陽剛의 氣
靑耘 金榮培書展 緖
權 昌 倫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이사장)
漢나라 蔡邕은 청백가풍淸白家風의 가정에서 태어나 博學多才 하여 辭章, 數術, 天文, 妙操音律을 좋아하였으며 특히 거문고를 잘 타고 글씨로서는 예서에 조예가 뛰어났다고 한다. 性情이 매우 孤傲하여 俗流에 빠지지 않았으나 일생 소인배의 모함을 받아 험난한 길을 걸었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三公을 두루 역임하였으나 기이한 인연으로 끝내는 옥중에서 참사를 당했다. 그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忠孝仁義를 바탕으로 한 적극 入世的 儒家一派로서 曠世逸才의 大儒로 칭송받았다. 또한 천부적인 예술성을 지녔으나 그의 성격은 閑居玩古, 不交當世한 道家의 逍遙出世적 일면을 지녀 심령이 자유해방적인 美學경향을 추구하였으므로 儒․道互補적인 格局이란 호칭을 받았다. 熹平4년 蔡邕이 太學門 밖에 六經문자를 써서 刻石하여 세우니 그 글씨를 보러오는 사람과 摹寫者의 수레가 매일 일천여대에 이르러 거리를 꽉 메웠다고 한다.
南朝 梁의 袁昻은 채옹의 서법을 蔡邕書 骨氣洞達, 爽爽有神이라 했으며 梁武帝 蕭衍도 蔡邕書 骨氣洞達, 爽爽如有神力이라 평했다. 두 사람 모두 風骨이 뛰어나다고 품평하였다. 骨이란 곧 氣를 말한다. 氣는 곧 骨이다. 「廣雅釋言」에는 風은 氣라고 하였다. 風과 氣는 서로 상통하는 데가 있어서 風骨이라 말하고 氣骨과 같은 뜻으로 쓴다. 후세 사람들은 채옹의 시와 글씨를 일종의 剛性的 力量美가 突出하다고 평한다.
서예에서 筆力이 뛰어나다고 하는 力은 서예미학의 중요한 범주의 하나다.
風이란 기세, 위엄으로 지칭되어 품격, 풍도, 풍채, 풍골로 표현되고, 氣란 만물생성의 근원, 심신의 세력, 원기로서 기상, 기품, 기질 등으로 演譯된다.
맹자는 무릇 志란 氣를 統帥하는 것이요, 氣는 體의 充이다.… 또한 호연지기를 잘 기르는 것이다. … 그 氣란 至大至剛하므로 정신의 기와 물질의 기로 구분된다고 하였다. 管子는 有氣則生, 無氣則死, 生者以其氣라 하였고 莊子는 氣는 靈的屬性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곧 生의 本源이며 기초다. 기는 일종의 무형적 존재이나 형은 기로부터 생성된다. 장자의 氣는 董仲舒, 王充등이 얘기한 元氣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後來의 張載가 제출한 虛空卽氣, 太虛則氣도 장자에서 근원한다.
장자가 이르기를 人之生, 氣之聚也, 聚則爲生, 散則爲死, 若死生爲徒, 吾又何患? 故萬物一也. ... 故曰; 通天下一氣耳 뭉뚱그려 보면 氣란 물질적 질량과 勢能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운동으로 生生不息的이다. 철학적 범주의 기는 일체의 객관적 운동성을 지닌 존재를 지칭한다. 채옹의 서론 가운데 力과 勢의 범주는 氣개념이 서예와 서예미학에 구체적으로 체현되는 것을 말한다. 그는 <筆論>에서 글씨의 체도란 모름지기 그 형태로부터 들어 있어야 한다. 앉거나 가거나, 날고 움직이며, 가고 오며, 눕고 일어나고, 슬프거나 기쁘거나,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고, 예리한 칼과 긴 창, 뻗센 활과 단단한 화살, 물과 불, 구름과 안개, 해와 달 같아야 한다. 가로세로로 가히 모습이 나타나야 바야흐로 서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力勢」 에서는 무릇 글씨란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자연이 성립되면 음양이 생긴다. 음양이 생긴 뒤에 형세가 나타난다. 라고 한 것은 당시에 유행하던 元氣自然論의 영향으로 보이며 자연이 있은 연후에 음양이 있게 되고 음양이 있는 다음에 형세가 나타난다는 것은 또한 장자의 혼잡하고 황홀한 가운데에서 변하여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하여 형태가 생기고 형태가 변하여 생동한다. 라고 한 것은 우주의 순환 도식과 자못 서로 닮은 것으로서 이러한 종류의 우주기원론에 입각한 만물생성의 描述과 해석일 뿐 아니라 또한 본질적으로 우주가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力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力이란 움직이는 속성이 있는 것이고, 氣 또한 움직이는 힘의 내용과 완전 일치하고, 勢가 제출하고 있는 힘의 운동성과 명백히 부합된다.
勢라고 지칭되려면 방향성이 부여된 힘을 말하고 이때에 형태와 더불어 나타난다. 勢來不可止, 勢去不可저 (오는 세를 정지시켜도 안 되고 가는 세를 막아서도 아니 된다.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것이 힘과 기세의 순환적용이라는 것이다.)이라고 채옹이 말한 것은 운필할 때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이 그 요체이므로 無使勢背가 되어야 한다.
力이란 기본적으로 몸 안에 지니고 있는 힘, 버티고 견딜 수 있는 힘, 즉 천부적인 힘을 말한다.
勢는 力의 分屬개념에서 나온 것이지만 陰陽旣生, 形勢出矣로서 형과 세가 함께 드러난다. 落筆하여 結字할 때 세력이 위에서부터 아래를 뒤덮고 아래에서는 위로부터 이어 받아야 그 형과 세는 서로 모습을 변화시키고 조화롭게 되어서 세의 위배가 일어나지 않는다. 좁은 의미로는 疾勢와 澁勢로 나눌 수 있다.
채옹은 또 말하기를 下筆用力, 肌骨之麗"라 하였다. 이는 畵質에서 군더더기나 흠이 없는 깨끗하고 알맞은 강인한 線條의 美를 창출해 낸다는 것이다.
왕희지는 <記白雲先生書訣>에서 철학범주의 氣개념을 서론에 끌어들이고 있는데 書之氣, 必達乎道, 同混元之理라고 하여 氣의 내용을 力勢의 力개념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다.
후세에 제출된 藏鋒以强其筋骨, 出鋒以耀其精神의 법도와 연관 지어지며 그 말의 중심은 곧 力이다. 붓을 잡고 鋒芒으로 지면을 훑어가는 것이 원초적인 운필 본성이다. 이렇게 힘이 원활하게 미치게 되면 점획이 윤택하고 세가 빠르면서 澁氣가 드러난다.
力과 勢는 곧 氣와 陰陽으로 變易되어 서예의 구체적인 표현 수단이 된다.
梁의 蕭衍이 내세운 力謂體也라고 말한 것은 力이 서법예술의 근본임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힘이란 骨力, 骨體라고도 하며 안진경의 <述張長史筆法十二意>에서 장욱의 말을 전용하여 力謂骨體라 하였으며 ï筆則點畵皆有筋骨이라 하여 채옹의 力在字中 下筆用力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장회관의 「文字論」에서는 以筋骨立形 以神情潤色이라고 하였는데 筋骨을 體로 하는 것은 같으며 力을 잡는 것이 서예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또한 「書斷」에서는 狀貌와 筋力, 膚와 骨, 態와 力, 體와 象을 대칭으로 거론하면서 以風骨爲體, 以變化爲用을 설명하면서 채옹의 설을 따랐다.
이상으로 力, 勢, 氣를 개괄해 보았는데 집약하면 力 즉, 筆力이란 作家 자신의 용필 훈련에 의한 후천적인 강인한 점획에 나타나는 힘을 말하며, 勢란 힘을 바탕으로 한 진동과 속도의 완급으로서 직선보다 우회적으로 Ôt旋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線條의 雷動的 현상이다.
氣는 무형적 형이상학적 존재이나 형태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라고 규정지어진다.
靑耘 同學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의 서품을 개괄해보면 국․한문의 여러 서체가 다양하게 전출됨을 보게 된다.
전서에서는 草勢의 意趣를 가미하여 더욱 力動的 기세를 높였고, 竹木簡, 楚簡, 帛書의 筆意에서는 飄逸함을 드러내어 淸新함이 빼어나다. 篆隸 모두 洗練된 점획의 形質로서 逸趣를 드러내어 감상자로 하여금 매우 신선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印篆 구성의 작품도 상쾌함이 그지없다. 특히 한글 정음체는 篆意가 흠뻑 밴 藏鋒 圓筆로 揮灑하여 매우 圓揮하다. 북위풍의 원필해서는 석문명과 예학명의 韻意를 띠어 渾朴하다. 이는 위부인이 <필진도>에서 말한 바 있는 필력이 좋으면 골격이 많고 필력이 없으면 살점이 많다. 골이 많고 살이 적으면 힘줄이 센 글씨고, 살이 많고 골이 적으면 먹돼지라 일컫는다. 힘이 많고 힘줄이 풍부하면 聖이고, 힘도 없고 힘줄도 없는 것을 병필이라 한다. 하나하나 나타나고 없어지는 것에 따라 써야 한다.
힘과 힘줄이 많은 것을 淸이라 하고 힘이 없고 힘줄도 없으면 濁하다고 한다. (馮武, 「書法正傳」)글자에서 과감한 힘이 있는 것을 骨이라 하고 버텨 견디는 힘이 센 것을 筋이라 한다.(劉熙載, 「書槪」)
금번 청운이 글씨의 면면에서는 剛强한 풍격을 띠었고, 청아한 氣稟이 드러나 있는 것은 평소 우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청운의 피나는 적공(積功)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라 그 공력을 높이 산다.
다만 더욱 권면하는 것은 書品이 飄逸도 한 풍격이나 沈鬱 또한 풍격의 좋은 일면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2013. 10. 11
泳逸樓燈窓下 權 昌 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