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국불교의 개척자 일봉 서경보스님 인터뷰.
미주현대불교는 미주한국불교의 시작을 일붕 서경보스님이 미국에 온 1964년으로 주장하고 있다. 서경보스님은 한국스님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박사학위를 포함하여 현재 71개 박사학위 소지자 이기도 하다. 현재는 W.F.B. 한국지부장이며 법왕청 설립을 추진중에 있다. 미주현대불교는 서경보스님을 모시고 불자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법왕청 설립문제, 명예박사학위 71개, 1960년대 스님의 미국생활 등에 대해 직접 스님 의 말씀을 들었다.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스님과의 대답은 스님이 듣기 거복한 질문에도 시종일관 자비로운 웃음을 머금고 스님의생각을 솔직하게 밝혔다.
일시 : 1991년 4월 29일
장소 : 뉴저지 심혁근거사님 댁 응접실
대담 : 김형근 ( 본지 편집인 )
김형근: 이번 방미 목적은 무엇인지요?
경보 스님: 미국 하원의원을 5번 지낸 고. 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 작년 WBF회의 때 많이 후원을 한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백자 도자기를 전달한 바 있고 또 부시 대통령과 나 사이에 감사장이 2번 서로 오갔습니다. 이런 관계로 첫째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왔습니다만 일정 관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두번째는 세계평화교육자 국제협의회의는 회원국이 53개국인데 U.N.의 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에 등록된 단체입니다. 이 단체의 창설자 찰스 버스킨이 내 제자인데 이 단체의 주최로 선과 세계 평화 에 대해서 UN/NGO모임에서 강연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사정에 의해 3개월 정도 연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세계불교 법왕청 설립이 추진 중인데 법왕으로 나를 추대한 단체가 약 8백개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천각사에 법왕청이라는 간판을 붙였습니다. 방글라데쉬에서도 현판식을 했고 미국에서도 어제 했습니다.
김형근: 미국에서 추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경보스님: 세계평화교육자 국제협의회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청룡종(Blue Dragon Order)이라는 종단과 알라바마 주의 헌츠 빌에 있는 선원입니다. 청룡종은 설립자가 내 제자입니다. 청룡종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생긴 종단입니다.
김형근: 청룡종이라는 종단온 처음 듣습니다. 하나의 종단이 되려면 스님들의 숫자와 그 산하 단체로 교육기관, 포 교기관, 재정 능력 등 여러가지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과연 청룡종이 이런 면에서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고, 사람이 몇명 모여 된 단체가 법왕으로 스님을 추대하는 식이라면 대외적으로 공인받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군요.
경보스님: 문제가 될 것 없습니다. 종단도 미국에서 만들어져야 하고 청룡종은 청룡종단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주관 하는 행사에 6-7년 전부터 참석했습니다. 8백개 종단과 단체 속에는 불교 뿐만 아니라 광복회, 삼일운동, 라이온 스클럽, 새마을운동 등 사회단체도 많습니다.
김형근: 법왕으로 추대하려면 불교 단체에서 추대해야지 불교와 관계없는 사회단체에서 추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
경보스님: 상관 없습니다. 범국민적이니까 오히려 낫습니다. 사회단체 뿐 아니라 기독교 단체, 예를 들어 세계기독교 총연맹은 가입국이 40여개국이 넘는데 그 회장이 일본에 있습니다. 이 단체와 한국의 기독교단 총연합이 있는데 이 두 단체도 저를 법왕에 추대하는 8백여개의 단체 속에 포함됩니다.
김형근: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따져 볼 때 우리나라에서 선거할 때 투표는 우리나라 국민이 해야지 옳지 미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 투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경보스님: 이것은 범세계적인 조직입니다. 법왕이란 한국의 전국민이 받드는 법왕이 되어야 하고 전세계가 받드는 국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 단체만으로는 안됩니다. 종교라는게 민주, 공산 할 것 없이 연합해야 하고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김형근: 스님, 법왕 제도라는 것은 불교의 사상과는 거리가 멀고 불교를 근본적으로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보스님: 비판하는 것은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승왕이라는 것은 테라바다불교권에서는 벌써부터 있었다 습니다. 즉 태국, 버어마, 스리랑카, 인도, 방글라데시에 있습니다. 원, 명, 청 나라 당시에는 법왕이란 칭명으로 고승들을 추대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없었으나 우리나라는 국사, 왕사 제도가 있었지요. 천주교 로마 교황청도 처음 시작할 때 신부 한사람이 비세는 판자집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천여년이 지나니깐 기반이 잡혀서 지금은 범세계적입니다. 불교는 한국만 해도 종단이 40여개가 되는데 단합이 안됩니다. 단합이 안되니까 정치적인 문제나 세계적인 문제를 추구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문제에 우리 불교도 참여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도 대사나 상대방의 지도자와 상대를 해야 합니다. 태국이나 스리랑카 등에는 승왕이 있어 그 나라에서 국왕 부부가 가서 예배도 하지만 그 위력이 그 나라에 한정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제도에 대해서는 천주교에 교황 제도가 있 는데 예수가 그런 제도를 만들라고 했나요. 그런데 불교는 역사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천 주교에 비할 바가 아니거든요. 법왕이라는 명칭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왕이라는 게 무슨 소리냐 그런 것은 지금 논할 때가 아니다 라고 말들하지만 지금의 종정이나 총무원장은 부처님 당시에는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왕이 아니더라도 그 종단 안에서 지휘 계통이 있고 위, 아래 질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에 이런 제도가 생겨나야 불교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불교가 통일되어야 말이 먹히고 일을 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 이런 것을 구상했습니다.
김형근: 미주현대불교에서는 미주에서 한국불교의 시작을 서경보 스님의 도미로 잡고 있습니다. 스님이 미국에 처음 오셨던 날짜와 장소를 말씀해주십시오.
경보스님:1964년6월 컬럼비아대학에 교환교수로 왔습니다. 물른 포교사 자격도 아울러 갖고 왔습니다. 그 후 하 와이대학,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필라델피아 템플대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박사 학위는 템플대 학에서 1969년 ‘조당집을 통한 한국 선불교 연구’란 제목의 논문으로 받았습니다.
김형근: 선원을 많이 세운 것으로 아는데 언제 어디에다 맨 처음 세우셨나요?
경보스님: 1965년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세웠습니다. 주로 학생들과 시민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김형근: 미국인 제자는 몇명입니까?
경보스님: 20여명 됩니다.
김형근: 스님의 초창기 미국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경보스님: 머리 깍고 옷이 이상하고 고무신을 신고 하니까 일본의 '가라데'냐고 많은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학교에 서는 선에 대해서 강의를 하니 많은 청강생들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집이 자연히 선원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길에서 저를 침범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자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흑인 여자들이 많이 했습니다. 생활 적응이 안되어서 어려웠고 또 하나 불교 신도들을 전혀 만날 수 없었던 것도 어려움이었습니다. 언론에 제가 많이 보도되어서 그래서 그것이 화제가 되어 천주교 수녀학교나 기독교 학교에서 강연 초청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김형근: 스님 명함을 보니 71개 박사'라는 소개가 있습니다. 세간에서는 박사 학위가 이렇게 많은 것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스님으로서 왜 이렇게 박사 학위가 많으신지요?
경보스님: 미국에는 지금 90여개 박사 학위 소지자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부처님은 8만대강 경을 왜 설했느냐고 반문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해야 합니다. 많이 해야 불교가 포교도 되고 또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서는 많고 적은 것을 떠나서 뭣이든 할 수 있는 것은 다해야 합니다.
저서도 오백 몇십권은 됩니다. 책이라는 것은 논문식으로 쓰려면 어렵지만 내 경우는 이런 대답 같은 것 모두 수집해놓고 글씨 쓴 것 수집하면 책이 됩니다. 또 책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고 무료로 증정합니다. 그러므로 책이 저절로 많이 나갑니다. 붓글씨도 많이 씁니다. 지금까지 4-5만장 쓴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도 비판하지만 부처님 말씀이 8만대장경으로 많기 때문에 어디든지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많아서 나쁜 것이 뭐 있습 니까? 많은 것 중에 나쁜 것이 있으면 내버리면 되고 안읽으면 됩니다. '많은 것을 탓하지 말라,' 나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원효 스님은 4백권 이상 책을 썼지만 남은 책은 몇 권 없습니다. 그러므로 책이건 글씨건 승려가 쓴 것 이라도 기독교 신자들이 다 저에게 받아갑니다. 이러한 것이 포교라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저는 또 비석을 많이 세워서 이게 또 말이 많습니다. 이 비석은 제가 직접 세우는 것은 아니고 신도들, 제자들이 세우는데 비석에 '평화통일, 국태민안' 등의 문구를 새기면서 그 비석에 일봉기국상'이라는 글자를 같이 새깁니 다. 이 비석을 내가 세우면서 5백개가 되면 평화통일이 된다고 했는데 5백개가 넘도록 했지만 아직 평화통일은 안되었지만 비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할 때는 저명인사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때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강 연을 합니다.
김형근: 스님의 자신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해주십시오.
경보스님: 현재 일선교종 종정이며 고향은 제주도이며 제주도에서 19살에 출가를 했습니다. 올해 78세이며 상좌를 6백여명 두었습니다. 일붕선교종은 스님 약 6백명에 사찰이 3백 50개입니다.
김형근: 앞으로 꼭 하시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경보스님: 첫째로 세계불교 법왕청을 설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평화통일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석을 더 많이 세우고 싶습니다.
김형근: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원하시는 일들이 빨리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경보스님: 감사합니다. 미주현대불교의 무궁한 발전을 바랍니다.
1991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