
9. 부처님의 훈계, 라훌라존자
라훌라는 출가 전 부처님께서 야소다라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입니다. 아난존자와 마찬가지로 고향으로 돌아온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라 나서며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동진출가자였던 셈입니다.
즉 성인이 되지 않는 어린 나이에 출가한 동자승이라는 말입니다. 라훌라가 출가했을 때, 다른 모든 스님들은 어른이었고, 게다가 나이 많은 장로 비구들 또한 많았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나이에 출가한 라후라는 또래와 다름없는 천방지축 개구쟁이였습니다.
여러 스님들의 입장에서는 라훌라가 부처님의 외아들이고 왕손에다가 나이까지 어려 처음에는 귀엽게 보았지만, 라훌라의 장난이 더해갈수록 나날이 불평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여러 스님들의 불만을 알게 된 부처님은 라훌라를 다른 곳에서 공부하도록 조치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라훌라를 찾아왔습니다.
"라훌라야, 발 씻을 물을 가져 오너라."
부처님께서 오시면 발을 씼겨드리는 것은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도리였습니다. 라훌라도 정성스레 부처님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라훌라야, 이 물을 보거라. 이 물은 마실 수 있는 물이냐, 아니냐?"
"발을 씻은 더러운 물이기에 마실 수 없습니다."
난데없는 스승의 물음에 라훌라는 마실 수 없는 물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다. 더러운 물은 마실 수가 없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너는 비록 내제자며,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했지만,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의 번뇌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 이 더러운 물과 같다."
부처님은 울상이 된 라훌라에게 온화한 얼굴로 안심시키며, 대야의 물을 비우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제 이 대야가 비었으니, 이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있겠느냐?"
"부처님,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이미 발을 씻어서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너는 비록 출가자의 신분이 되고도, 마음이 거칠고 진실한 말이 없으며, 정진을 게을리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발 씻은 대야에 음식을 담지 못하는 것처럼, 너에게 참다운 법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갑자기 대야를 발로 힘껏 소리나게 차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휘둥그레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라훌라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라훌라야, 혹시 저 대야가 깨질까 놀랬느냐?"
"아닙니다, 부처님. 발 씻는데 쓰이는 대야는 값이 싼 물건이기에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라훌라야, 네 말이 맞다. 지금 너는 이 대야와 같다. 함부로 행동하고, 입으로는 아무렇게나 욕설과 험한 말들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네가 그 버릇을 고치지 않고 계속 지금처럼 행동한다면, 커서도 훌륭한 스님이 되지 못할 뿐더러 아귀나 축생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게 될 수도 있느니라."
이 일로 마음을 고쳐먹은 라훌라는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항상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갖추어, 행동 하나하나가 진실하게 되자 모두들 그를 칭찬하며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고 불렀습니다.
10. 벼랑 끝에 올라선 아난존자
평생을 부처님의 옆에서 시봉하셨던 아난존자는 원래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고향 카필라성으로 돌아와 법문을 하셨을 때, 다른 석가족의 친척들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순간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습니다. 때문에 부처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항상 그 옆에 서있었던 분이 아난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난존자의 기억력은 남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면 그대로 외워버릴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난존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열반 순간에 '이제 저희는 누구를 의지합니까?'라며 눈물로 여쭈었던 심정은 그런 후회와 절망의 표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이제 부처님게서 생전에 하셨던 수 많은 법문을 정리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같은 내용을 두고도 제자들의 이해도와 그 때의 상황에 따라 방편으로서 각각 다르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저마다 들은 바 내용이 달랐던 탓에 혼선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모두가 인정할 만한 가장 뛰어난 분들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을 결집結集이라고 합니다. 훗날 이 결집은 수 차례에 걸쳐 이뤄졌기에, 이 때의 모임을 '제1차 결집'이라 부르는데, 이 모임에는 500명의 아라한이 참가했습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면 누구보다 가장 많이 들었던 아난존자는 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했던 이유로, 즉 깨달은 성인이 아니었기에 결집에는 참석할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아난의 입장에서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만큼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이대로라면 부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결집을 주도했던 장로 가섭존자도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난에게 7일간의 말미를 주었습니다. 만약 일주일 안에 깨달음을 얻으면 결집에 참가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난존자는 벼랑 끝에선 심정으로 절벽 위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두 발꿈치를 세워든 채 꼼짝도 않고 수행했습니다. 조금만 졸았다가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죽을 각오로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로부터 7일째 된 날, 아난존자는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집이 열리는 칠엽굴로 갔습니다. 칠엽굴에는 외부의 출입을 철저히 막기 위해 굴의 입구를 커다란 바위로 막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도를 깨친 아난존자는 신통력으로 바위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광경를 목격한 스님들은 아난존자의 깨달음을 인정하고, 결집에 참가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 결집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앞으로 스님들이 지켜야할 계율에 대해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대 제자 가운데 지계제일持戒第一우바리존자가 계율을 읊자, 모였던 스님들이 합송으로 따라 읊었고, 부처님의 말씀은 아난존자가 대표로 외우자 모든 스님들이 따라서 읊으면서 드디어 제1차 결집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출처] <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5회|작성자 래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