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달집 태우기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착각으로 실수를 하노라면 열없이 웃음만 나온다. 자신이 무얼 잘못한 줄을 알기에 핑계를 대지 못하고 자탁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때 나는 문화원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핑계를 대거나 구차하게 변명할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자초지종을 말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다른 일 때문이 아니다. 며칠적 나는 문화원에서 추진한 ‘정월 보름날 달집 태우기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흥미롭고 기대가 되일 일이었다. 초청자도 내가 글을 쓰니 특별히 배려한 것이었다. 글을 쓰는데 소재거리가 되지 않을까 해서 챙겨준 것 같아 고마움을 느꼈다.
당연히 얼굴을 내보이고 고마운 뜻을 새겨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그만 시간을 착각하고 말았다. ‘보름날 달집태우기’라는 말에 의례 정월대보름 저넉의 행사로 생각하고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 착각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 저녁인줄 알았네요”하니,
“ 아닙니다. 어제저녁에 잘 마쳤습니다” 라는 대답하는게 아닌가. 날짜를 하루 착각한 것이다. 참석 못한 것에 대해 서운함을 표시라도 하면 오히려 나으련만 그렇지를 않아 더욱 미안했다.
내가 정월 대보름을 맞아 가보고자 한 것은 초대를 받은 것도 있지만 옛날의 추억을 반추해 보고 싶어서였다. 10대 초반으로 추억이 아련한데 그런 행사가 그리움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어 잊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대보름을 맞으면 미리서 횃불을 준비했다. 주로 굽바자의 삭은 막대를 빼내서 다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주까리대와 삼대, 고추줄기와 가지의 줄기를 마련하여 불을 피워놓고 나이만큼의 불 넘기를 하였다.
액운을 막고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어서였다. 그것을 뛰어넘으면 피어오르는 연기가 코끝에 스며들어 아리게 하면서 눈에서는 눈물이 찔끔 나왔다.
횃불은 이웃 마을과 전쟁놀이를 하는데 시위용품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을 들고 나서면 전사가 행진하는 듯이 보였다. 횃불의 개수는 수의 우위를 나타내는 것이어서 그 행렬에 따라서 상대를 압도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벌어지는 투석전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기습을 하여 던지는 돌멩이에 머리가 터지고 비명소리가 왁자했다. 결국 승패는 누가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버티느냐에 있었다. 생각하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런 전쟁놀이는 6.25전쟁의 후유증이기도 했다. 당시는 종전 직후여서 이런 과격한 놀이가 유행했던 것이다. 그런 놀이가 한차례 벌어지고 나면 다음에는 숨겨놓은 오곡밥 서리와 노둣돌에 매달린 돈 수습에 나섰다.
돈은 대가 짚으로 오쟁이를 만들어 냇가에 놓아두기 때문에 그것을 뒤지면 되고, 오곡밥은 마당의 짚더미에 넣어두어서 비교적 쉽게 찾아냈다.
그러고 나서 이튿날 건밤을 지낸 아침이면 더위팔기에 나섰다.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서 대답을 하면,
“내 더위”하는 식이었다. 여름날 내가 타는 무더위를 가져가라는 뜻인데, 생각하면 다소 고약한 심술로도 읽히지만 어디까지나 세시풍속으로서 한해의 무병장수를 비는 전례풍습이었다.
나는 고향에 살적에 이런 저런 놀이는 많이 해보았지만 달집태우기는 딱 한번 구경했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 바로 전해에 마을을 휩쓴 홍역으로 어린이가 죽어나가고 많이 앓기도 해서 비원을 하기 위해 행하여 졌다.
홍역이 휩쓸 때는 한집 건너 한집마다 대문과 사립문에는 금줄이 내걸렸다. 출산을 뜻하는 숯과 솔가지와 고추와 종이를 매단 것과는 달리 외로 꼰 새끼줄에 잘게 자른 흰 한지가 끼어 놓았다.
금줄은 우리 집에도 내걸렸다. 동생이 홍역을 심히 앓아서 얼굴에 열꽃을 피워났다. 혓바늘이 돋고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했다. 이를 위해서 나는 해열에 좋다는 산토끼의 똥이 구하려고 뒷산에 올라 덤불을 더듬었다. 그 일이 눈에 선하다. 당시는 약이 귀해서 그것으로 단방 약을 썼던 것이다.
그 이듬해 대보름날, 마을 앞에서는 달집이 태워졌다. 마을의 큰 어른이 제문을 읽고 사람들이 불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비손을 하였다. 피워 오른 불길이 맹위를 떨치자 연기는 자욱이 마을을 덮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끝가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장면을 처음이자 마지막 본 것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날짜를 잘못 짚는 바람에 놓치고 마니 허망했다. 보름날 전날 밤에 하는 걸 모르고 막연히 보름날에 하겠거니 생각하다가 넘기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보름날을 맞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마음속으로나마 달집을 태우면서 마음속의 어수선한 잡다한 생각을 털어내며 추억을 회상해 본다. 그러면서 아울러 무병과 안녕을 함께 빌어본다. 이런 행동이나마 의미는 있지 싶다. 그러한 풍속을 마음에 새겨보고 새해를 맞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2018)
첫댓글 우리 마을에서는 열나흘에 집집마다 다니며 짚을 한 다발 씩 걷었고
산에서 소나무를 한 짐 해와 큼직하게 달집을 만들고 달집태우기를 했습니다.
남녀노소가 나와서 농악을 하며 즐겼습니다.
짚으로 두껍게 줄을 꼬아 줄다리기를 하여 윗동네 아랫동네 협동심을 과시하기도 해서
온 집안사람을 다 동원하여 힘을 쓴 것이 눈에 선합니다.
역시 50년대에 하였고 61년 5,16 쿠데타 이후에는 사라졌습니다.
강강술례소리, 줄다르기, 농악놀이, 쥐불놀이, 논둑태우기. 찰밥, 노둣돌의 돈, 보른 하루전에 공중에 띄에 보내던 연생각이 많이 납니다.
착각으로 기대하셨던 행사를 함께 하지 못한 서운함이 또 다른 작품으로 태어났으니 불행 중 다행이네요.
제 고향에서는 쥐불놀이나 투석전은 크게 치렀는데 달집태우기는 하지 않았던 것같습니다.
달집태우기는 대보름을 맞아 액운과 온갖 나쁜 기운을 태워버리고 풍요를 비는 공동체의 기도라고 생각해봅니다.
무엇보다도 각인의 속에 쌓여있는 사악과 부정심을 완전히 불태워 없애고
화합과 평화의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각오를 다지는 데 근본취지가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옛날에는 설보다는대보름을 더 크게 보냈던것 같습니다
놀이며 음식도 훨씬 풍성했으니까요
달집태우기 행사는 꼭 참석하려 했는데 착걱을 인하여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아 애석합니다
어릴적 쥐불놀이나 강강술래는 해보았는데, 달집태우기는 듣보잡이네요. 재미있었을 거 같습니다. 이런 전통은 이어지면 좋을 듯한데 정말 아쉽네요.
달집태우기는 보름낧 밤의 마지막 진수였지요. 달집태우기는 액을 물리치고 태워버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