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人터뷰] 세 아이의 아빠와 ‘농사왕’, 오세근과 ‘갓세근’2017.11.25 오후 03:32 | 기사원문
해외야구 이영미 헤럴드스포츠 대표기자, 네이버 '이영미의 스포츠 인 스토리' 칼럼 연재. 추신수&류현진 MLB일기 담당자
<13개월된 쌍둥이 아빠 오세근. 12월에는 셋째가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의 책임감 때문인지 더욱 완성도 높은 농구 실력을 보이는 오세근을 만났다.(사진=임준선)>
-오세근은 국대에서도 갓세근이다, 갓세근.(구억새) -오세근-이정현 2대2 플레이 보니까 짠하고 아쉽고 그렇다. 국대에서라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음.(태풍) -국제대회에서 더블더블이라니. 그것도 뉴질랜드 상대로 ㄷㄷㄷ.(ringmabell) -건강한 오세근은 아시아탑 센터임.(tjde****) -진짜 갓세근이더라 보면서 소름. 잘 하더라 진짜 홈콜 다 이겨내고.(dial****) -오세근의 가슴 두께를 본 순간 이 선수가 왜 최고인지 알겠더라.(syp0****) -오세근은 높이랑 힘만 있는 게 아니라 드리블과 무브마저 너무 부드러움.(Dino) -건강한 오세근은 탈아시아급.(홈런타자이대형) -미스매치나면 그냥 포스트업 떨어지면 미들~ 멋있어.(빈스카터) -한국농구의 부활인가. 허재 감독이 대표팀을 잘 만들었네.(악어사냥) -감동입니다. 평생 이렇게 재밌는 농구는 첨입니다.(허재호 감동입니다)
23일 뉴질랜드에서 열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 오세니아 지역 예선 1라운드 A조 1차전에서 14점 10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작성한 오세근(30·안양KGC)에게 쏟아진 칭찬 댓글들이다. 유럽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을 불러 모아 최정예 멤버들로 팀을 구성한 뉴질랜드를 상대로 오세근은 안정적인 득점력과 리바운드 장악력을 선보이며 토종 센터의 자존심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오세근은 소속팀 안양 KGC에서도 변함없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올시즌 12경기에서 평균 20.58득점, 10.4리바운드, 3.9도움을 기록 중이다. 13.98득점, 8.4리바운드, 3.4도움을 기록했던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농구 코트에서 보이는 오세근의 플레이는 완성형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양 KGC를 상대하는 팀 감독마다 “KGC에는 3명의 외국인선수가 있다. 2명의 외국인선수와 또 한 명의 오세근이다”라며 난색을 표한다. 오세근의 전성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얘기에 이견을 다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대표팀 합류하기 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오세근을 만났다.
진화하는 오세근의 고민
지난 8일 인천 전자랜드 경기였다. 양희종이 코뼈 골절 수술로 빠지고 외국인선수 데이비드 사이먼마저 무릎 부상으로 제외됐을 때 오세근은 혼자 고군분투하며 양 팀 최다 30득점을 달성했다. 12리바운드에다 블롯슛도 양 팀 최다 3개를 기록했는데 팀 패배로 개인 기록이 묻히긴 했지만 오세근의 위력은 여지없이 발휘됐다.
그러나 정작 오세근은 경기 막판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야투율도 좋지 않았다며 자신을 자책했다. 거친 수비를 상대하느라 항상 부상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쿨’하게 반응했다.
“내 포지션(파워포워드)의 특성상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면서 리바운드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늘 부상을 달고 산다. 경기를 마치면 두세 군데는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골절만 아니면 치료받고 바로 회복해야 하는데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정현과 함께 했던 시간들. 이젠 과거로 남았지만 대표팀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만나는 이정현이 반가운 오세근이다.(사진=연합뉴스)>
이정현의 공백을 느낄 때마다
올시즌에는 영원한 동반자일 줄 알았던 이정현의 이적으로 오세근은 그 공백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워낙 오랫동안 한 팀에서 동고동락했던 사이라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정현이랑은 87년생 동기로 안양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며 익숙해진 플레이들이 있는데 정현이의 공백으로 처음엔 다소 혼란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계속 같은 팀에서 뛰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샐러리캡으로 둘 다 KGC에 남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표팀 소집이 기다려졌다. 거기서 정현이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으니까.”
이정현이 FA를 앞둔 지난 시즌 내내 농구계에선 오세근과 이정현이 더 이상 한 팀에서 뛰기 어려울 거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오세근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둘이 감정 싸움을 벌인 적은 없었다. 나로선 팀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며 도움이 되고 싶은데 팀은 외곽 위주의 플레이로 가면서 이정현에게 무게가 실리다보니 내가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결국 내가 찾아 들어갔다. 공격하면서 리바운드 하나라도 더 잡아내려고 뛰었다. 득점 올리고 속공 플레이하면서 더 빨리 뛰어주고, 최대한 스크린 많이 걸어주는 등 내 역할을 만들었다. 팀 운영에 나를 맞추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현이와 내가 감정적으로 불편할 일은 전혀 없었다.”
태극마크와 허재 감독
오세근이 처음 태극마크를 단 시기가 2008년 중앙대 3학년이었다. 막내로 시작했던 대표팀 생활이 어느새 베테랑으로 접어들었다. 지금 대표팀에서는 33세 양희종 다음이 오세근이다. 그런 그가 여전히 태극마크를 달면 가슴이 뛴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대표팀에서 활약했는데 태극마크를 달면 가슴이 쿵쾅 거린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명감, 책임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최근 3년 간 부상 등의 이유로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대표팀에 대한 애착이 크다. 무엇보다 각 팀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에서 만들어 가는 호흡이 꽤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지난 아시아컵에서도 대표팀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
지난 8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끝난 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에서 한국대표팀은 3위에 올랐고, 한국 농구의 희망을 봤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오세근은 팀을 이끄는 허재 감독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막내였던 시절 대표팀 생활하면서 허재 감독님한테 많이 혼났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그렇게 혼난 경험이 없던 나로선 당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난 감독님은 훨씬 부드럽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전에는 감히 다가가기조차 어려웠다면 지금은 어떤 얘기도 다 받아주시는 편이다. 덕분에 대표팀 분위기가 좋아졌고, 그 분위기가 경기 내용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한국(34위)보다 높은 랭킹의 뉴질랜드(27위)를 상대로 토종 센터의 위용을 멋지게 선보인 오세근.(사진=FIBA)>
선배들의 장점을 뽑아내려 했던 오세근
대학생 신분의 오세근은 대표팀에서 처음 만났던 김주성을 잊지 못했다. 자신과 같은 포지션이라 김주성의 움직임을 더욱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성이 형의 플레이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내게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형들을 귀찮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형들의 장점을 어떻게 해서든 뽑아내려고 졸졸 쫓아다니면서 질문을 많이 했다. 주성이 형한테선 전체적인 움직임을 배웠다. 파워포워드의 기본적인 움직임이라든지, 골밑에서 혼자 움직이는 것과 볼이 없을 때 어떤 형태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관찰했었다. (양)동근이 형으로부턴 사생활 관리를, (주)희정이 형한테선 웨이트트레이닝하는 법, 개인 훈련하는 노하우 등을 배웠다. 희정이 형은 몸 상태가 안 좋으면 훈련 시간보다 일찍 나가서 개인 운동을 시작했다.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선배들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며 경기 준비하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큰 깨달음을 갖게 해줬다.”
눈물 많은 쌍둥이 아빠
지난 시즌은 오세근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다. 한 시즌에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3개나 차지했기 때문이다(올스타전,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그는 지난 시즌 챔프전 우승 확정 후 눈물 흘렸던 장면을 떠올렸다.
“내 농구인생은 롤러코스터였다. 프로 신인 때부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데뷔를 했고, 데뷔 해에 신인왕, MVP를 수상하는 등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들을 영위했었다. 그러다 발목 부상을 당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할 뻔한 위기가 있었고, 개인적인 문제로 팬들에게 걱정을 끼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든 덕분에 다시 팀 우승을 일궜고, 덕분에 상까지 받게 되는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더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것 같다.”
한때 안양 KGC는 오세근이 부상만 안 당하면 우승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프로 데뷔 후 여러 차례 부상으로 코트에 서지 못했던 상황을 빗댄 내용이다. 모두 네 차례의 수술을 받았던 오세근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2012-2013 시즌 중 당했던 발목 부상이라고 말한다.
“당시 한국에 있는 병원에선 수술을 못하겠다고 해서 일본 가와사키 전문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가 내 발목 상태를 보고선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 난 수술 받으러 일본까지 간 건데 의사는 부상 부위가 너무 심해 수술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이 안 선다며 시간을 달라고 하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 되더라.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연락을 기다렸는데 그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한 달이 지난 후 가와사키의 병원으로부터 수술하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수술받고 재활하느라 3개월가량을 일본에 더 머물렀다. 한국에서 재활을 했더라면 조금 덜 답답했을 텐데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에서 혼자 3개월을 지내니까 미칠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재활을 마치고 내가 다시 코트에 설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주위에선 ‘오세근의 농구인생은 이미 끝났다’ ‘복귀해도 이전처럼 뛸 수 없을 것이다’란 수군거림이 대단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수록 더 오기와 독기가 생겼던 것 같다. 이 모든 걸 이겨내서 내가 건재하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힘든 시절을 얘기해달라는 주문에 일본에서 발목 수술받고 재활했던 3개월의 시간을 떠올린 오세근. (사진=임준선)>
일본까지 찾아온 이상범 감독
농구 인생 최대 위기라고 생각했던 시기, 혼자 일본에서 재활을 하고 있을 당시에 그를 찾은 이는 이상범 당시 안양 KGC 감독이었다.
“그때가 올스타전 휴식기였을 것이다. 감독님이 예고 없이 날 찾아오셨는데 별다른 말씀 없이 맛있는 밥 한 끼 사주고 돌아가셨다. 그때 큰 감동을 받았다. 감독님의 따뜻한 관심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고, 평생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살겠다고 다짐했던 계기가 됐다.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울컥 하는 감정이 생긴다.”
오세근은 당시의 아픔이, 절망이, 자신을 일으켜 세운 인생의 소중한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후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다 털어버릴 수 있는 자신감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경기 결과에 춤을 추는 인터넷 댓글을 포용하고 상처받지 않게 된 것도 그 일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노 알콜 맥주 10캔을 앞에 두고 하나씩 마시며 눈물 흘렸던 일본 생활이 오세근에게 오랫동안 각인되면서 그를 더욱 단단한 선수로 만들어준 것 같다.
자신의 농구 인생을 경기로 풀었을 때 3쿼터 시작할 무렵이라고 짚어내는 오세근. 1,2쿼터는 너무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왔기 때문에 3,4쿼터는 더 집중해서 이기는 경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도 담아냈다.
“내 등번호가 41번이다. 그래서 인터뷰 때마다 마흔 한 살에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10년 더 뛰어야 한다(웃음). 어렵게 3쿼터까지 왔으니 남은 ‘인생 경기’에는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오세근은 13개월 된 쌍둥이 아빠이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셋째가 태어난다. 연년생의 세 아이들을 키울 생각에 벌써부터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농구로 풀어내겠다며 미소를 보인다.
쌍둥이 아빠 오세근을 비롯해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는 농구대표팀의 2019년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A조 2차전 중국과의 경기가 26일 오후 7시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펼쳐진다. 신장 아닌 심장으로 뛰는 대표팀 선수들에게 진심을 다해 응원을 보낸다.
<26일, 중국과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는 농구대표팀. 뉴질랜드전에 보여준 열정과 집념이 중국전에서도 펼쳐지길 바란다.(사진=FIBA) <이영미 기자>
기사제공 이영미 칼럼
헤럴드스포츠 대표기자, 네이버 '이영미의 스포츠 인 스토리' 칼럼 연재. 추신수&류현진 MLB일기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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