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끼와 원숭이
마 해 송
나라와 나라
큰 개울 동쪽에는 원숭이 나라가 있고 개울 서쪽에는 토끼 나라가 있었는데 서로 모르고 지냈다.
원숭이는 영악하고 써움하기를 좋아하고, 토꺼는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살기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몇 마리 원숭아가 뱃놀이를 하다가 큰 바람에 밀려서 토끼 나라 언덕에 닿았다. 토끼들은 처음 보는 새까만 괴상한 짐승이 무섭기도 했으나 모두 청신을 잃은 것 같아서 집으로 데리고 가서 간호해주었다. 정신을 차린 원숭이들도 또 놀랐다. 세상에서 원숭이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하얀 털에 두 귀가 쭉 뻗친 짐승들이 간호해주는 것을 보고 놀랍고 고마왔다. 인사를 하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토끼들은 토끼 나라 자랑을 하고 원숭아는 원숭이 나라 자랑을 하고, 우리들을 살려준 토끼님들이니 한번 원숭이 나라를 구경하라고 말했다. 1
그래서 토끼 슈슈의 아들 시시, 사사, 소소 세 토끼가 원숭이 까까, 끼끼, 꼬꼬꼬들과 갈이 토끼 나라를 떠나서 동쪽으로 원숭이 나라를 찾아가게 되었다. 배가 떠날 때에는 토끼들이 많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전송했다.
탕과 왕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니까 과연 원숭이 나라가 있었다.
까까, 끼끼, 꼬꼬들은 날뛰며 좋아했다. 배가 닿자 여러 원숭이들이 달려들어 토끼에게 장난을 시작했다. 원숭이 까까는 장난하는 원숭이들을 말리며 이 토끼들 때문에 죽을 것을 살았다는 말을 하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까까의 집에서는 토끼들을 잘 대접했다. 이튿날 까까외 집에는 ‘탕’이란 것을 짊어진 병정 원숭이들이 들어오더니 ‘왕의 명령이다’고 소리지르고 까까와 세 마리 토끼들을 붙들어 갔다.
큰 집을 들어가니까 높다란 곳에 왕이랴는 틀립없는 원숭이 한마리가 앉아 있고 그 아래로 수많은 원숭이돌이 탕을 짊어지고 늘어서 있다.
“오오, 너희들이 토끼들이냐?”
하고, 왕 원숭이는 말했다.
“나는 너희들도 알겠지만 천하의 왕이다. 천하에는 우리 원숭이 대국밖에 없고 대국왕 내가 곧 천하의 왕이니 토끼 나라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토끼나라를 차지하고 다스려야 할 것이니, 캐캐, 너희들은 그 나라 형편을 잘 이야기해서 하루바삐 쳐 없에게 하라. 캐캐캐.”
다음 날 병정 원숭이들은 주라를 불고 북을 울리며 탕을 짊어지고 토끼 시시, 사사, 소소와 원숭이 까까, 꼬꼬, 끼끼들을 결박한 채 앞장세우고 서쪽으로 토끼 나라를 치러 떠나갔다.
까까의 맹세
토끼 나라에서는 마침 팔월 추석이라 둥근 달이 중천에 있어 세상은 낮과 같이 밝고 수정궁같이 아름다왔다.
토끼들은 이곳저곳에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춤추며 놀고 있었다.
이때에 주라 소리 요란하게 원숭이들이 바람같이 쳐들어왔다.
탕 한방에 토끼 한두 마리씩 죽었다.
토끼들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탕에 맞아 픽픽 쓰러졌다. 잠깐 동안에 토끼 나라는 새까만 원숭이 천지가 되었다.
원숭이들의 괴상한 웃음소리와 호령소리가 요란했다.
원숭이 까까는 토끼 시시, 사사, 소소와 같이 결박을 지고 있었다. 그러나 토끼들의 신세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서 같은 원숭이지만 병정 원숭이, 대장 원숭이, 원숭이 왕까지도 미운 생각이 났다.
--마음이 곱고 인정이 깊은 나를 살려준 토끼들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아아, 왕이 이런 이였던가!
그때에 대장 원숭이가 까까의 앞으로 와서 크게 웃으며,
“오오, 그대의 발견은 위대하도다. 넓고 넓은 이 나라를 차지하고 오늘부터 원숭이 대국의 땅이 되었으니 참으로 원숭이 나라 만만세로다. 시시와 사사, 소는 그대들이 아니었던들 어찌 이 나라를 차지할 수 있었으리요. 참으로 우리나라의 공로자로다. 너희들을 집으로 보내어 줄 것이니 길을 가리켜라.”
하고, 병정 원숭이에게 명령해서 결박을 끄르게 하고 토끼들을 집으로 보내주었다.
집에는 형도 죽고 동생도 죽고 어머니도 죽고 늙은 아버지 토끼 슈슈가 혼자서 울고 있었다.
원숭이 까까는 이꼴을 차마 보고 있지 못하고,
---아아, 미안하다. 그러나 시시, 나는 원숭이지만 원숭이 나라를 미워합니다. 당신들의 원수를 갚아드리리다.
마음으로 맹세하고 눈물을 홈치면서 까까는 돌아갔다.
글 방
토끼 나라의 좋은 집은 온통 원숭이들이 차지하고 젊은 토끼들은 방에 오라고 해서 원숭이 말을 배우게 하고 탕을 만들게 하고 늙은 토끼들은 하루에 하나씩 원숭이들이 먹을 것을 구해서 갖다 바치게 하였다.
산골찌기까지도 병정 원숭이들이 파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원숭이를 피할 수 없고 원숭이의 말을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원숭이는 세상에 제일 가는 짐승이다.”
어린 토끼 시시는 글방에서 배운 말을 외치고 다녔다. 늙은 아버지 슈슈는 그것을 들을 때마다,
“고이한 놈들!”
하고, 혓바닥을 차면서 분해했다. 하루는 글방에서 선생 원숭이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제일 가는 짐승은 원숭이다. 너희들은 세상에 제일 가는 짐숭이 되고
싶지 않으냐?”
그리고 토끼들은 한 마리씩 선생 방으로 불리어 들어갔다.
선생 방에는 큰 통에 검정물을 가득 담아 놓고 들어오는 토끼를 풍덩 넣었다.
털파 몸뚱이가 까맣게 되었다. 다음 선생은 큰 가위를 들고 토끼의 두 귀를 바싹 잘라버렸다.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울고 있을 새도 없이 다음 선생은 얼굴과 엉덩이를 박박 면도칼로 깎고, 다음 선생은 거기에 빨간 칠을 해주고 떡 한 개를 주고,
“원숭이는 세상에 제일 가는 짐승이다.”
하고, 외치라고 했다.
토끼들은 이렇게 소리소리 외치며 집으로 돌아간다. 슈슈는,
“고이한 놈들!”
하고, 이를 갈고 분해 했다.
뚱쇠와 센이리
토끼 나라를 차지한 원숭이 나라에서는 또 차지할 땅이 없을까 하고 이리저리 찾아봤다. 토끼 나라 남쪽에 뚱쇠란 짐승들이 있는 것을 알았다.
뚱쇠는 누런 털에 눈이 크고 몸집이 크고 발이 짧고 배가 땅에 닿도록 위죽거렸다.
원숭이 왕은 그말을 듣고 좋아했다.
“캐캐캐 뚱죄 똥쇠 나라를 치라.”
고 명령했다. 대장 원숭이들은 모여서 의논하고 병정 원숭이들은 날뛰었다. 주라를 불고 북을 올리며 탕을 젊어지고 뚱쇠 나라를 치러 떠났다.
뚱쇠들은 세상모르고 잠들고 있을 때에 수많은 원숭이들이 쳐들어왔다. 똥쇠들은 여기저기서 탕에 맞아 쓰러졌다.
아침이 되어서 뚱쇠들은 조그만 원숭이들인 줄 알자 몹시 노했다.
뚱쇠들도 탕을 짊어지고 싸웠다.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뚱쇠 나라는 무선 전신으로 천하에 구원을 청했다.
“조그만 원숭이들이 천하가 넓은 줄울 모르고 약한 토끼 나라를 쳐없애고 시방 우리나라를 치러 왔다. 천하의 의로운 짐승들은 나와서 원숭이들에게 버릇을 가르쳐주기 바란다.”
이런 무선 전신이 쉴 새 없이 나왔다.
여러 짐승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왔다.
여우가 나왔다. 여우는 한참 동안 싸우는 것을 보고 있다가 살살 가버렸다.
호랑이가 나왔다. 호량이는 한참 동안 싸우는 것을 보고 있다가 하품을 하고 어슬렁어슬렁 가버렸다.
사슴도 나왔다. 사슴은 여럿이 같이 나왔다. 싸우는 것을 보고 늙은 사슴이 ‘지저분하다. 보지 마라.’하고 젊은 사슴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이때에 토끼 나라 북쪽에 있는 센이리란 짐승들이 떼를 지어 들어왔다.
센이리는 코가 크고 주둥이가 길어서 땅에 질질 끌고 허리가 길고 털이 울긋불긋했다. 탕을 짊어지고 껑충껑충 뛰어들어왔다. 조그만 원숭이떼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탕을 짊어진 채로 풀숲에서 약풀을 뜯어서 입에다 물고 연해 내뿜었다. 센이리들이 이상한 약풀을 입에 물고 씹으면서 내뿜으면 독한 기운이 연기같이 나왔다. 그 독한 연기를 맡고 원숭이들은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탕을 내버리고 달아났다.
먼 북쪽에서 긴 짐승들이 떼를 지어 오면서 긴 주둥이로 원숭이들을 쓰러뜨리고 쫓아내는 것이 보였다.
뚱쇠들은 웃었다. 그리고 이상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싸움은 끝났다. 센이리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큰 나무 위에 올라가서 망원경으
로 바라보았다.
먼 남쪽에 뚱뚱한 짐승들이 탕을 짊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웃었다. 그리고 이상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원숭이 나라에서는 야단이 났다. 까까와 끼끼, 꼬꼬들이 돌아와서 원숭이 왕이 병정 원숭이를 보내서 토끼들을 못살게 군 이야기를 해서 여러 원숭이들이 보였다.
병정 원숭이들이 모조리 뚱쇠 나라를 치러 나간 사이에 까까와 여러 원숭이들은 원숭이 왕을 없얘고 말았다.
원숭이 된 토끼
싸움은 끝났다. 토끼들은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다. 떡을 찧어서 뚱쇠와 센이리들을 대접했다. 늙은 토끼 슈슈는 떡절구 찧는 곁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은 개화되어서 짐승들은 다같이 사이좋게 깔고 있다더라. 호랑이나 사자가 제각기 세계의 왕은 저회들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그런 것도 아니다.
큰 배암도 보이지 않는 개미들이 떼를 지어서 대들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는다더라. 한 짐승이 아무리 세어도 떼의 힘에는 당하지 못하는 법이다. 우리들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제일이다.”
토끼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동안에 원숭이가 된 토끼들이 이곳저곳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자아, 이제 우리 토끼들은 뚱쇠님들 때문에 살아났다. 뚱쇠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짐승이다. 우리들은 뚱쇠말을 배우고 뚱쇠같이 되자.”
한편에서는,
“자아, 이제 우리 토끼들은 센이리들 때문에 살아났다. 센이리는 세상에 제일가는 짐승이다. 우리들은 센이리말을 배우고 센이리같이 되자.”
이편저편에서 웃음소리와 욕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늙은 토끼 슈슈는 ‘고이한
놈!’하고 혓바닥을 찼다.
그래서 뚱쇠가 되자는 말을 한 토끼 몇 마리는 뚱쇠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제일 뚱뚱한 뚱쇠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뚱쇠님, 우리들에게 뚱쇠말을 가르쳐주시고 우리들을 뚱쇠같이 되게 해주십
시요.”
그러니까 제일 뚱뚱한 똥쇠는 배가 터져라 하고 ‘푸커커 푸커커’하고 웃었다.
또 센이리가 되자는 말을 한 토끼 몇 마리는 센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제일 긴 센이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센이리님, 우리들에게 센이리말을 가르쳐주시고 우리들을 센이리같이 되게 해주십시요.”
그러니까 제일 긴 센이리는 허리가 부러져라 하고 ‘꺼꾸 꺼꾸’하고 웃었다.
그래서 이편저편에서 무안을 본 원숭이가 된 토끼들은 개울로 뛰어들어가서 몸뚱이와 얼굴올 씻고 웅덩이를 씻고 귀가 작은 것을 한탄했다.
늙은 토끼 슈슈는 헛바닥을 차면서 중얼거렸다.
“고이한 놈들!”
약 풀
토끼들은 달님을 하느님으로 생각하였다.
좋은 일이 있으면 달님이 해주시는 줄 알고 나쁜 일이 있으면 달님이 벌을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토끼들을 못살게 굴던 원숭이들은 뚱쇠와 센이리라는 처음보는 짐승들이 이쪽저쪽에서 나타나서 온통 죽이고 쫓아내주니 토끼들은 뚱쇠나 센이리롤 달님이 보내주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토끼들은 뚱쇠나 센이리의 말을 달님의 말씀같이 생각하고 무슨 말이든지 잘 듣고 또 잘 대접하였다.
그러나 뚱쇠는 뚱뚱하고 센이리는 길고 그의 몸뚱이는 큰 토끼 쉰 마리가 모인 것보다도 더 크기 때문에 토끼들이 떡을 많이 찧어서 갖다주어도 서너 마리가 한번에 먹어버렸다.
토끼들은 깜짝 놀라고 떡을 더많이 찧어야 하겠다고 허둥지둥하였다.
그때에 제일 긴 센이리가,
“우리들이 먹을 것은 우리들이 할 터이니 걱정마라.”
고, 말해서 토끼들은 멋모르고 좋아하였다,
한편 뚱쇠는 떡을 가지고 간 토끼와 떡을 번갈아 보더니 푸커커 하고 크게 웃는 바람에 떡은 모두 날아 흩어지고 토끼들은 엎치락뒤치락하였다.
그리고 뚱쇠는 이런 말을 하였다.
“저기서 쳐들어온 기다란 짐승들이 무엇들이냐? 또 무엇올 가지고 원숭이들을 쳤느냐? 가서 잘 알아보고 오너라.”
그때에 한 토끼는 나무 위에서 여러 뚱쇠가 망원경올 가지고 북쪽 센이리 편을 살피는 것을 보았다.
겁이 더럭 났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중에 원숭이 된 토끼 몇 마리가 서로 눈짓을 하더니,
“네!”
하고, 대답하고 뛰어나갔다.
귀는 짧고 얼굴과 궁둥이에 털이 없어서 아무리 하여도 토끼들이 비웃는 것만 같아서 이틈에 뚱쇠에게나 잘 보이려고 센이리를 살피러 가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저편 북쪽에서도 있었다. j
센이리들이 망원경으로 뚱쇠 쪽을 살피고 또 토끼들을 보내어 왔다.
토끼들은 잘 살펴서 일러바쳤다.
센이리라는 짐승들이 약풀이란 것을 뿜는다는 말올 듣고 뚱쇠는 놀라면서 토끼가 가지고 온 약풀을 한 뚱쇠에게 씹어서 뿜어보라고 하였다.
뚱쇠는 무시무시 입에 넣었다. 똥쇠는 목이 짧고 주둥이도 헤벌어지고 짧기 때문에 업에서 씹을 사이도 없이 목을 넘어갔다. 한참 동안 피둥피둥하더니 그만 쓰러졌다.
뚱쇠들은 더욱 놀랐다. I
또 한마리가 조심스럽게 씹어서 뿜었다.
앞에서 구경하던 토끼들이 픽 쓰러졌다.
뚱쇠들은 발을 구르며 좋아하였다.
“자아, 이런 약풀을 많이 뽑아 오너라!”
하고, 명령하였다. l
그리고 한편 뚱쇠들은 주둥이를 길게 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주둥이가 길어야 멀리 뿜을 수 있다!”
하고, 날뛰었다. l
늙은 토끼 슈슈는 이련 이야기를 듣고 혓바닥올 차고 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제 큰일날 일이로군! 좀 생각해 봐야지.”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하루치 풀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센이리 편이 환해졌다.
캄캄해질수록 더욱 환해지고 마치 불빛이 하늘에 닿은 것 같았다.
토끼도 놀라고 뚱쇠들도 놀랐다.
뚱쇠는 또 토끼더러 가서 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것은 센이리들의 불덩어리 같은 두 눈에서 나는 불빛이었다.
그말을 듣고 뚱쇠들은 몸을 떨고 으르렁으르렁거렸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하늘과 땅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센이리 편에서도 대답하는 듯이 으르릉거리기 시작하였다.
토끼들은 몸이 떨리고 잠올 잘 수가 없었다.
늙은 토끼 슈슈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게 아무래도 큰일날 일이다. 우리들에게는 다 고마운 짐승이지만 큰 짐승끼리 처음 만나는 것이라 한번 크게 싸움이 시작되는 날이면 우리 토끼들은 가운데 들어서 짓밟히고 걷어채이고 피하지도 못하고 꼼짝 못하고 다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랴 뚱쇠나 센이리들도 어떻게 될는지 참 큰일이다.”
하고, 한숨을 쉬었다.
시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빨리 다른 곳으로 가서 살지요!”
사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요. 뚱쇠나 센이리가 모두 우리들을 구원하러 달님이 보내 주신 짐승인데 둘이 싸울 까닭이 있을까요? 또 우리들을 못살게 할 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쇼쇼는 또 이렇게 말했다.
“두 짐승이 마침 우리들 토끼로 해서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까, 우리의 힘으로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지요.”
“어떻게?”
하고, 슈슈는 귀를 기울였다.
“두 짐승이 다 우리를 구원해 준 짐승이니까 우리를 잘살게 해주려면, 또 당신들도 싸우지 않고 잘살려면 제발 당신들의 땅으로 각기 돌아가라고 카서 말하지요.”
“글쎄, 그렇게 해서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지만.”
“밤이 새면 찾아가서 말씀해 보시지요.”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 하여 토끼들은 잠을 자지 못하고 날이 새었다.
슈슈가 뚱쇠를 찾아가서 이야기해 볼까 하고 나가려 할 때에 여러 토끼들이 뛰어들어왔다.
“큰일났다. 우리들은 굶어죽게 되었다.”
고, 떠들었다. 슈슈와 시시, 사사도 그때에야 깜짝 놀랐다.
그 많던 좋은 풀밭에 먹을 것이라고는 한잎도 없고 깎은 듯이 흙벌판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먼곳을 바라보아도 풀잎 하나 보이지 않았다.
“뚱쇠들이 하룻밤 사이에 다 먹어버렸올까?”
“갖다 감추었는게지?”
“참 큰얼났다.”
슈슈를 앞장세우고 토끼들은 뚱쇠에게 가서 제일 뚱뚱한 뚱쇠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을 구원하러 오신 똥쇠님! 우리들은 못살게 되었읍니다. 먹을 것이 하룻밤 사이에 다 없어졌읍니다.”
뚱쇠는 푸커커 하고 웃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라. 먹을 것은 우리가 모두 거둬 두었으니 오늘부터는 너희들에게 날마다 나눠줄 것이다. 겨울이 되어도 걱정할 것 없다. 푸커커.”
그리고,
“자, 이것이 오늘 하루 너희들이 먹을 것이다!”
하면서, 토끼 한 마리에게 풀 한 잎씩을 나누어주었다.
토끼들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배가 고파서 곧 입에 넣고 오랫동안 씹고 있었다.
큰 싸움
슈슈는 다시 뚱쇠에게 공손히 말했다.
“뚱쇠님! 뚱쇠님과 센이리님은 참으로 우리들을 살려주신 고마우신 분입니다.”
“무어! 센이리도 고마운 분야!”
하고, 뚱쇠는 눈을 두리번거렸다.
토끼는 몸이 떨렸다. 발발 떠면서 말을 했다. .
“토끼들의 생각은 세상의 모든 짐승이 다 잘살게 되었으면 좋겠읍니다. 힘자랑 말고 싸우지 말고 빼앗지 말고 다같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읍니다.”
“푸커커, 그렇구 말구! 그렇구 말구! 뚱쇠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너희들을 구원하러 온 것이지. 그런데 저런 센이리 같은 놈들이 세상에 있어서는 다 잘 살 수가 없단 말야. 저런 놈들은 언제든지 세상에서 없애버려야지!”
하고, 으르렁 거 렸다.
“너희들도 우리편이 되어서 저런 놈들을 없애는 데 힘을 써야 한다!”
하고 푸커커 푸커커 웃었다.
슈슈는 혓 바닥을 차고 돌아섰다.
여러 토끼들도 돌아서서 기운없이 센이리 편으로 걸어갔다.
거의 해가 지려고 할 때에야 센이리들이 있는 곳에 왔다.
여기는 풀은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토끼들은 잠을 자지 못해서 눈이 빨개서 발발 떨고 있었다.
그중에 한 토끼가 ‘저것을 좀 보오.’하는 듯이 손가락질하는 곳을 보니 토끼와 원숭이의 껍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어젯밤에 센이리들이 잡아간 것들이요. 이곳에서 못 살겠소. 낯에는 동무인데 밤이 되면 무엇이든지 잡아먹는 모양이요. 큰일났소.”
슈슈와 여러 토끼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래도 센이리를 찾아갔다.
제일 긴 센이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센이리님! 센이리님과 뚱쇠님은 참으로 우리들을 살려주신 고마우신 분입니다.”
“무엇! 뚱쇠도 고마운 분야. 우리들이 살려준 것이 아니냐?”
하고, 센 이리는 눈을 부릅떴다.
슈슈는 혓바닥을 차고,
“그렇지요, 그렇지요. 토끼들은 두 분들을 다 고맙게 생각하고 다같이 사이좋게 지내고 싶습니다. 센\이리님들도 뚱쇠님 들과 사이좋게 지내주십시요. 그러 면 우리들이 다 잘살 수가 있지요.”
“뚱쇠님이란 무엇이나 저런 뚱뚱하기만 하고 뒤룩거리기만 하는 욕심 장이는
새상에서 없애버려야 우리들이 잘살 수 있는 것이다. 첫째 너희들의 먹을 것이
나 차지해 버리지 않았느냐. ”
“센이리님은 토끼와 원숭이도 잡아먹지 않았소.”
슈슈는 몸을 떨면서 말했다.
센이리는 꺼꾸꺼꾸 웃으며,
“걱정하지 마라. 나쁜 놈들만 버릇을 가르친 것이다. 토끼는 토끼들끼리 잘살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와서 귀찮게 토끼들의 욕을 하고 뚱쇠란 놈을 무서워하고 센이리가 되게 해달라는 나쁜 놈들을 잡아 먹은 것이다. 너희들을 아무리 먹어도 우리의 배는 차지 않는다. 뚱쇠 같은 놈을 잡아먹어야지.”
히고, 긴 하품을 하였다.
싸움은 끝나고
슈슈는 혓바닥을 차고 다시 말을 하려 할 때에 끼끼거리는 여러 센이리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나무 위에서 망원경을 보고 있던 센이리가 무어라고 끼끼거리니 센이리들은 으르렁 꺽 으르렁 꺽 하고 탕을 짊어지고 벼락같이 뛰어나갔다.
긴 허리를 줄였다 폈다 하다가 날으는 것같이 뛰어나가는 꼴은 우습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센이리들이 바람같이 몰려나가는 바람에 슈슈와 여러 토끼言은 갈팡 팡하다가 그만 짓밟혀버렸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탕탕거리는 탕 소리는 귀가 찢어질 것같고 양편에서 연해 뿜는 약풀의 연기는 하늘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큰 짐승들이 뛰고 부딪쳐서 떨어지는 소리는 천둥과 지둥이 함께 일어난 것 같이 요란하였다.
토끼들은 아무리 뛰어서 도망을 가도 뚱쇠와 센이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짓밟히고 깔리고 걷어채이고 부딪쳐서 살 길이 없었다.
밤이 되어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맨나중에 남은 놈끼리도 싸워서 다 죽어버렸다. 까마득한 허허벌판에 뚱쇠와 센이리와 토끼들의 주검이 산더미같이 끝없이 누워 있었다.
하늘은 이것을 지저분하다는 듯이 여러날 동안 눈을 내려서 하얗게 덮어버렸다.
땅을 하얗게 덮어버린 다음날이었다.
여러날 동안 흐렸던 하늘에 달님이 뚜렷이 둥실 떠올랐다.
달빛에 비친 땅 위는 끝없는 눈벌판이었다.
달속에서 떡절구를 찧던 토끼는 땅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절구괭이를 내려놓고 땅으로 뛰어내리는 것 같았다.
그때 다.
눈벌판 눈더미 위에서 조그만 토끼 한 마리가 두 귀를 쭉 뻗치고 툭 튀어나왔다.
저기서 또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왔다.
여러 해가 지나갔다.
또 여러 해가 지나갔다.
토끼는 토끼를 낳고 또 토끼를 낳아서 어떤 산에 가든지 하얀 털에 두 귀가 쭉 뻗치고 눈이 빨간 토끼들이 대굴대굴 즐거웁게 잘살고 있는 것은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