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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홍의 아동문학통신/125〛 서평
가혹한 길 위에서 따뜻한 희망을 품다
안덕자의 아동소설『아빠와 나의 행복한 방』
김문홍 seawind1976@hanmail.net
동화의 지평이 열리다
동화작가 안덕자에게는 지난해인 2015년부터 동화적 지평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눈부신 빛살이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10여 년 이상의 단단한 동화적 내공이 빚어낸 결과이다. 그것은 등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을 훑어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안덕자는 2002년에 부산아동문학 신인상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그 존재감을 알리게 된다. 2007년에는《국제신문》신춘문예에 동화 당선, 농민신문《어린이동산》중편동화 당선 등으로 그 문학적 연금술을 검증받았으며, 그 결과로 2010년에는 단편동화집『캥거루 주머니엔 뭐가 들어있을까』를 상재해 빛나는 동화적 상상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2015년에는 부산문화재단으로부터‘올해의 문학’에 선정되어 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았으며, 그 결과물로 같은 해에 장편 아동소설인『아빠와 나의 행복한 방』을 내놓았다. 그녀의 스포트라이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 작품으로 2016년에 제38회 부산아동문학상을 수상하여, 그녀의 영광과 행운이 단순한 운이 아니라 치열한 작가정신의 결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문단에 알려 동화적 상상력이 정점에 달했음을 인지시켜 주었다.
안덕자의 문단 데뷔 내력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강원도 황지에서 태어나 삼척에서 자랐다. 부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어른이 되었다. 대학에서는 독일어를 공부했으며, IMF 때 실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다가 작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실직은 그녀가 동화적 상상력의 자장으로 들어오게 한 추동력이 된 셈이었다. 유소년기의 자연 친화적인 품성, 청소년기의 빛나는 감수성, 그리고 대학에서의 독문학 전공, 실직을 하게 되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책읽기 봉사 등의 문학적 토양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이다. 지금 그녀는 동화 창작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근래에 겪은 그녀의 개인적인 슬픔도 자연스럽게 영혼에 녹아들어 순수한 동화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부산지역의 친근한 공간을 작품 속에 품다
아동소설의 3요소는 인물과 사건, 그리고 배경이다. 안덕자의 아동소설『아빠와 나의 행복한 방』의 주인물은 아빠와 나(성욱)이다. 부인물은 노숙자인 벙거지 아저씨와 저승사자 아저씨, 그리고 내 또래의 친구들인 대식, 창현, 수정이 등이다. 이 작품의 서사구조로 볼 때 큰 사건은 없고 화자인‘나’를 중심으로 한 일상적인 장면과 시츄에이션이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가장 큰 무게중심은 공간적 배경이다. 여느 작품에서는 인물과 그 인물이 엮어가는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장소로서의 배경적 공간은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러한 보편적 공간이 아니라 지역적 공간의 특수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것도 작가가 살고 있는 항구도시‘부산’이라는 공간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부산문화재단에서‘올해의 문학’으로 선정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지역적 로컬리티라는 친화성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 속에 화자인 나의 공간 이동에 따라 등장하는 부산의 지역적 공간을 발견하게 되면, 타 지역의 독자에게는 부산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그리고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친화적인 장소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①
아빠를 따라 밖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바람이 역 광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새벽이라 춥다. 광장은 넓고 조용했다. 광장 왼쪽에는 호텔이 있고 맞은편에는 빵집과 패스트푸드점 간판이 보였다. 사람들이 역에서 나가고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8쪽)
②
날이 어둑해지자 저 아래 보이는 역 부근이 훤하게 밝아 왔다. 커다란 역 건물이 불빛에 비치어 도드라져 보였다.
“아빠, 저기 역 좀 봐. 정말 크고 멋지다. 우리도 기차 한 번 타 봐.”
“알았어, 이 다음에 아빠가 고속열차 태워 줄게.”
신이 나서 아빠 손을 잡고 콩콩 뛰었다. 이제는 제법 바다 냄새를 싣고 마파람이 불어 왔다. 엄마가 가르쳐 준 노래가 생각나 흥얼거렸다. (26쪽)
③
탑 꼭대기에 커다란 구름 방석이 생겼다. 저 구름 위에 앉으면 기차역에 있는 광고 속의 아파트보다 더 포근하고 좋을 것 같았다. 충혼탑 아래로 펼쳐진 산기슭을 바라봤다. 올망졸망 붙어 있는 지붕이 바다 근처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마치 엄마랑 바다에 갔을 때 바위에 붙어 있는 따개비같이 보였다. 아빠와 나는 언제 우리 집으로 가게 될까?(47쪽)
④
자성대 주변에는 많은 화물차들이 부두로 드나들었다. 고가다리도 어지럽게 보였다. 집채만 한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가 우리 옆을 지나갈 땐 간이 졸아들었다. 부두 길 바로 옆 철조망 너머가 부두다. 왼쪽 멀리 보이는 곳에는 하늘을 찌를듯하게 높이 솓은 타워크레인이 컨테이너를 들어올리고 내리고 있었다. 그 밑에는 마치 블록을 쌓은 것 같은 컨테이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65쪽)
위 인용문을 읽어보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독자라면 눈을 감고도 그 지역의 모습을 환히 떠올려 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인용문 ①은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부산역이다. 광장의 왼쪽에 있는 호텔은‘아리랑 관광호텔’이고, 광장을 지나쳐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그 지점에 빵집과 패스트푸드점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쪽은 부산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중국 화교들의 상점이 즐비해 있는‘차이나타운’거리이다. 인용문 ②는 부산역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영주동 산복도로이다. 인용문 ③은 영주동 산복도로 위에 위치하고 있는 중앙공원(혹은 민주공원)이고, 그곳에는 부마항쟁 기념관과 충혼탑이 자리 잡고 있다. 인용문 ④는 부산터널을 지나 고가도로를 빠져나오면 부두길이 있고, 그곳을 10여 분 달리다 보면 부산시민회관이 위치한 자성대 공원을 마주하게 된다. 그 왼쪽에는 부두 야적장이 있고 수출입 화물을 적재한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는 진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이처럼 화자인 나와 아빠의 공간 이동의 동선에 따라 부산지역의 여러 곳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지역의 특수한 공간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기록하는 지리지의 역할과,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의 특수성과 문화 환경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하는 이중적 효과가 있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화자인 나와 아빠의 임시 생활공간인 부산역을 반경으로 하여 거기와 이웃해 있는 부산지역의 공간에 대한 지리지롤 통해 부산의 공간적 지리와 문화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문화사가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부산이라는 지역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고 있다.
아동문학의 미덕을 골고루 갖추다
아동문학 장르의 산문 문학인 동화와 아동소설은 그 1차적 독자가 아동이기 때문에 일반 성인소설과는 다른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교훈성과 재미성이 함께 어우러진 서사구조와 주제의식, 독서에 있어서 호흡과 지속성이 짧은 어린이의 가독성을 고려한 문체, 그러면서도 적절한 문학적 완성도와 예술성을 지녀야 하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에 있어서 작가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창작의 특수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와 같은 창작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못하면 어린이 독자를 아동문학이라는 자장 안으로 유인할 수가 없다.
안덕자의 작품은 이러한 창작의 특수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작품의 소재와 주제의식, 그리고 문체의 리듬감과 평이성이라는 아동문학의 미덕을 이 작품 속에 골고루 갖추고 있다. 가장 큰 미덕은 독자가 어린이라는 목표의식과 방향이 분명해 창작의 모든 구성 요소가 이를 위해서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때였다. 아빠가 일어나 무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픈 대학생 형에게 다가가 뭐라고 하더니 기타를 받아 어깨에 걸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막 2절이 시작되었다.
아빠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대학생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빠는 대학생에게 목례를 하더니 노래와 기타 반주를 계속했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박자에 맞추어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흔들었다. 노래는 1절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들렸다.
그래 언제나 난 그렇게
꿈을 갖고 살겠네
쉽지 않은 세상인 줄 알지만
그래 꾸밈없는 맘으로
하루하루 살겠네
작은 가슴을 가득 열고서
사랑하려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껴안을 것이 너무 많아
사랑하려네 사랑하려네
내 주위의 모든 아픔을
이 하늘 아래 사는 동안
사랑하려네.
노래가 끝나자 무대 뒤에 있던 아픈 대학생 형이 급히 뛰어 올라왔다. 아빠가 아픈 형에게 기타를 건네주며 막 무대를 내려오려던 참이었다. 아픈 형이 아빠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선생님, 잠시만 계시지요.”
대학생 형은 얼른 마이크를 잡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저희가 지금 부른 노래 <사랑하려네>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이 노래를 직접 작곡하고 노래까지 하신 분이 오셨습니다. 바로 이분이십니다.”
(89〜90쪽)
위 인용문은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 부분으로,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던 화자의 아빠가 삶에 대한 의지를 세우며 희망 찾기를 시도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대목이다. 이를 계기로 아빠는 그동안 그만 두고 있던 음악의 열정을 되찾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 봉사활동을 하게 되고 철도 자원봉사 모임의 주선으로 노조 사무실에 임시로 둥지를 틀게 된다.
인용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어린이 독자를 위해 리듬감을 단절시키는 묘사문을 자제하고 서술(설명)만으로 서사의 추동력을 삼고 있다. 이는 곧 일부 작가들이 비평자나 동료 작가들을 염두에 둔 문학적 묘사를 사용하여 어린이 독자들을 아예 아동문학의 자장 밖으로 내모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 철저하게 어린이 독자의 가독성만을 고려한 문체와 서사 위주의 플롯을 지향하고 있다. 서술 역시 작가의 개입을 피하고 화자인 어린이의 입장에서 인물을 형상화하고 장면을 표현하고 있어, 장편이라는 중압감이 없이 단숨에 이야기를 읽어내는 서사의 추동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장면의 사이에 노래의 가사까지 삽입하고 있는데, 이 노랫말의 내용은 인물의 행동에 대한 동기와 앞으로의 서사를 암시함은 물론 주제까지 응축시키고 있어 사건 전개의 중요한 축이 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의 대화를 요소요소에 적절하게 삽입하여, 그 대화문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고 서사의 동력이 되는 사건 전개까지 노리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이처럼 시종일관 장면과 사건 전개에 아동문학의 미덕을 두루 갖추고 있어 교훈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고 있어, 문학적 완성도의 덫에 걸려 허우적이다 끝내는 아동문학의 자장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동문학의 아킬레스건을 무난하게 극복하고 있다.
아픔을 보듬지 못하는 현실을 풍자하다
이 작품은 가혹한 길 위에서 따뜻한 희망 품기를 그리고 있지만, 아울러 그러한 시련의 통과의례를 통해 그런 아픔과 상실을 품어 다독이지 못하는 우리사회의 차가운 현실을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곧 노숙자들의 지리멸렬한 생존의 현장을 통해 이들을 따뜻하게 품지 못하는 복지 정책의 맹점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눈을 꼭 감았다. 수많은 나비들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비들도 상자 집이 싫었는지 나를 따라온 것 같았다. 손을 뻗어 아빠를 더듬었다. 아빠의 두꺼운 가슴이 내 손에 닿았다. 난 이제 혼자가 아니다. 아빠랑 같이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이제는 눈을 움직이지 않고 밤하늘에 박힌 별 놀이를 해도 무섭지 않다. 옆에 아빠가 있는 방에서 하는 거니까, 아빠의 숨소리가 낮게 들린다.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난 다 필요 없어. 수정이네 집처럼 좋은 집이 아니어도 돼. 아빠, 벽걸이 TV가 없어도 돼. 푹신푹신한 침대와 소파가 없어도 되고 커다란 식탁이 없어도 좋아. 내 방이 없어도 돼. 아빠, 우리 집은 지붕이 있고 아빠와 내가 누울 수 있는 조그만 방이면 돼. 그리고 아빠가 전에 말한 것처럼 우리 엄마의 따뜻한 온기가 아빠와 나를 덮어 주는 방이면 돼. 알았지?”(146〜147 쪽)
위 인용문은 이 작품의 결말 부분으로, 종이 상자로 만든 거처에서 벗어나 작지만 지상의 방 한 칸을 제공 받은 화자의 행복한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화자인 나에게는 큰 집이 필요 없다. 아빠와 함께 누울 수 있는 공간, 거기다 엄마의 따뜻한 온기가 있는 공간이면 바로‘아빠와 나의 행복한 방’인 셈이다. 이런 작지만 소박한 꿈도 들어주지 못하고, 따뜻한 온기가 넘치는 작은 행복의 공간도 마련해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복지 정책의 맹점을 역설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처럼 그런 차가운 현실을 향해 주먹을 쥐고 부르짖지도 않는다. 그저 이 아빠와 아들의 소박한 꿈만은 부수거나 외면하지 말라는 간절한 소망을 우리 사회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조곤조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집 없이 거리를 떠돌고 있는 사람들의 소외와 아픔, 그리고 현실의 차가운 냉대를 그리고 있지만 비관적으로 전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새로운 희망을 위한 도약의 통과의례로 생각하고 있다. 이 작품의 미덕이 바로 그것이다. 아픔을 그리고 있되 가슴이 따뜻해져 오고, 소외와 상실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되 끝까지 희망과 온기의 불씨를 놓아버리지 않고, 현실의 차가움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되 결코 절망하지 않는 용기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훌륭한 미덕이다. 서사가 입체적이지 못하고 평면성에 흐르고 있다는 점, 너무 서술에만 치우쳐 작품에 윤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시와 동화』, 2016년 겨울호 )
첫댓글 이래저래 가혹한 세상에서 다시 떠올리는 따뜻함입니다.
사랑하려네 사랑하려네 ~
노래라도 불러봅니다.
좋은 평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