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란 무엇인인가 (11)
왜 간화선(看話禪)인가?(2)
위빠사나와의 관계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에 석가모니가 수련(修練)했다고 하는 수식관(數息觀)을 중심으로 하는 위파사나가 많이 도입되어 어느 수행법을 선택해야 하느냐 하는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난(阿難)존자는 명상(冥想)법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마타 행자(samatha-yānika)는 사마타 공부를 먼저 하고, 위빠사나 공부를 한다.고 했고, 그러나 위빠사나 행자는 위빠사나 공부를 먼저 하고, 사마타 공부를 한다.고 했으며, 또 정혜쌍수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공부를 함께 한다. 고 했습니다.
비구(比丘)가 성(聖)스러운 법(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마음을 안으로 확립하고 안정시키고 하나에 고정(固定)하여 삼매(三昧)에 들 때 그는 도(道)를 인식(認識)합니다. 간화선(看話禪)은 마지막 네 번째 명상법(冥想法)에 해당 합니다.
사마타(samatha, 止)는 팔리어로서 (sama는 고요함, 평정, 평화의 의미이다. tha는 지키다, 머물다, 어떤 상태로 남겨지다. 는 동사(動詞)입니다. 한역(韓譯)에서는 이것을 ”멈추다.”는 의미의 지(止)로 번역했습니다.
법상종(法相宗)으로 유명한 신라의 원측(圓測 : 613~696)은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에서, 사마타를 마음이 어떤 한 대상에 머물도록 하는(令住)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2005년 10월 방한한 미얀마의 파욱 아친나 스님은, "불안한 외발수레(위빠사나)를 끌지 말고, 안전한 두 바퀴 수레를 몰아야 한다"며, 위빠사나 수행의 전제조건으로서 사마타를 닦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마타를 닦는 이유는 선정(禪定)을 얻기 위한 것이고, 이를 통해 지혜란 빛을 볼 수 있다. 선정의 힘으로 빛이 나온다. 그 빛을 갖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바사나(毘婆舍那)는 관(觀)을 말합니다. 지(止)는 생각을 그치고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키고 본원적(本源的)인 진리(眞理)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하며, 관(觀)은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지혜(智慧)의 작용(作用)이 되어 사물을 진리에 합치(合致)시키며, 올바르게 관찰(觀察)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 했습니다. 지(止)는 정(定), 관(觀)은 혜(慧)에 해당하며, 여기에서는 오른팔에 그 의미를 부여하였고, 마찬가지로 왼팔은 사마타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비바사나 수행법(修行法) 이전부터 있었던 인도의 정신집중 수행법, 사마타(奢摩他)는 의역(意譯)하여 지(止)ㆍ지식(止息)ㆍ적정(寂靜)ㆍ능멸(能滅)이라 번역합니다. 산란한 마음을 멈추고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법(修行法)입니다. 그래서 비바사나가 관(觀) 수행법(修行法)이라면, 사마타는 지(止)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합쳐 지관(止觀)이라 하며 불교 천태종(天台宗)의 근본(根本)교리(敎理)이기도 합니다.
사마타와 비바사나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선후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사마타에 의해 자아몰입에 들어간 후 지혜를 끌어내어 대상을 보는 비바사나 수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집중(集中)과 관찰(觀察)은 불도수행에 있어서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여기서 사마타는 정(定)에 해당되고, 비바사나는 혜(慧)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관불이(止觀不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마타(奢摩他)>는 능히 없앤다[能滅] 이름하나니 온갖 번뇌를 없애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조복한다 이름하나니 모든 근의 악하고 선하지 못한 것을 조복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고요하다 이름하나니 3업을 고요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멀리 여읜다 이름하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5욕락을 멀리 여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맑힌다 이름하나니 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음의 흐린 법을 맑히는 연고니라. 이런 뜻으로 선정의 모양[定相]이라 이름하느니라.>
<<비바사나(毘婆舍那)>는 바르게 본다<正見> 이름하며, 또 분명히 본다<了見> 이름하며, 또 능히 본다<能見> 이름하며, 두루 본다<遍見>· 차례로 본다<次第見>· (총상(總相), 즉 제법(諸法)이 모두 공(空) 함을 보는 상(相)이 아닌) 각각의 제법이 생멸하는 실상, 즉 별상(別相)으로 본다고<別相見> 이름하나니, 이것을 지혜(智慧)라 하느니라.>
<<가섭아, 나는 온갖 하늘과 사람들에게 항상 <사마타와 비바사나>를 닦아 자기 자신을 조복(調伏)하라. 세간에는 당연히 믿고 좋아하는 바라문과 거사들이 있어서 사리에 공양하게 될 것이다'> 라는, 이런 법(法)을 말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을 타이르셨습니다.
<누구나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를 닦으면 반드시 번뇌를 다할 수 있고, 만약에 그것을 닦지 않는 자라면 번뇌를 다할 수 없으며, 또 이미 그것을 보았거나 알았다면 비록 비천한 종성에 태어났더라도 아라한의 과위를 얻을 수 있느니라. 이제 바다라와 같은 자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으므로 비록 수승한 종족에 태어났더라도 아라한을 얻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래는 평등하게 법을 설하여 치우침이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도의 선교[道善巧]를 닦나니, 도의 선교에는 또 두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하면,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이니, 이것을 두 가지라 하느니라” > <계속>
2026.01.12.중홍(重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