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암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 눈에 빛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사랑하여 떠났던 연인(戀人)을 마지막으로 만나서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확인해 주는 대목이 티브이에서 흐르고 있었다.
여자 주인공인 최지우가 자신의 오빠(신현준)인줄 알게 행동했던 남자 주인공 권상우는 겉 재킷을 갈아입고서 최지우가 자신과 함께 서울까지 오면서 자신을 신현준으로 알게 했었다.
눈으로 실체를 볼 수 없는 최지우는 청순한 이미지 그대로 앉아서 가슴 설레게 하는 연인을 몸 매무새 더듬어가며 단정하게 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현준의 역할에서 권상우의 역할로 피치 못하게 1인 2역을 해야 하는 권상우는 이제 연인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야 하므로 자신의 옷으로 갈아 입으려하고 있었다.
서너 발치 떨어진 곳에서 멈춰선 그가 갈피 잡지 못하고 울어대는 장면은 떡볶이의 떡이 막혀진 목구멍을 내려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울컥 가슴에서 무언가가 거꾸로 솟구치고 있었다.
눈물이 주르르 안약 넣고 눈을 살짝 모은 듯 주책없이 흐르고 있었다.
휴지로 슬쩍 눈물을 훔치고서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도 보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눈가에 지워지지 않은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내가 쳐다보자 그는 겸연쩍은 듯 웃어 보였다.
찰랑하게 윤기 나는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맏이는 표정만 무겁게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보, 저 대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말했겠어요?”
내 말에 남편은 잠깐 조용하게 말이 없었다.
“저 남자 주인공처럼 말 했겠지 뭐.”
이내 그는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의 대답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인 일에서는 모두의 생각이 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요즘 인기 차트 상위권에 진입되어 있는 드라마를 재방송 채널에서 보고 있던 우리가족 모두 가슴 속에 터질 듯한 슬픔을 아닌 채 하며 이미 맛 잃은 떡볶이를 그저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고만 있었다.
요 근래에 나는 드라마를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하여도 등한시(等閑視)하고 있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이 이런 종류 드라마는 봐야지.”
남편은 오히려 내게 권하고 있었으나 정해진 시간대를 놓치게 되면 그것 때문에 짜증이 날 테고 설령 운 좋게 시간을 놓치지 않고 종영할 때까지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보는 내내 쓰려질 가슴이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눈에 뵈는 것에 자꾸만 연련하다보면 나또한 그러한 장르로 목표가 전환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아직 특이한 글 구상이 없는 나는 잡식 동물처럼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먹이를 선별(選別)해야 하는 입장이다.
아무것도 특별히 가지고자 하는 것이 없는 이가 더 문제이지 않을까?
먹 거리에서도 독특하게 군침이 도는 것을 발견치 못하는 나는 차라리 식성이 까다롭다는 남편의 핀잔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어느 것을 보아도 이것이라고 혹하게 빠지지 못하는 개성 없는 내가 쓸데없이 가리는 것은 참 많은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늘 말씀 하셨다.
“잘난 남자는 잘난 값을 하고 못난 남자는 못난 값을 하기 때문에 적당한 남자를 선택하여 결혼을 해야 한다.”고.
사람을 쳐다봄에 있어서 유난히 잘난 사람에게는 한번쯤 눈길이 더 가겠지만 키가 얼마나 커야 한다던가? 얼굴이 어떠해야 한다던가? 가진 것이 어떠해야 한다던가? 따지는 성격이 되지 못하였으니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면서 참 한심해 했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나의 이러한 면을 맏이가 닮아서 때때로는 어미로서 참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예!” 나 “아니오!”로 자신의 주장이 선명한 요즘 아이들 세대인 맏이가 어설픈 어미의 성격을 닮아서 이도 저도 아니고 상대방 좋을 대로 란 식으로 표현을 할 제면 어미로서 갖지 못한 지독한 이기적인 성격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부러지며 살아야 했던가?
빳빳하던 기질 덕분에 몰리며 살았던 세월동안 나는 참 많이도 세상에서 얻은 상흔(傷痕)을 가슴속에 문신처럼 새겨야 했다.
“정아야, 네가 아니어도 지구는 돌아가고 있단다.”
주어진 일 하지 않으면 못 견뎌하던 내게 언니는 늘 충고 했었다.
이제는 언니가 내게 했던 충고를 나의 아이들에게 하고 있으니 삶은 이리도 대물림이란 말인가?
이러한 나에 비해서 나의 남편은 성격이 좀 달랐다.
무엇보다 어떠한 일이든 구상이 아주 많은 편이고 그러다보니 욕심도 많고 추진력도 좋은 편이었다.
아이들이 의미 없는 성격을 가진 어미보다 뚜렷한 자의식(自意識)을 가진 아빠를 잘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나의 흐릿한 성격에 늘 일침(一針)을 가했다.
그냥 버려두면 한없이 늘어져 잠만 자거나 아니면 자학(自虐)에 빠져서 며칠이건 옴짝달싹 않고 집안 먼지처럼 한곳에 쳐져서 있을 것이다.
또 아니면 한 가지 일에 빠져서 정신없이 살 것이다.
그러니 여자를 북어에 비유하여 삼일에 한번씩 두들겨야 한다는 옛말처럼 남편은 나를 이리 몰았다가 저리 떠밀기가 일과인 셈이었다.
내가 요즘 나의 혼신을 모으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남편 덕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낱말퍼즐에서 글자 찾기 하듯 글에 매여 있고 남편은 감정 실리는 드라마에 몰두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편은 내게 어떠한 명제를 앞세우고 묻기를 좋아한다.
“당신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처리했겠어?”
몸이 다르고 하루 중에 주어지는 시간을 다른 모양으로 살고 있으니 같은 답이 나올 리가 없다.
그래도 그는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자동차 극장에서 ‘실미도’를 보고 왔던 남편의 표정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홍보전에 성공한 영화 같아! 너무 내용이 약했어! 그 정도의 훈련 장면이나 내용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거였어!”
남편의 흥분된 표정을 보며 나또한 공감(共感)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판단 없이 그저 괜찮은 영화 한 편 보았노라고 떠들었을 것이다.
이제 나또한 따지는 것 좋아하는 남편을 닮아가나 보다.
남편과 나의 생각이 같아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