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봄, 활짝 피었습니다
살려면 멀어져라. 코로나19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2월 18일 대구에서 한 명의 확진자가 발표되고 우리의 주변은 너나없이 술렁거렸다. 코로나19 확진자의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 내가 자주 만나는 분의 자녀가 근무한다. 감염인자는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옆에서 틈을 노린다. 코로나19의 증상이 감기 같다고 하니 콧물이 조금만 흘러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덜컥 겁부터 난다. 질병관리당국의 강력한 외출자제 권고가 아니더라도 심장이 쪼그라들어 외출은 꿈도 꿀 수 없다. 현관문을 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해진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감염자 수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알리는 것 같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다닌 길이 알려지면 그 이동경로는 역병의 진행방향과 다름없다. 인적이 사라진다. 어제는 ‘손에 손을 잡고’ 살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오늘은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 집 앞 동대구로는 확진자 소식이 발표되고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일주일 쯤 지나고 나서는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운동장 신세와 다름없다. 차들이 흐르지 않는 도로라니,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에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막막하다. 그 많던 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밥을 벌겠다고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10차선 도로를 꽉 채우던 자동차 행렬은 어찌되었을까. 어디서 밥을 벌고 어떻게 가족을 건사하는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30분이 넘게 걸리던 남편의 퇴근길이 15분 남짓이면 충분해졌다. 그가 한 숨을 쏟는다. 그래도 밥벌이는 놓을 수 없기에 매일 아침 황량한 일터로 나선다.
나는 밥, 밥, 밥을 지었다. 쌀을 씻으면서 학교와 주변 식당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는 아들의 타향살이에 애가 탔다. 반찬 꾸러미를 만들어 우체국에 갔더니 같은 모양의 스티로폼 박스에 반찬이라고 쓰인 것들이 탑처럼 쌓였다. 어미 마음은 한가지라 걱정이 반찬 꾸러미로 둔갑했다. 밥을 짓다보니 의상실에서 옷을 짓는 책마실의 동무가 생각난다. 우리 집 김장 김치 한 그릇을 받고 아이처럼 좋아했는데. 봄철이 대목이라던 그의 말이 떠오른다. 봄옷을 지을 일이 없어진 그가 어떻게 밥을 지을지 걱정이 된다. 밥은 먹고 다니는지 문자를 보냈더니 탈은 없다는 답이 온다. 그나마 다행이다. 옷이 밥이 되는 그에게 봄을 지워버리는 역병은 사람이 멀어진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미장원에서 당분간 문을 닫는다는 연락이 왔다. 몇 해 전에 임신 중독증으로 일을 그만 두어야 했던 그녀다. 자신의 미용실을 개업했다고 연락을 주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경산까지 거리도 마다않고 머리를 하러 갔다. 겨우 일 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빚이 많다고, 네 살배기 딸을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고, 그래도 웃으며 머리를 잘라주었는데. 텅 빈 거리를 보며 밥을 벌려고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떠올라 가슴이 더 휑하니 비어간다. 바이러스 감염의 두려움과 밥벌이의 걱정 그 크기를 견주지 못하겠다.
2월25일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대구시의사회장의 호소문이 보였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한 사람으로 마땅히 대구시민을 위해 코로나19 진료소로 달려오라고 말하는 그의 눈을 보았다. 두려움을 이긴 눈을 보았다. 그는 시어머니가 다니는 내과의 의사이다. 어머니의 똑같은 질문에도 한결같이 설명해 주던 의사이다. 그가 주저 없이 자기 밥벌이를 접고 바이러스와 싸우러 갔다. 그리고 다른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에게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민다. 거리를 두어야 산다는데 와서 같이 이기자고 한다. 그 밤에 자신들의 밥을 뒤로 하고 자기들도 감염될 수 있는 전장으로 기꺼이 오겠다는 이들이 줄을 짓는다. 살리자면 멀리 떨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라서, 내 밥벌이는 뒤로 미룬 이들이 줄을 지었다.
책마실의 다른 친구가 다급히 소식을 보냈다. 3월 8일 저녁을 차리던 무렵이다.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일하는 여자 의료인들이 갈아입을 속옷이 부족하다고 알려왔다. 얼마나 황급히 병원으로 뛰어간 줄을 알겠다. 책을 읽는 마실에는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단체 대화 방에 소식을 올리자마자 계좌를 열고 송금을 시작했다. 저녁을 짓다 말고, 일없는 재단실을 지키다가, 강의 준비를 하다말고 돈을 보냈다. 바이러스와 싸울 수는 없어도 방호복을 입고 온몸이 흠뻑 젖도록 일하는 그들을 위해 우리는 가벼운 주머니를 주저 없이 열었다. ‘송금 완료’라는 메시지가 뜰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앞뒤 재지 않고 코로나19 최전선으로 달려 간 여자 의료인들에게 속옷이라도 사서 보내고 싶은 여인들의 성의가 금세 모였다. 서로 이름도 모르지만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나서고 우리는 우리가 보테고 싶은 정성을 보냈다. 위기는 모르는 사람들을 연결 짓게 만들었다. 물리적 거리는 애틋한 마음 앞에 허물어졌다.
우리는 단체 대화 방에서 칠성시장 상인들이 코로나와 혈투를 벌이는 의료인들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소식을 공유했다. 자신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칠성시장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급박한 상황이 진정되면 그 젊은이들의 식당에서 한 상 차려놓고 속풀이를 하자고 약속한다. 학생들의 등교 연기는 끝을 모르겠다. 학교 급식을 위해 준비한 양파와 감자가 창고에서 썩어간다는 소식에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다.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생전 처음 당하는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밥벌이가 위협을 받는다니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 작은 보탬이라도 될까 하여 양파 한 망과 감자 한 바구니를 더 샀다. 양파를 까면서 농산물 가게 주인장을 생각하고 집 앞 텅 빈 대로를 돌아보았다. 매운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황량해져서는 안 된다.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은 더 가까이 토닥여야 한다.
미장원에서 문자가 왔다. 일주일에 사흘이라도 영업을 해야겠다는 전갈이다. 한 달이 넘도록 문을 닫고 있자니 먹고 살 일이 걱정이라서…. 머리를 만지는 동안 마스크를 끼고 있자니 그도 나도 불편하다. 그래도 우리는 “뭐라고요?, 아, 예.”를 반복하며 마스크를 사수한다. 그의 어린 딸은 잘 놀고 있는지 내 아들은 어떻게 끼니를 때우는지 서로를 걱정한다. 오가는 길이 막힌다고 늘 미안해하는 그에게 오늘은 순식간에 왔다고 떠든다. 언제 한번 시원하게 달려 볼까 싶던 경산에서 동대구로까지의 길이다. 도로는 막힘이 없는데 속은 오히려 답답하다. 앞에서 계산하는 손님이 마스크를 주고 간다. 집에만 있어서 쓸 일이 없다며 어깨를 토닥인다. 미용사의 미안함까지 헤아리는 그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처음 본 그에게 거리가 허물어진다. 그렇게 첫 만남에서 우리가 된다.
머리를 자르는 일이 감자를 깎는 일이 혼자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어머니의 단골 병원 의사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생길 줄을 상상이나 했을까. 사라진 봄 때문에 동무의 밥벌이를 염려할 날이 닥칠 줄 어떻게 알았을까. 난생처음 맞는 바이러스의 침공이다. 이 전쟁 통에 우리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의 밥벌이가 내 밥과 멀지 않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서로 보듬고 있다. 지킬 거리는 허물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다독인다.
올 봄에는 신천의 개나리가 언제 피었다 졌는지 화랑로의 벚꽃이 얼마나 흐드러졌는지 살필 새가 없다. 꽃그늘 아래 봄은 시들었어도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은 꽃을 피운다. 오래도록 지지 않는다.
2020 대구의 봄, 서로를 돌봄으로 활짝 피었다.
(2020 대구 : 봄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시민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첫댓글 코로나 사태 아래서 다양한 삶의 모습에 포커스를 따뜻하게 맞춘 마음에 저도 같이 머뭅니다.
어쩌다가 아들네가 손녀, 손자를 데리고 와도 베란다 문을 활짝 열게 되는 이 현실이 아프지만
2020 대구의 여름, 가을은 좀더 나아지길 기원해 봅니다.
육신은 거리 두어도 가슴은 뜨겁고, 입은 막혀도 문장은 열려있습니다. 장마비에 바이러스 씻겨 내려 갔으면ㅡ
"서로를 돌봄으로 2020 대구의 봄 활짝 피었다."
구석 구석 가슴짠하고, 가슴따뜻하고,서늘했던 대구의 지난했던 현실까지 일일이 챙기시는 글맛이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