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들이 웃는다
박예분
겨울잠에서 깬 지렁이가
쭉 쭈욱 한바탕 몸을 늘린다
어디로 갈까
눈도 귀도 다리도 없는데
온몸을 꿈틀꿈틀
꼬불꼬불 땅속에 길을 내며
산수유 발가락을 간질간질
개나리 발가락을 간질간질
발가락들이 웃는다
방긋방긋 봄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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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권 옥
15층 아저씨
-고놈 참 씩씩하게 생겼네
10층 할머니
-착하게 생겼구나
8층 아줌마
-어머, 공부 잘하게 생겼네
6층에서 내리며 나는 속으로
-보는 것하고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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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놀이
이창순
쿵 쿵 쿵 쿵
드륵 드륵 드르럭
아줌마가 청소기를 돌리고 있군!
쿵쾅 쿵쾅
끼이익
아저씨가 식탁의자에 앉았군!
다다다다다
쿵-
꼬맹이가 달려가다 넘어졌군!
소리만 들어도
다 알지
위층 사람들이 뭘 하는지
나는 지금 탐정놀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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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사
주미라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잠이 깬 바람이
밤사이 창가에 두고 간
감잎 편지
나, 가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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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차가 오면
양현미
방긋방긋 벚꽃이
햇살아래 화르르 피어난다
분홍 꽃잎 날리며
사뿐사뿐 춤추는 벚꽃가로수
찰칵찰칵,
사람들이 예쁜 봄을 찍는다
꽃잎 가득 태운 봄기차가
휘잉~ 떠나갈 때
기다렸다는 듯
살랑살랑 초록잎사귀들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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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세탁소
양은정
운동장에서 뒹굴던 내 옷과
오줌 싼 동생 팬티가
햇살 반짝이는 하늘 줄에 매달렸다
산바람이 살랑살랑
들바람이 설렁설렁
옷을 번갈아 입어 보며 킥킥거리자
낮잠 자던 흰둥이가
눈을 번쩍 뜨고 하늘 줄 바라보며
멍멍멍 멍멍
해님이 발그레 웃으며
옷이 다 말랐다고
햇빛 세탁소 문을 스르르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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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도그로 태어나서
김경숙
전투 준비 완료
뜨거운 열기
흰 눈밭에 돌돌돌 구르고
빨간 줄 휙 그으며
앞으로 돌진!
같이 가자던 독일 친구 후랑크
숨겨줫더니 방심한 사이 혼자 진격한다
홀로 남은 나
대롱대롱
나무젓가락에 간신히 매달려
입 속 동굴 다시 돌진할 기회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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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에서
송현주
풀을 뽑다가 놀라
냉큼 손을 뗀다
노란 괭이밥 아래
민달팽이 옹기종기
방해될까 봐
살금살금 뒷걸음질쳤다
어떤 얘기꽃을 피울까
궁금해 귀 쫑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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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가을 연주회
이영희
가을 햇살이
마냥 놀고 있는 게 아까워
앞마당 가득
악기를 펼쳐 놓는 할머니
누런 메주콩 먼저 튄다
콩콩콩 차르르 차르르
잘 마른 들깻대
투닥투닥 자르르 자르르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도
장단을 맞춘다
철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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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핸드폰
이옥란
우리 아빠
목적지까지 잘 가게 해주는
네비게이션
우리 엄마
돈이 필요할 때 마다
은행도 통째로 들어있고
심심할 때
내가 게임 앱을 열면
신나는 게임나라 펼쳐주는
뭐든 다 할수 있는
넓고 넓은 핸드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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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
정지선
툭,
하면 삐지는 짝꿍
콩,
때려주고 싶지만
꾹,
눌러 참는다
딱,
두 명 뿐인 2학년
쭈-욱
함께 지낼 내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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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최성자
더러워진 얼굴 구석구석
엄마 손이 빡빡 세수시키면
그릇들
말간 얼굴로
뽀드득 뽀드득
윙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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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방귀도 좋대
김형미
내가 고구마 먹고
뿌웅, 똥방귀 뀌어도 좋대
마지막 남은 고기
후다닥 내가 먹어도 좋대
이리저리 뛰며 점핑 점핑
워프 흉내 내도 좋대
요 녀석, 으이고,
하면서도 엄마는 내가 좋대
나도
우리 엄마가 참 참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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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벌레 2
박자호
내 이름을 콩벌레라고
누가 지었어?
내가 콩 좋아한다고
누가 그랬냐고?
나, 배추 엄청 좋아해
콩만한 내가 얼마나 먹는다고
쩨쩨하게 화를 내냐?
흥, 나하고 한판 붙으려면
오늘밤에 거기로 나와!
내가 똥 싼 자리 알지?
안 나오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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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서
송경자
겨울바람이 잠든 사이
오리 두 마리
따뜻한 햇살에 마주보며
살랑살랑
노란 부리로 속닥속닥
노란 물갈퀴로 첨벙첨벙
속닥속닥
첨벙첨벙
잔잔한 호수가 출렁
잠에서 깬 겨울바람이 씨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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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윤다정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조용히 걷는다
바스락
바스락
마른 잎이 자꾸
발밑에서 내는 소리
바스락 바스락
아파스락 아파스락
굴러다니는 나뭇잎 안쓰러워
발뒤꿈치 들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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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빨간 감
전경미
여름내 감나무에
빠알간 태양이 쨍쨍
톡톡, 빗방울 튕기고
휘잉, 서늘한 바람 스치고
-와아, 너무 예뻐!
반가운 까치 인사하면
수줍은 감나무 얼굴
점점 더 빨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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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간
정현정
오늘은 자유 그림이다
내가 그리고 싶은 거 다 그린다
빨강에 파랑
파랑에 노랑
노랑에 초록
내 맘대로 다 그렸다 하하하
수업이 끝났다
자유가 사라졌다
수행평가 ‘하, 하, 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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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 똥 누기
한재숙
빨갛게 튀어나온 똥구멍
발심발심
금방 나올 것 같아
빙글빙글 빙글빙글 돌며
겨우 자리잡고
끄응~
와우 시원해!
뒷발로 힘차게 땅을 차며
흙먼지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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