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에, 또는 다음해를 기다리는 설레는 기분에 동료나 친구에게 술 한잔 씩을 권하는 시기가 바로 이 맘 때다.
하지만 문제는 술이 한잔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1차는 물론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로 인해 우리 몸은 연말이 되면 망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과음은 단기 기억상실을 유발하기 때문에 가급적 피해야 한다 ⓒ free image
특히 과음은 우리의 신체적 리듬을 깨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단기기억 상실까지 유발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술이 깨고 난 뒤, 이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필름이 끊겼다’라는 표현을 쓴다.
필름이 끊기는 증상을 의학용어로 ‘알코올에 의한 단기기억 상실증’이라 하는데,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술만 마셨다하면 필름이 끊기는 현상이 자주 발생할 경우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 불리우는 알코올성 기억 상실증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알코올 남용에 따라 발생하는 기억상실증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Wernicke·Korsacoff Syndrome)’은 알코올 남용에 따라 발생하는 기억상실증을 말한다. 이 증후군은 크게 ‘베르니케 증후군’과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나뉘는데, 이렇게 증후군이 구분되는 이유는 비슷한 증상을 한 사람이 아닌 두명의 과학자가 연구했기 때문이다.
베르니케 증후군은 일반적으로 알코올에 의해 급성으로 나타나는 단기적 증상을 가리킨다. 주된 증상으로는 상황 판단력 부족이나 언어력이 저하되는 ‘의식장애’와 눈 근육의 마비로 인한 경련과 충혈, 그리고 걸을 때 제대로 걷지못하고 비틀대는 ‘보행실조’등이 있다.
반면에 알코올에 의해 만성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가리키는 코르샤코프 증후군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미 뇌가 많이 손상되어 예전의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순행성 기억 상실’과 시도때도 없이 마비 증상이 찾아오는 ‘말초신경장애’, 그리고 때와 장소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인지능력 장애’ 등이 대표적이다.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은 알코올 남용에 따라 발생하는 기억상실증이다 ⓒ free image
따라서 이 증후군은 베르니케 증후군에서 시작하여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발전한다고 보면 되는데, 이 같은 질환의 발생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비타민 B1의 결핍을 꼽는다.
비타민 B1은 우리 몸의 에너지 대사와 핵산 합성에 관여하고, 신경과 근육이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필수 비타민이다. 원래 신체 내에 잘 저장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다가, 알코올이 비타민B1의 흡수는 감소시키고 배설은 증가시키기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비타민B1은 대부분 신체 밖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
대한의학회의 관계자는 “자주 과음을 하게 되면 우리 몸의 비타민B1 저장량이 고갈되면서 불안과 초조, 우울증 등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경고하면서 “이 같은 증상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경우 심하면 정신 이상이나 혼수 상태로도 빠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신경장애의 원인으로 지목된 텔로미어
알코올이 비타민B1을 결핍시켜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증명이 됐지만, 비타민B1 결핍이 어떻게 신경장애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과학자가 비타민B1 결핍 시 신경장애가 일어나는 이유로 텔로미어(telomere)를 지목하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텔로미어란 세포 속에 있는 염색체의 양끝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텔로미어가 짧아질수록 신체의 노화 현상도 빨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텔로미어가 짧아지게 되면 심혈관질환이나 당뇨병, 또는 치매처럼 노화와 관련된 질환 위험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 고베 대학원 의학연구과의 야마기 나루히사(Yamagi Naruhisa) 박사는 과음을 할수록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는 속도를 가속화시킨다는 연구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나루히사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구리하마 국립병원의 알코올중독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130여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DNA를 분석했다. 대조군으로는 이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정상인 120여명을 선발했다.
노화와 관련있는 텔로미어가 신경장애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yourgenome.org
나루히사 박사는 “연구진이 양 그룹의 DNA를 분석한 결과, 알코올 중독자들로 이루어진 실험군의 텔로미어가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며 “이는 과음이 생물학적 노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는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현상이 비타민B1의 결핍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는데, 신체 내에 비타민B1이 모자라게 되면 산화스트레스(oxidative stress)가 증가하여 텔로미어가 더 빨리 짧아지게 된다.
산화스트레스란 유해한 산소인 ‘활성산소’가 체내에 있는 산소화합물과 반응하여 세포와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는 현상으로서, 세포와 조직을 손상시키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암이나 심장병 같은 난치병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나루히사 박사는 “산화스트레스가 텔로미어를 단축시키는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라고 강조하며 “비타민B1의 결핍에 따라 발생하는 산화스트레스는 신경세포도 죽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 같은 질환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연일 계속되는 송년회 자리에서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과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술을 마실때 물이나 이온음료를 함께 마시면 술에 취하는 시간을 더디게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만 같은 음료라 하더라도 탄산음료의 경우는 술과 함께 마시면 금방 취할수 있기에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