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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물이 가득 흐르는우수가 여러 날 지난 오늘(2월 25일 저녁) 뱅기 타고 일본 동경을 간다.
근데 뱅기 타는 것 - 여행이 시큰퉁 한 것은 늙었다는 것인가?
팔자대로 여러 곳을 떠도는 것인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하나도 즐겁지가 않다.
경제적 부담이 커서 그런가... 그건 이미 정해진 일인데........
암튼 가보자구.
곽상, 심상, 이상, 정상, 윤상, 김상, 이세영선생님, 이렇게 7명이 동경에 그림전시를
보러 간다고 뭉치게 되었다. 이중에 곽상과 윤상은 그림에 기역도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를 인솔하여 가기로 한 진상 선생님이 하루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그 선생님의 제자가
1일 대장을 하기로 하였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에 보이지 않고 전화하니 개인적으로 급하게
연락 받을 내용이 있어서 집에 맡기고 갔다고 한다. 시간이 저녁때인지라 많이 막히고 있나보다.
게다가 일행 중 한 분은 인천에 가서 헤매다 급히 김포로 돌아오시는 중이다.
하네다공항도착은 김포에서 출발인가 본데...외국행이면 인천으로 가야하는 줄 착각한다.
선생님은 애가 타서 5분간으로 계속 전화 온다.
결국 보딩 끝내고 들어가는 중이라 하니 제발 더 이상 아무 일 없었으면 한다고 하신다.
일단은 5명은 모였다 흩어져 비행기를 타고 간다. 난 비행기에서 주는 뺀토가 맛있다고
하나 더 먹고자하니 또 갖다 준다. 이미 맥주+와인을 충분하게 하였기에 다음날 간식으로 챙겼다.
웃고 왁자지껄하며 짐을 찾는데 “이상” 가방이 나오지 않는다.
끝끝내 찾을 수 없고 다만 똑같은 색깔의 가방-상표조차 같은 ‘윤민희’라는 가방만 남는다.
이름만 보아도 같은 민족이란 생각에 괜한 역정이 속으로 마구마구 나는데...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에서 우리는 너무나 흥겁게 대처하고 ‘이상’은 이상하게 너무나도
침착하고 담담하게 느긋한 대처를 한다. 영어책에서만 나오는 잘못된 이상한 시츄에이션이다.
어쨌거나 무료 셧틀 버스→모노레일→시내전철→시외전철 이렇게 갈아타고
마쯔도 민박집에 들어오니 밤2시가 넘고 먼저 오전에 도착한 윤상은 이제나 저제나 우리를
기다렸다고 하나 믿을 수 없음이고 그 와중에 이상은 100엔 샵을 알아보고 그 곳에서
일용 세수용품을 구입한다. 거의 기절수준으로 잠들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다.
2일째 일본에서 처음 맞이하는 아침에는 일어나자 바로 그냥 나와서 우에노역 근처에서 라멘을 먹는다.
생달걀이 들어 있는 것이 비리하고....면이 꼬둘거리며 살아있고 엄청 짜다. 입맛에 전혀 맞지 않는다.
다행이 어제의 재고 도시락이 있어서 그런저런 요기를 하고
슬슬 걸어서 아메요꼬시장을 좌로 우로 돌아 보다보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일행들이 오꼬노미야끼 사촌같은 생달걀이 들어있는 일본 빈대떡을 하나사서 나눠 먹는데
와루바시는 1개뿐이 줄 수 없다고 웃는 낯으로 쓰미마셩을 거푸 말하는 주인이 얄밉다.
더럽게 맛도 없는 것을.....우리도 웃으며 혼도니 오이시데쓰요~~~
시장을 구석구석 돌다보니 비가 온다.
이 비는 이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무임승차한다.
우에노공원 안에 있는 도립 미술관에서 신전 관람하다 이세영 선생님을 만나 다시한번 더
우에노공원을 돌아보고 저녁에 행사장에 도착하기로 한다. 공원에는 간혹 꽃이 핀 나무도 있다.
각종 거리의 음악가들이 연주를 하고 난 스코틀랜드만속음악에 절절로 흥이 난다. 춤도 추고싶다.
진상 선생님은 오시지 않은 상태에서 시상식 및 식순이 거의 종반에 이르렀을 때
순간 벽에서 삐죽이 옆으로 진상선생님 얼굴이 보인다. 앗, 드디어 오셨군.
정상은 젊은 나이라 그런지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그들이 대화하기를 원하는데....언어가 안된다.
뷔페식으로 간소하게 차려진 만찬을 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오면서 가방 잃어버린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 역시 대범한 모습을 보인다. 별 신경을 안 쓴다.
온천을 갈까 하면 한참 얘기하는 중에 선생님이 ‘이상’가방을 들고 들어오신다.
윤상 가방인줄 알았다나....갑자기 잔치 분위기가 되어서...어쨌든 일부는 숙소에 남기로 하고
근처 목욕탕 라돈 온천을 택시타고 가서 시간에 맞추어하고 10시50분 마지막
셔틀버스를 타고 되돌아와 맥주한잔하고 바로 다시 기절했다.
3일째 두 번 맞이하는 일본의 아침에는 햇반과 데워먹는 짜장으로 아침을 먹고 닛꼬(日광)관광을
하기로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묘자리가 있는 곳이라 하는데 교통비 만만치 않고 입장료도
엄청나다. 도쿄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기에 6시30분에 전철역으로 나와 우에노에서 ‘남자 리상’를
만나 닛꼬행 급행열차를 갈아탄다, 도중에 열차가 분리된다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고
진상께서는 계속 옆 사람에게 짧은 일본어로 물어 본다. 시골역...간이역 같은 곳을 지나다 보니
아직도 산 정상에 눈 덮인 모습도 보인다. 급하게 뒤로 뒤로 열차 칸을 옮기고 나니 맨 뒤의
2칸만 남기고 앞의 열차 칸은 다른 쪽으로 가고 우리는 시골-닛꼬로 계속 가고 있다.
마침내 닛꼬역에 도착 했을 때에는 그 어떤 상가도 문을 열지 않았을 때이고
우리는 걸어갈까...버스를 타고 갈까 까말까하다가 옆의 동양인 말레이시아 청년에게 물어
보다가 그는 화교 말레이시아 일본 유학생이라고 한다는데...영어, 중국어 유창한데 큰 도움 없이
그냥 사라지고야 만다. 급기야 봉고차로 삐끼하는 아저씨한테 1인당 300엔씩 주고 차를 탄다.
아저씨는 큰 목소리로 계속해서 엄청난 액수를 부르며 하루 일정을 설명하는데 귀가 괴롭다.
10분간 아주 천천히 절의 입구에 데려다 주었다. 절의입구에서 엄청난 표를 샀다.
린노지는 닛꼬 최대의 목조건물이라는데 안쪽에는 각종의 유물이 있고 세 개의 부처가 있다는데,
우리들 불교양식과 많이 틀려서 워낙 잘 모르는데다가 더구나 일본인들은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영어로 된 푯말조차 없기에 그냥 자연 경관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다행이 일행들이 전부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환조와 부조에 대하여 확실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게다가 더 오래된 방식인 모자이크까지 설명하였을 때에는 ...
어쨌든 삼나무가 울창한 국립공원을 지나며 이에야스 3대 막부가 완성하였다는 금으로 도배하고
놋쇠로 격자를 만들고 전부 수공예천지를 만든 엄청나게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들을 구경했다.
담장 하나하나에 들인 조각과 그림들로 인하여 그 화려함에 신들의 노여움을 살까봐
두려워했다는데 과연 신들도 시샘할 만큼의 인간들의 정성과 수공을 쏟아 부었다는데
웬지 나는 우리들의 4백년전 조상들이 이곳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절여서 손톱이 짓이겨졌 을 것
만 같은 생각이 든다. 계속 입장권을 뜯으며 한 바퀴 도니 진상선생님은 배고파 죽으려고 하신다.
이곳에 3대손도 묻혀 있을 것이라는데, 어디에 있을까...
내리막 길 조금 내려와 보니 입구이고 그 곳을 조금 벗어나니 일반 속세이다.
또 다시 삐끼에 말려든 선생님을 놔두고 몇 명이 그냥 막 지나간다.
조금 더 가니 식당전문집이 나와 뒤를 돌아보니 나머지 일행도 따라 온다. 점심을 먹고 트렉킹하
듯 게콘 폭포에 가자고하였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다. 호수도 보아야하고... 쩝쩝..
사람들이 그냥 시내로 돌아가자는 말에 걸어서 역으로 간다. 알 수 없는 작품들을 보니 피곤하다.
걷다보니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아침에 1인당 300엔*1300= 약 4000원 돈을 주고 차를 탔다.
일본 다리 앞에서....별 멋있지도 않은데... 영어 안내판이라도 있다면 훨씬 나았을까...
역에 도착하여 닛꼬 지도라도 얻어 볼 요량이었는데 기차시간에 쫓겨서 황급히 돌아오는 기차
를 탔는데..그만 구간급행을 탔다. 갈아타는 역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방송에서 기리까이 하라는
말이 계속 나왔는데 그만 알아듣지를 못해서 완행처럼 일일이 계속 역마다 쉬다가 가다가
결국 시내에서 급행으로 가는 것을 갈아타고 간다.
시간이 예상했던 것보다 약 1시간정도 더 걸렸다는데...뭐 급한 일 없으니깐.
서울에서도 기차타면 맥주마시며 옆의 풍경을 보는 것이 큰 낙인데....닛꼬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감동적이지 않다. 더구나 비가 올 것만 같은 썰렁한 날씨 속에서 더 그렇다.
아사쿠사(淺草)로 간다. 그냥 쭈욱 타고 가면 된다고 한다.
아사쿠사역에서 5분정도 들어서면 일본의 전통적인 기념품 상가가 똑같은 모습으로 일렬로
밀집되어 있는 나카미세(仲見世)가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지갑, 손수건, 가면, 젓가락, 술잔, 거울, 기모노, 전통과자를 팔지만,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가게에서 부적도 함께 팔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전통 기념품 상가로는 이곳이 일본에서 가장 대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이 상가는 수많은
인파가 넘쳐나는 모습이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이다. 이 상가에서 그 흔한 기념품 하나도
사지 않은 것이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일본 손수건이라도 하나 사야 하는데.....
이 거리를 통과한 수많은 여행자들은 센소지(淺草寺)와 아사쿠사(淺草) 신사를 참배하게 된다.
센소지는 628년에 어부 형제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건져 올린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찰이라고 한다. 도쿄의 한복판인 이 센소지에서 일본인들의 신앙 양식은 그대로
드러난다. 사찰의 이곳 저곳에 자리한 다양한 신은 수많은 인파의 유명 관광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센소지는 사찰인데도 일본의 다신교와 다양하게 혼합되어 있어서 우리나라와 같은
조용한 경건함을 느낄 수는 없다. 센소지 앞에 들어서면 향로가 먼저 눈에 띄는데 이곳의 향을
머리에 쐬면 머리가 좋아지고, 몸의 아픈 곳이 낫는다고 한다. 그래서 향에서 나오는 연기를
연신 머리에 쐬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나도 미신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곳에서 머리에 연기를
쐬어 본다. 꼭 이곳만이 아닌 것 같다. 전체적으로 어디를 가나 향을피우고 그 연기를 쐰다.
잡동사니 상점을을 지나서 천둥의 문이라는 카미나리몬(雷門)을 지나야 한다. 이 문에는
'카미나리몬'이라고 적힌 무게 100kg에 이르는 빨간 등이 걸려 있다. 번개의 문인가...
일본의 신사나 식당 등의 입구에 걸려 있는 빨간 등 중에서 이 카미나리몬 등은 단연코
챔피언급 이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모시는 신에게 바쳐지는 물건들을 아주 거대하게 치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문도 그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카미나리몬 뒤편에는 어마어마한
짚신이 한 짝씩 문 양편에 짝이 맞춰져 걸려있다. 이것은 신의 신발이다.
카미나리몬의 왼쪽에 있는 신발은 천둥의 신 것이고, 오른쪽의 신발은 바람의 신 것이다.
이 두 신은 풍년과 태평성대를 가져다주는 신이라고 한다.
천둥과 바람! 우리나라도 여름철에 태풍의 피해가 크지만, 도쿄와 같이 일본의 동쪽 해안가에
자리한 도시들은 여름철 8∼9월에 태풍으로부터 엄청난 재난을 겪게 된다. 현대는 과학적인
대비로 인하여 일본에서의 태풍 피해는 많이 감소했지만, 산업화 이전에는 태풍, 그리고그 데려온
천둥과 바람이 일본의 해안을 휩쓸고는 했었다. 그래서 이 천둥과 바람은 카미나리몬에서 신의
모습으로 남게 된 모양이다. 신사 뒤쪽으로도 가면 에도시대 복장으로 남녀들이 서 있는데
극장인줄 알았는데 정식이름이 “아샤쿠사 연예홀”이란다. 유원지며 나카미세가 있고 다른 역으로
갈수 있으나 되돌아서 이 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가면 오렌지나무도 있고 비둘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장도 있다. 처음에는 오렌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먹지 말라는 의미인줄 알았다.
분식집 같은 곳에서 저녁으로 맥주한잔에 강낭콩 삶은 것으로 한다.
남자 리상은 따로 숙소를
정하여 아는 후배가 데리려 와서 가고 우리는 덜렁 민박집으로 돌아온다.
민박집의 이불속에 뭔가 우리들 - 심상과 곽상하고 동침하고 있다.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계속 스물 대고 따금 거리고 벌겋게 자욱이 남는다. 그래서 낮에 주인여자보고 깨끗하게
소독을 부탁하였더니 여태 이런 일이 없었다며 미안하다면 켄 맥주6개를 두고 갔다.
그리고 다시 아사이 생과 사케로...저녁을 채우고 그렇게 하루가 간다.
4일째 세 번째 아침에는 남은 햇반과 얼큰한 육개장라면으로 끼니를 채우고 미술전시에서 만난
아끼꼬상이 안내하기로 한 사이따마현 가와고에(川越)를 간다.
시내에서 급행 전철로 1시간이상 걸려서 간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는데 찬비를 맞으며 약속장소에 나가니 아직 상점들도 문을 열지 않은 상태이다.
아끼꼬(애자)상은 한국어를 10년째 배우고 있다고 하며 같이 나온 친구2명 역시
한국어 학원 동기생이라고 한다. 다들 10년씩 배우고 있다고 한다.
선생님은 고려유민에게 왕이란 성을 내려 살았다는 高麗川 고마가와(高麗神社)라는 신사를
들러볼 요량이시다. 마쯔리-축제는 10월에나 있다고 하니....지금은 그저 거리나 걸어 보아야
하겠다. 깨끗하게 잘 정돈된 상가를 지나서 21세기 에도라고 불리운다는데 전통상가- 화지가게를
들렸다가 주택가를 쭈욱 걸어가니 오래된 작은 신사가 아담하게 이끼에 덮여 있다
토우쇼우구라고 하는 신사(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을 닛꼬로 옮기는 중 4일간을 키타인에
머무는데 이를 기념하여 키타인에서 덴카이승정에 의해 기념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문화해설 봉사자 할아버지가 설명하면 아끼꼬상이 1600년대를 설명한다.
일본인들도 역사 공부가 왜곡되어 있는지 그때의 시대와 조선과의 관계를 잘 모르는 둣하다.
그 옆으로 일본식 작은 자갈이 깔린 오솔길을 따라서 걸어가니 천태종 관동 지부 총본산
‘기타인’ 절이 나온다. 830년에 창건한 천태종의 명 사찰로서, 정식 명칭은 세이야산(星野山)
무료주지(無量壽寺) 기타인(喜多院)이라 한다. 에도시대에 명승 덴카이(天海) 대승정이 주지를
맡았던 절로서, 또 에도성에서 이축된 3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스가노 쓰보네와 인연이
깊은 건물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기타인의 이름은 ‘가와고에’보다는
사이타마를 대표하는 사원으로서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 이축된 서원은 3대 막부의 유모의 자잘한 살림도구와 화장방, 손님방, 그리고 그 시대의
정원을 감상할 수 있으나 맨 발로 그 곳을 한 바퀴 도니 발이 얼음장으로 꽁꽁 얼고 말았다.
난방이라 하나도 없는 곳을 다다미 짚풀방을 구경하다보니 그렇다.
절과 서원과 연결된 일반인 통행 금지된 구름다리 같은 나무계단 난간에 기대어 비에 젖는 일본식
정원의 모래를 보며 권력이 엄청나다해도 그 시대의 소박함과 겸소함이 느끼며, 죽으면
그만이라는 무상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우리는 절 앞에서 에끼꼬가 사준 향을 불을 붙여서 잘 서도록 하고
각자의 소원을 속으로 빌고 일본식으로 향의 연기에 샤워하는데 그만 내 향이 쓰러진다.
에고... 돈 많이 벌게 하여 다시 한 번 이곳을 오게 해 달라고 했더니만...
그 입장료는 절의 옆에 있는 서원과 오백나한상이 있는 곳에 들어 갈수 있도록 표를 판다.
선생님은 또 배고파 쓰러진다고 해서 어제 마트에서 사온 뻰또를 먹으려 하니 날씨가
받쳐주지 않고... 아끼꼬상은 오뎅을 사러간다. 어쨌든 그 유명한 절 앞에서 도시락을 먹고
뜨끈한 오뎅국물을 먹으니 여행을 온 흥취가 절로 난다. 비도 그치고....
점심을 먹고 정문으로 되돌아 나와 조금 더 가니 벼룩시장이 열릴 준비를 한다.
매월28일에 장이 선다고 하는데 마침 그 날이 오늘이다. 간 날이 장날이다.
나리타산 별원이라는 절로서 그 대지 내 에서 장이 열리는 것이다.
‘심상’은 바로 빨강 파랑 커피 잔을 사고, 내가 살까 말까한 동 촛대를 산다. 닛꼬 경내에서 본 경첩처럼 생겼는데...
서로 일행들을 챙겨서 자리를 옮기다 작은 신사가 또 보인다. 한자를 대충 읽어보니
결혼할 인연을 만나게 해주고 건강을 찾아준단다. 웃으며 들어가니 바로 그곳이 선생님이 가고
싶어 했던 고마신사였는데 그 규모가 작고 단촐 한 것에 실망이다.
다만 정갈하고 고색창연한다는 구태의연한 표현뿐이 할 수가 없다.
이제 전통마을형태를 꾸민 거리로 들어간다.
일본식 거무틱틱한 나무와 기와를 얹힌 어두운 목조건물 2층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하꼬방 같은 상점과 그 뒷골목에 전통과자점이 늘비하다. 야끼이모(군고구마)가 있고
인력거도 다니고 순환버스도 옛날 도라꾸 형태로 재현시켰다. 버스비는 자유 프리패스이지만
자유롭게 걸을 요량으로 그냥 걷다가 저녁 4시에 종각에서 만나기로 하고 흩어졌다.
4거리의 에도시대 젙통 목조건물에서는 콩으로 만든 콩조림이 지나가는 행인들 맛배기로 주는 데
달고 맛있다. 무를 이용한 염장야채도 맛있다. 비록 재현된 거리라 하여도 그 디자인하며 현실과
행정이 잘 맞춤이 맞음이 이루어진 계획도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는 개발이란 명목으로
종로 피맛골도 다 없애는 개념인데...아무 자산도 보잘것없는 시골마을을 도시디자인으로 살려
놓았다. 스페인 구게하임 미술관 설치로 빌바오란 조그만 어촌을 살린 것과 마차가지이다.
저녁에 아끼꼬상이 만찬이 있다고 하여 일본식 선술집 아끼아바라를 간다고 우에노 역에서
요리조리 환락가를 뒤진 끝에 맛있는 집에서 정종과 회를 먹고 지나친 수다와 함께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지고 있다.
선생님은 못하는 술을 정종 딱 한잔하고 연지곤지 찍은 모습을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앉은 자세로 운을 감고 계시는 것인지 잠이 드신 척을 하는 것인지 귀여운 모습을 하고,
또 새로 나온 일본사람 다베상은 50후반의 남자로서 은행가라고 한다. 그 역시 아끼꼬상의
한국어 학원 동기생으로서 14년을 배웠다는데 경상도사투리에다 전부 반말이다. 그래도 그 배움의
끈질김에 놀라울 뿐이다. 그는 정년 후에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민박집에 돌아오니 마침 옆방에 한국남자들이 새로 들어와 있어 그들과 함께 대화가 시작되었다.
심언니와 난 다시 그 방에서 일본의 밤을 맥주로 새운다.
5일째 네 번째 아침은 힘들다.
지나친 수다로 인하여 목은 아프고 음주생활이 과하여 머리는 어지럽고 또한 결벽에 가까운
‘여자 리상’의 못마땅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그냥 맥주만 마셨을 뿐인고...
선생님은 수다는 수다로 풀라고 하는데..안되겠다.
그나마 다행은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 다만 약간의 서늘한 봄바람이 있을 뿐이다.
날씨에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비가 오면 그것도 계속해서 오면 여행객의 심정이 쓸쓸해진다.
다시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먹고 아끼꼬상 집이 있는 가와사키로 가서 일본 민가촌을
구경하기로 하였으나 오늘은 월요일이라 입장 금지이다. 할 수없이 울타리 밖에서 집을 구경하고
서로들 알고 있는 온갖 초본식물 이름을 대다가 주변의 식물이나 나무들을 개명시킨다.
아끼꼬상이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고 나름대로의 농촌풍경을 즐긴다.
마트에서 도시락을 구입한다. 우리가 일본 벤또를 애용하는 이유는 점심비용의 절약도 있지만
우선 입에 안 맞는 라멘을 먹는 것보다는 안전하고 간단하고 깔끔하기 때문이다.
아끼꼬상 말에 의하면 무코지마 학카엔 매화축제는 끝났지만 가까운 곳에서 아담하게 매화를
볼 수 있다고 하여 우메가오까 역으로 가서 하네기 공원으로 가 20여종의 매화를 보고 매화향을
맡아 보고 공원 의자에서 점심을 먹는다. 유난히 까마귀가 많은 공원이라 약간 긴장하고 있는데
드디어 놈 중 하나가 전광석화로 날라 와 고기를 집어 날라 가다 어찌나 우리가 놀래서 소리를
크게 질렸는지 그 놈도 집은 고기를 떨어뜨렸다. 일본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고 무덤덤하다.
얼른 점심을 끝내고 한 바퀴 더 도니 시내에 가자고한다.
엄청 큰 유명백화점에 가서 자기들이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나 보자고 갔는데 지하 식품부에서
맏배기로 주는 참치 살에 빠져서 5번을 받아먹고 민망함을 느꼈다.
동경타워에 가서 저녁 야경이나 보자구하여 전기 불들이 켜질 때까지 45층 꼭대기에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주변의 산들이 보인다고 하든데 이번 여행에서는 해맑음은 없다.
선생님은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고 또 수고하신 아끼꼬상하고 같이 저녁을 하자고 하여
지출을 심하게 무리 하신 듯 보인다. 어쨌든 일본의 물가는 심하게 높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각자의 돈으로 온천을 다시 한 번 더 하고 11시에 돌아오려고 보니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젖은 머리에 젖은 수건을 뒤집어쓰고 민박집으로 올라가려고 하니 여태 안보였던 아랫집이 사케와
오뎅집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딱 한 잔씩만 할려고 회비를 모아서 싫다는 선생님마데 윤상까라 내려오시라고 했다.
그림은 생맥주였는데...위스키를 물처럼 얼음에 잠긴 사와 같은 것이 나왔다.
순간 확 뜨거운 것이 얼굴로 올라온다. 주문을 내가 했기 때문이다. 그림과 같은 것을 달라고
했는데....그래도 일단 다들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오뎅, 닭볶음도 간단하게 하고
결국 윤상이 낸다고 했는데 카드는 안 된다 고 해서 부족한 것만 낸다. 윤상은 내일 아침 일찍
미국으로 가고 우리는 오후비행기로 서울에 간다.
6일 다섯 번째 아침이다.
아주 깊게 잠들었는데 윤상이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일어나고 싶었는데 다시 잠드는가 싶더니
남자 리상에게 전화가 온다. 진동이 몸을 떨게 하더니 냅다 집어서 앞방에 선생님에게 전달하려
노크하니 사람이 없다 다시 화장실로 가니...이따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이겠지.
오전에 긴자에서 화랑을 몇 군데 돌아보기로 했는데 짐을 두고 왔다 갔다 하기가 번거로워
가까운 곳에서 쇼핑하기로 한다. 100엔 샵에서 반나절 주물럭대다가 슈퍼에 가서 곤약 몇 개
샀다. 서울에서 어묵 탕이라도 푸지게 끓여 먹어야지.
드디어 서울로 간다. 올 때에는 가벼운 짐이 갈 때에는 바리바리 짊어지고 간다.
여자이상은 우산을 두 개나들고 가방도 끌고 따로 또 짐이 있어서 내가 들어다 준다고 하고
나중에 짐을 실으려고 보니 내 손에는 우산이 없다. 어디서 두고 내렸는지 그것조차도 기억에
없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가 되더니 여권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겨우 보딩하고 안에 들어오니 면세점포가 2개뿐이다. (그래도 명색이 딸인데 모찌 1 상자 샀는데
나중에 집에 와 보니 과대포장에 찹쌀 떡 같은 쪼가리가 손톱만 하게 7~8개 들어있다.
근데 포장은 너무 근사하다. 할 말이 없다.)
발렌타인 21년산을 시음하라고 하기에 아주 조금 마셨더니 다시 원기 회복이다.
그래서 기내에서 아사이 생을 2개마시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서울이라고 한다. 얼른 집에 가서 하얀 쌀밥에 김치 쭉쭉 찢어서 얹어서 먹어야지.
첫댓글 그림 없는 글이라 더 좋네 친구......비행기를 타도 심드렁해 진 걸 보면 자네도 늙었군....
사진두 올릴까 하다가 어짜피 내 사진이 아니라...언제가 기회가 닿으면 닛꼬는 같이 돌아보면 좋겠어. 닛꼬는 정말 좋드라...일본 같아.
하루에 읽기 힘든 긴 여행기라 이틀에 걸쳐읽습니다. 근데 음식여행같아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했으니.... 암튼 무사히 돌아오셔서 반갑습니다.
먹는것이 없어요. 얼렁 빨리 집에와서 김치 먹고 싶드라구여.
부럽다... 근데 매화가 20여종이나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