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궁산(宮山) 山行
오늘은 친구와 함께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궁산(宮山) 산행을 비롯한 겸재(謙齋), 정선 (鄭敾) 미술 기념관
허준 박물 기념관 양천 향교등 역사 현장을 두루 돌아 보기로 한다.
궁산(宮山)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한강변에 있는 해발 76m의 산이다. 삼국시대 에는 파산(巴山)
성산(城山),관산(關山),진산(鎭山)이라고도 했다. 궁산(宮山)이라는 명칭은 산자락에 양천향교(陽川鄕校)
가 있어 공자(孔子)의 위패를 모시기 때문에 궁(宮)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궁(宮)이란 왕(王) 과 왕비(王妃)가 거쳐 하고 신하들이 나라일 보는 집을 궁(宮)이라고 하며 궐은 궁을
둘러싼 높은 성과 담을 말 한다.성인(聖人)은 귀이(耳)변에 입구(口) 임금왕(王)이 합쳐진 글자 로서
귀로 잘 듣고 입으로 바른 말을 하는 임금 같은 사람을 아마도 성인(聖人)이라 한데서 성인(聖人)들의
위패가 모셔진 향교(鄕校)가 있는 산 이라 하여 궁사(宮山)이라 한듯한 생각이 든다.
궁산(宮山)은 삼국시대 부터 한강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 였다.산자락 에는 희미하게 나마 백제 신라때
지어진 옛 성터가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관군과 의병들이 집결 하여 왜군을 격퇴 했으며 6.25 때는 국군이
주둔 하여 북한군을 격퇴 했다.
궁산의 북면은 강남에서 행주대교로 이어지는 올림픽도로와 접해 있고, 산의 서쪽 산기슭에는 양천향교가
자리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기준에 따르면 표고 100m 이상이 되어야 산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궁산은 높이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니 언덕이나 다름없다. 예전에는 강물이 산자락을 휘감고 유유히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궁산과 한강 사이에 널찍한 강변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산정에는 중국의 동정호의 누각 이름을 본딴 악양루(岳陽樓)가 있었지만 소실되었고 영조 때인 1737년
그 자리에 소악루(小岳樓)가 만들어졌다.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였던 겸제정선(鄭敾)이
양천 고을의 현감 으로 부임 와서 소악루(小岳樓)에 올라 한강의 풍광에 취해 뛰어난 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또한 마을 수호신의 신주를 모신 성황당(成隍堂)이 있고 소악루(小岳樓)서쪽 산자락에 옛 성터인 양천고성지
(陽川古城址)가 있다, 하지만 1977년 궁산은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서울역과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마곡철교가 궁산 앞으로 지난다.
산행 사진이 이어 집니다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2번출구
우리 일행은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2번출구에서 10:00에 만나 강서 농협 방향 양천로 49(골목길)따라
약10여분 이동 하니 양천향교(陽川鄕校)에 도착 한다.
능(陵) 묘(廟)궁전(宮殿)등에 세운 홍살문(紅殺門)
홍살문 왼쪽 에는 정면2칸 측면한칸의 아담한 규모의 유예당은,방은 들이지 않고 마루와 마루방만을 둔
구조로 보이는데 관람석을 앞에두고 있어 유예당은 무대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유예당(遊藝堂)은 현판글씨가 특이한데,서예가인 하석 박원규님 글씨라 하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태극 마크가 그려진 외삼문(外三門)/보통은 좌측문(동쪽문)만 열려 있고 가우네 문은 석전대제 때만 열린다.
외삼문 왼쪽 담장 아래 비석 이다. 9기로 양천 사또와 경기도 관찰사의 선정비와 공덕비 이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동재(양반자제숙소) 좌측에 서제(서민자제숙소 가운데 명륜당(강당)
현재 공사 중의 동재(東齋)는 양반 이나 관리 자제 들의 숙소로 지금은 관리 사무소로 쓰이고 있다.
서재(西齋)는 일반 자제들의 숙소로 그 모습은 동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 돌계단 위 강학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은 교육 공간 으로 지금은 한문과 서예등 교양강좌를 열고 있다.
대성전(大成殿)을 품은채 입을 봉한 내삼문(內三門)이다
대성전(大成殿)은 향교 에서 가장 신선한 공간 이자 중심 건물로 공자(孔子)를 비롯한 유교의 오성(五聖
/공자.안자.자사.증자.맹자)과 송조사현(宋朝四賢/주돈이,정호,정이,주희) 우리나라 18현(賢/ 최치원.
정몽주.조광조,이황 이이 송시열 등)의 신위가 봉인 되어 있다.오늘도 문이 굳게 다쳐 있어 들어 갈수가
없다
대성전(大成殿) 우측에 자리한 전사청(典祀廳)으로제례(祭禮)와 제수(祭需)를 준비 하는 건물 이다
향교(鄕校)는 고려시대를 비롯 하여 조선시대에 계승된 지방 교육기관 으로서 국립 교육 기관 이다. 고려 시대에
처음 생겼을 때 에는 향학 이라 불렀다.향교는 지방의 문묘와 그에 속한 학교로 구성 된다.
향교(鄕校)는 문묘(文廟).명문당(明文堂)및 중국 한국의 선철 선현(先賢)을 제사 지내는 동서양무가 있다.
동서양재(東西兩齋)는 명륜당(강당) 전면에 있으며 동재(東齋)에는 양반 서재(西齋)에는 서류(庶流)자제 숙소
로 사용 하였다.향교는 지금의 중고등 학교와 같으며 여기서 수학후 1차 과거에 합격자는 생원(生員)진사(進士)
의 칭호를 받고 성균관에 가게 되며 다시 문과시에 응 하여고급관위(高級官位)에 오르는 자격을 얻었다.
전국 234개의 향교가 있었다.그중 양천향교(陽川鄕校)는 조선조 태종 12년(1411)에 설립되어 오랜 세월 훌륭한
인재들을 배출해 왔고 유일하게 서울에 위치해 있는데,이는 본래 김포에 있던 양천향교가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서울에 편입되었다.
6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양천향교 역시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홍살문을 지나면 외삼문(外三門), 외삼문을
지나면 중앙에 명륜당(明倫堂), 그리고 좌우로 동재와 서재, 명륜당 뒤로 내삼문, 그 뒤로 대성전, 대성전 옆으로
전사청(典祀廳)이 자리하고 있다.
대성전(大成殿)에는 공자님을 비롯한 4성위(四聖位)와 송조사현(宋朝四賢)우리나라 18현(18賢)의 위패를 봉안
하고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대제를 강서구청장이 초혼관 으로 석전제를 올린다
우리는 향교를 둘러 나와 궁산 둘레길 산행을 이어 간다.
양천고성지(陽川古城址)
궁산(宮山) 은 서울의 서쪽 끝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궁산은 표고 75.8m로 조선시대 양천고을의 진산이었다.
한남정맥의 끝자락으로 안산 수리산에서 북행하여 증산(甑山)이 되고, 그 낮은 구릉이 한강으로 끝나면서 작은
봉우리를 이루어 놓고 있다.
한강을 따라 서쪽의 개화산, 동쪽의 탑산·쥐산·선유봉 등과 더불어 한강의 남안에 솟아 있어 강변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둘레길 따라 오르니.정상부에서 동~서쪽으로 뻗은 주능선과 남~북쪽으로 뻗은 가지능선의 상단부
를 에워싸서 축조한 산성 양천고성지(陽川古城址)가 넓게 펼쳐 진다.
양천고성지(陽川古城址)는 산의 정상을 둘러싼 테뫼식 성곽으로 한강에 닿는 부분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726척이라 했으니 약 220m이다. 이 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 문헌에 기록이 보이며,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의 흐름에 비춰보아,
백제 22대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475년)하기 전, 강 건너 고구려를 견제하며 국경을 지키던 산성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터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조각이 다량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문헌에서 ‘옛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조선조 초기에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양천고성은 돌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흙을 다져 쌓은 토석혼축성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성벽 대부분이 훼손되었으며 성벽의 일부와 성을 쌓았던 흔적이 겨우 남아 있다. 고성지는
비록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훼손되었지만 삼국시대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역사적 가치가 큰
유적이다.
산은 얕아도 한강을 가로 지르는 행주 대교 방화 대교,가양 철교 가양 대교 코 앞에는 하늘공원,멀리 북한
도봉산등 높고 얕은 산등이 한눈에 든다.너무도 아름 다운 풍경이전개 된다
궁산의 정상부 남동쪽 성황의 신주를 모신 관산성황사(關山城隍祠) 이다.
성황(城隍)은 서낭, 또는 선왕으로도 불리는데 중국 신화에서 전해지는 영혼의 판결관이며 마을의 수호신
으로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드는 신이다.
그리고 해마다 음력 시월 초하룻날이면 동민들이 성황사에 제물을 차려놓고 산신제를 지낸 뒤 동민들의
무사태평을 비는 서낭굿을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새로 지은 당집이 화강암으로 벽을 세우고, 지붕에는
얇은 기와를 올렸으며, 주위에 홍살울타리를 두른 현대식 건물로 유적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
이다.
소악루(小岳樓)
소악루(小岳樓)에서 바라본 한강과 주변 크고작은 산들
정상부 동쪽 한강을 굽어볼 수 있는 누각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소악루(小岳樓) 이다. 궁산 아래 한강변 인근에
있는 탑산과 더불어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었기에 예로부터 선비들이 뱃 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그래서 궁산
인근에는 중국 호남성(湖南省) 북부, 장강(長江) 남쪽에 위치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인 동정호(洞庭湖)
의 누각을 본떠 만든 악양루(岳陽樓)라는 누각이 있었지만 불타 버렸다.
그 후 동복 현감을 지낸 이유(李楡)가 영조 13년(1737년)에 옛 악양루터에 소악루(小岳樓)를 지었다. 그리고
양천 현감이었던 겸제 정선(鄭敾)이 소악루에 자주 올라 한강의 풍광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몇 점을 남겼다. 하지만 그후 소악루도 불타버렸으며 지금의 누각은 1994년에 복원한 것이다.
소악루는 정선의 산수화 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지금의 가양동에 있는 세숫대바위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곳은 누각을 복원하면서 한강변의 경관 과 조망을 고려하여 현재의 위치에 새로 지은 것이다.
소악루에 오르니 멀리 북한,도봉 남산과 인왕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한강 하류의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궁산 둘레길 따라 양천 향교 방향 으로 하산을 하니 궁산 근린 공원 입구 겸재(謙齋), 정선 (鄭敾)미술 기념관
이다.
겸재(謙齋)정선 (鄭敾)미술 기념관
겸재(謙齋), 정선 (鄭敾) 미술 기념관은 서울 강서구 궁산(宮山)자락 에 위치한 겸재(謙齋), 정선 (鄭敾)의
예술 업적을 기리고자 2009년에 설립한 미술 기념관 이다.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다.
1층은 정선이 양천에 머물던 시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정선이 그린 양천현 일대는 현재 겸재정선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는 강서구다. 강서구의 현재 지도와 함께 위치별로 그림을 표시해서 전시한다.
2층은 전국 지도를 펼쳐서 정선의 발자취와 그의 그림을 찾아 시간 순으로 그가 머물던 곳들을 나열했다.
겸재(호)정선은 조선 후기 사람 이다.정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중국 시화에 나오는 풍경이나 중국 그림을
따라 그리는 관념산수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정선은 실제 우리나라 풍경을 직접 보고, 느껴지는 감흥을
그림에 담았다. 그것이 바로 '진경산수화'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금강전도 등이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꾸준히 언급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풍경화는 보통 풍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만 정선은 풍경 속에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집어넣었다.
풍경의 일부를 실제보다 크게 그리기도 하고 붓 두 자루를 동시에 쥐고 그리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정선의
화풍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서울 한강 일대는 실제 지형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았다. 지형에서 원하는 위치를 선택하면 정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겸재정선미술관이 위치한 양천 일대의 그림도 있다. 실제로 미술관 옆 궁산에 오르면 그림
속 풍경과 현재의 풍경을 비교할 수 있다.
양천현감으로 부임한 건 65세 전후이다. 양천팔경첩은 노년(67세)의 작품이다. 당시 양천현이 지금의 강서구
일대이다. 양천현청이 있던 자리가 바로 겸재정선미술관이 있는 궁산 아래이다.
천 원짜리 지폐에 있는 계상정거도 도 전시 되어 있다.천 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은 조선 중기의 학자
'퇴계 이황'이다. 그런데 지폐를 뒤집으면 산수가 어울린 옛 그림 한 장이 나온다. 바로 겸재 정선이 그린 안동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을 그린 "계상정거도" 이다. 퇴계 이황과 관련한 그림은 그의 유적만큼이나 많다.
그럼에도 정선의 그림이 천 원짜리 지폐에 있는 것은 그가 우리나라 미술을 대표할 만한 화가 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식물원 이모 저모
우리는 가양동 식물원을 찾아 지하철 9호선 가양역 8번 출구 방향으로 이동 한다.8번 출구 에서 100여m
거리에 서울 식물원이 있다
서울식물원(Seoul Botanic Park) 은 서울시 강서구 마곡지구에 소재한 식물원 으로. 세계 12곳의 도시 식물과
식물문화를 소개하고 도시의 생태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조성되었다. 2007년 국제현상공모를 추진하기 시작한
이래, 2018년 10월 11일 임시 개방했다. 크기는 약 50만 4000㎡이며, 식물 3,100종을 보유하고 있다.
내부는 열린숲·주제원·호수원·습지원등 4개 정원 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9년 4월까지 6개월간 시범 운영한 뒤
5월에 정식 개원할 예정이다. 서울 최초로 공원과 식물원이 결합한 '보타닉(Botanic)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식물원 본관으로 들어서면 여러 개의 전시실과 카페, 도서실, 씨앗 전시실, 각종 물품을 파는곳이 있다.
공원의 면적이 여의도 공원의 2.4배가 된다고 하니 그 규모 또한 대단 하다.
열리숲은 서울 식물원 입구 이자 안내 서비스가 제공 되는 공간 이다.지하철 역과 연결된 통로를 나오면
둘레숲 한 가운데 넓은 잔디 마당이 있다.축제 특별전시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 진다.
주제원"은 야구돔 경기장을 닮은 커다란 건물내에 식물 문화쎈터 와 직경 100m, 높이 25m의 그릇형 온실
에 열대와 지중해에 위치한 12개 도시의 식물이 전시 되어 있었고, 주제별 식물전시가 이뤄지는 기획 전시실
(지중해관)과 온실을 내려다 볼수 있는 스카이 워크(열대관)를 경험 할수도 있었다. *****12개 도시***** :
하노이-자카르타-상파울로-보고타-바르셀로나-샌프란시스코-로마-아테네-이스탄불-타슈겐트-퍼스-케이프타운
이곳 에서는 어린이 정원 학교와 마곡 문환(옛 배수정 펌푸장)을 만날수 있다.
또한 야외 주재원은 모두개 정원 으로 구성 된다.
1) 바람 정원 : 억새등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물결.겨울 바람 소리 느낄수 있는 정원
2)추억의 정원 :어릴적 ㅗㄹ던 고향의 마당 ,봉선화등 정원
3)초대정원 :계절감을 느낄수 있는 정원
4)정원사의 정원 :예술적 감각의 정원
5)오늘의 정원 :봄 튜립 여름 백합 가을 국화등 계절 대표 꽃 정원
6)사색의 정원 :풍광과 어울어 지는 정자.선조들의 멋을 느낄수 있는 정원
7)치유의 정원 :약용 식물 식재료,허브 식물 정원
8)숲 정원 :한반도 희귀 특색 식물 전통 정원이 조성 중에 있다.
호수원은 호수 주변 산책 길과 습지관 관찰 데크 가 조성 되며조망 휴식 관찰시설등휴식 생태교육 공간 조성
습지원은 서울 식물원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 으로갈대와 철새등 자연 새애 공간 조성
지금은 조성 초기라 빈약 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서울을 대표 하는 식물원이 될것이 기대
된다.
습지원 조성 지
우리는 식물 문화쎈터의 관람을 마치고 "호수원"을 돌아서 마곡나루역 으로 이동 지하철을 타고 가양역
에서 하차 허준 박물관 관람에 나선다.
허준 박물관 이모 저모
약초정원은 서울시가 선정한 서울의 대표적인 조망 명소다.약초정원에 서서 바라보면 한강 줄기가 한눈에
들어찬다.눈앞을 가리는 장애물이 없어 시야가 시원스럽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가양대교의 위용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가양대교 북단은 가까이의 대덕산에서 먼 발치의 삼각산까지 이어진다.산맥이 너울거린다.
가양대교 건너의 평지처럼 보이는 언덕배기는 월드컵공원의 하늘공원이다.한강과 어우러져 한폭의 산수를
이루는 듯하다.무엇보다 조망을 위해 서있는 자리가 야산이라는 것도 매력이다.
옥상 약초원에는 십전대보탕 길,구선왕도고 길, 총명환 길등 같은탕 약제를 군집 120여 종 약초 식재
허준이 동의보감 70%를 집필한 허가바위 굴
허준박물관은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편찬한 구암(龜巖) 허준의 업적을 기린 한국 최초의 한의학
전문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한의학을 배우고 허준이 집필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옥상 정원에 마련된 약초원에서 100여 종의 약초를 직접 관찰할 수 있어
자연생태학습과 한의학을 접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박물관이다.
강서구 허준로에 위치한 허준박물관은 허준 선생의 출생지와 관련이 깊다. 강서구의 옛 지명인 양천은
허준의 고향이며, 허준이 14년에 걸쳐 완성한 동의보감의 70%를 박물관 뒤 허가바위 아래에서 집필
했다고 알려졌다.우리는 허준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가양역 부근 식당에 들려 점심겸 소주 한잔 하고
귀가길을 재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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