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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 01
S#1. 2000년 12월. 도심의 거리. 낮.
크리스마스 캐롤이 흐르는 거리. 백화점과 대형 건물, 상점 마다 성탄 장식.
쇼핑 백을 들고 바삐 오가는 사람들. 들떠 있는 도시 한복판이다.
지하철역에서 뛰어 나와 정신없이 달리는 주희, 한쪽 어깨엔 가방, 한손에는 바이얼린 케이스.
큰일을 당한 사람처럼 얼이 쑥 빠진 표정. 감격이 벅찰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귤 파는 손수레 지나, 마주 오는 사람들을 피해서 커다란 쓰레기 봉지를 뛰어 넘어, 쇼윈도 구경하는 사람들 지나쳐,
싱그러운 머리칼 휘날리며, 찬바람에 붉어진 뺨, 달리고 또 다리는 주희
S#2. 백화점 앞
양손에 쇼핑백 들도 나오는 사람들과 들어가는 사람들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임시 판매대 앞에서 자잘한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 등, 북적이는 인파속에, 석기가 이쪽 저쪽 살핀다.
주희, 석기를 발견하지만 인파에 막혀 빨리 가지 못하고 소리친다.
주희 : 석기씨!
석기 : 주희야. 왜 글루 오니.
주희 : 차 밀려서 지하철 탔어.
어렵게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는 둘.
이윽고 주희, 날 듯이 다가가 바이얼린 케이스를 내려놓자, 달려들어 껴안는다.
주희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다. 목이 메어 말을 못하다가 곧 팔을 풀어 석기의 얼굴을 감싸더니 여기저기에 마구 입맞추는 주희.
석기, 잠깐 놀라지만 주희 하는대로 선선히 받아준다.
주희 : (입맞추는 사이 사이 한마디씩) 고마워...석기씨...정말 고마워... 애 썼어....훌륭해...멋져...
그 모슴을 보는 사람들 표정 다양하다. 어머어머 놀라거나, 웃거나, 눈을 흘기거나, 혀를 차거나 등등.
아랑곳없던 주희, 입맞춤을 그치고 새삼 목이 메어 석기의 눈을 보다가 다시 벅차게 끌어 안는다.
S#3. 주희 부모 병원 외경.
'혜화 병원' '진료과목 정신과 내과' 간판.
출입문에는 호랑가시나무 장식이 붙어 있고, 이층 건물 뒤쪽으로 살림집과 정원이 보이는.
S#4. 주희 부모 병원 대기실
까운 차림의 주희모가 석기를 끌어 안고 어깨를 두드린다.
일층은 내과, 이층 계단 입구엔 '정신과' 팻말.
주희모 : (눈물 글썽이며) 장해...용해...
석기 :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세희와 정겹게 포옹하며.
주희와 조무사, 간호사가 웃으며 본다.
세희 : 오빠 맘변하믄 안돼?
석기 : 이런..그게 축하야?
주희부가 이층에서 내려온다. 역시 까운 차림.
허리굽혀 절하는 석기.
주희부, 손을 내민다. 악수하는 석기.
주희부 : (한손으로는 석기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잘 했어. 아주 시원해.
석기 : 정말 고맙습니다...두 분이 도와 주신 덕분이예요.
주희부 : 덕분은 무슨.
S#5. 호텔 레스토랑. 밤.
싼타 복장의 밴드가 감미로운 캐럴을 연주중.
주희네와 석기가 와인과 요리 들면서,
주희부 : 3차는 언제야?
석기 : 15일입니다.
세희 : 그건 반항만 안하믄 다 붙는대매? 머리 염색, 귀걸이, 피어싱, 그딴거.
석기 : 응
주희모 : 호호, 재밌다.
주희부 : 어느 쪽으루 가구 싶어? 판검사냐, 변호사냐,
석기 : 글쎄요, 아직,
주희모 : 어느 쪽이든 잘 할 거야.
세희 : 맞아, 석기 오빤 다 멋있을 거 같애.
주희부 : 너무 멋있어 지지는 말아 줘. 그저 소박하게. 알지? 무슨말인지.
석기 : (웃음) 걱정 하지 마세요...제 인생 목표는 유능한 법조인 이전에, 김주희의 좋은 남편입니다.
주희부 : 백점!
다들 : (웃음)
주희모 : 그래두 여보, 남들이 들으면 좀 뭣하지 않아요? 고시붙은 사윗감한테 덕담이라구 겨우, 속보이게,
주희부 : 난 이미 속보이는 사람 돼 버렸어. 다들 사위 삼을라구 학비 대줬다 그럴 거 아니요.
석기 : 억울하세요?
주희부 : 억울하지. 난 정말 니들 둘이 눈 맞은 거 몰랐어.
다들 : (더 크게 웃음)
S#6. 호텔 앞. 밤.
주희부, 석기 다정히 어깨 감아드르고 나온다. 취한건 아닌다. 그 뒤 주희 삼모녀.
주희부 : 너 그 시 알지,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석기 : 네
주희부 : (영어) 두 갈래 길이 있었네...
주희모 : 당신 주제가 또 나오네...
주희, 발레 파킹 딱지를 직원에게 준다.
세희 : 내가 운전하께.
주희 : 안돼, 너 왕초보야.
주희부 : (영시를 외다가) 집까지 10분이면 가는데 몰아. (석기와 주희에게) 세희가 모는 차 타구, 어디 가서 한잔 더 하까?
주희 : (석기 팔을 슬몃 잡으면)
석기 : 저흰 따로 데이트 좀 하겠습니다.
주희부모 : 으응?
세희 : 둘이 뭔 짓을 할라구.
주희부 : 지성인답게 알아서 하겠지 뭐. 어디 은밀한데 가서 쌔쌔쌔를 하든 묵찌빠를 하든.
주희,석기 : (웃음)
주희모 : (짐짓 빈정) 멋있는 아빠야...
세희 : 차 온다.
주희네 승용차가 다가와 선다.
직원이 내리기 바쁘게 세희가 쪼르르 운전석 쪽으로 달려가고, 석기가 조수석과 뒷좌석 문을 연다.
세희 : (어느새 운적석에 앉아) 얼른 타세요. 편히 모시겠습니다.
석기 : 들어 가세요.
주희모 : 그래..
주희부 : (주희모를 태우려다가 문득 정색)
주희모 : 인제 진짜루 한 말씀 하실래나부다..
석기,주희 : (진지해진다)
운적석의 세희, CD를 골라 넣고, 차 옆에서는 주희부가 한말씀중.
주희부 : 우리 사는거 봐와서 알거야. 큰 돈두 명예두 없지만 그저 동네병원 의사루 그거 늘 감사히,
이런 좋은 날 고급 요리 한번 먹을 정도로만, 소시민으루 그저 안전하게, 지역사회 주민들한테 이쁨이나 좀 받으면서,
(주희모를 보며) 맞나?
주희모 : 호호. 맞아요. 우리가 이쁨은 좀 받지.
주희부 : (다시 석기에게) 어차피 두 길을 다는 못가...그럴진대는 후회없는 길을 가야지, 그치?
석기 : 명심하겠습니다...
핸드폰 벨소리. (2000년 형 촌스러운 벨소리)
주희모 : (살피며) 뭐니,
주희 : 아빠꺼네.
주희모 : (핸드백을 열며) 근데 왜 소리가 여기서 나. (전화기꺼내 건넨다)
주희부 : (받으며) 잡혀 사는 거지 뭐. (전화) 네, 김영깁니다...아, 네...
주희부, 돌아서서 몇걸음 가며, 네,네..
주희모 : (주희 부를 본다) 환잔가?...
주희도 석기도 주희부 쪽을 본다. 주희부, 계속 통화하고 있다.
주희부 : (전화) 참아보세요, 한번...
S#7. 정호 거실.
혜수의 떨리는 음성, 전화기를 든 손도 덜덜.
혜수 : 너무 힘들어요. 남편은 오늘두 못들어 온대요. 약이든 술이든 취하지 않고서는,
제발, 박사님, 부탁입니다. 와 주세요. 사모님두 같이요.
S#8. 호텔 앞.
주희부, 전화를 끊고 주희들 쪽으로 온다.
주희모 : 무슨 일예요?
주희부 : 일단 타자구. (주희와 석기에게) 재밌게들 놀아.
석기 : 네.
주희부, 갑자기 주희와 석기를 힘주어 안는다.
주희모 : 어머?
주희부 : 사랑한다 이것들아. 이쁜 것들아.
주희 : 아빠...
주희부 : (안은 채) 석기 너, 이 말 믿어야 돼. 난 너 시험 떨어졌때두 사위 삼을 거였어. 나 너 무지 좋아한다구...알어?
석기 : (얼핏 눈물)...알아요...
이윽고, 주희부모 차에 오르고, 석기가 문을 닫은 후 인사한다.
석기 : 편히들 들어가세요...세희, 운전 조심해라.
세희 : 응, 오빠.
주희 : 세희 너 운전자 보험 안돼 있는거 알지?
세희 : 걱정 말라니까?
차가 떠난다.
주희, 석기, 차를 바라보며 손 흔든다.
S#9. 차 안. 호텔 정원을 벗어나는 중.
주희부 : 강남 쪽으루 한바퀴 돌아보자.
주희모 : 엄머?
주희부 : 한 밤의 드라이브.
세희 : 좋죠....
주희부 : 잠실대교 한번 건너봐.
세희 : 넵.
주희모 : 왜 그래...부녀가..
주희부 : 겸사겸사, 환자 집에두 잠깐 들를 겸. 당신두 같이 와 달래.
주희모 : (아아...누군지 알겠다)
세희 : (운전하며 백미러로 본다) 환자 누구?
주희모 : 얘는, 언제 우리가 늬들한테 환자 얘기 하든?
세희 : 하긴,
주희부 : 앞에봐, 인석아.
세희 : 넵.
S#10. 부근 밤거리.
주희와 석기, 팔짱끼고 걸으며,
석기 : 어디 가구 싶니.
주희 : (선다) 내가 하자는대루 해 줄거지?
석기 : 응...
주희 : 어디든, 뭐든, 말두 안된다고, 웃고 그러믄 안돼?
석기 : (보다가, 주희 코를 가볍게 잡아 흔든다)
주희 : (석기 손을 잡아 내리며 웃음) 난 오늘밤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밤이믄 좋겠어...
석기 : 불길하다 야...
주희 : 농담 아냐...
길 가에 선 둘. 석기가 택시를 세우고 주희를 태운다.
S#11. 석기 방.
촛불만 켜진 방.
비좁은 방안에 책생과 침대 옷장 등이 가득.
주희와 석기가 앉은뱅이 상을 상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으니 더 비좁다.
둘, 투박한 유리컵에 담긴 와인을 한잔씩 들고 있다.
석기 : 이 지겨운 고시촌에서, 이 감옥같은 방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자구?
주희 : 좀 있음 이 방두 작별이잖아...반찬 싸다 건네만 주구 돌아설때마다, 얼마나 가기 싫었는데...
(새삼 둘러본다) 난 이방, 잊구 싶지 않아... 그리울 거 같애...
석기 : (쓴웃음)
주희 : (본다) 석기씨...그거 진심이지?
석기 : 뭐...
주희 : 인생 목표가, 좋은 남편, 좋은 아빠라는 거.
석기 : (문득 쓸쓸...) 응...아버님처럼...
주희 : (알 거 같다...)
석기 : 나한테 그런 아버지가 없었으니까...
주희 : (그래...)
석기 : (싱긋) 그게 나한테 얼마나 아득한 꿈인지, 넌 모르겠지?...
주희 : 음..솔직히 다는 몰라...
석기 : 그건 단순히 돈이 있다구, 권력이 있다구 되는 게 아니잖아... 그렇다구 그런 게 아주 없어서두 안되구...
완벽한 축복이지...아무한테나 허락이 안되는 거야...
주희 : (얼핏 걸리지만) 우리 오늘, 여기서 찻날밤 하믄 안돼?
석기 : (잠깟 멋칫 했다가 웃음) 마, 난 너랑 달라...조심할 게 많지... 너한테 서둘러서두 안되구,
주희, 잔을 내려놓고 가방을 끌어당겨 뒤적인다. 석기, 의아.
주희, 조그만 상자를 꺼내더니 석기 코 앞에 흔들어 보이고는 침대위로 휙 던진다. 콘돔이라는 거 얼핏 알겠다.
석기 : 뭔데 그래. (집으려 하면)
주희 : (잡는다) 적당한 순간에 착용해 주세요. 남자용이니까.
석기 : 너,
주희 : 나 학부 졸업하믄 유학 가야지, 석기씨 연수원 마쳐야지, 결혼까진 한참 남았는데, 혼전 임신은 피해야잖아.
석기 : 주희야...
주희 : 나 작전 열심히 짰지?
석기 : (짧고 강하게 스치는 번민)
주희 : (본다...뜨겁고 간곡하다)
이윽고, 석기가 그 시선에 답하고, 마주보는 둘. 일렁이는 촛불.
석기, 조심스레 주희를 안는다. 주희, 말가니 보다가 눈을 감는다.
둘의 조심스러운 입맞춤 한참.
둘, 떨어져서 마주 보다가 동시에 촛불을 후 불어끈다. 낮게 소리내어 웃으며 끌어안는다...
서툴지만 서로 귀하게 쓰다듬고 입맞추고 하면서,
석기 : 우리 이거 좀 서툰 거지?...
주희 : 난 가상 연습을 좀 했는데...안통하네...
석기 : (나직히 웃음)
주희 : 석기씨...아무두 없이 혼자 춥게 자란 거, 한 맺혀 하지마...
석기 : (안는다)
청춘은 어쩔 수가 없어 격해진다.
S#12. 정호 아파트 거실 밤.
혜수, 주희모의 어깨에 기운없이 기대 앉아 주사 맞을 팔에 약솜을 누르고 있고,
주희모는 혜수 어깨를 다독인다.
주희부, 주사기따위 들어 있는 읍급 키트를 챙겨 가방안에 넣는다.
장식장 위에는 혜수와 정호의 결혼 사진들 몇 개 세워져있다. 정면 사진, 스냅 사진등. 탁자 위엔 찻 잔 두 개.
혜수 : 죄송해요, 맨날 엄살 피워서.
주희모 : 괜찮아요...엄살이구 땡깡이구 다 받아 줄테니 낼부터 나랑 운동 같이해요.
저번에 라켓이랑 운동화 선물한 거, 갖구 있죠?
혜수 : 헉헉 대구 뛰는 거 자신 없는데... 특히나 테니스 같은 거.
주희모 : 일단 시작 해봐요. 잘 가르쳐 주께.
주희부 : 남편하구두 같이 한 번 만나면 좋겠는데...
혜수 : 저 박사님 내외분께 치료 받는 거, 남편은 몰라요. 남편 뿐 아니라 아무두 몰라야 돼요.
서검사 와이프 정신병자라구 소문 나 보세요. 그러잖아두 부장검사 집들이 때 술취해서 행패 부린 걸루 확실하게 찍혔는데.
주희모 :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
혜수 : 이러구 사는거, 챙피하구 속상해요...
주희부 : (안됐다는 듯) 오늘은 푹 잘 수 있을테니까 우선 자구, 내일 병원에 들러요.
혜수 : 따님 혼자 기다리구 있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쪼끔 더 같이 있어 주시면 좋겠어요. 저 졸릴 때까지만.
주희모 : 그럴께...
S#13. 아파트 마당, 밤.
차 안, 세희, 음악에 맞추어 핸들 톡톡.
주희부모가 정호네 동 출입구에서 나온다.
주희모 : 안됐어요...남의 일 같지가 않아...석기두 우리 주희 저렇게 혼자 두면 어떡하지?
주희부 : 무얼 그럴라구...지가 워낙 외롭게 자라서, 안 그럴거야...
주희모 : 저집 남편인들 그러구 싶었겠어요? 일에 열심이다보니 어쩔수가 없는거지?
주희부 : 거 참,
차안의 세희, 부모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음악을 낮추고 시동을 건다.
주희부가 문을 열고, 주희모 탄다.
세희 : 환자는 안정이 됐나요?
주희모 : 아유 모르겠다.
주희부도 탄다.
주희부 : 음악 좀 바꿔 주시지 기사 양반.
세희 : 네네 주인님. (씨디를 고르며) 근데 아빠가 좋아하시는 건 내가 싫단 말이지.
주희부 : 정서 순화에는 옛날 노래가 좋아.
주희네 차 앞을 지나가는 임기사 부부. 불안하게 굳은 표정.
S#14. 단지 후문 부근.
차량도 행인도 없는 어두운 길. 오래된 가로수가 늘어선.
길가에 서 있는 대형 트럭. 운전석의 혁중, 전화를 끊으며 시동을 건다.
S#15. 아파트 마당.
세희 : (볼륨을 높인다) 맘에 드세요?
주희부 : 좋다. (주희모에게) 그치?
S#16. 아파트 단지 후문.
주희네 차가 커브를 틀며 나온다.
임기사 부부가 바로 앞에서 좀 비껴 가고 있다.
부부가 횡단보도를 향하는 순간,
주희부모 : 어어,
세희 : (헉, 눈이 커지는) 뭐야,
전조등 켜지 않은 대형트럭이 임기사를 향해 돌진하고,
트럭에 받친 임기사가 허공에 뜨면서 동시에 미처 서지 못한 주희네 차가 트럭 옆구리를 들이받는 순간,
단지 전체에 울려퍼지는 충돌음.
S#17. 아파트 마당.
경비실 안의 경비원 놀란다.
몇 개의 베란다 문이 열리며 내다 보는 주민들.
S#18. 정호 침실.
혜수 : (누운 채 몽롱한) 무슨 소리지?...(이불 끌어 올리며 눈을 감는다) 몰라...난 졸려...
S#19. 단지 후문 앞.
대형 트럭 운적석의 권혁중, 당황한 표정.
바다에 널부러진 임기사 부부와 삐뚜름 선 주희네 차.
후진 기어를 넣는 권혁중의 손.
차 안. 세희는 핸들에 엎드려 있고 주희모는 주희부 무릎에 고개 파묻은 자세,
주희부, 주희모의 머리 안은채,
주희부 : 세희야,
세희 : (숙인 채) 아, 아빠 나 정신있어.
주희부 : 이, 일단 내리자,
하는 순간, 트럭이 주희네 차를 향해 돌진.
차 안의 세식구, 경악하고, 트럭은 주희네 차를 덮친다.
다시한번 후진하는 트럭. 덜덜 떨면서도 이를 악문 권혁중의 얼굴.
S#20. 고시원 석기 방.
어둠 속 좁은 침대 위, 주희와 석기가 끌어안은 채 누워있다. 벗은 어깨.
석기가 주희 머리칼 만진다.
머리맡 주희 핸드폰 울린다.
멈칫 하는 둘.
주희 : (쩝) 꺼 놓을 걸...
석기 : (손을 뻗쳐 집어 준다) 안 받으면 걱정하셔.
주희 : (전화) 여보세요?...어머? 영미씨...웬일야? 엄마가 전화 해보라구 시켰구나? ...응?
석기 : (주희 머리칼 쓰다듬다가 ???)
S#21. 주희네 병원 뒷방.
속옷 바람 조무사 영미가, 여기 저기 마구 지분거리는 애인 종우의 손을 떼네며 전화중. 둘이 옷벗고 놀던 중이었다.
영미 : (전화) 뭐, 사고가 났다구 전화가 왔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박사님 두 분 다 통화가 안돼. 세희두 안되구...주희씨 지금 어딨어?...
S#22. 석기 방.
주희 : (전화, 더럭 질린) 사고라니, 저, 전화가 어디서 왔는데, 뭐래는데, 글쎄 차근차근 좀 말 해봐.
석기 : (전화기 뺏는다) 영미씨, 내가 묻는 대로 대답해요. 누가 전화를 한 거죠?... (굳어지는) 어디?...알았어요.
(끊고 114를 누른다...) 강남 경찰서요.
주희 : (휘청, 석기를 잡는다)
석기 : (한손으로 주희를 잡으며) 감사합니다. (끊고 한손으로 어렵게 번호를 누른다...)
주희 : (숨이 막힌다) 운전하지 말랬는데, 말랬는데,
석기 : 여보세요? 사고 소식 전해 듣구 전화하는데요, 거기 관할이랍니다. ... 차량번호가...네,
주희 : (겁에 질려) 오삼삼일, 맞대?
석기 : 네?....(천천히 표정이 없어진다..)
주희 : 뭐래? (전화기 뺏으려)
석기 : (피하며) 곧 가겠습니다. 병원으로요.
S#23. 달리는 택시 안.
차마 말도 숨도 내놓지 못하는 둘.
S#25. 병원. 수술실 앞 복도.
의식없는 세희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면, 주희, 울음이 터질 듯 해서 입을 막는다.
석기, 묵묵히 수술실 문을 바라보다가, 주희를 향해 돌아선다. 석기, 주희를 안는다.
주희 : (생각난 듯 부르짖는다) 엄마는, 아빠는,
석기 : (본다...)
주희 : (부르짖는) 어딨어?
S#25. 안치실.
흰 시트 들춰지고 주희 얼굴 일그러진다.
석기, 이를 악물고 참혹함을 참으며 본다.
주희 : 이, 이거, 우리 엄마야? 우리 아빠야?...
석기 : ...
직원 : 확인 됐습니까?
석기 : 네.
주희 : 아냐, 아냐, 안돼.
다시 닾이는 시트.
주희, 시트를 벗기려 달려들고, 석기가 주희를 잡는데, 까무룩 넘어가는 주희..
S#26. 다음 날 새벽. 아파트 단지 앞 사고 현장.
어둠 속, 물탱크 실은 트럭이 유죽하게 다가와 서고 남자들이 민첩하게 내린다.
여기저기 흰색 스프레이로 그려놓은 금. 사람 모양 등.
인도와 담벼락에 낭자한 피. 꺠진 보도블럭. 자동차 파편 등 처참한 흔적들.
남자들이 허연 김과 맹렬한 물줄기 뿜어내는 호스를 이리저리 휘둘러 가며 인도와 차로를 씻어내고,
그 중에 하나는 빗자루로 핏자국과 흰 금을 박박 문지르기도.
물탱크 차 떠나며 저만치서 또 한대의 트럭이 다가온다.
이번에는 솔이 달린 청소차다. 흥건히 고인 더러운 물을 깨끗이 지우며 지나가는 거대한 솔.
S#27. 아파트 단지 앞. 이른 아침.
거리를 오가는 차량들, 단지 안에서 나오는 차들 간간이 보이고,
길 가에는 경차라 한대가 붙어 서 있는 전경 속에,
석기와 권혁중, 경관 두 명이 여기저기 가리키며 얘기 중, 아파트 경비원이 언저리에 옹기종기 서있다.
석기 : (권혁중에게)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승용차가 나오면서 트럭을 들이 받았다면 이 지점인데,
권혁중 : (침착) 나두 피해자예요.
석기 : 댁에 말만 믿을 수는 없죠.
경관1 : 서에 가서 다시 얘기하시죠.
석기 : 현장 보존은 왜 안돼 있는 겁니까, 차체는 그렇다 치구, 위치조차 알 수가 없잖아요.
경관1 : 구청 청소과에서 연락을 잘못 받은 모양인데, 현장 도면은 작성이 돼 있으니까 그거 보면서 다시,
석기 : (버럭) 도면을 어떻게 믿어?!
경관1 : (엉? 반말?)
경관2 : 거, 반말하지 마시고,
정호의 차가 단지 입구를 향해 천천히 우회전 하다가 선다.
정호, 의아한 표정으로 차창을 내리면 경비원 한명이 엉거주춤 다가오며 인사.
경비원 : 인제 들어오십니까, 검사님.
정호 : 무슨 일이예요?
경비원이 뭐가고 뭐라고 하는 동안 경관2, 석기를 달래듯 경찰차에 태우고, 경관1과 권혁중도 뒤따라 탄다.
S#28. 정호 거실.
방금 들으선 정호, 한손에 가방 든 채 바닥의 신문을 집어들고 올라서는데, 혜수가 침실에서 나온다.
까운 차림 부스스.
혜수 : 일찍 오네?...
정호 : (미안한 듯 웃음) 응...(가방과 신문을 소파에 놓는다) 간밤에 또 못잤겠구나?
혜수 : ?
정호 : (웃도리 벗어 소파에 놓으며) 몰랐어?...차사고 크게 났다매?
혜수 : 어머,
S#29. 정호 주방.
정호와 헤수가 들어온다.
혜수 : 사람두 다쳤대?
정호 : (냉장고 문을 연다) 죽구 다치구 했나봐.
혜수 : 그게 그 소리였나부다...나 졸려서 그냥 잤는데.
정호 : (주스 병을 들고 그릇장의 컵을 꺼내며) 그냥 자다니.
혜수 : (얼핏 당황) 어어, 어젠 좀 피곤했는지 잘려구 애쓰지두 않았는데 그냥,
정호 : (안 믿어) 술 마셨어?
혜수 : 술은, 내가 무슨, 냄새두 안나잖아.
정호 : (주스를 따른다) 그럼 수면제 먹었어?
혜수 : 엄?
정호 : 더 큰 병 되기 전에 치료 받아. 요즘은 정신과 다니는 거 흉두 뭐두 아냐.
혜수 : 왜 내 말을 못 믿어?
정호 : 당신이 그 시간에 깊이 자는 사람이 아니잖아...
혜수 : 잘 수두 있지!
정호 : 그랬담 다행이구. (마시려다가)
개수대 안의 씻지 않은 찻잔 두개.
정호 : 누가 왔었어?
혜수 : 어어, 친구들.
정호 : (본다)
혜수 : 왜? 이상해? 난 찾아올 사람두 없어야 돼?
정호 : (주스 마신다)
혜수 : (힐끗)
S#30. 거실.
정호와 혜수 나온다. 혜수는 화제 돌리려 힐끗 눈치보며.
혜수 : 이 동네 사람들이래?
정호 : 몰라
혜수 : 정말 안됐네...아침 먹을거야?
정호 : (소파의 신문 집는다) 씻구 바루 나가.
혜수 : 당신 테니스 안 배울래? 나랑 같이
정호, 침실로 들어가려다 보면,
혜수 : (어설픈 웃음) 나 아는 어떤 부부가 자기네랑 같이 운동하재.
정호 : 나 짤린 담에..
S#31. 침실.
정호 들어오고 혜수 또 졸졸 따라들어온다.
혜수 : 언제 짤릴 건데?
정호 : 몰라.
혜수 : (정 앞을 막아선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짤려? 이렇게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이? 무슨 말만하면 나 짤린 담에래, 맨날.
정호 : 나 화잘실 급한데.
혜수 : (화장실 문 벌컥 열어준다) 그래 들어가!
정호 : 고마워
정호, 들어가면, 혜수, 비죽비죽 울먹이며 화장실 문에 대고 퍼붓는다.
혜수 : 사람들 그렇게 느닷없이 죽는 거 보면서두 그딴 소리하니? 내일 죽을지 한 시간 후에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S#32. 화장실 안.
정호, 변기에 앉아 신문을 보면서,
정호 : 여기 났네. 길가던 행인 두 명에, 의사부부가 죽구, 그 딸은 크게 다치구.
S#33. 침실.
혜수 : ?
S#34. 거실.
혜수 급히 나와 전화건다.
혜수 : (덜덜 떨리는 손) 아닐 거야...아니지...(한참 동안 받기를 기다리는...이윽고 작게) 저, 혜화 병원이죠?...
아침 일찍 죄송합니다만, 원장님 내외분 일어나셨...네?...
S#35. 경찰서. 아침.
권혁중과 석기. 마주 않은 경관1.
권 : (현장 도면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차분히) 여기가 아파트 단지 후문이구, 전 이쪽에서 직진 하던 중이었어요.
단지안에서 자동차불빛이 나오는걸 보긴 했지만 파란 불이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멈출 줄 알았기 때문에.
석기 : 인도에 사람이 걷구 있던 것두요? 그것도 못봤나요?
권 : 몰랐죠. 이 차가 제 트럭을 들이받구 꺾어져서 그 사람들 칠 때까지.
석기 :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김세희가 의식을 되찾으면 다 밝혀져요.
권 : 난 더 할말없습니다.
석기 : 난 알구 싶은게 아직 많아요. (경관에게) 다시 조사해주세요. 현장 검증부터 다...
김주희 김세희 대리인 자격으로, 이 조서에는 서명 할 수 없어요.
경관1 : (골치아파)
석기 : (선다) 병원에 가 있겠습니다.
S#36. 영안실. 그날 낮.
혜수가 들어선다.
주희 부모의 영정이 놓여있고, 빈소에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 웅성웅성 하는 가운데, 영미가 삐질삐질 울며 서 있고,
석기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멱살 잡혀 시달리면서도 침착하게,
석기 : 아드님이 저희 차에 변을 당했는지, 아니면 트럭에 먼저 치었는지, 전 그게 경찰 재조사에서 밝혀지길 바랍니다.
그게 안되면 저라도 밝힐 겁니다. 저를 돕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예요. 저랑 한편이 돼주셔야 합니다.
멱살남 : (숨진 임기사의 동생. 멈칫)
멀찍이 홍인기(40대 중반. 정장 외투 차림)가 그런 석기를 물끄러미 보다가 돌아선다. 아무도 그에게 누길 주지 않는다.
혜수, 영미에게로.
혜수 : 저, 고인들과는 어떤,
영미 : (흑흑) 간호조무사예요..정말 좋으신 분들인데, 흑,
혜수, 잠깐 머뭇거리다가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 내민다.
혜수 : 저, 이거.
영미 : (울다말고 얼결에 받으며) 누구세요?
혜수 :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그 안에 명함이 있어요. (급히 돌아서다가) 따님들은요?
S#37. 중환자실.
세희가 의식없는 채로 누워있고.
S#38. 중환자실 앞.
주희, 촛점없는 눈으로 멍하니 늘어져 앉아 있다.
저만치 혜수가 보고 있다가 돌아선다.
혜수 : 나 때문이야, 나, 나 때문,
정신없이 가는 혜수.
S#39. 화장실.
봉투를 여는 영미의 손.
명함(정호의 것)과 여러장의 수표를 꺼내 수표는 주머니 넣고, 명함과 봉투를 찢으려다가 얼핏 멈춘다.
S#40. 검찰청 정호 방.
정호 : (전화) ??...웬일야...
S#41. 검찰청 구내 다방.
정호와 혜수 마주 앉아서.
정호 : 누군데...
혜수 : (더듬더듬 둘러댄다) 어어, 누가 취직 부탁을 하는데, 거절을 못했어... 당신 정도면 도울 수 있을 거라구 생각했나봐...
정호 : (짐짓 비싯 웃음) 나, 힘 없어...바쁜 척만했지...
혜수 : 그래두 기억해 뒀다가, 만약에 연락이 오면 당신 힘껏 도와줘, 응?
정호 : (의아하지만) 알았어...근데 나 어떻게 될지 몰라... 정말루 짤릴수두 있구...
혜수 : ???
S#42. 화장장, 낮.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관.
울부짖는 주희를 붙잡는 석기.
S#42. 병원. 중환자실 안. 며칠 후 저녁.
의식 없는 세희. 멍하니 넋나간 주희. 묵묵히 서 있는 석기.
간호사가 석기에게 쪽지를 준다. 석기, 잠깐 보다가 받아서 급히 펴본다.
주희는 세희만 보고있다.
석기, 급희 나간다.
S#44. 동 일각. 저녁.
석기,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
임기사 동생 음성 : 듣기만 하세요...몇가지 중요한 얘길 할게요...
S#45. 동 복도. 밤.
석기, 생각에 잠겨 걷다가 문득 보면, 주희가 실성한 듯 맨발로 마구 뛰어나간다.
석기, 벌떡 일어서서 뒤따라 간다.
S#46. 병원 앞. 밤.
석기, 한참을 뒤쫓다가 간신히 주희를 붙잡아 마구 흔든다.
석기 : 제발 이러지 마.
주희 : (흔들리며 중얼거린다) 그, 그 날 밤에, 우리, 그러구 있을 때, 사고난 거지?...
석기 : 알아! 미치겠어, 나두!
주희 : 나 어떻게 살어?...우리 왜 살아있어?...
석기 :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고스란히 뒤집어 써. 보험금두 못 받구, 있는 거 다 팔아 합의금으루 내줘야 할 판이야,
까딱하단 세희 치료비두 없어!
주희 : (물끄럼 보다가 돌아서고)
석기 : (끌어 안는다) 제발 주희야 나 힘들게 하지마.
주희 : (뿌리치려)
석기 : (움직이지 못하게 안은채로) 할일은 많은데 도와주는 사람 아무두 없잖아.
이러지 말구 쪼끔만 더 참아봐. 기다려 봐.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테니까....
S#47. 병실
주희를 눕히는 석기.
잠든 주희를 내려다 보다가 돌아서는 석기.
S#48. 어느 주택가 골목. 밤.
석기, 바삐 간다. 미행자가 있다.
석기, 빌라 앞에 선다. 미행자, 몸을 숨긴다.
석기, 이층 창문을 본다.
골목 입구에서 자동차 불빛. 석기, 비켜선다.
자동차가 빌라 앞에 서고, 권혁중이 내린다.
석기, 다가선다. 멈칫 했다가 무표정해지는 권.
석기 : 우리 차에 치인 사망자 두명에 대해서 좀 알게됐어요...
권 : (시선 바낀 채)
석기 : 남자는 한때 신지나라는 여배우 운전기사였구, 여자는 그집 가정부였대죠?...
더러운 심부름을 하두 많이 시켜서 관두겠단 소릴 자주 했다던데...
권 : (돌아선다)
석기 : (막아선다) 협상해요. 우린 보험금만 타면 돼. 당신 과실 일부만 인정해줘.
권 : (본다..) 죽고 싶냐?...
석기 : (멱살 잡고) 그럼 한가지 더 말하까요? 신지나 그 여자, 정우석이라는 사람 애인이라며? 운전기사랑 가정부가 자기 사생활
너무 많이 알구 있는 거, 부담스러웠겠죠. 근데 마침 당신 트럭에 치어 죽었어. 그거 분명 인과관계가 있지 않나요?
권 : 니 애인네 차에 치어 죽었어. 우연히. 재수없게.
석기 : 우연히, 재수가 없는건 우리 쪽이야. 왜 하필 그날 그 시각에 당신 트럭을 들이 받았겠냐구..
당신이 그 사람들을 깔아뭉갠 다음인지 전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새 석기 뒤에 다가와 있던 미행자가 달려들어 석기 입에 마취제 거즈를 덮는다.
S#48. 어느 저택 지하실.
의자에 묶여 고통스럽게 몸을 뒤트는 석기. 눈과 입에 초록색 테이프 붙여져 있다.
권혁중이 의자 뒤에 서서 석기의 뒤로 묶인 두 손을 어떻게 하는지 힘도 안들이는 것 같은데 마구 괴로워하는 석기.
S#50. 검창정 부장 검사실. 낮.
부장 : 정우석 비자금 유출 껀 캐구 있대매?
정호 : ....저 혼자 튈려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부장 : 타이밍이 받쳐줘야 물건이 되지.
정호 : 힘싸움 하는 데 이용하실 생각두 마시구요...
부장 : 자네들 그런 사고방식 정말 맘에 안들어.
정호 : 저희두 선배님들 여태까지 해오신 거, 맘에 안듭니다.
부장 : 둘 중에 택 해. 사표 낼래, 그거 손 뗄래.
정호 : (본다...)
S#51. 대법원 일각.
제 00회 시법 시험 3차 고사장이 써 있고,
S#52. 대기실.
직원 : 수험번호 0000번 윤석기씨, (둘러본다) 윤석기씨...
대기자들도 의아하게 둘러본다.
직원 : 윤석기씨...
S#53. 지하실.
석기, 여전히 눈 가리우고 묶인 채 허겁지겁 빨대를 빤다. 컵을 대주고 있는 권...
권혁중이 컵을 치우자, 석기, 아쉬운 듯 입술을 핧고, 권혁중, 석기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민다.
석기, 침을 뱉는다.
석기 : 더러운 하수인 새끼.
권 : 이게 증말,
석기 : 너 임기사 부부, 고의로 죽인거지...정우석이 시켜서...
권 : (허...) 너 오늘이 며칠인지 아냐?
석기 : (철렁하는)
권 : 15일이야...사법시험 3차...
석기 : (떨리지만) 그걸루 날 겁 줄 생각은 마. 오늘 못가두 소명기회가 주어져.
권 : 오오, 그렇구나.
석기 : (이를 악무는데)
권혁중, 의자에 묶인 끈만 풀어준다. 손과 발은 그대로.
석기, 비틀거리며 일어서는데, 권, 석기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고꾸라지는 석기.
권혁중, 발로 이리저리 굴리듯 나동그라진 석기를 차면서,
권 : 미안하다야...장래의 명판사 명검사를 이렇게 대접해서...
석기 : (악에 바쳐) 너 이 값을 어떻게 받을려구.
권 : 이게 아직두,
잠시 후. 옷까지 벗겨진 채 갖가지 치욕스러운 고문을 다 당하다가 결국 실신하는 석기.
S#54. 지하실.
석기, 발가벗기운 채 여전히 손발 묶여 구석에 틀어박히듯 오그려 앉아 덜덜 떨고 있다.
석기 : 저,추,추운데요...
권 : 목숨보다 중한 건 없지?...
석기 : (떨기만)
권 : 있어, 없어?
석기 : (마구 끄덕인다) 없어요.
권 : 짐심이야?
석기 : 살려 주세요.
권, 다가가 석기 눈 가린 테이프 찍 떼낸다.
눈이 부셔 일그러지는 석기얼굴. 자신의 몸을 보고는 수치심에 새삼 더 일그러지며 울먹.
S#55. 주희네 집 거실.
어둑하다. 값나가는 물건은 이미 다 없어지고 버릴 것만 잔뜩. 을씨년스럽다.
주희, 믿을 수 없다는 듯 둘러보는데, 인기척. 흠칫 돌아보는 주희.
석기가 문간에 그림자처럼 서 있다.
석기 : 주희야.
주희 : 내 정신 봐, 깜빡했어...아무 것두 없는데...(결국 울먹) 다 실어갖구 갔는데...(말 잇지 못하는)
석기 : (약해지지 않으려 안간힘)
주희 : 오빠! (다가가려)
석기 : 그냥 있어!
주희 : 오빠, (새삼 다가서려)
석기 : 그냥 거기 있으라니까!
주희 : (더 질리는...)
석기 : ...내 얘기, 잘 들어.
주희 : (본다...)
석기 : 너 알지? 니가 얼마나 좋은 여건 속에서, 얼마나 많이 사랑 받으면서 살아왔는지...
주희 : (더듬더듬) 아, 알아...
석기 : 알면, 인제부터, 남들이 누리지 못한 거 다 누려본 그 힘으루 견뎌 내. 단 한번두 못 가져 본 사람들 생각해서라두,
세상 아무두 원하지 말구, 바보같이 남한테 속지두 말구,
주희 : (황황히)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석기 : 인제부턴 너 혼자
주희 : 오빠, (새삼 다가서려)
석기 : (버럭) 그런 거 없어두 살아. 정신 바짝 차려.
주희 : (마구 끄덕이며) 응, 그러께. 정신 차리께, 인제 오빠 힘들게 안하께. 떠나지만 마,
우리, 서로, 그, 그래, 오빠 나 많이 사랑하잖아.
석기 : 어떻게든 다 이겨내...
주희 : (본다. 멍...)
석기 : (외면) 다 이겨내. (돌아서는데 얼굴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나두 너희 부모님처럼 죽었다구 생각해라.
주희 : (울부팆는) 살아 있잖아. 사랑하잖아.
석기 : 난 너한테 이미 죽은 사람이야. 죽은 사람이 무슨 사랑을 해!
주희 : 나 사랑하지 않아두 돼. 내가 어떻게 버티는지, 지켜보기만 해 줘. 오빠 말대루 다 이겨낼게. 제발,
석기 : 잊어버리란 말야, 이 바보야!
주희 : (입술만 달싹이는) 살아 있는데....살아 있는데, 어떻게 잊어버려.
석기 : (보다가 돌아선다...눈에는 눈물, 입으로는 잔인한 말) 너, 가진거라구는 앉지두 서지두 못하는 불구 동생 뿐이야...
그런 너한테, 내 인생 발목 잡히긴 싫어....당연히, 맘 편하게 사랑할 수 있는 여잘 택해야지...그렇지 않니?...
석기, 나간다.
주희 : (스르르 눈 감기는) 그랬구나...그런 거구나..(혼절)
S#56. 어느 호텔 밀실.
문이 열리고 석기와 권혁중이 들어선다. 혼인기가 일어선다.
권혁중이 목례를 하고 좀 떨어져 서면, 홍인기, 석기 앞으로...
석기, 초췌하지만 말쑥한 차림에 공손하지만 착잡한 표정.
홍인기 :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내민다) 고생했네.
석기 : (...멍한 채로 마주 잡는다)
홍인기 : (잡은 손에 힘을 주는) 인제 우리 식구 돼야지?...
석기 : ...네...
홍인기 : (석기의 어깨를 안는다)
석기 : (표정없이 안기는, 끝이다. 그리고 시작이다...)
S#57. 밤하늘 향해 이륙하는 비행기.
S#58. 주희 집 거실. 밤.
주희가 벽난로에 사진 따위 던져 넣고 있다.
발레복 차림의 세희, 주희의 연주회 장면, 주희모가 피아노 치고 주희가 연주하고 주희부와 세희가 노래하는 가족 사진 등,
차례로...그리고, 석기와 찍은 사진들 하나씩...
불길 바라보는 주희. 한참.
주희, 일어서는데, 바닥에 깨진 씨디 케이스. 안네소피 무터나 뭐 그런 종류의 바이얼린 연주곡집.
떨리는 손으로 집어들어...벽난로 안 사그라드는 불길 향행 던져넣고 돌아서다가, 휘청 주저앉는다.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다, 아랫배를 움켜쥐고 풀썩... 숨을 몰아쉬다가 헉 질린다.
내려다본다. 얼핏 보이는 피. 하혈. 유산이다.
S#59. 오래된 동네 골목. 낮.
전세 월세 반지하 점포 따위 종이쪽 붙어 있는 부동산에서 나오는 주희와 부동산 아지매.
주희, 아지매를 따라 시장길처럼 어수선한 점포들 앞을 지나간다.
S#60. 엉성한 다가구 주택.
주희, 아지매 뒤따라 반지하로 내려간다.
S#61. 또 다른 골목.
총총대 올라와 또 언덕길 올라가는 주희와 아지매.
S#62. 6인용 병실.
주희와 남자 조무사가 세희 누운 이동 침대를 밀고 들어온다.
세희를 침대에 옮겨 누이고, 조무사가 나간다.
주희, 배웅하고 세희 곁으로...
멍하니 천장 바라보는 세희. 곁에 앉은 주희.
세희 : ...언니 혼자 이사했어?...
주희 : ...응...
세희 : ...다 나 때문이라서....언니가...맘껏 슬퍼하지두 못해...
주희 : (세희 귀밑머리 만지작)
세희 : (소리없이 눈물)
주희 : (울지 않는다) 고마워 세희야...이렇게 말두 하구, 눈물두 흘리구, 해줘서... 정말 고마워...정말야...나, 뭐든 할 수 있어...
S#63. 검찰청사 안 정호 집무실.
S#64. 정호 방 안.
정호 : 김주희씬가?
주희 : (활짝 반색) 네. (허리 굽혀 인사하고는) 고맙습니다.
바닥에 여기저기 상자들, 반쯤 비워진 책장, 책상 위 서류 더미와 책더미 '검사 서정호'라 쓰인 명패는 삐뚜름 놓여있고,
정호 : 좀 앉지.
주희 : (멋쩍은 웃음) 괜찮은데요?
정호 : 그럼 서서 얘기 해. 전공이 뭐야?
주희 : 음악대학 기악과, 바이얼린 전공, 3학년까지 다녔어요.
정호 : 직장 경험은,
주희 : 없습니다.
정호 : 급사밖에 못하겠네.
주희 : 실은 그것두 과분하다구 생각해요...준비된 급사가 아니니까... 짤린 경험두 좀 있구, 그러면 좋을텐데...저, 그냥 갈까요?...
정호 : (손을 멈춘다) 어딜,
주희 : 제 주제가 좀,
정호 : (다시 손을 놀리며) 급사 과분하다구 생각하면 급사 보조부터 시작 해.
주희 : (본다)
정호 : 나 며칠 쉬고, 변호사 사무실에 출근할 거니까, 그때 보자구, 전화 할게.
주희 : (반신반의...)
정호 : 연락처 두구 가.
주희 : (허리 굽신) 고맙습니다!!!
정호 : 이만 가봐.
주희 : 네.
S#65. 삼성동 쯤 거리. 아침 8시 40분 쯤.
자막 5년 후.
출근길 발걸음 바쁜 직장인들.
지하철 입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그 중에 주희.
하영 소리 : 김주희.
주희, 넘어질 뻔 하다가 엉거주춤 서서 돌아 본다.
주희 : 어, 하영아...
하영이 택시 옆에 서서 거스름을 받고 있다. 큰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차림새.
주희, 기다린다.
하영, 동전까지 다 챙겨받고서 주희를 향해 뛰어온다.
출근길에 만나는 일이 자주 있으므로 반색하거나 아침 인사 따위없이 나란히 종종걸음 하면서 이야기.
크지도 높지도 않은 목소리로 툭툭 주고 받는.
하영 : 어젠 뭐했니?
주희 : 세희랑 바람 쑀어.
하영 : 세희, 디게 좋아했겠다.
주희 : 응...
하영 : (주희를 힐끗) 나 외박한 티 안나지?
주희 : (궁금하지 않지만 역시 힐끗) 집에서 오는 거 아냐?
하영 : 사기꾼 하나 떼버리구 새벽에 찜질방 들어가 뻗어버렸어...어으.. 어디서 꼭 나같은 놈이 걸려 가지구...
주희 : 신상 파악 좀 잘 하지, 왜,
하영 : 신상이야 우리 사무실 사람들이 젤 확실하다 뭐... 내 떡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주희의 전화벨 소리.
걷는 채로 가방에서 전화 꺼내는 주희. 번호를 보고는 좀 명랑하게.
주희 : 네, 변호사님...아뇨, 거의 도착했어요....
하영 : (힐끗) 아침부터 찾냐..
주희 : 네에...네...네...알겠습니다...
하영 : 왜?
주희 : 새벽에 나왔나봐.
하영 : 오늘 그 팀 공판있니?
주희 : 응.
하영 : 아침 사오래?
주희 : (좀 더 빠르게 걷는다) 빨리 가자.
S#66. 샌드위치 가게 앞.
저만치서 주희와 불만스런 하영이 종종종 뛰어온다.
하영 : 천천히 가. 오분 늦게 먹는다구 어떻게 되니?
작장인 차림새의 젊은 여자가 한손에는 커피, 한손에는 가방, 입에는 빵을 물고 어깨로 문을 밀며 나온다.
주희와 하영, 들어간다.
S#67. 가게 안.
주희, 까다롭게 주문을 하고 하영이 곁에서 곱지 않게 본다.
주희 : 참치 하나 콘비프 둘 주시는데요, 참치는 양파 얹지 마시구, 대신에 양상추, 케이퍼를 더 넣어 주세요.
빵에다 머스타드 많이 발라서요.
S#68. 높다란 건물 입구.
아직 좀 일러서 출근하는 사람들 드문드문,
샌드위치 상자를 든 주희와 하영이 뛰어와 회전문으로.
S#69 정호의 방.
회의용 책상 가득 소송 관련 자료를 펴놓고 앉아있다.
사건 번호와 원고 및 피고의 이름, 날짜 등이 적혀 있는 '강제조정 결정 조서'가 얼핏 보인다.
정호가 모니터를 보면서 주로 말을 하고 유리는 노트북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변론서를 수정하는 중.
재서 역시 노트북으로 자료를 찾아 확인. 낮고 빠르게 오가는 대사
정호의 대사 중간 쯤에 주희가 들어온다. 다들 아무도 눈길 안주고 얘기 계속한다.
주희가 샌드위치 상자를 열어 조심스레 밀어놓고 빈 생수병과 빈 커피 주전자를 집어들고 다시 나갈 때까지.
정호의 책상 뒤쪽 벽에는 조그만 오디오 셋트와 씨디들. 무선 헤드폰, 리모턴 따위.
정호 : 아니다, 순서를 바꿔봐. 피고측 주장에 대한 반박을 뒤로 빼고, 원고측 피해 상황, 주변 정황 먼저.
재서 : 증언이 없는데두요?
유리 : (마우스 조작하며 재서를 힐끗)
정호 : (벌컥) 그러게 누가 증인 놓치래? 나, 너 반쯤 죽여 놓구 싶어. 알어?
재서 : ...죄송합니다...
유리 : (재서를 힐끗)
정호 : (샌드위치 집으들며) 양파 뺐지?
주희 : (나가려다) 네.
S#70. 탕비실.
주희, 빈 커피 주전자와 빈 생수병들 싱크 위에 놓고 다시 나간다.
S#71. 갱의실.
주희가 들어오고 하영이 거울 앞에서 서서 화장을 고치고 있다. 투피스 차림.
주희, 서둘러 옷장안에 가방 집어넣는다.
둘 나가려는 참에 민지와 은애가 들어온다.
민지,은애 : 안녕하세요.
주희 : 안녕.
하영 : 10분만 일찍들 나와 봐, 응?
S#72. 비서실
온갖 잡일을 전담하는 곳. 월급으로나 업무로나 이곳의 최하급 부서.
주희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선 채로 컴퓨터, 프린터 등의 사무기기에 전원을 넣고, 프린터에 좋이 챙겨 넣는 등, 민첩하게 움직이는
복도 쪽은 키 높이의 파티션으로 반쯤 가려져 있고, 벽 쪽으로는 탕비실로 통하는 문.
책상 세개쯤. 그 중의 하나가 주희의 것이다.
S#73. 대회의실.
커다란 타원형 테이블(20명 쯤 앉을 수 있는)과 프로젝션 등의 기기들.
벽에는 벽시계가 여러개 붙어있다. 세계 각 대륙의 대도시들 현지 시각을 가리키는.
주희가 자리 마다에 자료 한 부 씩을 놓고, 은애는 자료 옆에 생수병 하나씩 놓는.
S#74. 안내데스크.
하영, 민지가 나란히 앉아 컴퓨터를 켜거나 메모장 따위 챙기는 모습.
S#75. 출입문 앞.
법무법인 '송현'이라 쓰인 팻말이 붙어 있고, 자동 유리문 안쪽으로 안내 데스크가 보인다.
송이령과 장기순이 이야기 주고 받으면서 자동문 들어서면 하영들, 의례적인 눈인사와 목례.
변호사들이 한명, 두어 명씩 그렇게 계속 들어간다. 옷차림은 정장 혹은 반정장.
고영중(대표 변호사)이 들어서면 하영과 민지, 일어서서 인사.
고영중, 건성으로 끄덕여보이고 안쪽으로.
민지 : (작게) 대표님 저번 달에만 1억 챙겼대요.
하영 : 그럼 뭐하냐?
S#76. 복도.
영중, 간다.
하영 소리 : 얼굴에 마누라랑 안함. 그렇게 딱 써 있는데.
카메라가 영중 및 중년의 파트너들을 훑으면,
하영 소리 : 내가 여길 관두게 된다면 그건 아마 저 인간 싸대기를 갈기고 쫓겨나는 걸거야...
아무리 마누라랑 안해두 그렇지, 왜 걸핏하면 허락두 없이 남의 엉덩이를 만지는지 원,
S#77. 송무 지원실.
사무장들, 계장들, 자료 및 회계 담당 직원들, 서둘러 업무 시작하는 분위기.
S#78. 회의실.
은애, 의자들 바로 놓고, 주희는 무선 마이크 서너개를 테이블 중간중간 놓는다.
송이령, 장기순이 변호사들에 섞여 들어온다. 그 뒤, 정호가 나타난다.
주희와 은애, 나간다.
S#79. 회의실 앞.
주희와 은애가 나오고 유리, 재서 들어가면서,
유리 : (이동식 하드디스크를 건넨다) 김주희씨, 이거 프린트 좀,
주희 : 네.
S#80. 대회의실.
전제 정례 회의 중.
영중이 주도하는 보고 및 토론의 시간. 다들 자료를 넘겨보며 혹은 노트북을 두르리며 듣고 있는.
영중의 가까이에는 40대 50대의 파트너들, 파트너 중에 정호와 이령이 젊은 축,
재서는 말석, 유리, 기순은 신참이라 탁자없는 의자에.
정호, 자료를 넘기며 듣고 있따. 옆자리 송이령도.
젊은 변호사들 자리. 낙서하는 장기순과 그 옆의 이재서, 오유리.
S#81. 안내 데스크.
하영 마우스 쥔 채 모니터 지그시 보고 있다. 이재서의 사진과 약력.
하영 소리 : 이재서, 이 순 날라리...순진한 오유리한테 헛된 희망 주지 말구 나랑 놀지?
재서가 복도 쪽에서 나온다.
재서 : 양하영씨,
하영 : (멈칫했다가 웃음) 네, 이변호사님. (눈치껏 화면 지운다)
재서 : 기사 한분만 대기 시켜 줄래요?
하영 : 알겠습니다, 이 변호사님.
재서, 간다. 하영의 시선이 한참 따라가고,
S#82. 대회의실.
재서가 들어온다.
영중 : 오늘 저녁에 선발대 한명이 도착합니다. 알렉스 윤이라는 한국인 변호사예요.
정호 : (작게) 무슨 소리야?
이령 : (작게) 얼른 가기나 해.
저만치 재서가 유리와 함께 서서 자신의 손목 시계 가리키며 빨리 가자고,
정호 : (알았다는 신호 보내며 일어선다) 전 공판때문에,
영중 : 어, 그래요.
S#83. 복도.
정호, 유리, 재서가 나오자, 주희가 서류봉투를 유리에게.
주희 : 여기,
유리 : 어, 고마워요.
주희 : 변호사님, 옷,
정호 : 어? 어어,
재서 : 기다릴게요.
정호 : 그래, (방으로 들어가며) 김주희 나 잠깐만.
S#84. 정호 방.
정호가 정신없이 넥타이 바로 매고 옷걸이의 양복 상의를 벗겨내 입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며 지시하고.
주희, 단정히 서서 듣는다.
정호 : 저녁에 식당 예약 해 줘. 매년 이 날 가는데 알지?
주희 : 네.
정호 : 꽃은 알아서, 저녁 시간에 서프라이즈루.
주희 : (조금 웃음) 빨간 장미 싫어하신다는 거 알아요.
정호 : 어, 그리구,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생일 선물 좀 대신 사다줘. 수고스럽겠지만.
주희 : 저, 수고는 얼마든지 괜찮은데요, 저기, 제가 사모님 취향두 모르구,
정호 : (책상 위 서류 챙기며) 내가 저녁 때까지 시간이 안난다니까? (하다가 주희의 목 언저리를 힐끗 보고는) 그거 이쁘네.
그런거 하나 사.
주희 : (자기도 모르게 목걸이를 만진다) 이건 모조품인데,
정호 : 진짜를 파는 데두 있을 거 아냐.
S#85. 안내 데스크.
재서 : (전화)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시간 되면 전화할게...바이. (끊으며)
유리 : 애매하구 모호하네요. 거절을 늘 그런 식으루 해요?
재서 : 나?
하영 : (힐끗)
정호가 바삐 나온다.
정호 : 가자.
유리, 재서 : 네.
하영, 민지 : 다녀 오십시오.
셋, 건성으로 답하고 간다.
하영, 지그시 본다.
S#86. 갱의실
주희가 들어오고 하영이 거울 앞에서 서서 화장을 고치고 있다. 투피스 차림.
주희, 서둘러 옷장안에 가방 집어넣는다.
하영 : 오유리하구 이재서, 뭔 냄새 안나데?
주희 : (건성) 무슨?
하영 : 너, 오유리가 이재서한테 꽂힌 거 몰라?
주희 : 넌 그런 걸 어떻게 다 아니...
하영 : 누가 누구랑 사귀냐, 누가 누구랑 잤냐... 난 오로지 그거만 관심있어. (스카프를 고쳐매며) 우리 상전들 얽히구 섥힌
연애 관계 속에 행여 누군가 찬밥 신세되면, 그 틈새나 한번 노려보겠다, 하는 심뽀지...
그들만의 리그에 정식으루는 끼어들 수가 없으니까.
주희 : 말좀 순하게 해.
하영 : 어떻게 순하게 하냐? 연봉 차이루 신분이 갈라지는데, 갓 들어온 초짜들이 우리 연봉 다섯배씩 받아가구,
2, 3년만 지나면 열배, 중견들부터는 열받아서 아예 계산 하기두 싫어지는데, 말이 순하게 나와?
주희 : 신경끄면 되지?
하영 : 너나 꺼!
S#87. 백화점. 고급 브랜드의 보석 가게. 짐심시간.
주희가 자기 목걸이 가리키며 이런 거 없냐고 묻는.
S#88. 고급 꽃가게.
주희가 꽃을 고른다. 세심하게 살피다가 하나씩 가리키면, 플로리스트가 메모한다.
주희, 주문서에 기록한다. 받는 사람 칸에 레스토랑 이름과 '차혜수' 보내는 사람 '서정호'
특기 사항 '서프라이즈' 등을 적어 넣는다.
S#89. 법정. 몽타주.
정호 : 원고측 증인을 자청한 주민이 어젯밤 갑자기 잠적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족취록에 싸인만 남겨 놓은 상태였습니다. 누군가 심리적, 혹은 물리적으로 몹시 부담을 준게,
상대측 : (선다) 이의 있습니다.
시간 경화.
정호 : 현소유자인 피고가 별장 부근의 부지를 매돈한 전 소유자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서류상의 소유자가 단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고, 소유자가 바뀐 후에도 이전 소유자와 그 애인으로 보이는 모 여인이
변함없이 밀회 장소로 애용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때,
유리, 재서 : (벙하니 놀란 표정. 저런 황당한 말을)
상대측 : 이의 있습니다.
판사 : 인정합니다.
시간 경과.
정호 : 현 소유자의 신원을 확인한 바로는, 전 소유자와 동행하는 모 여인과 인척 관계에 있다는 것이,
상대측 : 이의 있습니다!
판사 : 인정합니다.
정호 : 이상입니다. (홱 돌아서는)
S#90. 고등 법원 청사 앞. 어스름.
정호, 유리, 재서가 나온다. 정호는 기분이 더럽고, 재서는 여전히 죄인. 유리는 재서가 맘에 안들어.
유리 : 확인두 안된 걸 사실처럼 적시하는 건 손해 아니예요?
정호 : 미안하다, 엉겨서.
재서 : 제 탓이예요. 증언두 확보 못하구..너무 안이했어요.
유리 : 알면 고치세요.
정호 : (힐끗) 왜 툭탁거려? 둘이 사귀냐?
유리 : 네?
재서 : (빙긋) 그런거야?
유리 : (뭐? 눈꼬리 올리는)
재서 : (정호에게) 한 잔 해야 하지 않나요?
정호 : 했다구 쳐. 약속 있어.
차가 다가온다. 차에 오르는 셋.
S#91. 고급 식당. 저녁.
정호와 혜수 말없이 식사 중. 한켠엔 목걸이 케이스와 꽃바구니.
혜수 : 그 앤 잘 지내?
정호 : 누구?
혜수 : 김주희
정호 : 어어, 뭐, 걘 늘 똑같애...일두 그런대로 잘 하구...
혜수 : 사귀는 남자 없대?
정호 : 몰라...그럴 틈이나 있겠어? 동생이 늘상 병원 드나드는데?
혜수 : (...냅킨으로 입을 대강 딱고는) 우리 인제 그만 애쓰구, 이쯤에서 끝내면 안될까?
정호 : (본다. 또 시작이군)
혜수 : 이 주제에 애 만들러 불임 클리닉 다닐 자신두 없구, 그렇다구 입양두 자신없어. 나 하나 살기두 버거워.
정호 : (자른다. 달래는) 나 그거 강요한 적 없어...너만 웃구 살믄돼...
혜수 : 내가 누구랑 사는지 모르겠어.
정호 : (뭐?)
혜수 : (꽃바구니와 목걸이 케이스 거칠게 밀며) 꽃, 선물, 다 걔한테 시켜서 (심한 말 나오려는 것 참는)
정호 : (본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주희 걔 당신이 알아서 다른 데 취직시켜...
혜수 : (결국) 다른데 다니면서 따루 만나는 건 더 못봐주지.
정호 : (누르며) 김주희 걔, 당신 부탁으루 받았어. 다행히 별 문제 없어서 계속 다녀. 그뿐이야. 다 알면서 왜 번번이 갈구니?
혜수 : (선다) 술 끊었더니 의부증이 생겼나봐.
정호 : (어어?)
S#92. 동 앞. 밤.
택시에 타는 혜수, 문을 쾅 닫고, 택시 따너고,
정호, 치미는 것 누르며 바라보다가 한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S#93. 정호 방.
주희, 상상의 바이얼린을 들고 허공에 활을 그으며 연주중...눈을 지그시 감은채...
정호가 문간에서 물끄러미 보고있다...
주희, 빠른 템포로 손을 놀리며 클라이맥스를 연주하는...
이윽고 오케스트라 파트에서 멈추는 주희, 무대 위의 연주자처럼 악기 내려들도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포즈...
정호 : (들어서며 픽 웃음)
주희 : (화들짝 놀라 헤트폰 벗어 제자리에 놓는 등 황망, 무참) 죄송합니다. 저, 자주 이러지는 않아요.
정호 : 왜 여태 안들어갔니.
주희 : 미국서 오신다는 분이 쓸 방, 새 가구랑 뭐랑 정리하다보니까 늦어졌어요.
정호 : (씨디 케이스 집어들다가) 그걸 왜 니가 해? 맹추같이..지원실 사람들 다 뭐하구.
주희 : (어설피 웃음) 괜찮아요. 전 5년전이나 지금이나 급사 정신으루 무장이 돼 있어서.
정호 : (본다...)
주희 : 저, 그럼,
정호 : (씨디 케이스 들어보이며) 이거 줘?
주희 : 네?
정호 : (씨디 데크에서 씨디를 꺼낸다) 갖구 가서 실컷들어.
주희 : (더 어설픈 웃음) 여기서 몰래 듣는게 더 좋은데, 아니 저기 실은 집에 오디오가 없어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내빼려다) 근데, 지금 두분이 파티하실 시간 아니예요?
정호 : (쓴웃음...) 내일 봐...
주희 : (눈치) 네..
S#94. 송현 건물 앞. 밤.
주희, 바삐 나온다. 아휴, 챙피해.
S#95. 정호 방.
주희가 듣던 곡이 흐르고, 정호, 창가에 묵묵히 서 있다.
S#96. 활주로 밤.
굉음과 함께 착륙하는 비행기. 프로펠러 서서히 멈춘다.
S#97. 공항. 입국장. 밤
문이 열리고 석기가 타미와 함께 웃음 섞어 얘기하며 나온다.
타미는 카트를 밀고 석기는 가방 하나만 메고 있다.
상류층 뉴요커 차림의 석기. 타미는 앳되 보이는 교포 청년. 힙합 차림. 반지도 끼고 있다.
권혁중이 다가간다.
S#98. 호텔 레지던스.
홍인기가 석기를 포옹한다. 그 곁의 권혁중과 타미.
홍인기, 석기등을 두드리며 뭐라고 뭐라고 나직한 환영사.
석기는 맨하탄 정글의 맹수로 훈련 받은 냉정하고 여유있는 미소. 그런 석기 얼굴에서.
변호사들 1회.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