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 문화의 본류(本流)로서의 배달문화
[민족 역사 통일=플러스코리아]안재세 전문위원= 현생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적 특성을 보존해 온 문화집단은 얼마 안된다. 굳이 찾으려면 기존 학설에 의한 4대 문명에서부터 집단적 시초를 연결해야 할텐데, 그 네 문명을 일으킨 당시의 집단과 현재 같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집단과는 문화적·종족적 지속성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수천년 역사 속에서 잦은 정변과 전란 등으로 집단적 이동이나 소멸이 반복되었고, 문화적 변질 또한 극심했기 때문이다. 나일강·메소포타미아·인더스강 유역은 특히 변화가 심했고, 황하유역은 그런대로 문화적 지속성만은 인정할 수 있으나 종족적으로는 매우 심한 혼잡을 거쳐 왔다. 따라서 문화적·종족적 지속성을 함께 갖춘 집단을 찾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역사적·고고학적 학설들에 의하면 그렇다.
▲ 배달(倍達)할 때의 배에 대해서는『桓檀古記』의 번역자인 임승국 선생께서는"우리말의 음운법칙이 박·백이 배로 변하는 실례가 많은 바, 백천(白川)이 배천(白川온천), 박고개[赤峴] 혹은 붉고개가 배오개(동대문시장)로 변하는 지명의 실례가 있고..." (한단고기; 1992, p.19)즉 우리말 '밝다'의 어간 밝이 배달(倍達)할 때의 배로 변했다는 것인데, 만약 밝이 백(白)의 변음임을 알았더라면 밝보다는 白(백)과의 관계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동방문자 白(흰/환할/밝을 백)의 자음 백이 종성 ㄱ이 탈락되어 배로 변한, 이른바 'ㄱ음 탈락현상'은 다음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復(돌아올 복, 다시 부) : 復歸(복귀), 復活(부활)讀(읽을 독, 구두/이두 두) : 讀書(독서), 句讀(구두)惡(나쁠 악, 미워할 오) : 善惡(선악), 憎惡(증오)위 내용들을 요약하면, 배달(倍達)할 때의 배는 백(白)의 종성 ㄱ이 탈락된 것이며, 여기서의 倍는 白(백)의 생략음 배를 표기하기 위해 임시로 빌어쓴 가차자이다.우리가 白의 음 백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밝다'의 어간 밝과 영어 bright, speak, speech 등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白의 음 백이 모음변형된 것이 박이요, 이 박 음에 윤활자음 ㄹ이 첨가된 것이 '밝다'의 어간 밝이다.白: 1. 백 → 박 → 밝(bright) 2. 백 → 배 (ㄱ 탈락) ©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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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학문으로서의 역사학·고고학은 랑케를 위시한 서양 근대 인문학자들에 의해 다분히 서양중심적 시각에서 정리되었고 계승되어 왔다. 서양사를 세계사의 본류로 '가정하고' 나머지는 서양사의 부속물 정도로 그 가정에 어거지로 꿰어 맞추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업은 역사가 짧은 서양사의 본질적 한계로 인해서 처음부터 무리한 일이었다. 따라서 랑케 등은 소위 발전사관(發展史觀)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서양이 비록 역사는 짧지만 발전을 의미있는 발전을 거듭해 온 반면에 타 지역의 역사는 오래 되기는 했어도 발전을 못하고 정체 내지 퇴보해왔다는 억지 논리를 강변해왔다. 그러나 비서양적·객관적 시각에서의 연구가 서양에서조차 획기적으로 시도되고 진전되면서 그런 논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고대로부터 일관성있는 문화적·종족적 전통을 지켜 온 집단으로서 한족(漢族)이 가장 유력시되었다. 무엇보다도 풍부한 문헌기록들이 그런 주장을 가능케 했다. 그런데 최근 반세기 정도에 그 개념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증거들이 속속 등장했다. 특히 8천년 내지 9천년 전의 고고학적 유물들이 당시에 한족은 있지도 않았던 만리장성 동북쪽 지역에서 연달아 발굴되자 기존의 모든 역사적·고고학적 가설들과 학설들은 크게 수정을 요하게 되었다. 그 유물들은 한족이 중원지방에 흘러 들기 사오천년 전의 것이고, 한족의 문화적 전통이 아닌 우리 한민족(소위 '동이족')의 전통과 연결된다는 증거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문화의 본류로서의 한민족 입지는 확고해졌다. 그에 당황한 중공정부는 소위 대중화문명론을 주장하면서 지금의 중공 영역에 있는 고대 문명들은 결국 대중화문명의 일부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소위 동북공정을 강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보겠다는 유치하고도 치사한 잔꾀에 불과하다.
2. 배달문화 연구작업의 필요성
근대 이후 세계는 인본주의 정도(正道)에서 크게 빗나간 물본주의(物本主義)라고 할만한 물질문명으로 빠져들었다. 근대의 서양사적 시발점으로 인식되는 프랑스혁명이 '자유·평등·박애'를 내세우고 '인권선언'까지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인들이나 기독교인들에게만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따라서 아름다운 구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류사회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억압·차별·폭력·인권박탈'이 범세계적으로 자행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양인들간에서조차 국가적 파워게임과 약육강식 논리에 의해 두 번에 걸친 서양 주도의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치열한 이념 대립에 따른 숱한 살상행위가 자행되는 등 폭력이 횡행하는 세계가 연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공멸을 야기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들의 등장으로 국가간의 파멸적 전쟁은 자제되는 대신에 치열한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또다시 인본주의 대신 물본주의(황금만능주의)가 오히려 더 창궐하여 새 시대의 우신(愚神)으로서의 물신숭배가 당연시되고 있다.
그러나 인본주의라는 인류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논리를 떠나서 인류사회가 진정한 자유·평등·박애·평화·인권 등을 공유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지금처럼 급속도로 물신숭배가 확산되어갈 때 인류사회는 동물보다 못한 동종상잔(同種相殘)의 열등한 존재로 돌연변이를 거듭할 뿐이다. 이러한 인류 현실을 인본주의에 입ㅂ각한 정도(正道)로 돌려 놓으려면 d역사적으로 그와 같은 인본주의를 실천하고 발전시켜 온 사회적 모범을 발굴하여 이 시대에 적용하는 게 정답이다.
그런데 그런 예는 오랜동안 신본주의 전통에 매여 있는 서양사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고, 이슬람교·힌두교 등을 신봉하는 다른 신본주의 사회들에서도 역시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인본주의 전통이 수천년래 추구되어 왔던 동아시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아시아 세계에서도 오랜 역사 속에 수많은 종족과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기에, 그 와중에 고대로부터의 인본주의 전통을 제대로 실생활에 적용하며 계속 발전시켜 온 공동체는 극히 드물다. 그런 보석처럼 빛나는 공동체로서의 모든 자질을 최대한 갖춘 것은 한민족공동체가 독보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문화·사상이 이 혼돈의 시대에 정도를 제시하며 인류사의 영광된 새 장을 열 '마스터 키'라고 할 수 있다.
3. 명칭에 대하여
우리 한민족의 문화를 보통 한문화 또는 배달문화라고 한다. 한국내에서 또는 한민족끼리 한문화라고 하면 아무런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한'은 하나·크다·지도자(임금)·환하다(밝다) 등 수십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우리는 그런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해 온 것이다. 한문화는 곧 한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이루어 온 특수문화로 인식된다. 한민족사회에서야 그 용어가 별 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이 문화를 세계적 차원으로 전파하려면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문화의 '한'은 외국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 또는 '한민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영국인들이 '앵글로 문화'를, 미국인들이 '양키 문화'를, 일본인들이 '일(日)문화'를 전파하려고 할 때 우리 민족 자신이 그런 종족적 특수성을 대변하는 이름으로 다가오려는 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한문화'가 한민족의 문화이기는 해도 세계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봐야 외국인들을 납득시키기 어렵고, 한민족의 '문화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밖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세기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백성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힘이라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그럴 처지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세태도 아닌 바에야 세계인들에게 종족적 특성을 연상케하기에 족한 '한문화' 용어를 고집하려는 것은 일종의 한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한문화 대신 '배달문화'라는 용어를 제시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다.
'한'이라는 명칭은 민족 특수성을 부각시키면서 다소 추상적인 개념들로 보충을 하고 있지만, '배달' 또한 민족 특수성을 표현하기는 해도 '밝은 땅' '문명세상'이라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밝은 땅·문명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4. 배달문화의 내용
명칭에 걸맞을만한 배달문화의 실제 내용은 더욱 중요하다.
배달문화는 무엇보다도 인본주의라는 절대적 명제를 기본으로 한다.
인본주의는 배달문화에서 홍익인간(이화세계)라는 민족사적 시원으로부터의 도덕률에 간단명료하게 그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홍익인간의 방법론에서는 수많은 의견들이 나올 수 있는데, 그 또한 '현묘지도'라는 개념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고대로부터의 생활실천강령이었던 '경천·숭조·애인(敬天·崇祖·愛人)'은 복잡한 논리를 떠나서 누구든지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천방법이다. 바로 그 강령을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그대로 적용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구구한 방법론을 저마다 주장하여 시시비비를 따지느라고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는 건 너무나도 무의미한 일이다. 각자 인본주의에 입각한 홍익인간의 대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각자의 방법대로 실천하면서 살기만 하면 그대로 홍익인간 세상이 될 수 있다. 모든 분쟁은 홍익인간 대도에서 벗어나 각자의 주장을 강변하고 강제하려는 데서 시작해서 누군가의 파멸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평화적으로 포용하고 조화를 이룬다는 원칙에만 충실하면 배달은 그 시간부터 인류사회에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한민족(배달민족)의 이상만이 아닌 밝은 지구공동체를 이루는 위대한 사업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