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 소설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하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 두어 권 보내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오십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 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 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엎짚어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뭇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쏙구리 돈을 잡아 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 다오. 기다리마.
삼월 십팔일
김유정으로부터
김유정이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1908년생 김유정은 1937년 3월 18일 이 편지를 쓰고 11일 뒤인 3월 29일 서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첫댓글 '소낙비'가 생각납니다. 아까운 예술가의 짧은 생이 안타깝습니다.
아참, 소나기는 황순원이지.ㅋ 착각했네요.
형님 ㅎㅎ 고맙습니다