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동창 朴槿惠와의 경쟁 걱정 없어. 경쟁은 협동하는 방법의 하나” ⊙ “현대건설 인수 않는다-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사들여 국내에 아파트 짓는 일은 없을 것” ⊙ “공직은 죽음과 같다. 공직을 할 기회가 오면 하는 것. 하지만 그걸 하겠다고 불나방처럼 쫓아다닐 생각은 없다”
鄭夢準 ⊙ 1951년 부산 출생. ⊙ 중앙고·서울대 상대 졸업. 미국 MIT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 현대중공업 회장 역임. 現 대한축구협회회장, 국제축구연맹(FIFA) 부위원장. 13·14·15·16·17·18·19대 국회의원. ⊙ 상훈: 〈체육훈장 맹호장(1989). 청룡장(1997),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 저서: 〈일본인에게 말한다〉 등.
취재지원 : 李永信 月刊朝鮮 인턴기자〈harry0127@ewhain.net〉
“아버지(故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본주의는 호텔이라고. 호텔에 늘 손님이 꽉 차 있지만 손님이 계속 바뀌잖아요.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은 빠르고, 기술 발전이 빨라요. 언제 주인이 바뀔지 몰라요. 세계 1등 기업을 지키는 건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죠.”
“아버지가 하루는 그래요. ‘원수를 의식하고 사는 것보다 경쟁자를 의식하고 사는 게 더 불행하다’고. 아버지는 일생 동안 경쟁 속에서 사신 분이잖아요. 하지만 경쟁을 두려워하시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경쟁을 두려워하는 건 경쟁 상대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죠. 포스코의 경쟁상대는 신일본제철이 아니라 플라스틱 회사라고 하잖아요.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철로가 나올지 모르니까.”
“아침에 산책하다가 아버지께 ‘대통령 선거가 복잡하다. 정치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아버님이 ‘야 인마 그러니까 니가 준비를 열심히 해야지’ 하세요. 내가 그때(1992년) 아버님 연세라면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버님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서 ‘기업가는 정치를 잘 못한다’는 편견을 깨는 건 좋다고 생각했어요.”
鄭夢準(정몽준·61) 한나라당 최고위원과의 인터뷰는 7월 11일과 7월 12일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7월 11일 인터뷰 도중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한국의 50대 여성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했다’는 전갈과 함께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소집이 통보됐기 때문이다. 못다한 이야기를 다음날 아침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 비즈니스 센터에서 계속했다. 그래서 인터뷰 시간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났다.
대한민국 수출 1등 공신은 鄭周永
정 위원은 까다로운 질문을 피해가기 위해, 중요한 현안을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다. 아버지 鄭周永(정주영)은 그에게 아직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정 위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은 요즈음 정주영 창업주의 생전 강연 영상과 생전 모습을 기업 홍보에 쓰고 있다.
―月刊朝鮮 2007년 2월호 별책부록이 ‘수출 3000억 달러 기적을 만든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역업 종사자 201명을 상대로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을 설문조사 했는데, 1위가 정주영, 2위가 李秉喆(이병철), 3위가 朴正熙(박정희)였습니다.
“제가 月刊朝鮮 별책부록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수출을 위해) 아버지가 처음부터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울산에 조선소를 지어놓았다는 것은 보통 비전이 아니죠. 현대중공업 기업광고에서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지만, 백사장에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배를 건조했잖아요. 제가 현대중공업 분들에게 ‘우리가 배 만드는 경험을 30년 이상 쌓았으니, 우리도 백사장에 조선소 지으면서 배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농담을 해요. 다들 ‘절대 못한다’고 하죠. 지금도 못하는 걸 30년 전에 하신 거예요."
정몽준 최고위원은 현재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8개 기업群(군)을 거느리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다. 정 위원은 현대중공업의 지분 10.8%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의 지분 94.9%를, 현대삼호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 지분의 41.09%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3개 주력기업의 2007년 매출은 21조 원, 순익은 2조 7300억 원이다. 재벌그룹의 자산 총액 기준(공기업 포스코 제외)으로 7위다. 정 위원은 지난 3월, 소유한 현대중공업 주식의 배당금으로 621억 원을 받았다. 그는 한국 부자 랭킹 1위에 올랐다.
―정 위원이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은 게 1982년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성격이 찬찬한 애는 전자를 시키고, 대범하게 해보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조선을 맡겼다”고 했는데요.
“제일 큰형(정몽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버님이 아들들을 대우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제가 MIT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아버지가 제가 쓴 석사학위 논문을 읽어보시고 ‘잘 썼다. 열심히 하면 노벨 경제학상 받겠다’고 좋아하셨어요. 세상 물정을 가릴 수 있겠구나 생각하셔서 사장자리를 맡겼는지 모르겠네요. 아버지가 워낙 기반을 잘 닦아 놓아서 세계 1등 造船(조선) 기업이 유지되고 있는 거죠.”
“아버지는 이상주의자”
―기업을 물려받은 2세들이 다 세계 1등 기업을 지키는 건 아니죠.
“2세들은 나쁜 일만 안 하면 선대가 이루어 놓은 걸 지킬 수 있어요. 쓸데없이 나쁜 일을 하니까 망치는 겁니다.”
―가까이서 본 아버지 정주영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버지는 이상주의자였어요.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죠.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두 시간 동안 읽었으니까. 그래서 아산재단을 만들고, 아산병원을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만들었잖아요. 세속적인 사람들은 세상 일에 별 관심이 없어요. 아버지는 세상 전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大選(대선)에 출마했고. 아버지는 서구식 개인주의 사상이 강했어요. ‘일본에서는 나라를 위해 벚꽃처럼 펴서 벚꽃처럼 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좋지 않다. 국가는 개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개인이 없는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 얘기를 항상 하셨어요.”
―서당에서 漢學(한학)을 공부하신 분이 어떻게 서구적 개인주의를 體得(체득)한 걸까요.
“아버님이 서당에서 3년간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떼면서 그때 배우신 것 같아요. 아버지가 ‘공자보다 맹자 글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맹자는 백성을 위해 폭군을 제거하는 걸 옹호했잖아요. 아버지는 윗사람들이 아랫사람에게 거만하게 구는 걸 정말 싫어하셨어요. ‘위에 있는 사람은 개인이 잘 나서 위에 있는 게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직위에 있는 거다’고 말하셨죠.”
―陰龍基(음용기) 전 현대종합상사 사장이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정주영 회장이 한번 화를 내면 어찌나 무서운지 회사 임직원들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머 감각을 빠뜨리셨어요. 아버지가 말년에 몸이 불편하셨을 때 거지같은 ‘왕자의 亂(난)’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이상한 기사가 나와서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부르시고 상의를 좀 하세요’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시면서 저한테 그러세요. ‘몽준아, 내가 너하고 상의하겠다고 한 약속을 잊어버리면 어떡하냐’ 그 와중에 그런 농담을 하시는 거예요.”
현대 시절 李明博 대통령과 교유 없어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한 시기와 정 위원이 현대중공업의 사장고문으로 일한 시기가 겹칩니다. 아무래도 그 시절에 마주칠 기회가 많았겠습니다.
“만난 기억이 거의 없어요. 식사를 한 적은 더더욱 없고요. 제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이명박 후보와 아침식사를 같이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