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입에 있는 증거
성경에서 멀어져 있으며 타락해 있던 부패한 교회를 개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입니다. 교회사는 종교개혁의 시작을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대학) 정문에 항의문 95개 조항을 붙인 것에서 말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를 교황은 1520년 6월 15일에 파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독일 국회에서 루터를 정죄하여 처형할 것을 독일 황제 찰스 5세에게 요구하였습니다. 당시 독일은 신성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고, 찰스 5세는 로마카톨릭교회 신자였으므로 교황이 요구한대로 처리할 수 있었으나 프랑스, 터키와의 싸움에서 프로테스탄트 세력의 지원이 절실한데다가 제후들 간의 이해관계도 있고 해서 교황청에서 파문을 받은 루터를 독일 국회에서 심문하기로 하여 보름스의회(Diet of Worms)를 1521년 4월 17일에 열기로 하고 소환장과 함께 신변보호 증명서를 루터에게 보냈습니다. 그때 루터 곁에 있는 자들은 전에 후스가 이런 문서를 받고 콘스탄츠 공회에 출석했다가 화형을 당한 사실이 있었으므로, 이번에도 루터의 생명을 노리기 위한 속임수의 계획이라며 만류하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는,“우리는 보름스에 입성할 것입니다. 지옥의 모든 문들과 하늘의 모든 권세들이 막으려고 할지라도. 거기서 우리의 사명은 마귀를 쫓아내는 것입니다.”라며 의연히 보름스로 갈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루터의 이러한 결연한 의지를 감지한 슈팔라틴은“루터는 보름스로 가려고 한다. 그곳의 지붕위에 있는 기왓장의 수만큼이나 마귀들이 있을지라도.”라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마침내 생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보름스에 도착해서 4월 17일 황제 찰스 5세가 참석한 자리에서의 청문회에서 구원의 원천은 믿음이며, 믿음의 근원은 성경이므로 성경만이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음과 성경 외에는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므로 교황의 지상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때 있은 일인 트리에르 대주교의 고문관이 루터에게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질문하였습니다.
1. 그대의 이름으로 출판된 이 책들을 그대의 것으로 인정하는가?
2. 그대는 이 책들에서 쓴 내용을 철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루터는, 첫 번째 질문에 자신의 책들이라 시인하고 자신이 쓴 책들이 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루터는 하루의 여유를 구했습니다. 그런 그는 그날 저녁에 비엔나의 요하네스 큐스피니아누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날에 있었던 일과 다음 날 있을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이 순간 나는 황제와 사절들 앞에 서서 내가 쓴 책들의 내용을 철회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내일 나는 답변을 할 것입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여졌지만, 이 하루 이상은 허락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한 영원히 한 글자도 철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18일, 루터는 황제 앞에서 담대히 대답했습니다.
나는 굳게 여기 섰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증거와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나는 교황들과 교회 회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둘은 오류를 범하여 왔고 또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왔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현명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 아멘.
이런 루터에 대해 황제 찰스 5세는 측근을 동원해서 마음을 돌이키도록 루터를 설득하였으나 실패하자 루터를 정죄하고 그의 시민권 박탈과 국외 추방, 루터의 저서를 판매하거나 독서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을 내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진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니라…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7-8, 17-18)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루터, 그리고 사도 바울이 직면한 위험에 항상 처해 있습니다. 악한 마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진 우리 믿음에 대해 그 마음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여전한지 또는 더욱 강렬한지, 아니면 그 마음을 약화시킬 수 있는지를 틈틈이 기회를 보며 흔들어 보면서 주께로부터 우리의 믿음이 떠나게 할 것을 시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마귀의 이 시험은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의 견고성을 인하여 더욱 확고히 할 뿐이며 그 사실을 온 세상에 입증시켜 줄 뿐입니다. 뿌리 깊은 아름드리의 나무를 잎사귀를 따 내고 몇 가지 꺾는다고 해서 그 나무를 죽이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나무 둥지를 도끼로 찍어내고 톱으로 잘라낸다고 해도 그 나무를 죽이지 못합니다. 그 나무의 생명의 원천은 땅 속 깊이 박혀 있는 뿌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명의 원천은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몸의 한 부분, 곧 손과 발을 잘라내어도, 그리고 눈을 뽑아내어도 우리를 영생케 하시는 생명은 죽이지 못합니다. 일부분이 없는 몸에서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우리 몸의 일부분을 빼앗는 것이 아닌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있는 생명은 빼앗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말미암은 죽음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죽음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으로 그의 안에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참생명인 영원한 생명을 더욱 돋보여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 4:4-12)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 모두를 죽일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과 영혼 모두를 자신의 생명에 두시고 살리는 일을 해 나가시기에 그 경이로움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습니다. 그러한 자를 봄에 있는 것도 큰 기쁨의 즐거움인데, 우리가 그 기쁨의 즐거움인 하나님을 경외함의 예배에 매번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배에서 우리가 놓지 않고 굳게 붙들고 있는 주께 가진 우리의 믿음의 신앙을 고백함에 있을 것입니다. 루터는 보름스로 가게 될 때 그곳의 기왓장 수만큼이나 많은 마귀들이 있는 현장에서 자신이 쓴 글의 책의 내용에서 말해왔던 자신이 마땅히 증거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을 증거하는 것에 있었듯이 우리는 복음을 반대하는 이곳의 수많은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마귀들이 있는 현장에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인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을 진실히 고백함에 있으며 이를 증거해 나가는 입에 있을 것을 다음의 말씀에 의하여 가져나갈 것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3-18) (*)
첫댓글 아멘..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