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을 품은 계절의 깊은 골짜기에 다다릅니다. 그 계절에 눈이 내리는 것이 특별할 것도 아닐 터인데 환호성을 지르면서 현관문 여닫기를 수차례 반복합니다. 캄캄한 밤에 내리는 눈을 보기 위하여 시선을 멀리 가로등을 향하여 고정합니다. 가로등 불빛도 추위에 떨고 있는 한밤중에 보랏빛 실루엣으로 내리는 눈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마당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빙그르르 돌았더니 오른쪽 뺨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집니다. 목덜미에 앉은 눈송이를 느낍니다. 팔목에 머무르는 찰나의 몸짓을 느낍니다. 눈은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설레게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나라에도 눈이 내리는지 궁금합니다. 열다섯 살 소녀가 한 권의 시집을 품에 안고 동시에 만난 시인은 별이었습니다. 시인은 소녀가 문학을 알기 전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소녀는 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시집을 읽었습니다. 소녀가 시집 속에서 ‘별’을 찾았을 때 가을밤 소녀의 마당에 하늘의 별이 일제히 쏟아졌습니다. 시인은 그렇게 소녀의 영혼에 각인된 별이 되었습니다.
소녀가 성장하여 꽃다운 시절을 지내는 동안에 한시도 별을 잊지 않았습니다. 별을 만난 것처럼 책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문학의 블랙홀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갈 때도 그 별 하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문학의 궤도를 돌고 돌아 시인이라는 관을 쓰던 날부터 별이 되고 싶은 꿈을 꾸었습니다. 작은 빛일지라도 순수하고 따뜻하게 빛나는 별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별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숙맥처럼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대차대조를 하지 못합니다. 손익을 계산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시인은 단어 하나에도 전율할 수 있는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별의 위치에 다다를 수 있는 사람만이 시를 써야 하고 시인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가져야 한다는 믿음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어쩌면 그 별을 찾아 나선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세파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몸부림친 날들과 세상의 이익을 멀찌감치 밀어내려고 입술 깨물던 순간들은 스스로 채찍질하던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별을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얻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맞바꾸었습니다. 애써 오솔길로 자신의 등을 떠미는 다짐들은 별을 향하여 길을 나선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알고 있습니다.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와 달리 얼어 죽을지언정 산정 높이 올라가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수시로 생각합니다. 더러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역사 속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지금 그런 사람들이 있듯이 미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산정에 오른 표범의 경지에 다다르고 싶습니다. 그곳이 별들이 빛나는 성지가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걸어왔다고 자신합니다. 한 점의 흠과 티 없이 순수한 열정으로 호흡하면서 왔습니다. 이만치 왔어도 별에게 가는 길이 아스라이 멀기만 합니다. 별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팔을 걷어 올립니다.
별을 찾기 위해 주어진 시간 내내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별이 머물렀던 공간을 샅샅이 헤맬 것입니다. 별이 머물렀던 시간을 타임머신 타고 달려갈 것입니다. 별의 여정을 쫓아 북간도에서 후쿠오카까지 시공간을 함께할 것입니다. 별의 유소년기를 더듬고 청년기를 찾을 것입니다. 나약한 영원이 기울어가는 조국의 지축을 온몸으로 떠받치던 시인의 절규를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영원의 문학의 여정은 별에서 출발하여 별에 귀착하는 운명의 궤도인가 합니다. 문학의 하늘에 그 별 하나 띄우고 그 별에 연을 묶고 따라 돌면서 별이 되도록 하늘이 미리 정해 준 노선이라고 믿습니다. 그 별을 찾아 나서겠다고 작정하니 그 운명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영원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 말하겠습니다. 그 별의 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하겠습니다. 그 별이 얼마나 순수한 향기를 간직했었는지 말하겠습니다. 꼭 그리 할 터이니 지켜보기 바랍니다.
영원은 자신만만합니다. 그 별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듯 영원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렵니다. 한 줄 시구에 혼신을 녹여 영원의 인격을 담으렵니다. 영원은 품위를 잃지 않는 글을 쓰겠노라 약속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 별처럼 빛나는 시를 쓰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향기로운 시를 쓰겠습니다.
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목전에서 감사합니다. 별을 만날 설렘으로 일 년 내내 행복할 자신이 있습니다. 별의 고통과 슬픔 앞에서도 울지 않을 것입니다. 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