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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십에 읽는 《孟子》
원래 제목은 『오십에 읽는 맹자」지만, 「칠십에 읽는 맹자」라고 바꾸어봤다. 오십에는 못 읽었으니 칠십에라도 읽겠다고 마음 먹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맹자》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공자를 알면 다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공자와 더불어 諸子百家 중심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맹자보다는 맹자 어머니 - 아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했다 - 는 ‘孟母三遷之敎’가 더 잘 알려져 있다.
공자의 어머니는 ‘安徵在’라고 널리 알려져있지만, 맹자의 어머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책을 읽어 가다 보면 맹자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될 것이겠지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공자의 《논어》, 노자의 《도덕경》등 수많은 중국 고전들이 서점에 즐비하고 《맹자》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들을 누가 번역해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읽는 사람도 달라지고, 내용도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중국어를 공부한 학자라면 원문에 충실하려고 할 것이고, 이 책의 저자인 조형권 선생처럼 중국어를 전공한 학자가 아니라면 오히려 그들의 사상을 실용적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조형권 선생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나온 뒤에 20여 년간 SK하이닉스와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한 공학도다. 그는 어떻게 하면 조직과 함께 성장하고 보다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삶의 의미와 마음의 안정을 찾는 본질적 해결책으로 고전을 곁에 두고, 그것을 읽고 또 책을 썼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맹자의 성은 당연히 孟씨고, 이름은 軻(가), 자는 車(거)였다. 공자 사후 100년 뒤쯤인 기원전 372년 공자가 태어난 산동성, 魯나라에서 태어났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 子思의 학통을 이었는데, 공자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 많은 제자들 중에 공자 사상을 물려받아 발전시킨 인물로 맹자를 으뜸으로 치고 주목받는다. 그만큼 공자 사상을 체계화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인 仁과 孝를 중시하면서도 누구나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맹자는 강조했다. 다른 나라 위정자들에게 조언자 역할도 해주었으나, 그 나라에서 벼슬을 하지는 않았고, 유교 사상이 깊이 뿌리내리도록 하려고 했다.
《맹자》는 맹자의 언행, 맹자와 다른 나라의 왕, 맹자와 제자들 간의 담화가 담긴 기록물이다.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이루〉,〈단장〉, 〈고자〉, 〈진심〉등 총 7편으로 약 3만 5,000자로 된 유교의 대표적 경전인데, 제자인 공손추, 만장 등이 맹자의 가르침을 정리했다고 전해지며, 공자의 제자들이 엮은 《논어》보다 3배 더 분량이 많다. 하지만 맹자의 인과 덕에 기반한 왕도정치는 위정자들에게 채택되지 못했다. 이 부분이 공자와 닮았다. 실망한 맹자는 70세에 고향 노나라로 돌아와 집필과 제자들을 가르치다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1500년이 지난 뒤, 南宋의 유학자로 성리학을 집대성한 朱熹는 《맹자》, 《논어》, 《대학》, 《중용》을 ‘四書’로 꼽기도 했다. 맹자는 자신이 존경한 공자와 함께 ‘孔孟思想’을 남겨 지금까지도 동양사상의 스승 역할을 하고 있다.
《맹자》하면 보통 性善說과 四端, 浩然之氣, 맹모삼천지교와 인생3락을 떠올린다. 사단의 端은 ‘실마리’를 뜻하는데,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惻隱之心,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羞惡之心, 겸손해 사양할 줄 아는 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是非之心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마음을 仁, 義, 禮, 智 단서로 보았다. 아마 이 책에서는 이것을 살피게 되는 것이 거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1장】是非之心 – 어떻게 사리에 맞게 살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행하면서도 왜 행하는지 알지 못하고 어떤 일에 익숙하면서도 왜 익숙한지 까닭을 모르고, 일생 동안 도를 따라가면서도 도를 알지 못하면 군자가 아니다.”
나이든 사람은 젊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도 눈치를 보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부담스럽다. 지식과 경험을 듣는 것은 좋지만, 굳이 필요 없는 충고와 조언을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도량이 좁고 공손하지 못한 것은 군자가 따를 바가 아니다”라고 했다. 좁쌀 같은 마음으로는 인간관계가 제한된다. 물론 가치관이 나와 같은 사람과 어울리면 편안하다. 하지만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에게 다른 의견을 듣고 배워서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바를 고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양혜왕은 전국시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왕이다. 그러나 《맹자》첫 편에 등장함으로써 유명해졌다. 그는 노구를 이끌고 온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지 물었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맹자가 말했다.
“목재로 수레를 만드는 장인은 그 방법을 다른 이에게 전수할 수는 있어도 상대방에게 그 기교 모두를 터득하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제자에게 수레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더라도 그 전부를 터득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제자가 진정으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좋은 충고도 입에 쓰다’누군가로부터 충고듣는 것이 부담되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자신을 통찰해야 한다. 아니면 ‘검색’이라도 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맹자》에는 많이 인용되는 일화가 있다. “형수가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극단적 상황이지만, 제나라 사람 순우곤이 어느 날 맹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형수가 물에 빠졌다면 직접 손으로 구해야 할까요?”당시는 남녀가 직접 물건을 주고받지도 않을 정도로 예를 중시하다 보니 형수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때는 상황이 좀 다르다. 형수가 죽을 지경인데, 예를 찾다가는 형수가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물에 빠진 형수를 구하지 않는 것은 승냥이와 같다’고 했다.
그러자 순우곤은 마침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천하가 물(도탄)에 빠졌는데, 왜 선생께서는 구하지 않는지요?”맹자가 답했다.
“천하가 물에 빠졌으면 도구로써 구해야 합니다. 형수가 물에 빠졌다면 임시로 손으로 구해야 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떻게 손으로 천하를 구하려 하는 것 인지요?”
순우곤은 제나라 신하로서 천하를 평정하기 위해서는 왕권을 강화하고 주변국을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맹자가 말한 임시방편으로 형수를 구하듯 천하를 구하는 빠른 방안을 찿이야 한다고했던 것이다. 그는 맹자에게 주변국을 점령할 방도를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그것은 단기적 방편에 불과하고 중요한 것은 옳바른 도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백성을 위하고, 백성에게 이익을 나누어 주고, 백성이 행복하게 살도록 해야 나라의 근간이 튼튼해진다고 한 것이다. 이 방법은 즉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국가를 단단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지금도 임기 내 효과를 내고 싶어 하는 위정자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다음 달 선거에서 침을 뱉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맹자》는 물론 공자도 효를 크게 강조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孝는 늙을 老, 생략체에 아들 子자가 조합된 것으로, 자식이 늙은 노인을 도와 받드는 데서 유래했다. 인과 예를 실천하는 방법이 효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맹자가 제나라에서 명예직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노자는 노나라로 가서 어머니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치르고 제나라로 돌아오는 중에 ‘영’이라는 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때 관을 짜던 일을 했던 제자 충유가 생각에 잠겼다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지금에야 여쭈어봅니다. 어머님 장례에 쓴 관의 나무가 지나치게 화려했던 것 같습니다.”맹자가 답했다.
“단지 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정성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옛사람들도 제물이 있다면 모두 좋은 목재를 쓰기 때문에 당현히 그렇게 한 것이다.”
맹자는 죽은 부모의 피부가 흙에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해 좋은 관을 사용했다고 한 것인데, 금방 상하거나 썩어 무너지는 관을 쓰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생전에 못해 준 것을, 좋은 거 해 주고 싶은 마음은 맹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맹자의 제자 만장이 스승에게 여쭈었다.
“스승님 감히 벗을 사귀는 도리가 무엇인지 여쭈어봅니다.”
“나이 많다고 뽐내지 않고, 귀한 지위에 있는 것을 뽐내지 않고, 형제의 부귀를 뽐내지 않고, 친구와 사귀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자랑하지도 않고, 부모 형제가 잘 산다고 으스대지도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군대도 기업도 어떤 기준이 있다. 기준이 있는 사람은 성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성공한다. 춘추시대 ‘미생’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그녀를 기다렸으나 무슨 이유인지 나타나지 않았다. 후대 사람들은 미생의 고지식하고 미련함을 비웃었다. 예전에는 이런 고지식한 미생에게 공감 가지 않았으나, 오늘날 사회생활을 오래 하고 나이가 들수록 미생이 추구한 믿음의 가치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다리 밑에서 죽은 미생은 자신의 사랑을 굳게 믿은 것이었으나 뒤틀리고 말았다. 이렇게 살라는 것은 아니지만 삶에 치이다 보면 고집을 지키며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이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신뢰를 주는 브랜드는 계속 사용하게 되고 고객의 행복을 위해 맛있는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은 계속 가게 된다. 그래서 단골집이 좋은 것이다. 만약에 내가 집에서 효도하고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싶다면, 선의 기준을 정하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 ‘성실’은 공자의 손자 자사가 쓴 《중용》에 그 기준과 요건을 명확히 하고 있는데 “성실함은 하늘의 道이고, 그것을 성실히 하는 것은 사람의 道이다.” 맹자는 이런 신뢰에 대해서도 말했다. “지극히 성실한데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한 적이 없고, 성실하지 못한데 상대방을 감동하게 한 적도 없다.”(至誠而不動者 未之有也 不誠 未有能動者也)‘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다.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하늘도 정성에 부합한다는 의미다. 성실한 사람에게는 하늘도 보답해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2장】辭讓之心 – 어떻게 계속 배우며 살 수 있을까?
전설 속 이야기 같은 요순시대가 있었다. 덕의 정치로 백성을 편하게 했다는 것이 ‘요순시대’다. 《서경》에 요임금에 대해 “경건하고 총명하고 우아하여 늘 평온하셨다”고 묘사하고 “공손하고 겸손해 그 빛이 사방에 미치고 드높은 인격은 하늘과 땅에도 미쳤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소해 화려한 복장 대신에 소박한 복장으로 다녔다고 하기도 했다. 요임금이 신하들과 백성들을 살피러 밖에 나갔다가 한 노인이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을 파서 마시고, 논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겠는가?”는 것이었다.
일반백성은 생계에 걱정이 없어서 임금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임금은 서운하게 들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최고의 칭찬이자 칭송이었던 것이다. 요임금은 자기 아들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자 스스로 뒤를 이을 임금을 발굴했는데, 그가 순임금이다. 순임금은 어릴 때 자기를 죽이려고 한 계모와 동생을 잘 챙기기도 한 인물이다. 뛰어난 인격으로 후계자가 될 수 있었고, 임금이 되었음에도 계모와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반성하게 하였다고 한다.
나이 들수록 겸손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반대로 되기가 십상이다. 연륜이 생기면서 내가 믿는 바가 옳다고 생각하게 되고, 오직 나만 옳다는 맹신에 빠지기 쉽다. 聖人이라고 불리는 공자와 맹자, 성군의 대명사인 요임금과 순임금은 평생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종국에는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었다. 그들의 가르침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 어린 사람, 경험이 없는 사람, 학력과 재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더 돌아볼 일이다.
맹자는 제나라에서 객경이란 벼슬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나라와는 관련된 일화가 많다. 맹자가 활약했던 전국시대는 왕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으니, 누구도 함부로 대들지 못했다. 한번은 맹자가 왕을 알현하려고 하자, 왕은 감기를 핑계로 뒤로 미루는 것이었다. 이에 맹자도 조회를 거부하고, 대부인 경추의 집에 머물렀다.
경추가 말했다.
“왕이 선생을 공경하는 것을 보았는데, 선생께서 왕을 공경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그러면서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자 맹자는 “도량이 큰 군주는 신하를 존중하고 우대한다.”고 말하고는 “현재 천하의 영토가 서로 비슷하고 덕도 비슷해서 서로 능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왕이 가르칠 만한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고, 반대로 자기가 가르침을 받을 만한 사람을 신하로 삼은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맹자의 자긍심도 보여주지만, 무엇보다 성공을 원하는 리더는 뛰어난 수하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고 존중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릴 적 학교에서 후배의 위치일 때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후배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기는 쉽지가 않다. 사회적 체면도 신경 쓰이고 창피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고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과하면 쉽게 해결될 일을 사과하지 않아서 문제가 커지는 경우는 많다. “그 부분은 제가 잘못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다 해결될 일인데도 말이다.
맹자가 제나라 평륙읍에서 孔距心이라는 大傅와 만났다. 제나라 운명을 논하기 위해서였다. 맹자가 대부에게 말했다. “창을 잡고 있는 병사가 하루에 세 번이나 대오를 벗어난다면, 그를 죽일 것인가요? 아닌가요?”군대는 군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세 번씩 기다리지 않겠다고 답한다. 이에 맹자는 “그렇다면 대부께서는 대오에서 벗어난 일도 많습니다. 흉년이 들어서 다들 굶주릴 때 늙고 허약한 백성들이 도량과 구덩이에서 나뒹굴고, 건장한 자도 흩어져서 떠난 자만 수천 명이 됩니다.”그러자 대부는 자신이 뜻한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항변한다.
맹자의 유도 심문이 계속된다.
“다른 사람의 소와 양을 빌려서 길러주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목장과 풀을 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목장과 풀을 구하지 못한다면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소와 양이 죽는 것을 방관하고 있어야 할까요?”맹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소와 양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백성이 굶어 죽어 여기저기 시체가 뒹굴고 젊은이가 고향을 떠난다면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맹자의 질문에 공거심은 할 말을 잃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모두 저의 죄입니다.”-《맹자》〈공손추 하〉에는 이것을 ‘지기죄자 유공거심’(知其罪者 惟孔距心)이라고 했다. “자신의 죄를 아는 사람은 오직 공거심뿐이다.”는 것이다.
사람은 곤란을 겪고 나서야 깨닫고 배운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문제는 곤란을 아무리 겪어도 스스로 배우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경우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과하는 습관은 감사하는 습관만큼 중요하다. 감사하는 습관을 키우듯이 사과하는 습관을 키운다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사과하는 어른에게 사람들은 돌 던지지 않고 그 용기를 칭찬할 것이다.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른은 우선 그릇이 크고 넓어야 한다. 돈을 잘 쓰고 호탕하게 보인다고 그릇이 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겉모습일 뿐이다.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을 멈추지 않고 넓은 아량과 포용을 보이는 사람이 진정 그릇이 큰 사람이다. 맹자가 제 선왕을 만나 말했다.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우선 네가 전에 배운 것을 버리고 나의 말을 따르다.’고 하시면 어떻겠습니까?”제 선왕은 이웃 나라들을 침략해서 세력을 넓히는 패도정치를 하고 싶어 했다. 이에 맹자가 경고하면서 한 말이다. 그리고 맹자는 목수의 예를 들었다.
“나라에서 큰 궁전을 짓고자 왕이 도목수에게 큰 나무를 주었습니다. 이에 도목수는 기뻐하며 궁전을 지을 수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밑에서 일하는 목수가 큰 나무를 그만 작게 깎아버리는 바람에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왕은 노여워하며 목수가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면서 ‘네가 전에 배운 것을 버리고 나의 조언을 따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맹자는 이렇게 물은 것이다. 궁궐 지을 나무를 다듬다가 실수로 작아졌다면, 다른 나무를 구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목수가 평생 배운 것을 버리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제 선왕뿐 아니라 우리도 어른이 될수록 마치 내가 전문가라도 되는 양 불필요한 충고를 하려고 든다. 상대의 역량이 충분함에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 어떤 경우라도 분수를 지켜야 한다.
【3장】羞惡之心 – 어떻게 정당히 잘 살 수 있을까?
나이 50이 되면 사회적 지위로 평가받는다. 꼭 성공한 위치가 아니라도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하물며 70이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50이란 나이가 되면 적어도 사회생활을 20년 이상 하게 되고, 실수와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인식하게 될 것이다. 50에 이르렀는데도 염치에 빠져 있거나 염치를 따지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염치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나이가 많다 고 어린 사람에게 훈계를 늘어놓은 것도 염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부끄러움이 있어야 하고, 부끄러움 없는 것을 부끄러워할 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라고 맹자는 말했다. 스스로 자신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한다면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삶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한 맹세가 아니었을까?
맹자는 덧붙였다. “부끄러움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니 교묘하게 기교를 부리려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사람과 같겠는가?”(恥之於人大矣 爲機變之巧者 無所用恥焉 不恥不若人 何若人有)라고 했다. 맹자 시대에도, 지금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주 많다. 권력에 빌붙어서 백성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맹자》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나라 이름도 더러 등장한다. 등나라가 아마 그런 나라인 것 같은데, 당시에 등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 있어서 風前燈火의 형국이었다. 이에 등문공이 맹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등나라는 작은 나라로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있습니다. 저희는 제나라를 섬겨야 할까요? 아니면 초나라를 섬겨야 할까요?”객관식 문제지만 맹자는 답변이 곤란해 이렇게 답했다.
“이런 계책은 제가 조언 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만 다만 한 가지 방법을 말씀드리면 연못을 깊게 파고 성을 높이 쌓아 백성과 함께 지켜서 목숨을 바치더라도 백성이 떠나지 않는다면 해 볼 만 합니다.”
군주와 백성이 힘을 합친다면 버틸만하다는 의미다. 다만 조건이 백성이 떠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등문공은 제나라가 등나라 인접한 곳에 성을 쌓으려고 하는 것 때문에 두렵다며 대처 방안을 묻자, 우선 피하는 것도 상책이라고 조언을 했다. 굳이 싸워 피를 보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전의 사례들을 이야기하고는 “만일 선행을 실행한다면 후세에 반드시 왕노릇 하는 자가 있을 겁니다.”라고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조언해 주었다. 이 이야기는 월왕 구천이 오왕 합려의 아들 부차에게 패하자, 마부의 역할을 자처하고 매일 쓸개를 씹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맹자》에는 첫 번째기도 하지만 자주 등장하는 양 혜왕은 마음이 초조했다. 할아버지 때와 같이 강력한 나라를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맹자를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질문을 퍼부었다.
“노인장께서 천 리 길을 멀다 않고 오셨으니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 줄 방책이 있는지요?”
맹자는 혜왕의 간을 보고자 했으나 곧바로 바로 본색을 드러내자 실망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는 어이하여 이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다만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그리고 맹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모두 이익만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 대의 수레를 가진 수행하는 자는 반드시 천 대의 수레를 가진 자이고, 천 대의 수레를 가진 나라의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바로 백 대의 수레를 가진 자입니다.”
이 말은 윗사람이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면, 그 윗사람을 해할 사람이 바로 아랫사람이라는 뜻이다. 《논어》〈위령공〉편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는 태연히 “신은 제사에 대한 예의는 경험하고 들어 본 적이 있지만, 군대에 관한 일은 배운 적이 없습니다.”그리고 다음날 공자는 위나라를 떠났다. 위령공이나 양혜왕이나 국가의 이익만 우선하면서 군대를 강화할 방법만 찾았던 것에 실망 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내가 오직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라면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배반이나 배신을 당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서는 배신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대에 바통을 넘겨야 한다. 그러면서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빠르면 사십부터 늦어도 오십부터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 있다. 지금부터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하늘의 때가 땅의 유리함에 미치지 못하고, 땅의 유리함은 사람의 화목에 미치지 못한다.”이 말은 병기와 갑옷이 날카롭고 식량이 충분해도 사람이 화목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맹자는 국경과 산과 강이 험난함이 나라를 지키는 지름길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그 안에서 군주와 백성이 화목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도를 얻은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도를 잃어버린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적다’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맹자의 어릴 적 일화 중 맹모삼천지교와 더불어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라고도 있는데, 이것은 어린 맹자가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다 보니 어머니가 보고 싶어 기별 없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으나, 어머니는 자신이 짜던 베를 싹둑 잘라 “네가 학문을 중도에 포기한 것은, 마치 내가 지금 짜고 있던 베를 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 것이다. 추상같은 어머니 말씀에 깨달음을 얻고 다시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왜 그런 훌륭한 어머니 이름은 전해지지 않을까.
맹자가 말했다.
“군자가 끼친 은혜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다섯 세대가 지나면 끊기고, 소인이 끼친 영향도 다섯 세대가 지나가면 끊어지는 법이다. 나는 직접 공자의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으나, 여러 사람을 통해 공자의 도에 대해 들었다. 나는 공자를 私塾했다.”공자의 수제자임을 자임한 것이다. 공자 사후 100년 맹자의 인생은 신기할 정도로 공자와 겹친다. 다만 맹자시대는 전국시대로 제자백가 전성기로서 나라의 수는 춘추시대보다 줄었고, 지략가를 영입하기 위한 제후들의 경쟁은 더 치열했으므로, 맹자가 공자보다 몸값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백성을 위한 정치, 현실적인 정치안을 내놓아도 이것을 실행에 옮길 생각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전쟁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영토와 백성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었다.
정치는 처음에는 친구의 책임, 두 번째는 법을 담당하는 신하의 책임, 그리고 마지막에는 군주의 책임을 강조한 맹자지만 비단 정치인뿐 아니라 학자, 사업가,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책임을 회피하고, 상대에게 책임을 미룬다면 가정과 사회는 국가도 결코 건전하게 성장할 수 없다. 인생에서 오십이란 나이에 이르면 그러한 책임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결과에 책임질 때 어른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을 것이다.
【4장】惻隱之心 – 어떻게 너그럽게 살 수 있을까?
나이 오십이 되면 내가 하는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이전보다 더 많아지고 나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 이들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돌아보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나에게 좋은 거울이 된다. ‘가엽고 불쌍하다’는 말이 측은이다.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한 이유도 바로 이 측은에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성선설이다. 강아지를 버린 주인도 원래 선하지만 환경이 그렇게 만든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있다. 荀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선해져야 한다는 性惡說을 주장하기도 했다.
맹자가 말했다.
“인한 자는 남을 사랑할 줄 알고, 예를 갖춘 자는 남을 공경할 줄 안다.”그다음이 더 중요한데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이 항상 그를 사랑하고 상대방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이 항상 그를 공경한다.”인하여 바른 마음을 발휘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고독까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 세 번 울어야 한다’는 옛날이 있다. 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말은 예전문화이다. 남자도 울 줄을 알고, 눈물 흘리고 싶을 때가 있다는 노래도 있다. 인간의 눈물은 소중한 선물 중의 하나다. 눈물은 다른 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을 때 나온다.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 중 하나다. 이를 맹자는 ‘측은지심’이라고 했다. 눈물의 소중함을 알면 그 눈물은 분명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제나라 선왕도 나라를 키우고 싶었지만 하도 맹자가 패도정치가 아닌 왕도정치를 떠들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맹자의 의견을 듣어보고 싶어 그를 불렀다. 맹자는 주나라 문왕이 백성들 안위를 우선하고 선정을 베풀었던 역사를 설명하고는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 등을 배려하라고 권했다. 듣고 있던 선왕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과인은 결점이 있는데 재물을 좋아합니다.”이에 맹자는 과거 공유하는 자도 재물을 좋아했지만, 그는 재물을 백성들을 위해 준비했다고 하면서 “왕께서 재물을 좋아하시더라도 백성과 함께 하신다면 문제가 되겠습니까?”하고 말했다. 그러자 선왕은 한술 더 떠서 아예 노골적으로 나왔다. “과인에게는 또 결점이 있는데 여색을 좋아합니다.”이에 맹자는 “과거 주 문왕의 할아버지인 태왕이 여색을 좋아해서 후비를 사랑했고 집터를 보기 위해 말을 달렸다고 합니다. 이런 태왕을 따라 백성들도 제짝을 찾으니 원망하는 이가 없고, 혼자인 여자도, 홀아비도 없었다고 합니다. 여색을 좋아하더라도 백성과 함께하신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하고 말한다. 이렇듯 재물을 탐하든 여색을 탐하는 왕의 개인사이니 알아서 하되 백성의 안녕을 우선에 두어야 함을 강조했다. 요즘 가끔보면 위정자의 개인사를 너무 까발리는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될 때가 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허송세월〉이란 에세이 집을 작년에 내놓기 전에 심장질환으로 열흘 정도 병원에 입원했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고 했다. 생사를 오가다 글을 썼다는데, 그는 여기서 이런 말을 했다.“죽지 않은 자는 죽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알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알 수 없다.”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나는) 과연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나이 오십, 아니 칠십이 되면 그것이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살기 위해 죽음을 알아야 한다. 죽음을 인정하고 마주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외면하려 한다. 마치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평소 건강관리에 힘쓰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즐기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저자의 결론은 다르다. “열심히 일했으니 스트레스도 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적당히 즐기면서 보다 나은,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나만의 가치를 위해서, 노력해서 성취해야 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해야 합니다. 가족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가치관과 목표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안타까운 마음, 즉‘측은지심’을 가진 사람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맹자도, 공자도 어진 정치를 펼치도록 하기 위해, 유세하고 다녔는데, 맹자는 공자만큼 홀대받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싱크 탱크로서 주변국들로부터 초대받기도 했다. 하지만 왕도정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좌절하기도 했다. 맹자는 60이 넘자 마침내 客卿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제나라를 떠나 고향 노나라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에 그를 늘 곁에서 수행하던 제자 충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안색이 달갑지 않은 기색입니다. 예전에 스승님께서는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맹자가 500년마다 반드시 성군이 나타났고, 주나라 이후로 이미 700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하면서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만약 천하를 태평성대로 만들려고 한다면 지금 세상에서 성군을 도울 사람이 나 외에 누가 있겠는가? 내가 어찌 하늘을 원망하겠느냐?”라고 했다. 맹자는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수용하려고 했다.
이전에 제자 공손추가 맹자에께 물었다.
“스승님이 제나라에서 요직을 맡는다면, 管仲과 晏子 정도 공적을 다시 펼칠 수 있겠습니까?”제나라 역사에서 관중과 안자는 위대하고 담대한 인물로 당시 경공을 패자가 되도록 도왔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과 비교당하면 기가 죽을 만도 한데 맹자는,
“자네는 제나라 사람이라 관중과 안자만 아는구나. 관중(증서의 손자)은 증서조차도 비교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찌 그대는 내가 그들과 비교되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록 맹자처럼 식견은 없지만, 우리 모두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온 지혜는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가물가물하기도 하지만, 나를 믿고 자신감을 가질 필요는 있다 싶다. 나중에 경제력도 판단력도 사라지더라도 기죽지 말고 살아가자. 맹자는 그렇게 살아서 이루지는 못했지만, 위대한 그의 사상은 후대에도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는 많은 고사를 소개하고 있으나 이 독후감에서는 대부분 생략했다. 고사들 중 하나다. 맹자는 도의가 아니라면(과중한 세금 정책 등) 지금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소개했다.
‘이윤은 은나라 왕조 설립에 지대한 역할을 한 맹신이다. 그는 하나라 말기 요리사였는데, 세상이 혼란스러워지자 이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런 가운데 자신이 모시던 주군의 딸이 홋날의 탕왕에게 시집가자 솥을 짊어지고 요리사 자격으로 주군의 딸을 따라갔다. 그의 지혜를 알아본 탕왕은 그를 신임해 높은 벼슬을 내렸다. 이윤은 탕왕을 도와 폭군 걸왕을 쫓아내고, 하나라를 없애고 은나라를 세우도록 했다. 훗날 탕왕의 손자이면서 세 번째 임금이 된 태종이 포악하고 방탕하자 그를 축출해 버렸다. 3년 후에 태종이 진심으로 반성하자, 이윤은 태종에게 한 번의 기회는 더 주었다. 그만큼 왕의 자리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권자가 이윤이었다. 이윤은 태종을 복위시긴 후 이런 말을 남겼다.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살아날 수 없다.”누구에게나 ‘늦은 때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맹자는 인하면 영화롭고, 인하지 않으면 모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위정자는 덕을 귀하게 생각하고 훌륭한 선비의 지위를 높이라고도 했다.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정치를 맡으면, 백성은 태평성대를 외치게 되고 주변국들도 두려워할 것이라도 했다.
어쨌거나 이 장의 핵심은 측은지심이다. 맹자가 말했다. “측은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 없다면 역시 사람이 아니다.”
이 네 가지는 仁義禮智의 뿌리이고, 단서로 四端이라고 한다. 맹자는 이것을 강조해 “이 네 가지를 채운다면 충분히 천하를 보호할 수 있고 이것을 채우지 못한다면 부모조차 섬길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의미이기도 하다.
【5장】浩然之氣 –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호연지기는 나의 길을 제대로 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맹자는 세상을 가질 포부를 가지되 그것을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맹자》에 여러 번 나오는 인물이 제나라 선왕인데, 제나라는 원래 주나라 문공이 나라를 세울 때 그를 도운 강태공에게 내린 영지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곳으로 환공 때는 관중을 등용함으로써 주나라를 대신해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패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나라도 급기야 전 씨에게 왕조를 넘겨주어야 했던 운명도 있었다.
제선왕은 제자백가를 등용해 융성하고 강대한 나라를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맹자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는데,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라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입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맹자는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다 싶었던 선왕은 “그렇게 큽니까?”하며 자신의 동산이 40리인 것은 그에 미치지 못함을 은근히 자랑했다. 이에 맹자는 한술 더 떠서 “백성들은 오히려 그것이 작다고 여겼습니다.”라고 했다. 왕이 노는 동산이 70리면 28㎢로 여의도 면적의 3배다.
그러면서 맹자는 그 넓은 곳에 나무꾼도, 사냥꾼도 들어가 나무를 하고 꿩을 잡았으니, 이는 백성과 함께한 것이지만 ‘지금 동산은 40리에 불과하나 그 안에서 사슴을 죽이면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이 죄를 묻는다하니 이는 나라 안에 함정을 만든 것과 같으므로 당연히 백성들은 크다고 생각하겠지요’라고 한다. 문왕은 동산을 개방해 백성과 함께 즐겨 與民同樂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제선왕이 맹자의 말을 듣고 부와 즐거움을 백성들과 공유했다면 제나라는 좀 더 오래 지켜지고 부국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이 ‘國政壟斷’이다. 이 말은 《맹자》에서 유래했다. 맹자가 제나라에서 객경의 벼슬을 그만두려고 하자, 왕은 맹자에게 집을 마련해 주고 1만 종의 녹봉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맹자가 일갈했다. “내가 부유해지고 싶었다면 객경의 녹봉 10만 종을 거절하고, 1만 종을 받겠느냐?”고 왕께 전하라고 하고 덧붙여서 “예전에 부유하고 귀하면서도 농단을 사사로이 차지하려는 자가 있다고 했는데, 이 사내는 농단을 찾아서 주위를 바라보고 시장의 이익을 모두 거두었고, 사람들은 이를 천하다고 여겼다. 관리들이 세금을 거두어들인 것은 이 마음씨 나쁜 사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농단은 ‘높은 언덕’을 뜻하는데 누군가 언덕에서 시장의 물물 거래를 지켜보고 어디가 부족하고, 남는지를 가늠해서 실리를 취했다는 것이다. 맹자는 자신과 제자들을 집과 돈으로 매수하려는 것은 마치 자신을 이런 사내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맹자는 부와 지위에 연연하지 않았고, 자신이 믿는 도덕을 실현하기 위해 제나라의 왕 곁을 떠난 것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敍事를 쓰든 간에 여든을 넘기면 죽음 앞에 서게 된다. 농담으로 ‘예순까지는 사회적 지위를 자랑하지만 일흔이 넘으면 건강을 자랑한다.’는 말이 있다. 부귀영화를 이루었다고 해도 건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덧없을 뿐이다. 누구나 젊을 때는 청운의 꿈을 안고서 공부하고 사회생활을 한다. 때론 즐겁고, 때론 힘들게 살면서도 인생의 희노애락을 경험한다. 그런데 막상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는 무슨 생각이 들까? (감히) 말 하건데 ‘후회’아닐까 싶다. 더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한 것, 안주하여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것,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려 인생을 좀 더 즐기지 못한 것 등이 생각날 것이다.
《맹자》의 四端과 浩然之氣 중에 더 중요한 키워드는 ‘호연지기’다. 맹자가 강조한 ‘인·의’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가 늘 가지고 살아야 할 자세기도 하다. 사전에는 ① 사람의 마음에 차 있는 너르고 크고 올바른 기운, 또는 ②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울 만큼 넓고 커서 어떠한 일에도 굴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당당한 기상이라고 했으나, 맹자는 ‘호연지기 기운은 지극히 크고 몹시 강한데 바르게 길러서 해치는 것이 없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호연지기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차 위축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젊은이는 좋은 대학가지 못하고, 좋은 직장 구하지 못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어떤 사람은 설사 성공하더라도 더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기 십상이다. 호연지기는 단순하게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꾸준히 수양하고 더 높은 자아를 추구할 때 가능해진다. 이것은 仁과 義의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