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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加德島 :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산85) 면적 : 20.78km2
가덕도는 남해로 흘러드는 낙동강하구의 오른쪽에 있으며 부산광역시에 속한 섬들중 가장 크고 1989년 강서구
로 편입되었으며 1997년 부산신항의 착공으로 섬북부일대가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지형]
높은 산이 많고 대부분 급경사를 이루는데, 최고봉은 동쪽의 연대봉(459m), 북서쪽에도 삼박봉(311m), 웅주봉
(399m) 등이 솟아있고 해안은 동쪽과 남쪽이 단조로운 반면 서쪽과 북쪽은 소규모 갑과 만이 연이어져 드나듦이
심하고 북쪽해안을 제외한 대부분이 가파른 해식애를 이루고 있습니다.
[생활환경]
본래 어촌마을로 주민의 절반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산품으로 재배되는 양파가 맛이 좋고 연안일대에
굴양식이 활발하며 부산신항 완공과 거가대교의 개통으로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 졌습니다.
[탐방코스]
정거마을~(6km)~동선방조제~(700m)~동선새바지~(8km)~새바지~(1.7km)~외양포항
~(200m)~외양포 일본군포진지~(600m)~외양포전망대~(2km)~대항항(어항)
~(300m)~대항항 일본군포진지동굴~(5km)~블루오션 가덕휴게소
1.정거(碇巨)마을
가덕도와 인접해 있는 작은 섬 눌차도(강서구 눌차동)에 있는 작은 어촌벽화마을로 가덕도와 천가교로 연결되며
지명유래는, 동선새바지쪽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어로활동을 할수 없을만큼 위험한 곳이어서 고기잡이배들이
바람이 심할때는 이곳에 닻을 놓고 파도가 잠잠할때까지 피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닻을 걸어놓는 곳이라
하여 닻걸이라고 불렀는데 한자지명으로 닻碇(정)에 걸이를 거리(巨里)로 표기하여 정거리라 했답니다.
부산광역시의 뉴딜시범지역으로 선정되어 2013년 60여세대 담장에 어촌마을의 특색을 담은 어촌풍경과 관련된
다양한 벽화들이 골목마다 알록달록하고 예쁘게 그려져 있어 '정거마을 문화거리'로 불리고 있습니다.
(생태벽화마을 조성은 강서구청과 정거마을주민들의 지원하에 벽화전문 네오아트가 제작함)
1)어항 풍경
2)마을골목 풍경
3)마을의 다양한 벽화모습(일부)
2.동선방조제(눌차도 정거마을과 가덕도 동선새바지를 연결하는 방조제로 길이는 약 1km)
동선새바지길 446 일대의 가덕도 노지명소로 바다조망,해루질,낚시,차박캠핑과 취사,갯벌체험 등이 가능합니다.
외항쪽은 고운 모래사장으로 아이들과 모래놀이하기가 좋고 내항쪽은 갯벌이라서 갯벌체험을 할수 있습니다.
1)방조제 풍경
#갈맷길노선안내도(부산갈맷길 5코스 3구간)
3.동선(東仙)새바지(부산광역시 강서구 동선새바지길 290-46)
(*새바지 : 동쪽에서 불어오는 샛바람(동풍)을 막아주는 등받이 지형)
가덕도 동선동 해안에 있는 자연부락 해안명소로 동선 새바지방파제와 등대, 해안둘레길, 낚시,차박,갯벌산책을
즐기기 좋은 곳이며 특히 부산의 해돋이 숨은 명소중 하나로 사진작가들의 일출풍경 출사지로도 유명합니다.
이곳은 동선리 본동마을 동쪽으로 옛날 향교가 있었던 생교마을 동쪽끝에 샛바람을 많이 받는 곳으로 새바지
갯마을로 불리다 '동선새바지'로 불리는데 가덕도 동쪽 해안길이 끝나는 '대항새바지'와 마을이름으로 구분하며
매년 1~2월 동해에서 자란 대구가 산란하러 이곳까지 와서 잡힌 것이 가덕대구로 맛이 좋아 임금님 진상품목에
오르기도 했는데 대구개체 보존과 어민소득 증대를 위해 2월에 대구알 방류사업을 이곳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알을 방류한 자연산 대구는 웅동수협을 통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수 있습니다.
좌측으로 펼쳐지는 제방은 눌차도와 가덕도를 잇는 제방으로 태풍내습시 제방이 터진다 하여 터질목이라 하고
제방앞바다가 거칠어 운항하던 배가 잘 터진다 하여 터질목이라고도 합니다.
4.새바지(대항)
가덕도 동편해안의 대항동 일대로 새바지항 방파제와 자갈해변, 일제강점기 인공동굴흔적을 함께 볼수 있는
역사해안 산책형 명소였지만 현재는 인공동굴이 폐쇄된 상태입니다.
5.외양포항(外洋浦港)
가덕도 남쪽 대항 끝마을로 한적한 포구였으나 1904년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이 군사거점 확보를 위해
당시 거주하던 마을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1904년8월 포대진지공사를 시작하여 1905년1월에 완료했고
완료돌 무렵인 1904년12월20일 '중포병대대'가 옮겨오고 1905년5월7일 '진해만요새사령부'가 옮겨와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으나 1909년8월30일 '진해만요새사령부'가 마산으로 이전한 후 '중포병대대'로 격하되어 유지된
것으로 보이며 1945년8월 광복이후 일본군이 물러나자 추첨으로 선정된 주민들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외양포마을에는 막사(병사),창고,우물,배수로 등 당시 일본군의 군사시설흔적이 곳곳에 있으며 언덕을 쌓고
수목으로 은폐한 마을뒷편 포진지에는 280mm 유탄포 포좌흔적(6문),탄약고,엄폐막사가 있고 외양포를 둘러싼
봉우리에는 관측소,산악보루,벙커 등이 있습니다.
1)어항 풍경
2)외양포마을 안내도
3)외양포 주요볼거리 안내도
4)일본군포진지 역사안내소로 올라가는 진입로
#외양포 역사자료
6.외양포 일본군포진지
1)여러 용도로 지어진 포진지 외관과 내부모습
2)외양포 포진지포좌
1904년부터 일본군이 군사시설로 설치한 것으로 엄폐막사 2개소,탄약고 3개소와 탄약고사이에 2개씩 포좌를
설치하여 총 6문의 280mm 유탄포를 배치하였고 막사와 탄약고는 진입구를 제외한 4면을 구릉으로 처리하고
상부에 대나무와 잔디 등을 심어 은폐 및 엄폐하였습니다.
3)포진지포좌의 상부로 올라가는 계단과 상부 풍경
4)야생화단지 풍경 : 80%정도 개화된 유럽수국이 넓은 면적에 걸쳐 피어있는 풍경이 장관입니다!!
야생화단지를 구경하고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다시 역사안내소방향으로 내려가는 산책로가 나오고 이 길로
내려가서 역사안내소 바로 아래쪽에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는데 이 길로 가면 공동목욕탕,우물터
옛 일본식가옥 등을 구경할수 있습니다.
5)마을공동목욕탕
마을주민들이 사용하기위해 만든 공동목욕탕 건물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6)일본식가옥
건축형태나 양식에서 근대기 일본식가옥으로 추정하나 건축연대 및 용도를 특정할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며
건물외벽은 철재 슬레이트로 외부가 둘러져 있고 그 안쪽으로 원래 형태의 비늘판벽형태가 남아 있습니다.
7)우물터
8)헌병부(憲兵部) 건물
1905년5월 일본군이 진해만요새사령부의 헌병부로 사용한 건물로 정면 18m, 측면 7.2m규모로 다다미방,창고
욕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911년에는 위병소로 사용되었고 당시 위병소 뒷편에는 8mX3.6m규모의 부속
화장실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정면 17.9m, 측면 10.3m규모로 정면을 제외한 3면은 증축변형되었음.
7.외양포전망대
외양포마을 위쪽 높은 언덕배기에 조성되어 있고 전망대주차장을 겸하고 있으며 외양포항과 앞바다, 거제도로
가는 거가대교와 거제도까지 조망할수 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과 바다풍경
2)전망대에서 일본군포진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나무데크길
8.대항어항(大項漁港)
1981년12월24일 지정된 지방어항으로 가덕도 북쪽의 연대봉과 남쪽의 국수봉사이 오목한 목부분의 서쪽에 위치
하며 동쪽 해안선을 따라 대항마을이 이어지고 만입부 중앙에 대항선착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대항 숭어들이축제"기간에는 국내에서 전해지는 재래식 어로법인 '육수장망 숭어들이'시연이 대항항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지역어업문화와 역사적인 장소를 함께 돌아보는 탐방코스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 일본군포진지동굴,대항전망대,새바지,외양포항,외양포 일본군포진지 등 볼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1)어항 전경
2)동방파제 남단등대
3)동방파제 북단등대
9.대항항 일본군포진지 인공동굴(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해안로 1212번길 48-1)
대항항으로 진입하여 선착장에서 오른편 해안길을 따라 250m정도 가면 동굴안내소(바로옆에 공용화장실있음)
가 나오는데 별도 주차장시설이 없으니 개인차량으로 오는 방문객은 선착장인근에 갓길주차하는게 좋습니다.
[일반현황]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부산 진해만방어를 위해 조성한 군사시설로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희생이
어린 역사탐방지로 입장료와 주차는 무료이고 상시개방이나 동굴내부조명은 09시~20시까지이므로 조명이
켜지는 시간에 맞춰 방문해야 동굴내부풍경을 제대로 볼수 있습니다(조명OFF시 아무것도 볼수 없습니다!ㅋ)
[관람코스]
입구안내소~해안데크길~1동굴(포진지체험존)~2동굴(바닷속체험존)~3동굴(일몰동굴/소원동굴)까지 탐방한 후
바깥쪽 해안산책로를 따라 입구안내소까지 되돌아오는 약 2km코스
[전시공간]
동굴이 I자,T자,L자형 연결 복식동굴형태로 1동굴구간에 조형물,설명판,전시물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1)대항 포진지동굴 탐방안내도
2)입구안내소에서 동굴까지 가는 해안데크길
3)동굴입구 모습
4)동굴입구 초입에 있는 전시물 : 당시 일본군이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동원하여 동굴공사하던 장면
5)동굴내부의 다양한 풍경(기행블로그 사진 업로드분량제한으로 극히 일부사진만 올림)
*동굴공사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작업장면
*1동굴 내부풍경
##주요 사진전시물(사진은 업로드분량제한땜에 생략함)
1)결사항전의 동굴요새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말부터 전쟁이 끝날때까지 한반도 남단에 동굴요새진지를 많이
구축하였고 미군이 본토공격에 앞서 한반도에 교두보를 확보할 것이라는 판단아래 유황도와 오끼나와전투에서
결사항전했던 것처럼 동굴요새만이 최후의 저항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이곳 대항항 절벽요새는 진해만의 해군
기지를 방호하기 위해 전투기와 함포의 공격에 견딜수 있도록 은밀한 곳에 축성했고 동굴속에 야포와 중화기를
배치해 결사항전하고 최후에는 바다에 뛰어들어 옥쇄할수밖에 없는 지옥의 입구에 만들어졌습니다.
해수면으로부터 약 8m높이의 암반속에 횡으로 굴착된동굴선의 길이는 175m로 매우 길지만 남쪽으로 굴토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전쟁이 끝날때까지 계속된 미완의 동굴로 남아 있습니다.
2)요새사령부 진지
1994년2월 러일전쟁 발발후 괴멸된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발틱함대가 한반도 근해를 통과할 것
으로 예상되자 일본군부는 진해만에 해군함대를 매복해 두고 기습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며 외양포와 거제도일원
해안에는 다양한 구경의 포진지를 구축하고 러시아함대와의 일전을 준비했고 일본군은 외양포마을에 병영시설과
포대진지를 구축하면서 70여호의 가옥과 주민들을 1904년8월 강제로 소개시켰으며 진지편성이 완료되자 진해만
요새사령부를 창설하여 대규모병력을 배치했고 일본 연합함대는 외양포 앞바다에서 출진하여 러시아 발틱함대와
1905년5월27일 대한해협전투를 치러 대승했고 외양포마을은 일본군의 점령으로 41년간 사라졌다가 광복후 일본
의 병영시설에 주민들이 거주하면서 다시 생겨난 곳입니다.
3)특공정 동굴진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이후 일본군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미군이 일본본토 상륙전 한반도에 교두보를 확보할
것으로 판단한 일본군은 제주도를 비롯한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일대에 비행장과 동굴요새를 구축하고 해안에는
'특공정동굴'기지를 만들었는데 새바지동굴은 대항지역에 산재해 있는 절벽위의 동굴과 달리 해수면에 가깝게
구축되어 있고 돌출된 바위산을 관통하여 은폐 엄폐된 곳에서 해안으로 접근하는 상륙정과 상륙부대를 공격하기
적합한 다목적 동굴이며 국수봉의 보루진지와 상호통제가 가능했으며 자살특공정부대가 실전배치되었던 제주도
의 성산일출봉,서귀포,삼매봉,고산리,수월봉 등의 신요대동굴과 유사하나 실전배치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부대
배치전에 태평양전쟁이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4)격납고
읿본군은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 항공전력에 중점을 두었고 일본군 진해만요새사령부는 해군
함재기 조종사양성을 목표로 개활지인 평강 신평마을 일대에 비행장을 건설했으며 해군 비행예과(엤 일본군 비행
하사관학교) 연습생들은 '아카돔보 히코기'라 불리던 복엽기로 비행연습을 한 후 일본군의 주력함재기인 '제로센
(0식 함상전투기)'의 조종사가 되어 전장에 투입되었고 '가미가제' 특공요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비행장 활주로는 강서의 영산인 칠점산 봉우리 3개를 허물어 건설하고 격납고는 덕도산에 동굴요새를 구축하면서
나온 골재로 전쟁이 끝날때까지 만들었는데 20여기의 격납고가 있었으나 공군비행장 확장으로 현재는 4기가 주택
과 공장, 우사 등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5)항공요새동굴
일제는 평강비행장에서 해군함재기조종사 양성을 위해 훈련기를 예과련 연습생을 양성했으나 태평양전쟁 말기
에는 요새항공기지로 만들려 했으며 비행장은 활주로 확장 및 격납고를 만들어 미군의 폭격에 대비했습니다.
인근 덕도산에는 무려 13개소의 인공동굴을 뚫어 지휘소로 운용함은 물론 탄약과 유류를 비롯한 각종 장비를
방호하고자 했고 산정상에는 3개소의 고사포진지를 배치해 미군의 공습에 대비했으며 인근 가락동 오봉산에도
대공화기를 배치해 요새기지 방어를 위한 입체적 화망을 구성했고 동굴을 굴토하면서 나온 골재는 평강천 너머
까지 협궤를 깔아 운반하고 격납고의 기초와 축성재료로 이용했는데 동굴은 10여곳 정도가 탐방가능하며 인근
사찰과 교회의 기도처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6)배밭속의 일식가옥
일제는 1910년 조선을 강제병합한 후 효과적 착취를 위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농업으로 낙동강 삼각주의 비옥
한 사질토가 배농사에 적합하다는 것을 간파한 일제는 일본인농부들에게 막대한 정착자금을 지원하고 동양척식
주식회사를 통한 토지매입과 관개수로를 비롯한 농업기반시설을 갖추어 주었으며 일본인들은 수천평에서 수만평
에 이르는 배농장을 조성하고 일식가옥을 지어 장원형태의 대저택을 만들었는데 대저1동지역에만 이러한 일식
가옥이 무려 50여호 있어서 부산광역시는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일식가옥 2채를 '근대건조물(2012-5호,2012
-6호)'로 지정했으며 광복후 배농장을 인수한 우리농부들은 품질개량과 대량생산으로 전국최대 배농장을 만들었고
구포역을 통해 출하하면서 '대저배'가 '구포배'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물고기의 이동을 RGB 3색의 순시변화로 표현한 LED조명 조형물
*2동굴내부 풍경
*해안산책로에서 진입하는2동굴 출입구
6)동굴탐방을 끝내고 되돌아 나가는 외부해안산책로
10.블루오션 가덕휴게소(부산광역시 강서구 거가대로 2571)
부산광역시와 거제도 연결도로의 휴게소로 천혜의 자연을 가득 담은 풍경명소이며 드넓은 야외테라스와 힐링
산책로에서 광활한 바다풍경을 즐길수 있고 여러가지 조형물과 벚꽃나무 군락이 있어 사진찍기 좋은 포인트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고 뒤편에는 마음껏 뛰어놀수 있는 넓은 광장과 먼 바다풍경을 조망할수 있는 전망대도 있고
부산과 거제간 연결도로의 핵심인 가덕해저터널에 대한 모든 것이 전시된 세계최대수심 해저터널 연결도로 홍보
전시관도 흥미있는 볼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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