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새소식] 시각장애인이 외면하는 장애인 보장구 급여 지급
시각장애인이 외면하는 장애인 보장구 급여 지급
지난 7월 27일 넓은마을 자유게시판에는 보장구 급여 지급이 어렵다는 시각장애인 J 씨의 글이 게시됐다. J 씨는 글에서 까다로운 절차와 정보 부족 등의 문제로 흰지팡이 구매를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라의 돈을 지원받는다는 것이 쉬워서는 안 되지만 복잡한 서식과 절차, 구입처를 찾아 헤매는 수고로움은 보장구 급여 지급의 취지와 동떨어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해당 글에는 20여 건의 댓글이 달리며, 높은 관심이 모아졌다.
‘장애인 보장구 급여 지급’은 장애 유형별로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급여 품목을 정해 구입 금액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대상 보장구에 각각 기준액과 내구연한을 정해 놓고 장애인이 해당 품목을 내구연한 내에 자비로 구입했을 경우, 기준액의 90%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서 보험급여비로 지급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에서 정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장구에는 망원경, 콘택트렌즈, 의안, 흰지팡이 등 6개 품목이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시각장애인에게 외면을 받는 일이 허다하다. 시간과 노력 대비 지원이 신통치 않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시각장애인이 꼽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절차가 번거롭다는 점이다. 흰지팡이 급여의 경우 기본적으로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보장구 구입처에서 보장구 구매 후 세금계산서나 신용 및 현금카드 전표를 요청한다. 이후 건보공단에 방문해 보장구 급여비 지급청구서를 제출한다. 따라서 최소 두 곳의 기관을 방문해야 한다.
보장구가 돋보기나 콘택트렌즈처럼 의료기기 성격을 띠는 경우 전문의의 보장구 처방전과 보장구 검수확인서 제출이 추가된다. 단독 보행이 어려운 상황에 가족이나 주변에 도움을 구하기 마땅치 않은 경우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문제는 또 있다. 보장구 급여비 지급이 되는 기관을 알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특히 흰지팡이의 급여비를 지원받을 때가 난감하다. 대개 복지관에서 흰지팡이를 구매하는데, 문의를 해보면 기관별로 가부가 갈리는 일이 생긴다. 그래도 일부 복지관에서는 급여비 지급이 가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는 그 길마저도 막혀버렸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담당자는 “지난 5월 건보공단에서 보장구 기관 부적합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비영리 기관이기 때문에 제품을 생산, 유통해 이익을 얻을 수 없고, 세금계산서도 현재로서는 발급이 불가하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기관마다 사정이 상이할 수 있지만 국가지원을 받거나 다른 단체에서 기금을 받는 형식의 복지관 물품 사업은 보장구 급여비 지급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기관이 건보공단에 ‘보장구 등록 업체’로 지정이 되어 있는지 알고 싶다면 어디서 파악할 수 있을까? 건보공단 관계자는 “보장구 기관에 관한 정보는 건보공단 홈페이지의 ‘장애인보장구 등록업소 제품 확인’을 참고하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검색 방식이 시각장애인 혼자 접근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여러 개의 콤보 상자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검색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동보장구와 자세보장용구만 나와 있을 뿐 시각장애 관련 보장구 정보는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흰지팡이 판매처를 찾아 구입한 경우 의료기기판매업신고증을 받아두는 것이 현명하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 김훈 정책연구원은 위의 문제 외에도 “여러 건의가 제기되고 있다”며 “기준액 조정과 보장구 종류의 확대 요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장구 급여비 지급이 시행된 지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을 고려한 기준액 변화는 없었다. 흰지팡이는 예나 지금이나 기준액이 14,000원이다. 14,000원의 접이식 흰지팡이는 자부담 1,400원만 내면 된다. 그러나 32,000원짜리 9단 안테나식 흰지팡이를 구입할 경우 자부담이 19,400원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보장구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 정보접근을 위한 기기(가령 점자정보단말기)가 보장구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해마다 시행하는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사업이 있지만 당첨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건강보험급여 품목은 신청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한시련은 현재 건보공단 관계자와 시각장애인의 욕구 반영을 위해 논의 중에 있다. 김 연구원은 “아직 명확하게 확정된 것은 없지만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보장구란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기구를 뜻한다. 그리고 복지제도란 수혜자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수혜자가 외면한다면 제도의 실행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건보공단과 한시련이 함께 해결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시각장애인의 생활이 한층 더 건강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8. 8. 15. 제10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