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6주일 강론(가해)
오직 하느님 뜻에 항복하라!
오늘 성경 말씀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저는 이 회개와 관련하여 지난 번 배론성지에서 있었던 연중 사제 피정에서 읽었던 미국인 신부 래리 리처즈가 지은 "오직 하느님 뜻에 항복하라!"라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묷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 중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오늘 강론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샤를르 드 푸코 성인은 '예수의 작은 형제회'를 창설한 근간이 되었지만 젊은 시절엔 멋대로 살던 분이다. 불가지론자로서 여인들과 더불어 밤낮으로 파티를 즐기며 살다가 크게 뉘우쳐 회심하기에 이른다. 그 후에 숨어계신 예수님처럼 살고자 나자렛에서 은수자로 살았고 말년에는 아랍인들과 함께 지내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더낫다. 내가 그 시절에 수없이 드리고 또 드렸던 기도문이 바로 그가 남긴 기도문들 가운데 하나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다른 것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내 영혼을 바칩니다.
당신은 내 아버지이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아멘.
래리 리처즈, 오직 하느님 뜻에 항복하라 184-185쪽
회개에 대해 우리는 너무 많이 들어왔기에 회개를 해야 할 때도 회개하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즉 ‘회개 불감증’에 걸려있는 것이 우리들의 실정입니다. 죄인의 회개에 대해 성경은 항상 말하고 있고 피정 때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진정 회개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속에서 하느님의 도우심과 구원의 손길을 청하며 간절히 울부짖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며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로 향할 때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성령이 폭포수처럼 넘쳐흐르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새 하늘, 새 땅에서 주님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모습도 그분의 은총으로 환한 빛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그림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하여 먼저 예수님 얼굴의 모델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덕행에 빛나는 젊은 청년을 발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찾은 결과어느 날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청년을 발견하고 예수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청했더니 기꺼이 승낙하여 무사히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2제자를 하나씩 그려나가다가 마지막으로 유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화가는 얼굴에 악한 기운이 가득한 모델을 구하러 나섰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윤락가에서 원하던 사람을 발견하여 돈을 주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그림을 그리는 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가 언젠가 이곳에 와본 일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화가가 그럴 리가 없다고 잘라 말하자, 그 사람은 자기가 전에 예수님의 얼굴을 위한 모델로 왔었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죄인이 회개하여 하느님 안에 머물 때 그 은혜로 잘살 수 있지만, 자신의 힘을 믿거나 교만해져서 하느님을 망각할 때에는 죄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 감사드리며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순명과 겸손의 자세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21,28-32)의 두 아들의 비유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할 수 있는 두 가지 형태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라고 대답하고 실제로는 의무를 회피하는 둘째 아들의 형식적이고도 가식적인 행동과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나중에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으로 옮긴 맏아들의 갈등과 깊은 사고에 의한 진솔한 순명의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맏아들은 처음에는 비록 무례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으나 회개하여 아버지의 뜻을 따름으로써 실상 아버지께 기쁨을 드린 효자가 된 것입니다. 반면 작은 아들은 아버지와 약속은 해놓고 실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함으로써 불효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실상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말이나 겉치레, 꾸밈이 아니라 뜻한 바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회개란 결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온전한 방향 전환이요,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행위인 것입니다. “의인이 자기의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에제 18,26)이지만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에제 18,27)이라고 하시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죽음의 구렁텅이 속에 헤매던 자들도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뜯어고치고 주님께 돌아섬으로써 생명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이는 곧 제2독서(필리 2,1-11)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간직할 때”(필리 2,5)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은 가난한 자나, 부자나, 권력자나, 일반 대중 모두가 신분과 지위의 고하를 떠나서 모두가 자신을 낮추어 서로를 받들고 존경하며 섬기는 마음이며 애정을 나누며 동정심을 갖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은 모든 죄인들을 포용하는 마음이요,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바다같이 넓고 하늘보다 높은 마음을 헤아리면서 늘 새롭게 회개하여 주님 안에서 참 평화와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