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3일(주일) 낮 설교 - 성령강림절 후 제15주[교회연합주일] -
시작보다 끝이 더욱 좋은 인생
( 히브리서 11 : 23~31 )
Ⅰ. Story. 「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 」 인터넷카페 예화&창작
옛날 어느 마을에 황금이 담긴 일곱 개의 항아리를 얻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받아보니 여섯 개의 항아리는 황금으로 가득 차있었는데, 일곱 번째 항아리는 황금이 반만 차 있었습니다. 그는 일곱 번째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그 항아리를 가득 채우려고 가지고 있던 패물들과 값어치가 나갈만한 물건들을 모조리 황금으로 바꾸어서 반만 차 있는 항아리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리 많은 황금을 그 항아리에 가져다 넣어도 그 항아리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더욱 안달이 났습니다.
어떻게든 그 항아리를 채우고야 말겠다는 욕망은 시간이 지나면 날수록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그 항아리는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그 항아리를 채우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평생 불평하는 마음으로 궁색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황금이 가득 담겨진 여섯 개의 항아리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전혀 감사할 줄을 모르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항아리’만 붙잡은 채 불평과 원망으로 궁색하게 살아갔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미 나에게 주어진 장점들을 바라보면서 만족하고 감사하십니까? 아니면 나에게 없는 것을 바라보며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아가십니까?
지난 주간 제주도에 가게 되어 오랜만에 한라산등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제주도에 살면서 여러 차례 등반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리 큰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일행들과 함께 아침 일찍 성판악으로 향했습니다.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모두 들떠 있었습니다. 아침 8시50분에 등반을 시작하여 하산을 완료하기까지 9시간 반이 걸리는 코스였습니다. 말 그대로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하루 종일 산길을 걸었습니다.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무사히 등반을 잘 마쳤습니다.
한라산정상까지는 모두 나름대로 잘 올라갔는데, 문제는 하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평상시 운동을 게을리 했던 이들이 마음만 앞서서 욕심을 부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릎통증을 호소했고, 다리가 풀려서 제대로 걷지 못했습니다. 등산은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려오는 과정이 더 조심스럽습니다. 자기의 몸 상태를 알지 못하고 과욕을 부리다가는 하산하는 과정에서 발목이나 무릎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잘 완주하려면 자기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Ⅱ.
한라산등산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등산이 인생살이와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출발은 자신만만하게 하지만 마무리도 잘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중간에 포기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너무 의욕을 부리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산을 오를 때는 산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산을 정복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특히 한라산처럼 높은 산을 등산할 경우에는 너무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도 말고, 너무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꾸준해야 합니다. 너무 자기 자신을 과신하여 산을 우습게 생각하면, 등산할 때는 잘 하는 것 같은데 하산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라산 정도야 내가 충분히 등산할 수 있지!”하는 마음으로 앞장서서 올라갔던 사람들이 하산하면서 무릎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또 다리가 풀려서 어기적거리며 힘들게 걷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산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아예 등산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고, 등산도중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물론 신체적으로 등산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산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등산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또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은 등산을 마쳤을 때의 그 뿌듯함을 맛볼 수 없습니다. 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바라보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상쾌함을 맛보는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쾌감입니다. 바로 그 맛 때문에 힘들어도 등산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산과 깊은 연관을 가진 사람, 인생살이를 정말 잘 마무리한 사람, 처음보다 나중이 훨씬 좋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모세입니다. 여러분도 모세와 같이 처음보다 끝이 더욱 좋은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Α. 모세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였습니다(23-26, 출 2:11-12).
1. 모세라는 이름은 바로의 딸 즉 이집트공주가 모세를 강에서 건저내면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이집트말로는 ‘아들’이라는 뜻이고, 히브리어로는 ‘건저 냄’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로부터 건저내기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2. 히브리인의 아들로 태어나지만 공주의 양아들로 입양되어 ‘이집트왕자’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는 40세가 될 때까지 이집트왕실에서 자라지만 이집트사람에 의해 히브리인이 억압과 차별과 고통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히브리인을 때리는 이집트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파묻어버립니다.
3. 결국 그는 이 사건이 드러나자 이집트에서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가서 살게 됩니다. 본문은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좋아했다”(24-25)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였습니다.
Β. 모세는 잘 익은 포도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27, 출 3:1-12).
1. 이집트왕자로 자라난 모세가 미디안광야에서 산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어렵게 살다가 편안하게 사는 것은 쉽지만, 전혀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게 살던 사람이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모세의 처지가 바로 그랬습니다. 왕자에서 목동으로 전락!
2. 미디안 땅의 제사장이 모세를 보고는 그의 범상치 않음에 사위로 삼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왕실교육을 받은 사람이지만, 미디안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양치기밖에 없었습니다. 모세는 그때부터 40년 동안 오직 양치기로 살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겸손해졌음.
3.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1) 모세는 40년 전과 달리 이제 잘 익은 포도주처럼 자기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이스라엘의 목자로 부르심.
Γ. 모세는 끝이 훨씬 좋았던 사명의 사람입니다(28-29, 신 34:7).
1.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미디안의 목동이었던 그가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40년 전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살인사건 때문에 시작된 미디안에서 40년 방황생활, 그것으로 끝났다면 모세의 일생은 주목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모세가 된 것은 사명 때문임.
2.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보내달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으로 바로는 결국 이스라엘을 보내게 되고, 모세는 이스라엘백성을 이끌고 시내산으로 향합니다. 그 후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을 이끄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3. 모세는 정말 이스라엘을 잘 이끌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거듭거듭 하나님을 배반하고 모세를 원망했지만, 모세는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사명의 사람이었습니다. 120세에 죽을 때까지도 그는 강건했습니다. 모세는 죽기직전 느보산에 올라갔습니다(신 34:1).
Ⅲ.
진달래 밭 대피소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데, 정상에 거의 다 올라갔을 때 산 아래 쪽에서 구름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높은 곳인지라 구름 속을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사명에 사로잡혀 믿음으로 살아갈 때도 구름에 둘러싸이듯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한라산정상 백록담에서 관음사코스로 내려오는데, 경치는 너무 좋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내려가는가 하면 또 올라가고, 또 내려가고 또 올라가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으며, 견디기 어려운 극한상황을 만날 때도 있지만, 바로 그때 멈추면 안 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계속 걷다보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초반에 너무 힘을 많이 써서 중반과 종반에 고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생살이는 하루아침을 살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꼭 붙잡고 계속 걸어가는 것입니다. 혹여 곁길로 가면 그는 길을 잃게 됩니다. 믿음의 주님을 바라보면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믿음의 사람, 끝이 더욱 좋은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