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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得阜+龍望蜀득롱망촉**
得득:얻을 득 阜+龍롱: 땅이름 롱 望망:바랄 망 蜀촉:나라이름 촉
동의어:平阜+龍望蜀평롱망촉 望蜀之歎망촉지탄
유사어:谿鶴祉慾계학지욕 借廳借閨차청차규 車魚之歎거어지탄
騎馬欲率奴기마욕솔로
참조:鷄肋계륵
後漢書후한서 光武紀광무기 艸+令彭傳령팽전(도꼬마리령)
三國志삼국지 魏志위지
롱을 얻고 나니 촉을 갖고 싶다는 뜻. 곧 ①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 ②한 가지 소원을 이룬 다음 또다시 소원을
이루고자 함의 비유. ③만족할줄 모름의 비유.
①후한을 세운 광무제 劉秀유수가 처음으로 낙양에 입성하여
이를 도읍으로 삼았을 무렵(A.D.26)의 일이다.
당시 전한의 도읍 장안을 점거한 赤眉之賊적미지적의 劉盆子유
분자를 비롯하여 阜+龍서(롱서:감숙성)에 阜+畏口4中頁외효 蜀
(촉:사천성)에 公孫述공손술 目+垂陽(수양:산동서 에 張步장보)
등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그중 유분자.유양.이헌.공손술 등은 저
마다 황제를 일컫는 세력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후 외효와 공손술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무제에게 토
벌되었다. 외효는 광무제와 修好수호하고 西州上將軍서주상장
군이란 칭호까지 받았으나 광무제의 세력이 커지자 촉 땅의 공
손술과 손잡고 대항했다.
그러나 이미 成성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僭稱참칭하는 공손술은
외효의 사신을 냉대하여 그냥 돌려보냈다.이에 실망힌 외효는 생
각을 바꾸어 광무제와 수호를 강화하려 했으나 광무제가 신하가
될 것을 강요 하므로 외효의 양다리 외교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建武(건무 9년(33). 광무제와 대립 상테에 있던 외효가 병으로
죽자 이듬해 그의 아들 阜+鬼寇恂외구순이 항복했다.따라서 농
서 역시 광무제의 손에 들어왔다.이때 광무제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만족할 줄 모름다더니 이미 ′농을 얻고도 다시 촉을 바
라는 구나( 得阜+龍望蜀득롱망촉)."
그로부터 4년 후인 건무 13년(37),광무제는 대군을 이끌고 촉을
쳐 격파하고 천하 평정의 숙원을 이루었다.
②광무제로 부터 약 200년 후인 獻帝(헌제:190~226)말,
즉 삼국 시대가 개막되기 직전의 일이다.헌제 20년(220),촉을,br>
차지한 劉備유비가 강님의 孫權손권과 천하 대사를 논하고 있을
때 曹操조조는 단숨에 漢中(한중:섬서성 서남쪽 한강 북안의 땅)
을석권하고 阜+龍농 땅을 수중에 넣었다.이때 조조의 名將명장
司馬懿사마의:자는 仲達중달 진나라를 세운 司馬炎사마염의
할아버지가 진언 했다.
"여기서 조금만 진격하면 유비의 촉도 쉽게 얻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자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란 만족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이미 농을 얻었으니 촉까지
는 바라지 않소. "
이리하여 거기서 진격을 멈춘 조조는 헌제 23년(223),한중으로
진격해 온 유비의 蜀軍촉군과 수개월에에 걸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鷄肋계륵′이란 말을 남기고 철수하고 말았다.
*..*☆*..*松亭 玄萬奎 드림*..*☆*..*松亭印
~~늘~~항상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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