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같은 9월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무려 5일간이다. ‘코로라’ 여파가 세시 풍속마저 외면했다. 올해도 예년처럼 제사를 모시지 않고 일주일 전 성묘를 겸하여 묘소에서 인사를 드렸다. 외지에 나간 아이들도 비대면이다. 집사람은 자나 깨나 손자들을 걱정하며,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이체한다. 대면 못 하는 아이들 용돈을 서둘러 전하려는 마음에서다.
전통적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세뱃돈 주는 문화는 있어도 그 반대는 없었다. 부모님을 찾아뵐 때 예법으로 반드시 예물禮物을 준비하여 드리는 전통은 있었다. 현대 경제 사회에 접어들어 현금 가치가 올라가면서 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할 수 있는 수단으로 현금으로 드리게 되었다. 돈을 준다는 행위가 자칫 무성의해 보일 수 있지만, 부모의 처지를 고려한 방식이라는 측면에선 형식이 바뀌었을 뿐 예법에 결코, 어긋난 것은 아니다. 귀향 못 하는 자식도 몸은 편해졌지만, 맘은 복잡하다. 자식은 비대면이라 할지라도 현찰을 대면하고픈 부모의 속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부모님 명절 선물 1위는 단연 ‘현금’ 59.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기에 ‘현금과 현물 같이’(15.6%)까지 합치면 75% 정도가 현찰로 ‘떡값’ 드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4년 전 통계 수치다. 그렇다면 지금은 더 많은 부모가 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받은 돈이 부담스러워 손주 용돈 등으로 돌려주고 있다. 자식 용돈은 그저 우리한테 잠시 스쳤다가는 돈이며 용돈을 드리는 세대나 용돈 받는 부모 세대는 형편에 맞게 한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용돈은 한번 책정하면 백스텝은 불가하다. 민망함은 순간이고, 손해(?)는 영원하다! 애들아 첫 단추를 너무 높게 달지 말아라.
돈은 언제나 좋았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어려서 맞이하던 설날과 추석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설은 1년에 한 번 세뱃돈을 버는 날이었다. 돈을 줄 만한 집을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면 수입은 적지 않았다. 그 돈을 주머니에 꼭 쥐고 잠들곤 했다.
“안돼. 내놔” 하는 어머니의 불호령에도 아이들은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재산권을 당당히 행사한다. 세뱃돈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세배한 노동의 대가였다. 그랬다. 팔다리 굽히고 허리 숙이느라 고생했다. 돌아보니 나도 어릴 적 이맘때 가장 풍족했던 것 같다. 500환, 1000환권 지폐가 있던 시절이라 세뱃돈으로 1.000환을 받은 적도 있었다. 온 동네를 순회하며 사돈의 팔촌 어르신까지 기어이 찾아가 땅에 닿도록 허리 굽히며 우리만의 한철 특수를 노렸다. 설 끝자락에는 아이들끼리 모여 앉아 이번 시즌 총수입을 집계하며 재산 순위를 매기곤 했다. 어쨌든 그렇게 벌어들인 증여세 없는 돈은 문방구, 만화방, 구멍가게에서 며칠 새 흔적 없이 탕진했다. 애들아, 엄마가 보관하겠다는 말, 믿지 마라. 통장 잔액도 수시로 확인해보고….
젊었을 때 돈이 세상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먹어보니 진짜 세상 전부가 돈이었다. 자식들이 맘에 안 드는 선물을 사주면 고맙다곤 하지만 속으론 차라리 현금을 주지라 한다. 세상에 현찰 안 좋아하는 사람 어디 있겠나. 이제 용돈은 빳빳한 새 돈이 제맛이라는 생각도 저물고 있다. 요즘은 현금 사용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젊은 층에선 명절 용돈을 신권新券으로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다. 현찰을 직접 드리기보다 온라인 계좌 이체하면 좋겠다. 그래도 명절 이맘때면 찾아올 손님이 있어 음식을 준비한다. 애들아! 올 추석엔 내려오지 말고, 힘들게 내려와서 전 부치지 말고 용돈을 두 배로 부쳐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