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시간에도 묵묵히 참교육에 힘을 쏟고 학생들의 지도에 여념
이 없으신 선생님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여러 학부모님들에
게 걱정을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미련한 후배 교사의 불찰로 많은 선생님들에게 누가 되고 물의를 빚
게 된 점을 사과 드리며, 어린 제자의 일방적인 험담에 대해 가슴 아
프게 생각하면서도 이 자리를 빌어 이런 해명의 글까지 올려야 하는
제 처참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양지하여 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
로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성덕여중 체육교사로 재임 중인 서상현입니다.
며칠 전 한 학생이 제게 모욕과 구타를 당했다는 글을 관계 요로에 올
려 지금 제 처지가 무척 난처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떳떳이 이름을 밝히고 그 경위나 내용을 그 아이 나름대로 소상하게
밝힌 어린 여학생의 글이라 그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어찌 선생으로
서 그럴 수 있느냐는 경악 속에서 참으로 황당하고 무참한 느낌을 가
지실 것입니다.
제자에게서 이러한 고발(?)로 물의의 대상이 된 저는 솔직히 그 부끄
러움 때문에 망연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 이런 일방적인
매도로 교사의 권위가 흔들리는 풍토와 심지어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
에게 구타당하는 선생님들의 위상까지 떠올리며 땅 끝까지 떨어진 교
권을 생각해 보면, 그저 참담한 심정과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으로 제
마음을 진정할 길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3학년 5반의 정나래와 김혜영이란 학생에 대한 선생님들의 평입
니다.
위 두 학생은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전 학과 선생님들께 수업 시간
의 태도 때문에 수많은 지적을 받아 왔고, 지도를 받고 있는 학생들입
니다. 두 학생의 성적은 상위권인데, 수업 시간에 장난치다가 늦게 들
어오는 것이 예사이며, 시간 중에 갑자기 이상한 모자를 눌러 쓰는
등 주의 산만하여 수업 분위기를 흐리고, 선생님들의 질문에 엉뚱한
말로 수업 분위기를 망칠 때가 많았던 문제 학생들이었습니다. 특히
체육 시간에도 항상 장난이 심하고 자주 늦게 나오는 가 하면, 심지어
는 수업 중에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구령대 뒤 그늘에 숨어서 쉬며 장난
질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저는 체육교사이고 평소에 문제아 지도를 많이 해온 터이라 학교에서
의 업무도 교내 학생 질서 지도와 학생 지도를 책임 맡고 있었습니
다. 그래서 학생들의 용의 복장에 대해 늘 신경을 쓰며 지도해 왔고,
문제아의 지도에 제 나름대로 열성을 갖고 지도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2001년 6월 28일(목) 5교시 수업 때입니다.
저는 5교시 수업 타종과 동시에 3학년 5반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3학
년 5반은 원래 제 수업이 아니라 후배 교사 김승현 선생님의 수업이었
습니다. 그런데 그 날 김승현 선생님이 몸이 불편하여 제가 대신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두 자리가 비어 있었고, 그 빈자리의 아이들은 정
나래, 김혜영이었습니다.
저는 두 아이에 대한 평소의 선생님들의 평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역
시 그 날도 둘이 어울리다 시간에 늦게 들어오는 줄 알고 두 아이들
을 불러 2∼3㎜ 두께에 길이가 36㎝ 정도로 힘을 조금만 주어도 휘어
지는 프라스틱 막대기(달력걸이용)로 머리를 두 세 차례 때렸습니다.
그러면서 보니까 김혜영 학생의 손톱이 1∼1.5㎝ 정도로 길어서 마침
수업이 아닌 3학년 5반 학생들도 용의 검사의 필요성이 느껴져 반 전
체 학생들의 손톱 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도 김혜영 학생이 손톱 문제로 진로상담부장님께 지적
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저는 이 기회에 김혜영 학생의 손톱을 깎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접 제가 손톱을 깎았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제 스스로 손톱을 깎게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 덜 깎으려고 깎는
시늉만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싫어해도 제가 직접 손톱을 깎아주는 경
우가 많았습니다. 그 때 김혜영 학생은 손톱을 깎이면서 저에 대한 분
노의 감정으로 마치 제게 대들기라도 할 것 같은 험악한 표정이었습니
다.
그래서 저는 아이의 마음도 다독거려주고 기분도 풀어줄 겸해서 제가
잘 하는 우스갯말로, "선생님이 손톱을 깎아 주었으니까 영광이지?"하
고 물었습니다.
대답이 없어 수 차례 더 물었습니다. 솔직히 제 감정도 고조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 차례 물음 끝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후에
야 퉁명스런 어조로 "앞으로는 손톱을 잘 깎고 오겠습니다."라고 엉뚱
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기대한 "네"라는 대답 대신 사뭇 반항적인 이 말에 당황하고 화
가 났지만, 저는 순간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자신을 다독거리며, "다
음부터는 그러지 마라."라고 말하고, 학생들에게 이론 시험 공부를 하
라고 지시하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조금 후 아이들이 갑자기 박장대소하며 웃길래 앞 학생에게 무엇 때문
인가를 물었더니 정나래 학생이 제가 이어폰을 끼고 음악 듣는 모습
을 빗대며 "우리, 주몽(상일동에 있는 주몽 재활원)에 온 것 같지 않
니?"라는 말을 해서 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하고 화가 났습니다.
정나래를 앞으로 나오라 하여 물었습니다. "너랑 혜영이가 애자(장애
자의 줄인 말)지 내가 애자냐?" (3학년 학생들의 대부분은 정나래, 김
혜영 두 학생을 '애자'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음)
그 때 갑자기 김혜영이가 분노에 찬 얼굴로 벌떡 일어나 "저는 애자
가 아닙니다."라고 큰소리로 대들었습니다.
놀란 저는 그 순간 불쾌하고 화가 났지만 반 학생들은 혜영이가 제게
대드는 모습을 재미 있어 하길래 순간 우스갯소리로 "너, 애자 맞
어."라고 맞받아 얘기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저 이 팽팽한 긴장을 누그러뜨려 얼버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리를 들은 김혜영이는 악에 받친 목소리와 불순한 태도
로 "저는 애자가 아닙니다."라고 몇 차례 고함을 더 질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혜영이를 앞으로 나오라 하였고, 앞으로 나온 혜영이는
저를 노려보며 "저는 애자가 아닙니다."라고 또 대들 듯이 소리를 질
렀던 것입니다.
저는 잠시 이 황당한 사태에 대해 망연해 하다가 교실에서 제 위신이
나 처지가 난처한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김혜영이를 따
로 불러 주의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김혜영이라는 학생이 대단히 자존심이 센 학생이라는 것을 그
때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김혜영이는 직접 가르쳐본 적이 없고 말로
만 전해들은 아이여서 그 아이의 태도가 퍽 당황하게 느껴졌던 것입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