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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분과 방 스크랩 대구를 자랑스럽게 한 복수초
이팝나무 추천 0 조회 100 07.02.25 07: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보수초 개화(2007,2,24)

 

 복수초 반개화

 복수초 개화준비

 

야생화 중에서 몇몇 즉 원추리, 붓꽃, 참나리, 금낭화 등은 그 화려함이 개량된 원예종(園藝種)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화단에 심어도 외래종에 비해 손색이 없다.

  복수초 역시 앞서 예를 든 야생화와 같이 아름답다.

2월 하순부터 꽃을 피우기 때문에 흰 눈을 덮어쓰고 노란 꽃봉오리를 내미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찍고, 엽서나 달력을 통해 많이 소개되었다.

  꽃 이름 복수(福壽)는 새해를 맞이해 집안 어른이나 존경하는 분께 보내 복 받고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풍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구정(舊正)과 이 꽃의 개화시기가 맞지 않는 것을 볼 때, 일본 꽃 문화의 한 단면이 흘러 들어온 게 아닌가 여겨진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원단초(元旦草)라 하여 어른들의 무병장수와 발복(發福)을 기원하며 보내는 풍습으로 구정 전후 수만 포기가 거래된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뜻이 깊은 복수초의 자생지가 안타깝게도 대구 지역 안에는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다만 팔공산의 한 지맥이 마지막으로 서쪽에 틀어 앉아 정상에 아담한 분지를 이루고 있는 가산(架山)에 군락이 있다는 기록 있을 뿐이었다.

  샛 노란 복수초가 무리 지어 피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몇 번이나 그 곳 방문을 시도했으나 개화기가 산불 방지 철과 맞물려 출입이 통제되고, 일상의 업무 또한 나를 놓아주지 않아 기회를 가지기가 무척 어려웠다. ‘대구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나에게 이 희망은 언제나 짐이었다.  운전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짬을 낼 수 있으련만 아직까지 핸들을 잡지 못하니 더욱 쉽지 않았다.

  내 몸 어느 부위에 도깨비 뿔처럼 돋은 보이지 않는 안테나가 있는지 갈망하는 많은 일들의 기미가 감지되는 경험을 가끔 할 때가 있어 놀랄 때가 있는데, 복수초 자생지가 가창에 있다는 사실도 우연한 기회에 내 귀에 들어왔다. 낮은 전압의 기계에 고압전류가 흘러 용량 초과로 이상이 온 듯 심장의 박동소리가 귀에 들릴 만큼 흥분되었다. 이런 흥분은 내가 평소 야생화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까닭은 대구수목원에 우리 지역에 자생하는 복수초를 심을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수목원은 말 그대로 많은 종의 목본식물(木本植物)과 초본식물을 심어 자연학습장과 종 보존의 장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지역의 기존 수목원은 자생지가 분명하지 않은 식물이나 교잡을 통해 이미 원래의 유전자가 변형된 것을 심어 학술적으로 쓸모없는 곳이라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늦게 조성한 대구수목원은 다른 수목원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직원 몇 분과 그 곳 태생인 화훼계(花卉係) 김원량님과 함께 현장을 답사했더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산자고, 꿩의바람꽃 등과 함께 상당히 넓은 수림지대(樹林地帶)에 복수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대구가 자랑스러운 곳이라고 늘 강조해 온 터였지만 이런 한 떨기 야생화 군락으로 인해 향토사랑이 더욱 깊어졌다. 또 하나 희귀식물로 잊을 수 없었던 일은 비슬산에서 발견한 솔나리다. 당시 아내는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휴일이나 주말을 거의 빼놓지 않고 산행을 했다. 가까운 곳의 산을 찾음으로 오가는데 소요되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경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산불이 났을 때 진화대원들을 어느 곳으로 투입시키는 것이 빨리 현장에 도착하게 할 수 있는지 불을 끄는데 필요한 물은 어디에서 공급받으면 손쉬운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대구시 행정구역 안에 있는 산을 택했다.

사람들이 간혹 왜 혼자 오느냐고 질문할 때가 괴로웠으나 아내와 나는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많았고 취미도 달랐다. 만약 그때 아내가 장사를 하지 아니하였다면 산을 찾는 횟수도 줄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야기하고자 하는 솔나리도 만나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서로 다른 취미가 오히려 내 삶을 기름지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산림공무원을 하면서 팔공산에서 고란초를, 앞산에서는 큰구와꼬리풀, 청룡산에서는 세뿔투구꽃, 비슬산에서는 솔나리와 흰진달래, 두류공원에서는 솔붓꽃 등을 발견해 역내 어느 식물학자보다도 많은 희귀식물의 자생지를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이러한 식물 찾기와 문화유적 둘러보기를 통해 ‘아름다운 야생화’ ‘팔공산을 아십니까’ ‘나의 사랑 나의 자랑 대구’ ‘대구가 자랑스러운 12가지 이유’등을 썼다.

  10여 년 전쯤 7월 초순이었다. 내가 비슬산을 접근하는 루트는 주로 세 갈래였다.

하나는 용연사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인데 이 길은 많이 걸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데 비해 계속 오르막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고, 두 번째는 유가사에서 직선코스로 가파른 암벽을 로프를 통해 올라가는 길인데 험한 반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세 번째는 도성암 뒤로 오르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등산로이다.

  당시는 도성암에서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했다.

  그날따라 세 번째 길로 산을 오르는데 도성암을 거쳐 한 8부 능선에 도달하였을까 종전에 눈에 띄지 않던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 꽃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솔나리였다. 광부들이 광맥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따지고 보면 산에 사는 그 많은 풀 중 하나 일 뿐이겠지만 전율을 느끼듯 희열이 온몸을 감쌌다.

  집에 와서 자료를 검토해 보니 이는 북방계 식물로 점차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으며 그 한계가 덕유산이라는 임업연구원 모 박사의 연구 자료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솔나리는 학술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비슬산은 덕유산보다 더 남쪽에 있어  남방한계선이 덕유산이 아니고 비슬산으로 고쳐 써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께 이 사실을 전화로 알리고 당시 대구일보 사진부 기자로 우리 사무실을 자주 찾았던 이종술 기자와 다시 현지를 찾아 신문을 통해 발표했다.  

  최근에 찾은 비슬산에는 솔나리가 지천으로 피고 있었다.

그동안 개체수가 늘어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발견할 때 일부분밖에 보지 못한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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