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로의 풍경, 1,121m봉 가는 길
못 잊어
찾는 이 길
하도 덧없어
허랑해
잊잔 길이
이리 삼삼해
――― 김일로
▶ 산행일시 : 2013년 8월 10일(토), 흐리다 비 온 후 맑음
▶ 산행인원 : 15명
▶ 산행시간 : 5시간 10분
▶ 산행거리 : 도상 6.4㎞
▶ 교 통 편 : 봉고차 2대에 분승
▶ 시간별 구간
06 : 32 - 동서울 출발
11 : 05 -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瑞興里) 서피동 위, 산행시작
11 : 44 ~ 12 : 18 - 능선 마루, 점심
12 : 46 - △961.8m봉
13 : 23 - 폐막사
13 : 37 - 1,121m봉, ┫자 능선 분기봉, 직진은 매봉산
15 : 07 - △854.8m봉
16 : 15 - 고암동, 산행종료
1. 등로의 풍경
【산행, 그 안개 속 풍경】
서화면사무소를 지나고 피양동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을 끝나고 다리 건너 골짜기 초입이 군
부대 정문이라 더 갈 수가 없다. 뒤돌아 산자락 평화공원을 크게 돌고 설피교 건너 고암동 서
피동으로 간다. ‘백두대간 트레일’ 이라는 방향표시판이 보인다. 산골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한참 가자 비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서화면과 북면의 면계 고갯마루인 말고개에 가까워질 무
렵 차를 세운다.
향로봉을 넘어온 백두대간은 칠절봉에서 진부령을 지나 마산, 신선봉, 미시령으로 가고, 칠절
봉에서 분기한 향로봉산맥은 계속 남진하여 면계 따라 매봉산을 넘고 서쪽으로 방향 틀었다
가 이곳 말고개를 지난다. 우리는 예전에 그 능선 마루의 오지 아닌 신작로 같은 산길에 적이
실망하였던 터라 오늘은 지능선 △961.9m봉을 겨냥한다.
이곳은 새벽에도 비가 내렸다. 굉음 내며 큰물로 흐르는 계류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바로 덤불
숲 뚫어 생사면에 붙는다. 가파르다. 키를 훌쩍 넘고 잔뜩 우거진 풀숲과 잡목을 헤쳐 오른다.
풀숲에 고인 빗물을 털어 새벽 비 소급하여 맞는다. 길 내는 앞사람 덕을 보고자 일렬로 간다.
머리 받치고 발목이 걸린 나뭇가지나 손바닥 찌를 가시 숭숭한 엄나무는 앞사람의 ‘머리!’ 또
는 ‘발목!’ 등의 선창을 복창하여 서로 인계인수한다.
가파름 수그러들고 엷던 지능선이 통통하니 살 올랐다. 마루금에는 바윗길이 자주 나온다. 사
람 발길이 전혀 닿지 않아 이끼 끼었고 더하여 비에 젖은 슬랩이라 아주 미끄럽다. 번번이 사
면으로 비켜간다. 널찍한 초원인 봉우리에 올라서고, 단지 때가 되었으므로 점심 먹는다. 염
천산행에는 탈수를 예방하기 위해 일부러 소금을 먹는다는데 짭짤한 젓갈류의 반찬이 일거
다득이다.
맑던 하늘에 갑자기 안개가 몰려온다. 안개 속에 든다. 이내 자욱하다. 숲속 조망이 없을 바에
야 이 또한 가경이다. 가도 가도 수묵담채화의 전시장이다. 혹은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Theo Angelopoulos) 감독의 영화인 ‘안개 속의 풍경(1988년)’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시계(視
界) 5m 내외. 어스름하다. 오른쪽 사면이 반공(半空)으로 환하여 다가가 보니 바닥 모를 심연
(深淵)인데 눈에 익자 개벌(皆伐)하고 남겨 놓은 모수(母樹) 몇 그루가 드러난다.
‘안개 속을 걷지 마라’ 온내 님의 주장이다. 1999년 1월 28일자 경향신문의 기사 내용이다. 강
원대 환경학과 김만구 교수팀이 96년부터 3년간 춘천지역에 발생한 안개의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황산염 등 오염물질을 빗물보다 최고 26배나 많이 함유하고 있고 산성도도 15배나 높
아 호흡기 질환이나 눈병에 걸리기 쉽다고 하며, 비단 춘천지역의 안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안개 속이라면 천리라도 마다하지 않고 걸으련다. 몽중산행인 듯 환영(幻
影)인 듯 이 정취를 내내 즐기고 싶다. 온내 님이 오늘 산행에 동참했더라도 위처럼 주장했을
까 하는 의문이 든다.
2. 채송화
3. 들머리, 말고개 아래
4. 등로
5. 등로의 풍경
6. 등로의 풍경
7. 등로의 풍경
8. 등로의 풍경
9. 등로의 풍경
10. 등로의 풍경
11. 등로의 풍경
12. 등로의 풍경
13. 등로의 풍경
수풀 헤치다 목덜미에 쐐기 네댓 방 쏘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난다. 사정은 허목(許穆) 선생의
『죽령(竹嶺)』과 비슷하다.
첩첩이 가파른 산 육백 리나 뻗쳐 積翠巃嵸六百里
안개 속 아스라이 푸른 산이 잇닿았다 烟霞縹緲連靑嶂
사다리 돌길 구불구불 험하고도 위험하니 石棧盤回危且險
걸음마다 숨죽이고 곁눈질 자주 한다 行行脅息頻側望
△961.8m봉. 나무숲이 어둠침침하게 우거졌다. 삼각점은 풀숲 아무리 뒤졌으나 찾지 못하였
다. 연호 화답으로 일행 간 이격거리를 가늠한다. 저마다 자기걸음으로 간다마는 갈림길에서
는 후미 오기를 기다려 준다. 다 허물어진 시멘트 블록조 군막사를 지나고 한 피치 오르면 ┫
자 능선 분기봉인 1,121m봉이다. 직진은 매봉산, 칠절봉, 향로봉으로 간다.
우리는 왼쪽 지능선 타는 하산 길로 접어든다. 나지막한 봉우리 넘고 넘는다. 인적은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풀숲 헤친다. 내리막길. 나무뿌리나 슬랩을 잘못 밟았다가는 여지없이 미끄러져
넘어진다. 걸음마다 숨죽인다. 함석판에 자갈 굴리는 듯한 천둥소리가 길게 나더니 그예 비
뿌린다. 햇볕 쬐기보다 비 맞는 게 훨씬 낫다. 이왕 내리려면 장대비로 줄기차게 쏟아졌으면
좋겠다.
뺨 타고 입안으로 흘러드는 빗물이 약간 간간하다. 태산명동하던 천둥소리치고는 시시하다.
금세 비 그친다. 교통호 넘어 벙커 지나고 △854.8m봉. 옛날에는 헬기장이었다. 수대로 풀숲
살폈으나 삼각점을 찾지 못하였다. 누가 보아줄까. 원추리(萱草) 꽃이 청초하다. 고향집에 계
실 어머니 아닌 군대 간 자식을 위해 피었다.
점심 먹은 배도 어지간히 출출해졌고 알탕하기 알맞을 만큼 땀도 흘렸다. △854.8m봉에서 비
스듬하게 왼쪽으로 뻗은 지능선의 끝자락인 고암동을 향해 내린다. 의외로 인적이 뚜렷하다.
쭉쭉 내린다. 안개 속을 벗어난다. 곧 유격대 막사가 있는 고암동이다. 오늘 산행 도상거리
6.4㎞. 그래도 오지산행의 흔적을 남겼다. 바지자락은 온통 흙탕으로 셔츠는 땀으로 절었다.
14. 등로의 풍경
15. 등로의 풍경
16. 등로의 풍경
17. 등로의 풍경
18. 등로의 풍경
19. 갈참나무 헐은 나뭇가지가 화분이다
21. 참취꽃
22. 멀리가 넘어야 할 △854.8m봉
23. 고암동 유격부대 앞 골짜기 계류, 설무교(雪武橋)에서
【야 영】
여태 마음은 2부 행사인 야영에 있었다. 야영지는 대암산 자락 앞골에 자리 잡은 원통 태능갈
비집 이천우 사장님의 별장이다. 야영이라 하기에는 멋쩍지만 그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려 한
다. 마당 가장자리 정자에다 일찌감치 모기장 치고, 다른 한편에다 구덩이 얕게 파고 석쇠 걸
었다. 조개탄 피워 고기를 구울 것이다. 이번에는 삼겹살이 아니라 쇠고기 갈빗살이다.
우선 별장 바로 앞의 개울로 가서 알탕한다. 평상 놓고 차양막 쳤다. 물살이 거세다. 물에 들
어 떠내려가지 않도록 큼지막한 바위를 보듬는다. 모처럼 시간이 넉넉하여 알탕을 오래도록
즐기려 작정했지만 물이 차서 서너 번 첨벙거리다 만다. 야영산행추진위(남당, 메아리, 해마)
가 산행도 하지 않고 여러 음식을 준비했다. 좌정한다.
산소리 님이 속초 갔다가 서울 가는 길에 이곳을 우정 들려 오징어 물회와 오징어회를 푸짐하
게 갖다 놓았다. 입맛 돋운다. 보령 송학에 사시는 남당 님은 예고한 대로 멍게(우렁쉥이)와
소라, 바지락을 가져왔다. 멍게는 살을 곱게 빼내고 그 껍질은 술잔으로 사용한다. 멍게주다.
아무리 마셔도 술이 취하지 않을 것 같다. 소라 삶아 안주하여 막 마신다. 바지락은 나중에 라
면 넣고 끓여 입가심할 것이다.
뒤쪽 무쇠 솥에는 이천우 사장님이 선사하신 토종닭 두 마리를 장작불 피워 삶는다. 수박등
밝힌 조개탄 주위로 둘러앉는다. 생더덕주가 사뭇 달다. 권주하는 손길이 바쁘다. 우리의 행
동거지가 영락없이 후카다 큐야(深田久弥, 1903-1971)의 『산장의 하룻밤』을 닮았다.
“모두 배불리 먹고 나서 다시금 모닥불을 끼고 둘러앉아 따끈한 차를 마시는데, 그 흐뭇한 기
분을 어떻게 설명하랴. 불을 지피고 또 지핀다. 오늘 힘들고 어려웠던 일, 실수한 이야기들이
재미있어 웃음바다가 된다. 산에 오면 확실히 서로의 마음이 가까워지는가 보다 그리고 조금
이라도 야성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우리는 속을 털어놓고 담소한다.
그러노라면 잠이 찾아와서 한 사람 한 사람 곯아떨어진다. 끝까지 남았던 사람도 잠들면 그
뒤는 나무 타는 소리와 골짜기 물소리뿐이고 산장은 완전히 심산의 고요 속에 묻혀버린다.”
단어 몇 개만 바꾸면 된다. 모닥불을 수박등으로, 따끈한 차를 향긋한 생더덕주로.
얼근하여 정자에 누웠노라니 개울 물소리가 점점 아련하게 들린다.
26. 초코베리(블루베리의 한 종류)
27. 비비추
29. 야영 기념사진
30.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지와 야영지, 그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