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기도 인공지능 시대에 돌입했다. 인공지능으로 무장된 알파고가 이세돌을 거뜬히 이겼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터라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가미된 번역기에도 새로운 신세계가 열릴 것으로 기대가 크다. 어쩌면 조만간 언어의 장벽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장밋빛 환상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영어나 외국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 아닐까?
논란이 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구글과 네이버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인공지능 기술이 추가된 번역기를 선보이면서부터다. 출사표는 네이버가 먼저 던졌다.
네이버는 지난 8월 음성 인식 통번역기 ‘파파고’를 내놓았다.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중국어까지 4개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해준다는 것. 주목할만한 점은 음성인식 기술과 함께 인공지능 기술이 가미됐다는 것이다. 음성인식 기술 도입을 통해 사용자는 번역하고 싶은 문장이나 단어를 손쉽게 입력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파파고 앱을 실행시키고 한국어로 문장을 읽으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자동으로 번역된다. 외국의 관광지 등에서 번역이 필요할 때 번역된 문장을 외국인에 보여주거나 번역된 문장을 소리로 들려줄 수도 있다. 네이버가 그동안 축적했던 음성 검색 기술이 적용된 결과다.
파파고에 탑재된 번역 기술은 네이버 연구소에서 자체 개발한 N2MT(Naver Neural Machine Translation)이다. 인공지능이 학습을 통해 정답에 가깝게 배워간다는 것이 네이버 측의 설명이다. 기존 번역기는 문장을 번역할 때 일정 단위로 잘라서 번역하고 이를 다시 어순에 맞춰 번역하는 형태였지만, N2MT는 번역해야 할 문장을 기존에 비슷한 유형으로 번역했던 결과물과 대조하면서 가중치를 통해 보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구글도 수년간 연구해 개발한 인공신경망 기계 번역(NMT•Neural Machine Translation) 기술을 선보였다. 구글의 인공신경망 기계 번역은 네이버 파파고에도 적용된 비슷한 기술로, 기존 통계적 기계 번역과 달리 문장 전체를 분석하고 스스로 학습해 정확도가 훨씬 높다는 게 구글의 설명이다.
단어나 구(句)를 기반으로 한 기계 번역 시스템이었던 기존의 구글 번역과 달리 새로운 인공 신경망 기계 번역은 문장 전체를 번역해 더 자연스러운 문장을 구사한다. 기존 번역 기술보다 55∼85%의 오류를 줄여 보다 정확한 번역이 가능해졌다고 구글은 설명했다. 사람이 입력해준 것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번역의 정확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네이버와 구글이 인공지능 번역기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사용자들은 어떤 번역기가 더 우수한지 비교 테스트해서 커뮤니티 사이트나 블로그에 올리는 게 유행을 타고 있다. 상황에 따라 번역의 정확도가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지만 두 번역기 모두 이전과는 확연히 나은 번역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간혹 기존의 기계 번역보다 못한 결과물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는 충분한 학습이 이뤄지기 않았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처음부터 바둑을 잘 두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 15만 개의 기보를 5주만에 학습했고, 이후 3000만 개의 기보에 대한 강화학습과 지도학습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켜왔다. 네이버와 구글의 인공지능 번역기도 딥러닝 기술을 통해 원어민에 가까운 번역 실력을 선보일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