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24(목) 경가회 공부방
제목 : 쓸쓸한 밤의 다정한 안부
- 황인수 이냐시오 신부 (성 바오로 수도회) -
오늘 강의는 황인수 신부님이 쓰시고 그림 그리신「쓸쓸한 밤의 다정한 안부」라는 제목의 책 내용을 중심으로 펼쳐진 독백처럼 읊어진 시와 같은 강의였다.
강의에 앞서 청중인 경가회 회원 할머니들에게 뉴질랜드 민요풍 ‘연가’를 직접 불러주시며 분위기를 잡아 주셨다.
(♬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생략)
일과를 마치고 종일 혼자 있던 방이 나를 맞아준다. 오래된 책꽂이도 창턱의 화분도 고즈넉한 얼굴로 내게 인사해오는 것 같다. 홀로 있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지만 그 쓸쓸함 속에서 다정한 안부를 물어오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함께하기보다 혼자인 삶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다. 자연히 자기를 대면하는 일도 많아진 것 같다. 혼자 있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채울 것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고 그럴수록 그는 더 외로움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내 안에 다정함이 살고 있다는 것, 사랑이 숨어있다는 걸 아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쓸쓸한 밤의 다정한 안부」서문과 일치)
1. 당신은 좋은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
고백 (p.76)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나를 압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이지요.
그걸 내가 압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을 때, 우리는 충만한 행복감을 느낀다. 등에 업힌 아기가 엄마를 꼭 껴안고 있을 때가 아기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포동포동한 아기의 손이 자기를 껴안은 것을 느끼는 엄마도 행복하다.
시인의 큰 이모님께서 노년에 돌아가실 때, 엎드려 방바닥을 끌어안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을 본 막내 동생인 신부님의 어머님이 “형님, 무얼 하시는 겁니까?” 물으니, “그냥 좋아서.” 라고 말씀하시며 얼마를 그러고 있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모님은 이 세상을 껴안으며 자신의 고단했던 삶과 화해하며 행복하게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것이다.
상대방이 내말에 귀 기울이고 내 눈을 들여다 볼 때, 나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하다. 그리고 소속감을 느낀다.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와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면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은연중에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이루어지면 과거 힘들었던 일이 대수로운 일이 아니고 오히려 현재의 좋은 것들이 과거의 그 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그의「회심(回心)의 여정」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백하셨다. 내가 싫어했던 것은 받아드리지 못한 나의 일부일 뿐이다. 그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원수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용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나를 받아드리는 성장단계이다. ‘용서’란 'for·give' 받아드리고 (사랑을) 주는 것이다. 어느 모임에서 “미워하는 사람 없어요?” 하니, 어느 할아버지의 대답이 “없어요. 다 죽어서 미워할 사람이 없네요.” 하시더란다. 미워할 사람이 다 죽어서 미워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미움이 죽어서 미운 사람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비워지면 미워하던 사람도 그리워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한다. 그러나 죽으면 변한다. 곧 부활이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살고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이 죽으면 나는 부활하는 것이다.
2. 정말로 좋은 것 - 지금 있는 그대로 내가 좋은 것
소원 (p.94)
바라는 것은 딱 하나, 내가 되는 것.
내가 된다는 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 내가 좋은 것.
정말로 정말로 좋은 것.
나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가? 나 자신에 만족하고 기뻐하는가? 하느님은 나에게, 나와 화해하기를 바라신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뭔가 잘하려고 애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 경쟁하지도 않는다.
신부님이 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신부님이 14세 때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찾아 헤메던 시절을 거쳐 아버님을 처음 보았을 때,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힘들었던 과정이 하느님을 알게 되는 하나의 과정이었고 지나간 모든 세월이 자신을 위해 모두 좋게 느껴지게 되었다고 하신다. 하느님과 화해하고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드린다는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3. 주인과 종
주인과 종 (p.98)
나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는 이는
남을 종으로 삼는다.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 나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는 이는 남을 종으로 삼는다. 나는 나의 종인가? 주인인가?
4. 익는 시간 (p.104)
익기 전에는 좋은 포도주인 줄 모릅니다.
모든 술은 작은 효모에서 옵니다.
포도주가 익어가는 시간.
부글부글 열이 나는 시간.
숙성의 시간입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가슴에 작은 효모를 품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
숙성의 시간은 성숙의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신부님은 박희진 시인의「유심히 나를」이란 시를 읊어주시고 강의를 마치셨다
유심히 나를 바라보던 네 눈에
우울한 시름이 고이었는데
이윽고 나에게 가까이 와서는
나직한 소리로 이르는 말이
내 눈에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깊은 수심이 어리었다고
(응시를 통해 마음을 알아보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P.S. 신부님의 말씀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신부님의 뜻과는 다르게 전달된 부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양해하시고, 각자 시(詩)를 읽으시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최영자 안나 후배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요약을 해주시는 선배님이 계셔 얼마나 좋은지 읽을 때마다 감사함이 솟구칩니다!
그날 참석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제 달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안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