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인삼산업 수탈과 독점에 맞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국내 최초 인삼조합
인삼은 예로부터 ‘하늘이 준 선물’로 귀하게 여겼으며 만초지왕(萬草之王)이라 불렸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는 불로장생의 영약(불로초)을 구하고자 신하들을 내보냈고 명을 받은 서복(徐福)이 우리나라에서 찾은 불로초도 다름 아닌 인삼이었다.
불로초로 여겨질 만큼 귀한 약초인 인삼, 그 인삼 중에서도 풍기인삼은 품질과 약효에서 으뜸으로 쳤는데 일제강점기 인삼거래 기록을 보면 풍기인삼 8냥(300g)과 금산인삼 10냥(375g), 개성인삼 16냥(600g)이 같은 가격에 거래됐을 정도였다. 이렇듯 뛰어난 풍기인삼의 명맥을 잇고 일제의 인삼산업 수탈과 독점에 맞서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국내 최초의 인삼조합이 바로 지금의 ‘풍기인삼농협’이다.
▲ 일제 침탈에 맞서 설립한 풍기삼업조합 풍기인삼농협은 일제가 대 중국무역을 독점하고 경제적인 침탈을 위해 1908년에 ‘홍삼전매제’를 강제로 시행하자 고려인삼을 지키고 더 나아가 민족주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같은 해인 1908년에 인삼경작자와 상인이 연합해 설립했다.
풍기인삼농협 초대 조합장인 구당 이풍환 선생은 구한말 종사관, 승훈랑 등 중앙관직을 역임한 분으로 풍기인삼산업의 발전과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일본에 대항하고자 창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인삼 조합인 풍기삼업조합은 개성삼업조합(1910), 금산삼업조합(1922)보다 앞서 전국 최초로 설립됐으며 현재는 인삼업계의 맏형으로서 인삼산업 발전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 풍기인삼농협의 변천과정 풍기삼업조합이 설립돼 운영될 당시 조합설립 인가와 달리 인삼경작 면허는 전매당국의 지시 감독을 받았다. 이로 인해 사무행정에 혼란이 오자 정부는 이를 변경해 인허가 업무를 전매국에 넘김으로써 풍기삼업조합도 지방청장 인가의 조합(구 조합)을 해산하고 1935년에 개성전매국 대구 전매지국장의 인가를 받아 새로운 조합(신 조합)을 설립하게 된다.
신조합이 설립된 1930년대 중반이 사실상 풍기인삼의 르네상스시대였다. 조합 내 기록에 의하면 금계2리 원용현씨가 금계리에 6년근을 재배해 개성 전매지국 개성출장소에 수납한 결과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품질로 평가받았다. 그 이후 풍기가 인삼재배의 최적지로 재차 소문이 났고 한국전쟁 후에는 개성을 비롯한 이북지역 사람들이 피난을 내려와 정착하면서 인삼경작을 하게 된다.
풍기의 인삼산업이 발달하면서 조합도 추가로 더 생겨나 풍기삼업조합 외에 ‘풍기삼업주식회사’, ‘풍기인삼판매동업조합’이 설립돼 모두 3개의 조합이 혼재하다 조합원의 이중가입, 업무 혼란 등으로 통합의 필요성을 동감해 1942년에 풍기삼업조합으로 다시 통합된다. 1971년에는 충북 제천의 ‘덕산삼업조합’을 합병하고 1978년 ‘풍기인삼경작조합’으로 명칭 변경됐다가 1989년 지금의 ‘풍기인삼농업협동조합’으로 바뀐다.
지난 1996년에 홍삼전매법이 폐지된 후 이듬해인 1997년에 인삼종합처리장을 만들었고 2001년에는 봉현면에 인삼가공공장을 준공해 연간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한편 중국, 대만, 필리핀, 미국 등에 수출해 각국으로부터 품질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여러 조합장을 거쳐 2005년부터 신원균 조합장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70여 명의 임직원과 1천500여 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돼 경북 및 경남지역(구미, 김천, 성주, 고령을 제외)을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다.
▲ 설립 105년, 탄탄한 기초 위에 새롭게 도약 지난 2008년 100주년을 맞은 풍기인삼농협(조합장 신원균)은 5~6년근을 매년 400~500톤가량(170억원 상당)생산하고 있으며 그중 25%(계약재배 포함)가량을 풍기인삼농협에서 수매해 정관장 등에 납품하거나 수출하고 있다.
3선의 신원균 조합장은 ‘독일병정’으로 불릴 만큼 계획적이고 치밀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어 90여명의 임직원(생산직 포함)에게 “안 되면 되게 하라”고 독려하며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있는 관할 구역을 관리하고 있다. 신 조합장은 과거 한때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조합을 취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고 불황이 계속되던 지난해에도 6억1천200만원의 흑자를 기록하며 출자배당 5.1%를 비롯해 총 11%의 배당금을 조합원에게 안겼다.
풍기인삼농협은 해외 수출 실적도 뛰어나다. 지난 2010년 ‘1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이래 싱가폴, 대만, 중국, 홍콩, 인도, 베트남 등에 꾸준히 수출하며 지난해는 300만불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불황으로 인한 판매실적 부진과 방만 경영 등으로 타 지역 인삼농협들이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것으로 풍기인삼농협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수 시장 역시 전국의 농협하나로마트 외에 55개의 사업소와 총판 및 대리점을 두고 조합에서 가공 제조한 홍삼, 원형 태극삼 등 뿌리삼과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황풍정’ 브랜드 제품 32개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중앙감사에서 자본의 적정성 및 건전성, 수익과 유통 등의 경영평가에서 모두 1등급을 받으며 탄탄한 조합임을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또한 조합원 자녀 20명에게 매년 2천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풍기인삼농협은 수상이력도 화려하다. 지난 2000년부터 대통령상 2회, 도지사상 2회 등 9차례의 크고 작은 상을 수상하며 자타공인 우수 인삼조합으로서 한국 인삼산업과 풍기인삼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연혁 - 1908. 3. 10 : 풍기삼업조합 창립이전 ‘삼업인회’라는 자생조직에서 인삼농가의 편익을 위해 인삼경작허가 등 업무 대행 - 1908. 12. 05 : 이풍환 외 49명이 발기해 풍기삼업조합 창립 - 1910. : 경상북도지방청장(경북도지사) 인가 - 1933. 12. : 홍삼전매령 시행규칙에 의거 경상북도 소속에서 인삼전매국으로 변경 - 1956. 12. 26 : 사단법인 인가 - 1971. 12. 29 : 충북 제천군 덕산삼업조합 흡수 통합 - 1978. 03. 20 : 풍기인삼경작조합으로 사단법인에서 공법인 인가 - 1984. 12. 08 : 본 청사 준공 - 1989. 01. 01 : 풍기인삼농업협동조합으로 개칭 - 1997. 12. 29 : 풍기인삼종합처리장 준공 - 2000. 07. 01 : 농협중앙회로 통폐합(법률 6010호) - 2001. 02. 14 : 상표농업홍삼 “황풍정”으로 변경해 사용 시작 - 2001. 12. 28 : 봉현 인삼가공공장 준공 - 2006. 09. 22 : 품질경영시스템(ISO9001) 인증 - 2008. 12. 05 : 풍기인삼농협 100주년 기념행사 및 100년사 발간 - 2010. 11. 30 : 수출 100만불 탑 수상(제45회 무역의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