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주련
○화엄주련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 사세가 클 때 81 암자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절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천년 고찰이면서 대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화엄사 누리집이나 안내도 등에 큰 '대(大)' 자를 붙여 '지리산대화엄사(智異山大華嚴寺)'로 쓴다.
각황전 자리에 있던 3층의 장육전은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했을 것이다.
장육존상을 봉안한 장육전 안 벽에 『화엄경』을 석판에 새겨 장식해 놓았다고 하니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엄의 세계에 들어온 듯했을 것이다.
화엄석경은 임진왜란의 병화로 부서져 일본에 반출되거나 유실되었다.
화엄사찰로의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화엄사는 화엄석경원을 건립하여 화엄석경을 보관 전시되고 있다.
또한 화엄사는 거의 모든 전각에 주련을 걸어놓았다.
주련의 내용은 선시나 석문의범 등에 나와 있는 글귀이지만 화엄경의 내용을 새겨놓은 주련이 가장 많다.
파편화한 '화엄석경'을 '화엄주련'으로 되살려내고 싶은 사부대중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화엄원, 광학장, 만월당, 보제루 등 여러 전각에 『화엄경』을 주련에 새겨 걸어놓은 것도 그 일환이 아닐까 싶다.
화엄원은 사찰체험 공간으로 2012년 건립한 전각으로 이곳에서 강의 및 템플스테이가 운영된다.
화엄원 주련은 의상조사 법성게 30구 중 12구를 새겨 놓았다.
<세계일화>와 <화엄원> 현판이 있는 쪽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
諸法不動本來寂(제법부동본래적)
無名無相絶一切(무명무상절일체)
證智所知非餘境(증지소지비여경
眞性甚深極微妙(진성심심극미묘)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
진리(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고
모든 법은 흔들림이 없어 본래 고요하네
이름 없고 모습 없이 모든 것이 끊어져
깨친 지혜로 알 뿐 다른 경계로 알 수 없네
참 성품은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니
자기 성품 고집않고 인연따라 이뤄졌네
화엄원 <불광보조> 현판이 있는 쪽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一中一切多中一(일중일체다중일)
一卽一切多卽一(일즉일체다즉일)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一切塵中亦如是(일체진중역여시)
無量遠劫卽一念(무량원겁즉일념)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
하나 속에 일체 있고 일체 속에 하나 있어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이네
작은 하나 티끌 속에 시방세계 들어있고
일체 모든 티끌 속에 하나하나 그러하네
셀 수 없는 오랜 세월이 곧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곧 셀 수 없는 오랜 세월이네
화엄원 또 다른 곳에 있는 주련은 『화엄경』 게송을 새겨 놓았다.
若人欲了知(약인욕요지)
三世一切佛(삼세일체불)
應觀法界性(응관법계성)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만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응당 법계의 성품을 관찰하라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지은 것이니라
'일체유심조'는 『화엄경』을 모르더라도 일상에서 익숙하게 듣고 사용하는 문구다.
우리는 모든 것이 '마음의 조화'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아무리 억장이 무너지는 일을 당해도 '마음 한 번 고쳐먹으면' 별것도 아니고 다 지나간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안다.
하지만 실천이 잘 안 되는 게 문제다.
그래서 마음을 닦는 수행이 으뜸이다.
광학장은 수련장으로서 산사 체험과 수련회를 하는 전각이다.
광학장 우측 건물 주련은 『화엄경』 입법계품과 십회양품 중에서 경문을 새겨 놓았다.
佛智廣大同虛空(불지광대동허공)
得成無上照世燈(득성무상조세등)
悉令一切諸衆生(실령일체제중생)
悉了世間諸妄想(실료세간제망상)
淸淨善根普回向(청정선근보회향)
利益群迷恒不捨(이익군미항불사)
부처님의 지혜는 허공과 같이 광대하며
세상에 가장 밝은 등불이 되어라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의 모든 망상을 다 깨닫게 하고
청정한 선근을 널리 회향케 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 언제나 쉬지 않네
1연과 4연은 『화엄경』 입법계품, 2연·3연·5연·6연은 『화엄경』 십회양품 내용이다.
허공과 같이 넓고 큰 부처님의 지혜는 모든 중생의 마음을 밝혀 주고 망상을 깨닫게 하고 악에서 구해 주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처님의 중생제도를 위한 자비심도 부처님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정진할 때 가능한 일이다.
만월당은 임진왜란 후 중건되었다가 6.25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86년 다시 지었다.
수련장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대중스님 처소로 사용하고 있다.
주련은 『화엄경』 입법계품 끝부분 게송을 새겨 놓았다.
글씨는 서예가 취묵헌 인영선이 썼다.
如來淸淨妙法身(여래청정묘법신)
一切三界無倫匹(일체삼계무륜필)
以出世間言語道(이출세간언어도)
其性非有非無故(기성비유비무고)
雖無所依無不住(수무소의무부주)
雖無不至而不去(수무부지이불거)
如空中畵夢所見(여공중화몽소견)
當於佛體如是觀(당어불체여시관)
三界有無一體法(삼계유무일체법)
여래의 청정하고 미묘한 법신은
삼계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것이 없네
세간을 벗어난 언어로 도를 말씀하시니
그 성품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까닭이라
비록 의지하는 곳 없으나 머물지 않음도 없고
비록 이르지 않는 곳 없으나 가지도 않네
허공 중의 그림을 마치 꿈에 보는 바와 같이
마땅히 불체를 이와 같이 관하라
삼계에 유와 무 모두 하나의 법이니라
마지막 연의 체(體)는 원본에 체(切)로 되어 있다.
뜻에는 큰 변함이 없어 혼용해서 쓴 듯하다.
성보박물관 주련은 『화엄경』 입부사의해탈경 보현행원품 내용 중에서 경문을 새겨 두 군데에 걸어 놓았다.
我昔所造諸惡業(아석소조제악업)
皆由無始貪瞋癡(개유무시탐진치)
從身口意之所生(종신구의지소생)
一切我今皆懺悔(일체아금개참회)
내가 옛부터 지은 일체의 악업은
모두가 탐진치에 의한 것이며
몸과 입과 뜻을 따라 나온 허물을
내 이제 모든 죄를 참회합니다
위 경문은 천수경 참회게로 독송하는 문장이다.
또 다른 성보박물관 주련은 다음과 같다.
我此普賢殊勝行(아차보현수승행)
無邊勝福皆廻向(무변승복개회향)
普願沈溺諸衆生(보원침익제중생)
速往無量光佛刹(속왕무량광불찰)
내가 이제 보현보살 수승하신 행을닦아
가없는 거룩한복 모두에게 회향하며
고해 속에 허덕이는 모든 중생 건져내고
하루속히 극락정토 왕생하길 원합니다
보제루(普濟樓)는 강당으로 법문을 강설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근래에는 불교 관련 사진이나 작품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보제루에는 들어가는 쪽에 <보제루>, 맞은편에 <화장> 현판이 걸려 있다.
두 곳 주련에 『화엄경』 현수품 경문을 새겨 걸었다.
<보제루> 현판이 걸려 있는 쪽 주련은 다음과 같다.
글씨는 학정 이돈흥이 썼다.
迦陵頻伽美妙音(가릉빈가미묘음)
俱枳羅等妙音聲(구지라등묘음성)
種種梵音皆具足(종종범음개구족)
隨其心樂爲說法(수기심락위설법)
八萬四千諸法門(팔만사천제법문)
諸佛以此度衆生(제불이차도중생)
彼亦如其差別法(피역여기차별법)
隨世所宜而化度(수세소의이화도)
가릉빈가의 아름답고 미묘한 소리
구지라 등의 미묘한 음성
여러가지 범음을 모두 갖추어
그 마음을 따라 설법하시네
팔만사천의 모든 법문으로
모든 부처께서 이처럼 중생을 제도하시네
나 또한 그와같은 법으로
세간의 마땅한 이치에 따라 교화제도 하리
보제루 <화장> 현판쪽 주련은 다음과 같다.
信爲道元功德母(신위도원공덕모)
長養一切諸善法(장양일체제선법)
斷除疑網出愛流(단제의망출애류)
開示涅槃無上道(개시열반무상도)
信無垢濁心淸淨(신무구탁심청정)
滅除憍慢恭敬本(멸제교만공경본)
亦爲法藏第一財(역위법장제일재)
爲淸淨手受衆行(위청정수수중행)
믿음은 도의 근원이 되고 공덕의 어머니가 되니
일체의 선한 법을 길러내며
의심의 그물을 끊고 삼독의 흐름에서 벗어나
열반의 무상도를 열어 보이네
믿음은 때와 탁함이 없어 마음이 청정하고
교만을 없앰이 공경의 근본이요
또한 법장의 제일의 보배가 되리
청정한 손이 되어 모든 행함을 받네
선등전 주련은 『화엄경』 입법계품과 십지품의 경문을 옮겨 새겨 놓았다.
입법계품 주련은 다음과 같다.
若人欲知佛境界(약인욕지불경계)
當淨其意如虛空(당정기의여허공)
遠離妄想及諸取(원리망상급제취)
令心所向皆無碍(영심소향개무애)
만약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맑게 하여
망상과 모든 집착을 멀리 여의고
마음이 향하는 곳 걸림이 없도록 하라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마음쓰기를 허공과 같이 하라는 가르침이다.
허공은 어디에도 의지하지 것이 없고 얽매임이 없다.
그런데 마음이 요술을 부려 그렇게 되는 데 걸림이 많다.
그래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중생도 되고 부처도 된다.
마음을 불성을 찾는데 써야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망상과 집착이다.
그러니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망상과 모든 집착을 내려놓아 마음에 걸림이 없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다.
이 주련 다음의 주련은 『화엄경』 십지품의 내용이다.
위 주련의 내용처럼 망상과 분별을 멀리하면 온 세계 스승이신 부처님처럼 큰 스승이 될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若有欲得如來智(약유욕득여래지)
應離一切妄分別(응리일체망분별)
有無通達皆平等(유무통달개평등)
疾作人天大導師(질작인천대도사)
여래의 깊은 지혜를 얻으려거든
모든 망상과 분별을 멀리하라
있고 없음에 통달하면 모두 평등해
속히 인간과 천인의 큰 스승 되리라
화엄원 현판에서 보듯이 화엄사는 화엄종찰이었다.
전각 주련에 화엄경의 내용을 가장 많이 새겨 놓은 것도 이를 증명한다.
주련은 한문으로 써 있기 때문에 읽기 어렵다.
이를 의식한 듯 화엄사는 각 주련마다 아래쪽에 해석을 써서 붙여 놓았다.
그래도 생소한 불경의 내용이 많아 이해하기가 쉽지도 않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찬찬히 읽어보고 숙고해보면 그 의미가 화선지에 먹물 번지듯 마음 속에 퍼질 것이다.
화엄사 전각을 보며 색다른 느낌, 힐링되는 느낌, 편안한 느낌을 충분히 누리되 한 줄 주련의 의미라도 읽고 마음에 새겨두면 좋겠다.
절은 예불공간이자 수행공간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체득해나가는 도량이다.
부처님도 열반 직전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주련의 내용은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를 새겨놓은 것이니 마음에 새겨두는 것은 어떨까.
그 씨앗이 언젠가 큰 깨달음으로 발아될 지 누가 아는가.
<낙산사 송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